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백악관 승인 넘어야 할 산만 3개…의회·123협정·NPT까지]
이재명 정부가 ‘장보고-N 프로젝트’를 공식화하며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시대를 선언했지만, 현실의 벽은 예상보다 훨씬 높다. 미국의 법적 승인 없이는 핵연료 확보조차 불가능한 데다, 의회 심의와 핵비확산 체제라는 다층적 장벽이 동시에 가로막고 있다. 여기에 중국·러시아·일본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핵잠 추진은 단순한 무기 개발을 넘어 동북아 지정학 전체를 흔드는 사안으로 비화되고 있다. 성급한 선언이 외교적 역풍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해군 전문 매체 USNI 뉴스는 지난 27일, “한국이 2015년 한·미 원자력 평화적 이용 협정에 근거해 잠수함 연료 확보에 미국의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미국이 연료 지원에는 협조할 수 있지만, 원자로 기술을 서울과 공유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장보고-N 프로젝트는 2020년대 후반 건조 착수, 2030년대 중반 진수, 2030년대 후반 실전 배치라는 시간표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 일정표 전체가 연료 협정 체결이라는 전제 조건 위에 얹혀 있는 구조다. 분명한 것은 핵잠수함의 핵심은 선체가 아니라 연료라는 점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미국 승인 없이는 잠수함용 고농축 우라늄을 확보할 방법 자체가 없다.
이와 관련해 법률·안보 전문 저널 저스트시큐리티(Just Security)는 지난해 12월 “현재 계획의 가장 기본적인 세부 사항조차 한·미 간에 크게 혼란스러운 상태”라면서 “지난해 10월 정상회담 이후 양측이 발표한 공동 팩트시트 역시 미국의 핵잠 프로그램 '지지'와 '연료 조달 방안 공동 모색'이라는 원론적 언급에 그쳤을 뿐, 구체적인 협정 내용은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저스트시큐리티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이 소셜미디어 게시물과 팩트시트 수준에 머물고 있을 뿐, 법적 효력을 지닌 협정으로 전환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올해 1월 핵잠수함 연료의 법적 장벽에 대해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123 협정)은 한국이 미국산 핵물질을 군사 목적으로 농축하거나 재처리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이는 핵잠수함 연료도 포함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 협정을 개정하려면 이론적으로 의회 동의가 필요한데, 백악관은 정상회담 2주 후 발표한 팩트시트에서 '평화적 목적의 민간 우라늄 농축'을 지원한다는 표현으로 의회 승인을 우회하려 했지만, 그러나 이 역시 핵잠용 군사 연료 이전에는 직접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라고 짚었다.
이에 대해 미국기업연구소(AEI)의 한반도 업데이트 보고서는 “123 협정 제13조 개정이 의회 비준은 필요하지 않지만 90일간의 의회 심의 기간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 심의 기간 중 의원들이 공동 반대결의안을 통과시키면 개정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즉시 조달'을 기대하는 것과 미국 내 실제 법적 절차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뿐 아니다. 한국 정부가 핵잠 계획을 발표한 직후인 올해 1월 30일, 미국 상원의원 4명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며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에드워드 마키(민주·매사추세츠), 제프 머클리(민주·오리건), 크리스 밴 홀런(민주·메릴랜드), 론 와이든(민주·오리건) 의원은 서한에서 “한국 핵무기의 복잡한 역사와 트럼프 대통령 본인의 역할을 감안할 때, 이번 정책 전환은 특히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한국에 잠재적 핵 능력을 제공하는 것은 미국의 핵비확산 목표를 훼손할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현재 협상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핵 협정에도 부정적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70년 넘게 초당적으로 유지돼온 핵비확산 정책을 한 국가를 위해 뒤집는 것이 도미노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 "THAAD 사태 재현 우려"…한·중 관계에 새 뇌관]
한국의 핵잠수함 추진에 대한 중국의 반발은 이미 가시화됐다. 실제로 한국의 핵잠 추진은 2016년 THAAD 사태와 유사한 갈등을 한·중 관계에 불러올 수 있다. 당시 한국이 주한미군의 사드(THAAD) 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하자 중국은 한국행 단체 관광을 금지하고 롯데마트의 중국 내 영업을 압박하는 등 광범위한 경제 보복을 가한 바 있다.
이러한 동향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중국 공산당의 영어 매체인 글로벌타임스의 보도인데, 이 매체는 지난해 11월 17일, 주한 중국 대사의 발언을 인용해 “한·미 동맹 현대화 노력이 중국을 견제하는 틀로 확장돼서는 안 된다”며 “한·미 동맹의 전략적 목적이 바뀐다면 중국 주변국에 대한 시각도 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군사 전문가 다 즈강(笪 志剛)은 글로벌타임스에 “한국의 핵잠이 결국 중국 견제에 활용된다면 한·중 관계에 심각한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일본이나 북한의 유사 능력 추구를 자극해 동북아 군비 경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 린젠도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이 이 문제를 신중하게 접근하기 바란다”고 재차 촉구하며, “핵비확산조약(NPT) 체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공식 표명했다. 미국이 AUKUS를 통해 호주에 핵 기술을 제공한 선례가 한국으로까지 확산되는 상황에 대해 중국이 외교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중국친화 정책을 펼치고 있는 이재명 정부가 이러한 중국의 반발을 감당할 수 있을까?
러시아의 입장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주한 러시아 대사 게오르기 지노비예프는 올해 2월 9일 “한국이 핵잠수함 건조를 위해 미국으로부터 농축 우라늄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핵비확산조약(NPT)을 위반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그는 “IAEA 틀 안에서 잠수함 원자로에 사용되는 핵물질 검증에 관한 광범위한 국제적 논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구체적인 세부 계획을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NPT 위반 여부를 단정하기는 이르다면서도, 문제 제기 자체는 명확히 한 것이다.
[실무 협상 지체의 배경…워싱턴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사실 한미간에 핵잠 실무 협상이 지지부진한 데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핵에너지, 군비 통제, 핵비확산 업무를 담당하는 미 국무부와 에너지부 실무진이 이란 핵 협상에 발이 묶여 있었고, 백악관은 트럼프·시진핑 미·중 정상회담 준비에 집중해 왔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한국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 지연, 쿠팡 관련 분쟁 등 양국 간 현안도 협상 동력을 약화시켰다. 여기에 한국 정부가 미국이 아닌 제3국(프랑스 등)으로부터 연료를 조달하는 '플랜 B'를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 측의 신뢰까지 흔들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군사 전문 매체 리얼클리어디펜스(Real Clear Defense)는 지난 2월 20일, 한국의 독자 SSN 개발이 직면한 구조적 한계를 명확히 진단했다. 이 매체는 “한국의 독자 프로그램이 미국내 법적 개혁, 원자로 독자 개발, 국제 핵비확산 체제 하 허가 취득이라는 세 가지 연동 장벽을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데, 각각만으로도 어려운 이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단언했다.
인도의 유명한 싱크탱크 ORF도 한국의 핵잠 추진을 동북아 전략 지형 변화의 맥락에서 분석하면서, “한국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북한의 핵잠 개발 가능성을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이재명 정부의 핵잠 계획 발표 이후 지역 내에서 신중한 우려 표명이 잇따르면서 억지력 강화와 지역 불안정 사이의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라고 지적했다.
핵잠수함은 단순한 무기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의 핵비확산 전략, 중국의 지역 패권 구상, 러시아의 안보 이해관계, 일본의 군사 전략 변화까지 동시에 건드리는 초고난도 지정학 프로젝트다. 선언 하나로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의미다. 다시말해 우리 기분대로 덜컥 발표할 성질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핵잠수함 추진은 오히려 한국형핵잠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이재명 정부가 야심 차게 쏘아 올린 ‘장보고-N 프로젝트’가 시작부터 거대한 암초에 부딪혔다고 할 수 있다. 군사적 억제력 확보라는 명분은 그럴싸하지만,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과 한·미 동맹의 기본 틀을 무시한 조급한 과속이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핵추진잠수함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최고 수준의 지정학적 방정식이다. 이를 국내 정치적 성과용 ‘선언’으로 접근한 전형적인 포퓰리즘 안보관이 외교적 자해 행위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이재명 정부가 내부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연료조달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제3국을 통한 연료 조달, 즉 ‘플랜 B’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이는 한미간 안보 동맹의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인 ‘상호 신뢰’를 송두리째 흔드는 위험천만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배제하고 독자적인 핵 행보를 걷겠다는 신호로 비칠 수 있으며, 결국 워싱턴 실무진의 우선순위에서 한국 정세가 뒤로 밀려나는 참사를 자초했다. 동맹의 가치를 훼손하면서 얻을 수 있는 안보는 어디에도 없다.
여기에 주변 패권국인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보복 가능성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는 과거 사드(THAAD) 사태 당시 우리 기업들이 겪었던 참혹한 경제적 핏값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철저한 경제 안보 대비책과 외교적 전략도 없이 중국을 자극하는 무모함은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미국의 아시아 핵심 동맹국인 일본마저 미국의 한국 핵잠 지지 움직임에 충격을 받고 자체 핵잠 보유 검토 등 군비 경쟁에 뛰어들 조짐을 보인다. 이는 동북아의 세력 균형을 깨뜨리고 한·일 관계를 최악의 경쟁 구도로 몰아넣는 자충수다.
군사 전문 매체 리얼클리어디펜스의 지적처럼 미국내 법 개정, 원자로 독자 개발, 국제 핵비확산 체제 허가라는 세 가지 장벽을 동시에 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시 강조하지만 철저한 준비와 미국과의 완벽한 제도적 조율이 생략된 안보는 사상누각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설익은 독자 개발 선언이 아니라, 한·미 동맹을 더욱 공고히 다져 실질적인 확장억제를 제도화하는 지혜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에게 묻고 싶다. “설익은 핵잠수함 추진 발표, 감당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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