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시간은 워싱턴 편…버틸수록 더 불리해지는 테헤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 협상과 관련해 “서두르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하면서 협상의 무게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가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양측이 이미 양해각서(MOU) 문안을 95% 가까이 완성했음에도 최종 서명이 지연되는 배경에는 단순한 문구 조율을 넘어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구조적 개입이라는 더 큰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보다 더 큰 압박을 받는 쪽은 이란이다. 경제는 흔들리고 내부 권력 균열은 커지는 가운데, 강경파의 버티기가 오히려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역설이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의 인터넷매체인 악시오스(Axios)는 26일 협상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현재 MOU는 95% 완성됐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는 이례적으로 강경하다”고 보도했다. 악시오스는 이어 “백악관 관계자는 이란이 합의를 무산시키려 한다면 미국은 차라리 서명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내부에 팽배하다”고 전했다. “싫으면 하지 마”에 가까운 이 기류는 트럼프 행정부가 진정으로 조급하지 않다는 신호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협상 대표단에 “서두르지 말라.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직접 지시한 바 있다.
CNN도 26일, “미-이란이 합의 체결에 근접했지만, 이란의 핵 프로그램 표현 방식과 제재 해제 시점을 둘러싼 언어 분쟁으로 지연되고 있다”고 전했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인도 방문 중 “좋은 합의가 될 것이냐, 아니면 합의가 없을 것이냐, 우리는 둘 중 하나만 받아들인다”고 못 박았다.
악시오스는 “MOU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라고 짚었다. 곧 “첫째는 농축 우라늄 유예 기간으로, 이란은 5년, 미국은 20년을 요구했고 현재 약 12년 선에서 절충 중이며, 유예 종료 후 이란에 허용되는 농축 수준은 3.67%(저농축)으로, 위반 시 유예가 자동 연장되는 조항도 논의에 포함됐다”고 했고, “둘째는 고농축 우라늄 약 2,000킬로그램의 반출 표현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핵 먼지(nuclear dust)’라 부르는 이 비축분을 이란 영토 밖으로 내보내거나 현지 파기하는 방안을 미국은 MOU 문서에 명기하길 원하지만, 이란은 이를 ‘주권 침해’로 간주하는 내부 기류가 강하다”고 짚었다.
['문구 전쟁' 속 문제: IRGC 영향력 아래 갇힌 의사결정 구조]
협상이 95%에서 멈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란의 의사결정 구조 자체가 사실상 마비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란인터내셔널(Iran International)은 “IRGC 신임 사령관 아흐마드 바히디(Ahmad Vahidi) 소장은 ‘전시 상황에서 핵심 요직의 결정은 혁명수비대가 직접 관장한다’고 공표했다”면서 “이 구도 속에서 의회의장 갈리바프와 외무장관 아라그치는 IRGC의 승인 없이 어떤 합의도 이행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고 밝혔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위상은 더욱 초라하다. 폭스뉴스(Fox News)는 “페제시키안은 완전한 정치적 교착 상태에 빠졌으며,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와의 면담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며 “페제시키안이 5월 초 공개 석상에서 ‘드디어 지도자를 만났다’고 밝힌 것은 역설적으로 그 만남 자체가 얼마나 이례적인 일인지를 방증한다”고 짚었다.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WINEP) 선임연구원 홀리 다그레스(Holly Dagres)는 “새 최고지도자가 ‘아버지보다 더 강화되고 타협 없는 형태로 IRGC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른바 '국가 포획'(state capture)의 구도가 완성되면서 이란이 협상 테이블에서 보내는 이중 신호—온건파 외무장관의 화해 발언과 IRGC 계열 언론의 강경 반박—는 더 이상 단순한 전술이 아니라 실질적인 권력 분열의 산물이 되고 있다. 협상을 원하는 행정부와 협상을 견제하는 IRGC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이란 내부의 권력 분열이 협상 자체를 흔드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강경파의 자충수…방해할수록 이란만 더 불리해진다]
이란 내부 균열은 이미 권력투쟁 수준을 넘어 체제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란민족저항위원회(NCRI)는 보고서를 통해 “강경파 의원 카라지(Mohammad Bagher Kharazi)는 수석 협상가 아라그치를 ‘굴복 행위자’로 규정하고 ‘현 협상이 2015년 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2015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P5+1)과 이란이 체결한 핵 합의)와 유사하다면 외무부와 페제시키안 정부를 무너뜨리는 거리 시위를 조직하겠다’고 공개 협박했다”고 밝혔다. 이란민족저항위원회는 이어 “이 게시물은 IRGC 산하 통신사가 배포했다가 이후 삭제됐다”며 “초강경파 의원 나바비안은 ‘JCPOA 패거리를 협상팀에서 완전히 제거하라’고 요구했고, 동료 의원은 협상 상대가 누구든 ‘미국과의 협상 자체가 불명예’라고 선언했다”고 밝혔다.
특히 주목할 것은 IRGC 강경파의 허위 정보 공작이다. 악시오스는 “최근 미국이 예정보다 이른 시점에 제재를 해제하고 이란에 자금을 이전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는데, 복수의 소식통은 이를 IRGC가 협상을 방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유포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협상팀 내부의 신뢰를 흔들고 미국 측에 이란이 조건을 바꾼 것처럼 오해를 심으려는 이중 공작이다. 그러나 이 전략은 근시안적이다. 협상이 지연될수록 불리해지는 쪽은 미국이 아니라 이란이기 때문이다.
[버티는 이란, 가라앉는 경제…숫자가 폭로하는 절박함]
강경파가 협상을 방해하는 동안 이란 경제는 매일 조금씩 더 깊이 가라앉고 있다. IMF는 “2026년 이란 경제가 6.1% 역성장하고 인플레이션은 68.9%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대해 CNBC는 “이란 리알화는 이미 달러 대비 132만 리알 수준으로 폭락했다.”며 “이란 정부 대변인이 인용한 내부 추산에 따르면 전쟁 이후 직간접 피해액은 약 2,700억 달러에 이르고, 고위 경제 관리들은 대통령에게 ‘복구에 10년 이상이 걸릴 것’라고 경고했다”고 짚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5월 18일 공개 석상에서 “이란 체제의 가장 큰 위협은 외부 군사 압박이 아니라 내부 붕괴와 민중 봉기”라고 경고했다. 세계은행과 IMF의 경고, 200만 개의 일자리 소멸, 치솟는 물가 앞에서 이란 국민의 분노는 임계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또한 이란인터내셔널은 “강경한 수사 뒤에 실은 이란 지도부 내부의 균열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강경파가 협상을 막을수록 경제 고통은 커지고, 그 고통의 화살은 결국 정권을 향하게 된다는 역설이다.
[2단계 구조의 함정…서명 이후가 진짜 승부]
설령 MOU 서명이 이뤄진다 해도, 협상의 진정한 승부는 그 이후에 벌어진다. 악시오스는 “현재 논의 중인 MOU는 2단계로 설계됐다”면서 “1단계에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고 농축 활동을 중단한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미국의 제재 해제와 동결 자산 환원은 이 단계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2단계에서 미국이 이란의 농축 우라늄을 실제로 회수하고 그 이행이 검증된 이후에야 비로소 이란은 경제적 보상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은 미국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이란이 구두 및 서면으로 ‘모든 농축 우라늄의 처리’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란 외무부의 공식 입장은 “우라늄 협상은 종전 합의 이후에나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악시오스는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이란이 핵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미국은 60일이 채 지나기 전에 합의를 무효화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협상 파국을 경고하는 동시에 이란을 더 빠른 결단으로 몰아붙이는 이중 압박이다.
결국 이번 협상의 본질은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느냐의 문제다. 미국은 시간을 전략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이란은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안보·정치 모든 영역에서 압박이 누적되고 있다. 군사력 약화, 경제 침체, 권력 내부 균열이라는 삼중 부담 속에서 강경파의 버티기는 협상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더 좁은 공간으로 몰아넣고 있다. 트럼프의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은 단순한 자신감이 아니다. 상대가 자신보다 더 빠르게 한계점으로 향하고 있음을 읽어낸 전략적 메시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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