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경제 파탄과 통제 불능 민심에 흔들리는 푸틴의 권력 기반]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잠재돼 있던 반(反)크렘린 불만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러시아 사회가 경제적 재앙과 고조되는 내부 불만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1917년 볼셰비키 혁명과 같은 파국적인 정권 붕괴 사태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경고가 정계 핵심부에서 제기되었다. 특히 공산당 지도자의 의회 발언과 모나코 거주 인플루언서의 폭로 영상이 겹치며, 푸틴 집권 체제의 내구성에 대한 의문이 내부에서부터 제기되고 있다.

영국의 더타임스(The Times)는 23일, “러시아 공산당 대표 겐나디 주가노프가 의회 연설에서 ‘올가을 1917년 혁명이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크렘린을 향해 긴급한 경제·금융 조치를 촉구했다”면서 “이와 동시에 모나코에 거주하는 러시아 인플루언서 빅토리아 보냐의 영상이 3,000만 뷰를 넘어서며 러시아 사회의 불만을 공론화하는 기폭제가 됐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상태다.
겐나디 주가노프(Gennady Zyuganov) 공산당 대표는 의회 연설에서 “경제는 반드시 붕괴할 것이라고 열 번도 넘게 경고했다. 1분기는 완전한 재앙이었다. 긴급히 금융·경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올가을 1917년과 같은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것을 반복할 권리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경고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즉 블라디미르 레닌이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의 몰락 이후 권력을 장악한 역사적 사건을 직접 거론한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주가노프의 공산당이 바로 레닌과 카를 마르크스 사상의 계승자를 자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의회 내 제2정당인 공산당은 표면적으로는 야당의 외양을 띠지만, 실제로는 크렘린이 러시아 국민에게 민주주의의 환상을 제공하기 위해 용인하는 이른바 '유사 야당'으로 폭넓게 인식된다. 이 때문에 주가노프의 혁명 경고는 즉각 조롱을 받기도 했다. 정치 분석가 아바스 갈랴모프는 “이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반공산주의자”라고 비꼬았고, 우크라이나 언론인 유리 부투소프는 “묘한 공산주의자들”이라고 짧게 평했다.
그럼에도 주가노프의 발언이 주목받는 이유는 내용 자체보다 발언이 나온 배경과 맥락에 있다. 주가노프는 “우리는 푸틴의 전략과 정책을 지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했다. 그런데 모나코에서 온 저 여자 말은 들으면서!”라며 크렘린이 야당의 호소는 무시하면서 인플루언서의 영상에는 반응했다는 사실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3,000만 뷰가 뒤흔든 크렘린]
주가노프가 언급한 '모나코의 여자'는 러시아 출신 모델 겸 전직 TV 스타 빅토리아 보냐(Victoria Bonya, 46)다. 현재 모나코에 거주하는 그는 지난 4월 14일 인스타그램에 18분짜리 영상을 올려 크렘린이 경제, 인터넷 규제 등 산적한 문제들을 방치하고 있다고 정면 비판했다. 보냐는 1,300만 명의 팔로워를 대상으로 러시아가 직면한 문제들을 열거했다. 시베리아의 가축 대량 폐사, 남부 다게스탄의 치명적 홍수, 흑해 연안의 기름 오염, 그리고 수천만 명이 이용하는 텔레그램을 포함한 광범위한 인터넷 차단이 그 내용이었다.
빅토리아 보냐는 영상에서 “당신과 우리 사이에는 두꺼운 벽이 있다”며 푸틴을 직접 겨냥해 “관리들이 진실을 보고하기 두려워 대통령이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위험이 무엇인지 아는가? 사람들이 두려움을 멈추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용수철처럼 압축되고 있고, 언젠가 그 용수철이 튕겨 나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영상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이 영상은 나흘 만에 조회수 2,600만 건, 좋아요 130만 개를 넘어섰고, 이후 3,000만 뷰를 돌파했다. 크렘린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그 영상에서 제기된 많은 주제들은 실제로 많은 인력이 투입돼 대규모 작업이 이뤄지고 있으며, 어떤 것도 방치되지 않았다”며 이례적으로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크렘린이 야당 정치인이나 시민사회의 비판에는 묵묵부답이면서도, 인플루언서의 영상에는 공식 반응을 내놓은 셈이다.
보냐는 크렘린의 반응에 눈물을 흘리며 “내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우리 시대에는 아무것도 놀랍지 않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내 목소리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발언하지 않았다면 스스로를 배신하는 것이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국가 TV의 역습, 그리고 역풍]
크렘린의 반응이 알려지자 국가 TV의 간판 진행자 블라디슬라프 솔로비요프(Vladislav Solovyov)는 보냐를 향해 맹렬한 비난 공세를 퍼부었다. 그는 생방송에서 여성을 모독하는 원색적 표현을 사용하며 보냐를 공격했고, 친크렘린 하원의원 비탈리 밀로노프(Vitaly Milonov)도 그를 ‘두바이 에스코트’라고 비하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 공세는 오히려 역풍으로 돌아왔다. 보냐는 솔로비요프를 방송에서 퇴출시키기 위한 청원을 시작하겠다고 응수하며 “여성들이 연방 TV 방송에서 모욕당하는 순간을 우리가 언제 놓쳤냐”고 반문했다. 이어 AI로 제작한 영상을 공개했는데, 그 영상에서 보냐는 스파이더우먼으로 등장해 솔로비요프와 밀로노프를 응징한다. 수천 명의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이 솔로비요프와 밀로노프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며 보냐의 편에 섰다.
한편 보냐가 푸틴 본인에 대한 직접적 비판을 끝내 피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일부 분석가들은 그의 영상이 당국이 민심에 반응하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크렘린이 기획한 것일 수 있다는 시각을 제기했다. 보냐 자신도 망명 러시아 반체제 세력과의 연대를 분명히 거부하며 “나는 당신들(야권)과 함께하는 게 아니라 인민과 함께한다”고 선을 그었다.
[추락하는 푸틴의 지지율, 굳어지는 고립]
이 일련의 사태가 벌어지는 배경에는 푸틴 지지율의 뚜렷한 하락이 있다. 러시아 국영 여론조사 기관 브치옴(VTsIOM)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 국민의 66%가 푸틴의 국정 운영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방 기준으로는 높은 수치지만, 지난해 12월 대비 11%포인트 급락한 것으로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최저치다. 크렘린이 전국 미디어를 완전히 장악하고 실질적인 야당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 수치의 하락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텔레그램 사용 금지로 대표되는 인터넷 대규모 통제다. 텔레그램은 일반 시민부터 기업 임원, 군인에 이르기까지 수천만 명이 사용하는 러시아의 핵심 소통 플랫폼으로, 이 앱의 차단은 광범위한 계층의 일상을 직격했다.
망명 러시아 정치 전문가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 센터에 기고한 글에서 “인터넷 탄압이 야기한 내부 분열 속에서 점점 고령화하고 고립되어 가는 푸틴은 통제력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푸틴은 우크라이나에서 평화를 이룰 수도, 자신이 시작한 전쟁에서 승리할 수도 없다”면서 “푸틴의 최대 자산은 언제나 강함이었는데, 약한 푸틴은 그 누구에게도—러시아 안보 기관을 포함해—쓸모가 없다”고 지적했다.
[역사의 그림자와 푸틴의 집착]
푸틴 지지자들은 그가 민심에서 멀어졌다는 비판과 달리, 그가 현실보다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소련 시대의 '영광'에 집착하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4월 22일, 푸틴의 지시로 모스크바 FSB 아카데미의 명칭이 소련 최초의 비밀경찰 수장 펠릭스 제르진스키(Felix Dzerzhinsky)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변경됐다. 제르진스키는 1917년 KGB의 전신인 체카(Cheka)를 창설한 인물로, 그의 요원들은 이른바 '적색 테러' 기간 동안 수만 명의 이른바 '계급의 적'을 처형했다. 그의 동상은 1991년 소련 붕괴 전 민주화 시위 때 모스크바에서 철거됐으며, FSB 아카데미는 1962년부터 1993년까지 그의 이름을 사용한 바 있다.
같은 날 푸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을 소련의 나치 독일 격퇴에 비유하며, 전방에서 싸우는 병사들을 위해 여성과 아이들이 “양말을 뜨개질하고 있다”고 찬양했다. 4년 넘게 이어진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지 못하고 있음에도 그의 야망을 축소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행보는 푸틴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 비유하며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4년 넘게 이어지는 전쟁의 교착 상태와 경제적 압박은 러시아 내부의 '용수철'을 한계점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외부 전문가들은 푸틴 정권이 승리도 평화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보냐의 경고대로 억눌렸던 민심이 임계점을 넘어 체제 전반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크렘린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의 목소리들, 곧 “공산당 지도자의 혁명 경고, 인플루언서의 폭로, 지지율 하락”이 단순한 내부 잡음으로 그칠지, 아니면 푸틴 장기 집권 체제의 균열이 본격화되는 신호탄이 될지,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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