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쿠바, “美고속정 타격 4명 사살”, 뒤집어진 미국]
미국의 해상봉쇄로 일상이 사실상 올스톱되어 있는 쿠바가 겁도 없이 미국의 콧털을 건드렸다. 쿠바 정부가 자국 영해에 진입한 미국 선적의 고속정과 교전을 벌여 4명을 사살했기 때문이다. 지금 쿠바로서는 어떻게든 미국과 협상을 통해 에너지난을 당장 풀어가야할 절체절명의 순간에 직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미국 당국도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 “쿠바 내무부는 25일 오전 미국 선적 고속정에 타고 있던 4명이 쿠바 해역에서 요격당한 후 총에 맞아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는데, 이들은 쿠바 영토 침투를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면서 “쿠바 내무부는 이어 플로리다에 등록된 보트의 승무원들이 쿠바 북중부 해안 빌라 클라라 주 카요 팔코네스 인근에서 국경 순찰대가 접근하자 발포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쿠바 내무부는 “미국 고속정에 탑승한 이들이 먼저 쿠바 국경수비대를 향해 총을 쐈고,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면서 “승선자는 모두 10명으로 미국 거주 쿠바인인데 이들은 소총, 수제 폭발물, 방탄조끼, 망원경, 위장복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교전 과정에서 사살된 4명을 제외한 나머지 승선자 6명과 쿠바 국경 수비대 지휘관 1명은 부상해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쿠바 내무부는 이어 “승선자 대부분이 범죄 및 폭력 전력이 있으며, 탑승자 중 2명은 이미 테러 행위와 관련된 활동에 연루돼 쿠바에서 지명수배 상태였다”면서 “승선자들의 무장 침투를 지원하기 위해 미리 쿠바에 입국한 인물도 체포했다”고 전했다.
▲ [그래픽=연합뉴스]
이에 대해 WSJ은 “쿠바 국경 수비대와 고속정이 근접했던 지역은 쿠바 중부 비야클라라주 코랄리요 소재 카요 팔코네스 섬 인근 해상으로 팔코네스 섬은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약 160㎞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면서 “미국은 별도의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엘피노 해협은 플로리다 바로 남쪽, 쿠바 북쪽 해안에 위치해 있는데, 이 해협은 해상 교통량이 많으며 쿠바 정부가 순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플로리다 주 법무장관 제임스 우트마이어는 “주 검찰청에 연방, 주 및 법 집행 기관 파트너들과 협력하여 수사를 시작하도록 지시했다”며 “쿠바 정부는 신뢰할 수 없으며, 우리는 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카리브공동체(카리콤·CARICOM) 정상회의 참석 차 카리브해 섬나라 세인트키츠네비스를 방문한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미국 정부의 여러 부서에서 이 이야기의 여러 부분을 검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쿠바 측 발표에 근거해 판단하지 않을 것이며 정보를 독립적으로 검증해 자체적으로 결론을 도출할 예정인데, 이런 교전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 요원이 관여한 사건은 아니다”라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파악한 후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루비오 장관은 특히 “공해상에서 그런 총격전이 벌어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이번 사태의 책임이 전적으로 쿠바 측에 있음을 암시해 앞으로 이에 대한 분명한 대응이 있을 것임을 보여 주었다.
특히 미국 당국이 앞으로 다양한 심층 조사를 하겠지만 핵심은 이번에 사망한 이들이 미국 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였는지에 관련된 것이다. 만약 사망한 이들이 불법 이민자들이라면 문제가 크게 확대되지 않을 것이지만 미국 시민권자들이라면 차원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그 경우 진짜로 ‘미국의 콧털’을 건드린 응징의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그것이 미국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쿠바 정부는 재빨리 “미국 선적의 이 고속정에 탑승한 사람들 대부분이 범죄 및 폭력 행위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밝힌 것이다. 다만 그들이 미국 시민권자였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쿠바 주재 미국 대사관은 “이번에 사망한 이들 중 두 사람(곤살레스와 고메스)은 쿠바 또는 해외에서 테러 행위를 조장, 계획, 조직, 자금 조달, 지원 또는 실행한 혐의로 쿠바 당국의 수배를 받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AP통신은 “쿠바 정부의 보고서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쿠바간 긴장 고조 시점에 발생한 미국인 피격사건]
눈여겨볼 것은 이번 교전이 미국이 최근 몇 주 동안 쿠바에 대한 석유 공급을 차단하는 등 압박 조치를 강화하고 있는 시점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11일 소셜 미디어 게시물에서 “너무 늦기 전에 협상을 타결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며 “쿠바에 더 이상 석유나 돈은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이후 그는 쿠바 정부를 “미국의 국가 안보에 대한 특이하고 비상한 위협”으로 규정하는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 또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지난해 1월 20일 쿠바를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고, 지난달 29일엔 쿠바와 석유를 거래하는 국가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이에 대해 쿠바의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자국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지만, 이달 초 “항복은 쿠바에게 선택지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이와 관련해 WSJ은 “이 사건은 쿠바가 플로리다 해협에서 쿠바 난민들을 수색하던 인도주의 단체 '형제 구조대' 소속 민간 항공기 두 대를 격추한 지 30주년이 되는 날 발생했다”면서 “당시 이 사건으로 4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WSJ은 이어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30년 전 발생한 이들의 죽음에 대해 논평하면서 플로리다 주 의원들과 공화당 소속 애슐리 무디 상원의원은 라울 카스트로 전 대통령을 살인 혐의로 기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밝혔다.
CNN도 “쿠바군은 과거에도 자국 해역에 진입하는 미군 함정과 소규모 교전을 벌인 적은 있지만, 이처럼 대규모의 치명적인 총격전은 드문 일”이라면서 “하바나 내무부는 2022년에 미국 고속정 13척과 승무원 23명을 나포했다고 밝히며, 이들이 쿠바에서 미국으로 사람들을 데려가는 "인신매매 작전"을 벌였다고 비난했지만 사망자가 나오지는 않았다”고 짚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30년 전 그 악몽의 날에 또다시 미국 시민권자로 알려진 이들이 쿠바에 의해 또다시 목숨을 잃으면서 미국이 뒤집어진 것이다. 당장 쿠바에 대한 강경 정책을 지지하는 미국 의원들은 25일 발생한 사건을 ‘미국에 대한 공격 행위’로 규정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카를로스 히메네스 연방 하원의원(공화당·플로리다)은 X에 “쿠바의 독재 정권이 플로리다 선박을 공격해 승선자들을 살해했다”며 “이 정권은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던져져야 한다”고 적었다.
또 하나, 미국이 25일(현지 시각) 베네수엘라산 석유의 쿠바 판매를 허용하기 위해 쿠바를 상대로 한 석유 수출 봉쇄를 일부 완화했는데, 이번 사태의 여파로 이런 완화조치가 다시 강경책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 일단 AFP통신은 “미국 재무부는 베네수엘라산 석유가 상업적·인도주의적 용도로 쿠바의 민간 부문에 수출될 수 있도록 허용키로 했다”면서 “앞서 미국은 지난달 3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생포해 자국으로 압송한 후 베네수엘라산 석유의 쿠바 수출을 봉쇄했는데, 석유 소비량의 절반 가량을 베네수엘라산에 의존했던 쿠바는 이 조치로 정전을 겪는 등 큰 타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 재무부는 “수출 재개가 쿠바 인민들을 지원하는 소규모 민간 부문에만 적용된다”면서, “정부 부문 수출 금지는 계속된다”고 밝혔다.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도 이날 “만약 베네수엘라산 석유가 쿠바 정부나 군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 발견되면 이번 금수 완화 조치가 즉각 취소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루비오, “쿠바는 붕괴직전이며, 획기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의 쿠바를 향한 발언이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루비오 장관은 세인트키츠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한 후 기자들에게 “쿠바 경제는 획기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것만이 쿠바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면서 “그 체제는 붕괴 직전이며,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쿠바 정부가 쿠바 국민에게 경제적 자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자유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루비오 장관은 또한 이날 카리콤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오랫동안 거의 무시당해 온 서반구 지역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며 “공통 현안에 대해 여러분 모두와 협력하는 새로운 역동성을 구축하는 데 관심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약 밀매를 비롯한 범죄 조직 대응, 이민 흐름 억제, 사회 안정화 등 사안을 위해 미국에 더 협력할 것”을 촉구했다.
루비오 장관은 마두로 축출과 관련한 역내 비판에 대해서도 “우리의 베네수엘라 정책과 운영에 대해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했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베네수엘라 상황이 8주 전보다 더 나아졌다는 것”이라며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우리는 계속 전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카리콤은 카리브해 소국·도서국 연합체로 14개국(앤티가바부다, 바하마, 바베이도스, 벨리즈, 도미니카연방, 그레나다, 가이아나, 아이티, 자메이카, 세인트루시아, 세인트키츠네비스,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수리남, 트리니다드토바고)과 1속령(영국령 몬트세랫)을 회원국으로 두고 있다.
한편, 이번 쿠바 사태의 여파는 스포츠 분야로도 확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26일, “미국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하는 쿠바야구쇼프트볼협회 관계자 8명의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면서 “후안 페레스 파르도 쿠바협회장과 카를로스 델피노 무뇨스 사무총장, 투수코치 페드로 루이스 이글레시아스 등이 비자를 발급받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쿠바는 WBC 1라운드 A조에서 푸에르토리코, 캐나다, 파나마, 콜롬비아와 묶여 있다. A조 경기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플로리다주 남동쪽에 위치한 미국의 자치령이며 입국하기 위해선 미국 비자가 필요하다. 지난해 베네수엘라 15∼16세 야구대표팀이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 출전하려고 했으나, 미국 비자 발급이 거부돼 불참했다.
USA투데이도 MLB 관계자를 인용해 “(관계자들의 비자가 나오지 않더라도) 쿠바는 WBC에 예정대로 출전할 것”이라고 전했다. 쿠바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야구 세계랭킹 10위이며 2006년 1회 WBC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앞서 열린 5차례 WBC에서 모두 결선 라운드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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