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英, 런던 한복판 '초대형 중국 대사관' 건립 최종 승인]
영국 정부가 런던 도심 한복판에 들어설 초대형 중국 대사관 건립 계획을 수많은 안보 우려, 특히 영국내 정보기관은 물론이고 미국 안보당국까지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명분으로 끝내 최종 승인했다. 더더욱 이번 결정이 스타머 총리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결정되었다는 점에서 시진핑 주석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 “영국은 중국의 런던 '초대형' 대사관 건설 신청을 강력한 반대와 간첩 행위 우려에도 불구하고 승인했으며, 보안 당국은 다양한 보호 조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면서 “이날 발표는 수개월간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위협하고 영국의 다양한 외교 정책 접근 방식을 비판하는 어려운 시기에 나왔다”고 보도했다.
FT는 이어 “최근 몇 달 동안 영국과 중국 관계에서 대사관 설립 문제는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는데, 이는 키어 스타머 경이 베이징과의 무역 관계 강화에 힘쓰고 있으며, 8년 만에 중국을 방문하는 첫 영국 총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시점과 맞물린다”면서 “베이징은 정부의 결정 지연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고, 비평가들은 런던 금융가에서 민감한 데이터 케이블이 인근을 지나가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옛 조폐국 부지에 들어설 건물이 스파이 활동의 거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짚었다.
해당 부지는 런던을 상징하는 타워브리지와 런던탑 바로 맞은 편에 자리한다. 면적만 약 2만㎡(약 6050평)에 달한다. 중국은 2018년 이 땅을 2억5500만 파운드(약 4600억 원)에 사들였다. 당초 중국은 매입 직후 이곳에 축구장 3개를 합친 크기의 슈퍼 대사관’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해당 위치가 영국 금융 심장부인 ‘시티 오브 런던’과 인접한 데다, 지하로 민감한 통신용 광섬유 케이블이 지나고 있어 안보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실제 2022년 관할 구청인 타워햄릿 의회는 지역 주민 반대와 보안 문제를 들어 건축 허가를 불허한 바 있다.
[미국, 중국 초대형 대사관 승인에 '깊은 우려' 표명]
런던 중심부에 중국의 초대형 대사관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미국은 강력한 우려와 함께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백악관은 우선 “영국 노동당이 런던에 새로운 초대형 대사관 설립을 승인한 후 중국의 국가 안보 위협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다.
텔레그래프는 이와 관련해 “미국의 한 고위 관료는 영국 정부가 해당 계획을 승인한 후 미국이 적대 세력이 가장 가까운 동맹국의 핵심 기반 시설을 악용하는 것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짚었다.
미 하원 중국위원회의 공화당 위원장인 존 물레나르도 “이번 결정은 상식에 어긋난다”면서 “이는 사실상 중국이 의회를 염탐하고, 영국의 선거에 개입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부추긴 것에 대한 보상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FT도 “백악관은 지난 여름 제안된 대사관 부지가 해저 케이블과 너무 가깝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면서 “미국 측의 우려는 중국이 유럽 내 최대 규모 대사관이 될 건물의 설계 도면 일부를 검열하여 공개하면서 더욱 커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텔레그래프가 입수해 공개한 설계 도면에는 지하에 무려 208개의 방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중국 당국은 이에 대한 설명을 기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텔레그래프는 “바로 그 지하 공간 밑으로 영국에서 가장 민감한 통신 케이블, 즉 런던 금융가와 수백만 명의 인터넷 사용자를 위한 메시지 트래픽을 주고받는 케이블이 지나고 있는데, 그곳에서 불과 1미터 떨어진 곳에 뜨거운 공기 배출 시스템을 갖춘 비밀 공간도 포함되어 있다”고 짚었다.
이렇게 미국이 강력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런던 중심가에 초대형 중국 대사관을 신축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이번 결정이 서방의 대중(對中) 견제 전선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스타머 총리를 향해 “런던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면서 “영국이 처한 상황을 바로잡으라”고 촉구했다.
[영국의 안보 기관들도 강력 반대, “기밀 누설 우려 충분”]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의 정보기관들마저 중국 대사관의 신축에 대해 강력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MI5는 “베이징의 스파이들이 국회의원과 의회 직원들을 대규모로 표적으로 삼고 있다”면서 ‘간첩 경보’를 발령했다.
영국 정보기관 MI5와 영국 정보통신본부(GCHQ)의 수장들은 “베이징이 유럽 최대 규모의 외교 공관을 건설할 예정인 런던 중심부의 옛 왕립 조폐국 부지에서 모든 잠재적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리드 주택부 장관은 수개월간의 지연과 중국 강경파의 비판 끝에 결국 해당 개발 사업에 대한 건축 허가를 내준 것이다.
제이크 스럽 전 영국 의회 보좌관도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 기고문에서 “영국이 단기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장기적 안보 사안을 팔았다”며 “경제적 약점이 어떻게 전략적 취약성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경고 사례”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으로 망명한 홍콩 활동가 클로이 청은 재팬타임스 인터뷰에서 “영국이 안전한 피난처가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런던 중심부에 들어설 거대한 중국 요새는 반체제 인사들에게 위압감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새 대사관은 중국 정부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과시하는 상징물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스타머 총리의 방중 앞두고 성사된 대사관 신축 승인]
눈여겨볼 것은 이번 런던 시내의 대형 중국 대사관 신축 허가가 스타머 총리 방중(訪中)을 코앞에 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스타머 총리는 이달 말 영국 총리로서는 2018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예정이다. 이 때문에 영국 경제가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당 정부가 중국과의 무역·투자 협력을 위해 안보 우려를 뒤로 하고 선제적인 선물을 안겼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에 대해 로이터통신은 “스타머는 유럽 내 중국 최대 대사관 설립을 승인함으로써 베이징으로부터 더욱 긴밀한 무역 관계와 투자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국제정세 전문 분석 매체인 세마포(Semafor)도 “스타머의 중국 방문은 2018년 이후 영국 정상의 첫 방문이 될 것이며, 이는 미국이 부추긴 지정학적 혼란을 틈타 해외 관계를 개선하고 심화시키려는 중국의 움직임과 맞물린다”면서 “중국은 최근 서방 정상들을 잇달아 초청하고 있으며, 프랑스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유럽에 중국의 투자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더타임스는 “영국이 대사관 문제로 중국을 만족시키려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영국에게 그다지 큰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면서 “베이징과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장관들은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더타임스는 “14년간의 보수당 정부 시절 영국과 중국의 관계는 극심한 기복을 겪었고,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경은 양국 관계를 보다 정상적인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결심으로 집권했다”면서 “런던의 왕립 조폐국 건물을 중국 대사관으로 전환하려는 중국의 신청을 재개하는 것이 그의 접근 방식의 핵심이었다”고 밝혔다.
더타임스는 “문제는 베이징과의 정상적인 관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라면서 “이는 제국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영국이 세계 무대에서 서서히 쇠퇴하는 동안 중국은 경제, 군사, 외교 분야에서 급성장해 온 최근 몇 년 동안에는 더욱 그러했다”고 짚었다.
더타임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주석은 어느 쪽 정책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면서 “스타머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무역을 촉진하고 영국의 GDP를 소폭이나마 끌어올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현재 추세는 영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하는 방향”이라고 꼬집었다.
더타임스는 “영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가장 큰 품목은 자동차이지만 중국산 전기차가 주요 서방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무역 추세는 역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면서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노동당이 중국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중국으로의 자동차 판매량은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싱크탱크 ODI 글로벌의 중국 국제관계 분석가인 레베카 나딘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은 스타머가 중국 측으로부터 실질적으로 어떤 대가를 얻어냈는가 하는 점”이라면서 “영국 정부의 관계 재개는 상당한 경제적 이익에 대한 가정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는 영국의 경제 구조적 현실과 비교해 볼 때 외교 및 안보 양보에 비해 과도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레베카 나딘은 이어 “영국 공식 자료를 살펴보면, 외국인 직접 투자, 무역 침투율, 고용 창출 등 모든 주요 지표에서 중국의 영국 경제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라면서 “도대체 무엇을 위한 관계 개선인지 의문이 남는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어떠한 경제적 이익이 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도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수 있는 안보 우려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미국이 과연 영국을 최우선 동맹국으로서의 존재로 대우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이런 측면에서 안보를 팔고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 하는 영국 노동당의 대중국 정책은 중국 경제의 현실을 잘못 판단한 엄청난 실책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뿐 아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일으키면서 각국을 위협하자 미국의 핵심 동맹·우방국의 베이징행(行)이 잇따르고 있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안보 위협 정도는 적당히 내팽개칠 수 있다는 생각이 이들 서방 동맹국들의 생각에 가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G7(7국) 가운데 스타머에 이어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다음 달 24~27일 대규모 경제 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찾을 예정이고,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도 앞서 이달 중순 중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이들 서방 국가들의 베이징 방문과 관계 개선이 과연 그들 국가에 얼마나 이익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중국은 그동안 서방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판단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묘한 공작으로 등을 처먹는 일들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 서방국가들의 중국행이 시들어가는 중국 경제를 살리고 미국을 대체할 수 있는 우방국으로 언제까지 건재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정말로 소탐대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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