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요동치는 테헤란, 주요 도시 경제난 규탄 동시다발 시위]
이란에서 서방 제재 속에 경제난이 이어지면서 화폐 가치가 사상 최저로 폭락했다. 이 여파로 중앙은행 총재가 사퇴했고, 가뜩이나 고물가에 시달려온 주민들은 거리로 뛰쳐나가 3년 만에 최대 규모로 규탄 시위를 벌이는 등 사실상 폭동으로 비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마저도 현재의 위기상황을 수습할 방법이 없다고 손을 놓으면서 이란 정권은 사실상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뉴욕타임스(NYT)는 30일, “경제적 고통이 급증하면서 이란인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면서 “높은 인플레이션과 통화 붕괴가 이란인들의 가계 예산을 압박하며 국가 지도부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이어 “시위자들은 29일 수도 테헤란과 이란 내 다른 도시들의 거리로 나와 급증하는 인플레이션과 화폐 가치 폭락으로 시장이 혼란에 빠지고 가계 예산에 큰 타격을 입은 상황을 규탄했다”면서 “지난 주말 유로화 가치가 미국 달러 대비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고, 12월 연간 인플레이션율은 42.2%까지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란 화폐인 리알화 가치가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음을 뜻한다. 실제로 달러당 환율이 오르는 것은 그만큼 화폐 가치가 내려간다는 의미다.
NYT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이란 중앙은행 총재인 모하마드 레자 파르진은 20일 대통령의 승인을 조건으로 사임했는데, 전 경제부 장관인 압돌나세르 헤마티가 후임으로 임명될 예정”이라면서 “경제적 혼란은 이란 지도자들에게 새로운 도전 과제를 안겨주고 있는데, 그들은 92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자국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는 동시에, 지난 6월 이스라엘과 미국의 핵 시설 공격과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펼친 최대 압박 캠페인의 여파에서 회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짚었다.
모하마드 레자 파르진은 2022년 12월부터 중앙은행 수장으로 일했는데, 당시엔 달러당 43만 리알이던 환율이 3년 만에 몇 배로 치솟게 된 것이다. 이런 여파로 이란에서는 12월 인플레이션이 전년 같은 달 대비 42.2%까지 치솟는 등 살인적 고물가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12월 식료품 가격은 전년 같은 달 대비 72%, 건강의료 품목은 50% 뛰어올랐다. 여기에 이란 당국이 새해 3월부터 세금을 인상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흘러나오면서 민심의 분노를 불렀다.
이와 관련해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29일 늦게 소셜 미디어 X를 통해 “국민의 생계는 매일의 관심사”라면서 “정부가 통화 및 은행 시스템을 개혁하고 국민의 구매력을 보존하기 위한 조치를 계획하고 있으며, 내무부 장관에게 시위대의 정당한 요구를 그들의 대표자들과 대화를 통해 경청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NYT는 “페제슈키안 대통령의 화해적인 메시지와 앞서 중앙은행 총재를 신속하게 교체한 조치는 그가 사태에 대한 대응력과 긴장 완화를 보여주려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면서도 “이란은 2017년 이후 경제난, 가뭄 및 기타 불만 사항으로 인해 반복적인 시위 물결을 겪어왔으며, 이번 새로운 시위가 더 커져 다른 도시로 확산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짚었다.
NYT는 이어 “최근의 폭동성 시위는 지난 6월 이스라엘과 벌인 이른바 '12일 전쟁'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이란 지도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란 보안군은 이전에도 시위대를 향해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하고 체포를 자행해 왔으며, 이로 인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들의 위험 부담이 더욱 커지고 있다. 29일 온라인에 공유된 영상에는 테헤란과 최소 두 곳의 다른 도시에서 보안군이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을 발사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AP통신도 “지난 29일 수도 테헤란을 포함한 주요 도시에서 이란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규탄 시위를 벌였다”면서 “이같은 시위는 이른바 '히잡 반대' 시위 이후 3년 만에 최대 규모”라고 보도했다.
AP통신은 이어 “이번에 거리로 나선 시위대는 주로 가게를 운영하는 점주와 상인들로, 이들은 1979년 이슬람 혁명 당시에도 핵심적 역할을 했었다”면서 “일부 상인들은 29일 가게 문을 닫은 채 당국에 저항했으며, 가게를 열어놓고 영업을 중단한 상인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이란에서는 2022년 20대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혀갔다가 의문사한 것을 도화선으로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번졌고, 당국의 유혈 진압으로 수백 명이 숨졌다.
[더욱 심각해지는 통화가치 폭락, 분노하는 이란 국민들]
이에 대해 NYT는 “전문가들은 이란의 심화되는 경제난을 경영 부실부터 국가 경제를 폐쇄적으로 유지하는 정책에 이르기까지 여러 요인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보고 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의 대외 석유 판매를 제한하려는 노력을 강화한 것과 6월 이스라엘과의 전쟁 당시 이란 정부가 전쟁 비용 충당을 위해 은행 자금을 조달한 것 또한 경제 악화에 일조했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해 이란 경제를 연구하는 코네티컷 대학교 정치학과 박사 과정생인 아미르 호세인 마흐다비는 “정부가 위기를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면서 “미국이 제재 완화를 대가로 미국과의 관계를 바꿀 수도 있고, 정부 지출을 대폭 삭감할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두 가지 선택지 모두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마흐다비는 이어 “"현재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위험과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에서 최근 겪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제안된 2026년 예산안은 석유 수입의 상당한 감소와 세수 의존도 증가를 반영하여 정부의 딜레마를 보여주었는데, 29일 의회는 제안된 예산안을 부결시켜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NYT는 “통화 가치 폭락은 일반 이란 국민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면서 “그들은 급여와 저축의 가치가 떨어지는 반면 상품과 서비스 가격은 폭등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고 짚었다.
[막막한 이란 정부, 대통령마저도 손 놓았다]
문제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인플레이션, 물과 에너지 공급 제한, 그리고 미국과의 협상 전망이 불투명해지는 가운데,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마저도 사실상 손을 놓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NYT는 “이란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취임 첫해는 '끔찍한 한 해(annus horribilis)'로 묘사된다”면서 “동맹국과 최고 사령관 암살,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 핵 시설 파괴는 물론,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경제 침체와 만성적인 에너지 및 물 부족 사태까지 겹쳤다”고 짚었다.
실제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최근 일련의 매우 솔직한 공개 연설에서 “이란이 극복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자신은 이를 해결할 방법을 더 이상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계자들과의 회의에서 “정부가 정말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다”고 인정하면서 “우리가 집권한 첫날부터 재앙이 쏟아져 내렸고, 그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어 “이란의 문제는 우리가 자초한 것이며, 부패, 파벌 싸움, 그리고 내가 ‘미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묘사해 왔던 수십 년간의 정부 지출 관행의 결과일 뿐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그러면서 지방 관리들에게 “중앙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라”면서 “대통령은 기적을 일으킬 힘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NYT는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연설 영상은 온라인과 이란 언론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다”면서 “유명 TV 진행자이자 앵커인 알리 지아는 30일 소셜 미디어에 게시된 영상에서 ‘페제시키안은 정부를 제대로 운영하고 있지 않다. 그는 완전히 국정 운영에 손을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국가가 이란이라는 나라의 운영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란의 정치 구조에서 대통령은 외교 및 국내 정책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다른 모든 주요 국가 사안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6세)가 가지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이러한 체제 때문에 제약을 받았다고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체제적 좌절감을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표출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 정세 정책 연구소인 채텀 하우스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담당 이사인 사남 바킬은 “이란은 현재 국내적으로도, 미국과의 대치 상황에서도 마비 상태에 빠져 있다”면서 “페제시키안이 공개적으로 좌절감을 표출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그동안 중동의 맹주를 자처해 왔던 이란은 국가 운영 자체가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마저 국정 운영을 포기한 나라 이란, 그런 나라를 종교지도자인 하메네이가 정상국가로 돌이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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