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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3-25 1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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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서둘러 이동하는 중에 동생이 전화를 했다. 갑자기 어지럼증과 구토증이 일어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간다는 것이다. 가슴이 철렁하고 어쩌면 좋을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난번에 심근경색으로 스텐트 시술을 하고 일 년이 지났는데 혹시나 재발을 한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대학병원 응급실이 만원이라 인근 개인 종합병원으로 옮겼더니 마침 그곳에는 어지럼증 전문클리닉이 있었다. 병원은 환자들로 붐볐고, 의외로 어지럼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지럼증의 원인은 뇌혈관질환뿐 아니고, 회전감각과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귓속 깊은 곳 세반고리관의 문제, 림프의 이상, 심리적인 이유 등 다양했다. 최근에 오랜 세월 전력 질주해온 두 친구가 원인 모를 어지럼증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았기에 모든 검사와 결과를 유심히 살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지럽고 울렁대면 그저 체한 줄 알고 소화제를 먹고 누워서 안정을 취하지만 어느 정도 증상이 가라앉으면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며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주치의의 설명이다.


어머니의 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 사진(MRI)을 보니 강의 지류 같은 뇌혈관과 심장혈관의 상태가 한 눈에 들어왔다. 더러는 가늘어지고 여기저기 막힌 곳도 있다. 팔십 년 넘게 몸의 구석구석까지 펌프질을 하느라 심장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실핏줄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사진을 보니 어머니가 살아오신 여정이 한 순간에 스치고 지나갔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쓰나미처럼 닥칠 때마다 보를 쌓았던 핏줄이 자신도 모르게 좁아지고 막히는 무증상 뇌졸증의 흔적들을 보며 마음이 짠했다. 어지럼증은 그토록 애써 살아온 어머니의 삶을 대변하는 응답지인 것이다.


친구의 삶도 물 흐르듯 순조롭지가 않았기에 그녀의 어지럼증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어떤 검사를 해도 원인이 안 나오는 것으로 보아 지나친 스트레스와 과로, 마음 고생이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여유 있던 몸매가 지나치게 여위고, 입맛까지 싹 잃었다는 말에 안타깝기가 이를 데 없다. 가까운 이웃이 끓여주는 누룽지를 며칠 간 먹고 나서야 비로소 눈이 떠지고 기운을 차렸다니 그 동안 얼마나 식사가 부실했을까.


어머니는 마치 오래된 집의 타일이 부서져 내리듯 세반고리관에서 떨어진 칼슘을 제거하는 치료도 받으셨다. 언제부턴가 귀에서 서걱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니 그것도 이번 기회에 깨끗하게 보수를 하고 감가상각이 계속되는 몸을 보살펴드려야 할 때가 되었다.


어지럼증으로라도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면 천성이 부지런한 어머니와 친구는 브레이크 없는 차와 같이 멈춤 없이 달렸을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몸으로 나타나는 병이 더 큰 낭패를 막을 수도 있다. 만약 편찮으시지 않으셨다면 어머니는 일생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왔을 분이다. 그러니 오장육부와 혈관, 뇌세포가 어찌 피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평생 열심히 일한 몸도 가끔은 쉼표를 찍어야 남은 여정을 무난히 완주할 수 있을 테니 나도 멈추는 법을 익히고 어머니를 도와드려야겠다.


어머니의 병상은 창가에 있다. 가끔 동쪽 창으로 스민 햇살이 어지럼증으로 환자들이 누워있는 신경과 병실 창가에서 쉬었다 간다. 적적한 마음에 밤새도록 뜨개질과 재봉틀질 한 것이 도리어 병이 된 어머니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그 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접견하며 즐거워하신다. SNS를 통해 삽시간에 소식이 퍼져서 캐나다에 있는 조카가 영상통화를 했고, 외국에 사는 친척들과 친지들이 방방곡곡에서 안부전화를 했다. 벼르다 신년인사를 못한 외가 식구들과 첫 휴가를 나온 조카도 문병을 다녀갔다. 모든 스케줄을 일단 정지하게 한 어머니의 입원이 내게도 중요한 쉼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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