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 whytimes.pen@gmail.com
▲ 강복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교황청]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으로 열리게 된 콘클라베(Conclave·교황 선출 회의)에서는 교계 내부의 보·혁 진영 간 권력투쟁이 첨예하게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년간 사회적 소수자를 포용하고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치들을 내놓았지만, 보수파의 반발도 거셌기 때문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사제의 축복 허용, 이혼 후 재혼자에 대한 성체성사 허용, 성직자의 독신 의무 완화 등 논쟁적인 개혁 의제들을 꺼낸 프란치스코 교황을 향해 "이단"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으며 대립각을 세워 온 보수파 성직자들은 물밑에서 '반격'을 벼를 것으로 보인다.
2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콘클라베의 지형도만 놓고 보면 진보 우위라고 평가할 여지가 있다.
콘클라베 투표권이 있는 만 80세 미만의 추기경 135명 가운데 약 110명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임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지역 균형 인사'를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저개발국에서도 다수의 추기경을 임명했다.
이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재임 기간 자신의 유지를 계승할 인물이 교황으로 선출되기 유리하도록 표밭을 다져놓았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다만 이런 추기경단 구성이 꼭 '개혁 인사'의 승리로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다.
당장 프란치스코 교황부터 보수적이던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정반대 성향으로, 예상 밖의 결과란 평가를 받았다.
더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이라고 해서 꼭 개혁적인 성향이라는 법은 없고, 개혁적인 성향의 추기경이라고 해서 정당처럼 단일한 비전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3분의 2 이상 득표자가 나와야 끝나는 콘클라베의 특성까지 고려하면 어떤 결집의 고리가 작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기 내내 대립각을 세워 온 고위 성직자들은 '바티칸판 보수 결집'의 구심점 혹은 킹 메이커가 될 가능성이 있다.
독일 출신의 게르하르트 뮬러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했음에도 서슴지 않고 공개적으로 맞선 인물이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정책이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는 내용의 책을 썼고, "극단적인 경우 교황이 교회의 가르침을 거스른다는 것이 명확해지면 이단이 되고, 자동으로 교황직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7년 그를 신앙교리부 장관직에서 해임했다.
미국 출신의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도 '반(反) 프란치스코' 진영의 지도자 격 인물로 꼽힌다.
버크 추기경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성애 포용 정책과 신학관, 교회법 해석 등을 둘러싸고 맹렬한 비판을 가해 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버크 추기경의 봉급과 아파트 보조금을 박탈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버크 추기경의 경우 보수적 성향이 강한 미국 가톨릭의 세력을 등에 업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만약 버크 추기경이 콘클라베에서 선출된다면 사상 최초의 미국 출신 교황이 탄생한다.
버크 추기경은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대선 승리를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고, 보수 가톨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정책의 뿌리에 혐오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WSJ은 "새 교황 선출에 미국의 보수파가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불확실하다"면서도 "여전히 미국의 가톨릭 신자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고, 이는 재정적 압박을 받는 바티칸에 있어 중요한 수입원"이라고 해설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맞서 성직자의 독신 의무를 옹호하는 책을 출간한 기니 출신 로버트 사라 추기경도 보수파의 주요 인사로 꼽힌다.
이들의 물밑 움직임에 국제정세를 포함한 다양한 변수들이 충돌하면서, 콘클라베에서는 예측불허의 상호작용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탈리아 신문 라푸블리카의 바티칸 전문 기자 아코포 스카라무치는 "트럼프 대통령, 중국, 민족주의자 등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든 변수가 될 수 있다"며 "진보적인 방향으로도, 보수적인 방향으로도 무게가 실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