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미중관계 파탄으로 신냉전 가능성 부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일으킨 관세 전쟁이 미중 군사적 긴장을 포함하는 신냉전체제로 치닫고 있다. 미중간에 경제적 유대가 급속히 붕괴되면서 글로벌 안보와 경제적 안정까지 온통 뒤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수십년동안 워싱턴과 베이징 관계는 무역과 투자로 실질적인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 왔고, 이념적 갈등 요소가 있음에도 경제적 유대관계를 통해 글로벌 양강 구도를 만들어 왔지만, 이젠 그 모든 것들과 결별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자(현지시간) 지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3개월도 지나지 않아 양국은 사실상 무역봉쇄를 단행했으며, 또 경제 전쟁이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세계 안보 전체와 장기적 글로벌 경제 안정성이 위태로워졌다”면서 “현재 두 국가의 경제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중국과 미국은 무역을 넘어 심화되는 갈등이나 군사적 긴장까지 초래할 수 있는 냉전으로 치닫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WSJ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동안 워싱턴과 베이징은 협상과 긴장 고조 우려를 반복해 오기는 했어도, 그럼에도 깊은 상호 의존 관계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을 꺼려왔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은 사실 상상하기 어려웠다”면서 “그런데 이번에는 두 국가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서로에 대한 무역 제재를 사실상 발동했으며, 경제 전쟁을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해 미 카네기국제평화재단 릭 워터스 중국 센터장은 “미중 양국이 경제적 탈동조화(decoupling, 디커플링) 상태에 있으며, 무역 갈등의 확산을 막을 안전 대책조차 없다”면서 “우리는 이미 신냉전 시대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이제 국가의 명운을 걸고 국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이에 시진핑 주석은 미국을 향한 전면보복에 나서면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중국은 특히 미국에 맞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복 관세, 미국 기업을 겨냥한 블랙리스트, 핵심 광물 수출 제한 등 경제적 무기를 넘어 사이버·외교·군사 등 다른 비경제적 방식까지 보복을 시사하고 있다.
실제로 양국은 서로에 대한 사이버 공격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중국은 미국 항만, 수도시설, 공항 등 주요 인프라 네트워크에 침투하며 수집한 데이터, 통화 기록, 기타 정보를 활용해 보복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중국은 지난해 12월 비공개회담에서 미국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 대만 지원에 대한 보복이라는 점을 미국 측에 시사하기도 했다.
사실상 미국에 경고를 한 셈인데 이러한 사이버 공격이 미중간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그러한 공격은 자칫 전쟁 일보 직전으로 향하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WSJ은 이와 관련해 “중국은 또 인도·태평양 지역의 미국 동맹국들에 대한 전략적 압박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트럼프 정부의 인도·태평양 안보 공약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상당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라고 짚었다.
[상호간 안보위협으로 확대되는 미중간 무역전쟁]
WSJ은 “최근들어 미국 안보 및 군 관련 기구에서 중국의 위협에 대한 경계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면서 “지난 10일 상원 청문회에서 사무엘 파파로 인도·태평양 사령관이 대만 주변에서 중국 군사 활동이 증가하면서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가 위협당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WSJ은 “특히 미중간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배경에는 미중 사이의 고위급 소통이 단절돼 있어 무역 갈등을 넘어선 확전 흐름이 제어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초기에는 베이징 당국이 단계적 외교 접촉을 거쳐 미국과 정상회담을 하길 원했지만, 트럼프 팀이 차이치 시진핑 비서실장 등 최고위층과 접촉만 고집하면서 대화가 차단됐다”고 짚었다.
사실 미국이 차이치 실장을 요구한데는 워싱턴의 핵심 우려 사항인 사이버 보안 등의 문제들을 외교 실무진 선에서 다룰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당연히 사이버 보안 등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최고위층이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 백악관의 뜻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관세 공격을 시작하자 중국은 아예 미국의 대화 희망에 반응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시진핑이 내게 전화하길 바란다”는 트럼프 발언마저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은 왕이 외교부장과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사이의 회담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WSJ은 “시진핑 지도부의 정치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베이징의 정책 자문들은 전 싱가포르 총리 리셴룽과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모하메드 빈 살만을 트럼프와의 중재자로 거론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양국 수도에서 이러한 논의는 아직 충분한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양측 모두 협상에 서두르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미중간 불붙은 동맹 블록 구축]
이렇게 미중간 소통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가운데 양국은 서로 동맹을 규합해 세력 대결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일단 트럼프 정부는 관세 협상 중인 70여개 국가에 중국의 우회 수출을 차단하도록 압박하는 등 중국의 고립화에 적극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는 지난주 폭스 TV 스페인어 방송에 출연해 “관세협상을 벌이는 많은 국가들에게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시진핑 등 중국 당국자들도 중국의 무역 상대국들을 미국으로부터 떼어내기 위해 외교전을 펴고 있다. 시진핑의 최근 동남아 순방은 이 지역이 미중 사이의 주요 전장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시진핑이 지난 14일 베트남을 방문하기 며칠 전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트럼프와 통화했는데, 이에 대해 중국은 시진핑 국빈 방문을 앞둔 시점에 이뤄진 통화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미중 양측 모두 상대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외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베이징의 과잉생산으로 인한 산업 피해가 각국에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중국과의 교역량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나라들이다 보니 중국과 완전히 단절하면서 미국과만 교역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선택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중국측이 원하는 사항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이들 나라의 상황이다. 실제로 베트남의 경우 중국측이 강하게 무역연대를 요구했지만 베트남은 이를 거부했다. 미국과의 경제관계 개선이 국익에 훨씬 유리하다고 봤기 떄문이다.
중국 정부는 또한 유럽과의 연대를 원하고 있다. 미국과 관세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유럽연합과 중국이 연대하여 미국과 맞서자는 것인데, 사실 중국의 그러한 계획은 애초부터 이뤄지기 힘든 과제라 할 수 있다.
일단 중국은 유럽을 포함한 우호국가들과의 연대를 위해 세계무역기구(WTO) 주재 대사였던 리청강을 새 무역 협상 수석대표로 임명함으로써 세계 무역 질서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유럽이 동참할 것을 희망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리청강은 WTO 중국대표로 재직 당시 미국을 ‘일방적인 강자’라고 지칭할 정도로 강경한 미국 비판론자이다.
[‘벼랑끝 전술’ 펼치는 중국, 과연 버틸 수 있을까?]
한편, WSJ은 “중국과 미국의 소통 단절이 지속되는 가운데 워싱턴은 중국 기업들의 미국 기술 접근을 더욱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는 현재 진행 중인 경제 분리 추세를 역전시키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국무부 전 중국 정책 자문관이자 현재 조지타운 대학교 객원 교수인 라이언 페다시우크는 “미 상무부가 무역 제재 목록에 이미 포함된 중국 기업들의 자회사들까지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방식으로 수출 통제 조치를 크게 강화할 수 있다”면서 “미국의 이러한 조치는 관세로 촉발된 미중간 분리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WSJ도 “경제 전쟁이 격화되면 양국이 보복 수단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 스팀슨 센터 윤선 중국 책임자도 “역사상 가장 큰 무역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무역 갈등이 다른 영역으로 확대될 위험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미중 양국이 소위 ‘벼랑끝 전술’을 펼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은 미중 양국의 ‘벼랑끝 전술’로 누가 더 피해를 볼 것이며, 과연 먼저 항복할 수밖에 없는 나라가 어느 쪽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미국은 이미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국가이지만, 중국은 미국이라는 그늘 아래에서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국가라는 점이다. 특히 중국은 수출 주도형 국가로 수출이 무너지면 경제까지 다 망가지는 체제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중국은 이미 미국의 관세부과만으로도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는데, 여기에 이미 논의중인 뉴욕증시에 상장(上場)된 286개 중국 기업 퇴출을 시행한다면 이는 중국 경제에 급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의회에서 논의중인 중국인 유학생 비자 발급 금지 법안까지 실행된다면 이는 중국 사회를 뒤흔드는 폭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미국에 유학중인 학생들의 부모가 대부분 중국내 고위층 또는 잘사는 중산층 부모들이라는 점에서 중국내 여론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이다.
혹자들은 중국의 단골 압박카드인 희토류 문제 때문이라도 미국은 중국에 무릎꿇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이 그런 대안도 없이 중국과 사실상 디커플링을 시도할 리 만무하다.
이에 대해 WSJ 전 베이징 지국장인 밥 데이비스(Bob Davis)는 “미국은 중국산 희토류 광물을 대부분 직접 수입하지 않고 가공된 형태로 수입한다”면서 “중국이 강하게 압박한다면 다른 나라들의 희토류 채굴·생산을 더 자극해 중국에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어떤 이들은 중국의 대미(對美) 지렛대인 미국 국채 매각 카드 때문에 미국이 불리할 것으로 보기도 한다. 현재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는 홍콩 보유분까지 포함해 1조 167억 달러에 이른다. 그런데 만약 중국이 이 엄청난 양의 미국 국채를 팔아 버린다면 당장 위안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중국의 수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소위 자살골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방법도 전혀 유효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말로는 전면전을 외치지만 사실 미국의 압박에 대항할 카드가 별로 없다고 보면 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시진핑의 중국이 트럼프의 미국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진짜 봐야할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시진핑은 지금 초조하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위치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경제 문제까지 파국의 길로 간다면 당장 중국 공산당 내에서 지도자 교체 문제가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시진핑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서 별 수단을 동원하지만 그렇다고 뾰쪽한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시진핑의 한계는 뚜렷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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