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푸틴, 우크라전 '30시간 휴전' 일방선언…美경고 직후 발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인도적 이유를 들어 30시간의 일시적인 '부활절 휴전'을 일방적으로 선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를 향해 공격을 계속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휴전을 할 의사가 전혀 없었음에도 러시아의 군사적 행태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미국을 달래기 위해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해 놓고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지속했다는 점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 더타임스의 일요판인 선데이타임스는 20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은 이날 크렘린궁에서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과 면담 중 ‘러시아는 (모스크바 현지시간으로) 오늘 18시부터 21일 0시까지 부활절 휴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면서 “우크라이나 측도 우리의 본보기를 따를 것이라고 예상하며, 동시에 우리 군은 휴전 위반이나 적의 도발, 어떤 형태의 공격적인 행동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의 휴전 명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경고' 하루 만에 나왔다. 이번 휴전은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세 번째 사례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23년 1월 러시아정교회의 크리스마스 기간에도 휴전을 선언했다. 다만 당시 우크라이나는 푸틴의 휴전 선언이 러시아군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공세를 막기 위한 속임수였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푸틴 휴전 선언 이후 러시아군 59차례 포격”]
이렇게 일방적으로 부활절 휴전을 선언했던 러시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선데이타임스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일방적인 '부활절 휴전' 선언 이후에도 여전히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면서 “부활절 아침까지 러시아는 최전방에서 59차례의 포격을 퍼부었고, 다섯차례 공격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어 “러시아군은 외부 세계에 자신들이 휴전에 돌입한 인상을 주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곳곳에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려는 시도를 이어 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선데이타임스는 “루한스크와 도네츠크애서도 러시아군의 공격이 있었으며, 러시아의 포병 공격은 휴전선언과 관계없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러시아군이 휴전이라는 인상을 주려 하고 있지만 일부지역에서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각개약진의 전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러시아군의 공격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말은 믿을 수 없다”며 “러시아가 어떻게 사실을 조작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이어 “푸틴이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군은 그럼에도 일단 휴전선언대로 따르려 하고 있으나 러시아군이 그럼에도 공격을 가해 올 경우 반격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날 푸틴 대통령의 휴전 선언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상공에 러시아의 공격용 드론이 포착됐고, 이에 따라 수도 키이우를 포함한 각 지역에서 공습경보가 울렸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방공망을 가동해 러시아 드론을 향해 대응 사격했다.
[“끔찍한 사람, 손떼!” 트럼프 경고…푸틴 즉각 “부활절 휴전”]
눈여겨볼 점은 푸틴의 일방적 부활절 휴전 방침이 트럼프 행정부의 경고가 나온 지 하루만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난달 미국 중재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부분 휴전'에 원칙적으로 동의했으나 러시아가 잇달아 선결 조건을 요구하며 사실상 부분 휴전 이행을 하지 않고 있다는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불만이 고조된 상황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기자들과 문답을 이어가던 중에 “두 당사국(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 한쪽이 상황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면 우리는 '당신은 바보다. 우리는 (더 이상의 중재 노력을) 사양하겠다'고 말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전쟁의) 끝을 보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도 같은 날 프랑스 파리에서 유럽, 우크라이나와 회동한 뒤 “평화 협상에 진전이 없을 경우 미국이 중재 역할에서 손을 뗄 수 있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동시 압박했다.
이와 관련해 태미 브루스 국무부 대변인은 당시 파리 회동 결과와 관련해 “이제 문명 세계는 러시아가 정말로 진지한지 지켜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우크라이나는 여러 차례 휴전 이행 의사를 밝힌 것과는 다르게 휴전 이행을 꺼리던 러시아가 미국 측의 잇따른 경고성 발언에 부담을 느끼면서 일방적으로 부활절 휴전을 선언하며 이미지 쇄신을 노린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미국이 변심한다면 종전 협상을 계기로 서방 제재를 해제하려던 러시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어서다.
이런 분위기에서 우크라이나는 푸틴 대통령 발표에 회의적 반응을 내놓으면서 휴전 연장을 역제안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발표한 휴전 개시 이후인 이날 오후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게시물에서 “완전한 휴전이 유지된다면, 우크라이나는 휴전을 부활절인 20일 이후로 연장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30시간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기엔 충분하겠지만, 진정한 신뢰 구축 조치를 위해서는 부족하다”면서 “30일이 평화를 시도할 기회”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중재안을 이행할 것을 거듭 촉구한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러면서 “러시아는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30일 휴전 제안에 39일째 호응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이 제안을 했으며, 우크라이나는 긍정적으로 대답했지만 러시아는 이를 무시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이제 와서 갑자기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휴전에 진정으로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한다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행동에 따라 그대로 행동할 것”이라며 “침묵에는 침묵으로, 공격에는 방어로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갑작스러운 휴전 선언 뒤에 숨은 진짜 전략]
이러한 푸틴의 일방적 부활절 휴전선언과 관련해 CNN은 “트럼프 대통령과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우크라이나전쟁 종전회담에서 손을 뗄 수도 있다고 경고한 지 하루만에 나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푸틴의 일방적 휴전선언은 사실상 푸틴이 트럼프의 눈치를 보면서 양보한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CNN은 이어 “사실 휴전선언을 하기 위해서는 전장의 현재 상황을 고려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준비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이번 선언은 그러한 준비도 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라면서 “이로 인해 일부 전선에서는 이러한 일방적 휴전선언으로 인해 심각한 문제들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짚었다.
아마도 푸틴에 의한 일방적인 휴전선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의 공격이 지속되었다는 것은 크렘린궁의 의도가 일선 전선에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아니한 탓일 수도 있고, 전혀 준비도 없이 휴전선언을 발표함에 따라 쉽게 교전을 멈추기 어려웠던 것이 지금의 상황을 불러왔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푸틴의 결정이 즉흥적이었고, 동시에 트럼프의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CNN은 “푸틴의 일방적 휴전 발표는 그야말로 러시아가 전투를 중단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백악관에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를 통해 백악관이 모스크바 친화적 성향을 붙잡아두려는 의도일 것”이라고 짚었다.
CNN은 그러면서 “푸틴의 일방적 휴전선언 이후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향한 공격을 지속했다는 것은 푸틴의 휴전선언이 주는 의미를 완전히 희석시켰으며, 오히려 러시아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만 남기는 꼴이 됐다”고 평가했다.
[전쟁 지속 여부 놓고 크렘린 분열 상황]
이와 관련해 선데이타임스는 또다른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 취임 100일이 끝나는 4월 30일을 기점으로 현재 평화 프로세스는 더 이상 진전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면서 “현재로서는 모스크바, 키이우, 워싱턴, 브뤼셀 모두 실질적인 타협을 이루기보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4자 치킨 게임처럼 보인다”고 짚었다.
선데이타임스는 이어 “만약 푸틴의 뜻대로 미국이 동조하면서 종전협상이 마무리된다면 푸틴은 유럽의 안보구조 재편에 이어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지만 그러한 망상은 트럼프가 제시한 4월 30일 이전에 모든 협상이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정리했다.
선데이타임스는 “전쟁을 지속하는 것에 대해 크렘린궁 내부에서도 상당한 이견이 나오고 있다”면서 “날이 갈수록 러시아의 상황은 어려워질 터인데, 만약 빠른 시일안에 전쟁을 끝내지 못한다면 당장 러시아의 무기고는 바닥이 날 것이고, 경제도 더 어려워질 것이며 상황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에 푸틴이 최대한 빨리 전쟁을 끝낼 수 있도록 결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고 설명했다.
선데이타임스는 그러면서 “실제로 크렘린궁에는 푸틴에 충성하는 척하면서도 푸틴의 노선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이른바 ‘제5열’이 존재한다”면서 “이들은 푸틴의 모든 것에 대해 조용히 방해하고 있다”고 짚었다.
선데이타임스는 “지금 상황에서 크렘린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트럼프의 관심을 끌고자 애쓰고 있다”면서 “북극 석유 및 가스와 러시아 희토류의 공동 개발, 어려움에 처한 미국 항공우주 대기업 보잉으로부터의 민간 항공기 대량 주문, 심지어 러시아 시장에서 쫓겨난 미국 기업들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EU의 태도다. 현재 EU는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에 대해 깊이 개입하고 있자는 않지만 내부적으로는 매우 강경하다. 심지어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지난 16일, “우리가 알던 서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미국을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러한 입장이 미국의 트럼프 정부의 우크라이나 종전 논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주목거리다.
이런 상황에서 눈여겨볼 점은 진짜로 미국이 우크라이나전쟁 종전협상에서 손을 뗀다면 그 다음 어떻게 될 것인지의 여부다. 이에 대해 선데이타임스는 "설사 미국이 종전협상에서 손을 뗀다 하더라도 그러한 파국의 원인이 러시아에게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은 계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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