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美, 70개국과 협상서 ‘중국과 거래 제한’ 압박 계획]
전 세계에 관세폭탄을 쏘아 올린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글로벌 경제 무대에서 중국을 완전히 고립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에 돌입해 주목을 끌고 있다. 앞으로 진행될 70여개국과의 관세 협정에서 미국이 관세율을 낮춰주는 대가로 중국과 거래를 끊도록 압박해 중국 경제에 타격을 주겠다는 전략으로 조만간 이뤄질 한국과 협상에서도 이런 요구가 나오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자(현지시간) 지면에서 “관세전쟁을 책임지고 있는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재무장관이 무역 파트너들과 관세협정을 타협하는 조건으로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제한하기를 원하고 있다”면서 “미국 정부가 이미 일부 국가와의 초기 협상에서 이런 구상을 거론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WSJ은 이어 “미국 정부의 이러한 구상은 확실하게 중국 경제의 고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서 “백악관이 관세 장벽을 낮춰주는 대신 중국이 해당 국가를 거쳐 상품을 운송하는 것을 막고 중국 기업이 미국의 관세를 피하기 위해 해당 국가에 회사를 세우거나 중국의 값싼 공산품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WSJ은 “이러한 조치는 이미 불안정한 중국 경제에 타격을 입히고,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의 잠재적인 회담을 앞두고 중국이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강요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중국의 경제에 대한 개입 정도에 따라 국가별로 정확한 요구 사항은 크게 다를 수 있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스페인어 프로그램인 '폭스 노티시아스'와 인터뷰에서 파나마가 중국의 글로벌 인프라 프로그램인 일대일로에 대한 참여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한 질문에 대해 “각국이 미국과 중국 중에서 선택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이 같은 전략을 추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WSJ은 “이러한 중국 배제 전략은 스콧 베센트 장관이 지난 6일 플로리다에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별장인 Mar-a-Lago에서 열린 회의에서 이 아이디어를 트럼프에게 제안했다”면서 “베센트 장관은 미국의 무역 상대국을 압박하면 중국이 미국의 관세 장벽을 우회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이 같은 구상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對中 무역협상 압박수단으로 美증시 상장 中기업 퇴출 논의]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더 엄청난 계획도 구상중인 것으로 보인다. 바로 중국 경제를 고립시키기 위해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을 퇴출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인터넷 매체인 폴리티코는 15일(현지시간)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이 지난 9일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중국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 폐지 가능성과 관련해 ‘난 모든 게 테이블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우군이자 사업가인 케빈 오리어리도 지난 11일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상장 폐지가 ‘중국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이어 “공화당의 릭 스콧 상원의원(플로리다)도 최근 폴 앳킨스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지명자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면서 “그는 미국의 자본 시장은 전 세계 기업에 비할 데 없는 자금 조달 기회를 제공해 세계가 부러워하지만, 이 특권에는 책임이 따르는데 그 중 핵심은 투명성과 우리 금융 공시 규정의 준수”라고 짚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기업들이 우리 규정을 따르기를 거부하면서 계속해서 미국 자본에 대한 접근을 누린다는 게 걱정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면서 폴리티코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 폐지를 얼마나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면서 “다만 이 구상이 다시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은 미국이 중국과 무역 전쟁에서 어떤 방식도 제외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의회의 초당적 자문기구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에 따르면 지난 3월 7일 기준 미국 증시에 중국 기업 286개가 상장됐으며 이들의 총 시가총액은 1조1천억달러에 달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중국 기업의 상장 폐지를 추진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미국 의회는 지난 2020년 미국 회계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중국 기업을 미국 증시에서 퇴출하도록 규정한 외국회사문책법(HFCAA)을 제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미국 회계 당국의 감사에 2년 연속 제대로 응하지 않는 중국 기업을 상장 폐지할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리는 방법이다. 더 빠른 방법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안보 차원에서 행정명령을 내리는 방법이 거론된다.
중국 기업이 미국 증시에 상장할 때 사용하는 수단인 가변이익실체(VIE·Variable Interest Entities)를 금지하는 방법도 있다. 중국 기업은 자국의 외국인 지분 소유 제한을 우회하면서 미국에서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이 수단을 써왔다.
그런데 미국 당국이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기업의 증시 퇴출을 추진하면 관세 정책으로 이미 불안해하는 금융 시장이 더 요동칠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기로 하고 일시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중국 경제를 글로벌 시장에서 완전히 배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도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이 방안을 그대로 밀어 붙인다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시진핑 주석에게는 엄청난 압박이 될 수 있고, 만약 그대로 시행된다면 중국 경제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진핑 주석이 두 손들고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미중국대사관 류펑위 대변인은 폴리티코에 “중국 기업과 중국 시장을 배제하면 궁극적으로 미국 자신의 경제 이익과 국제 신뢰성에 손해를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美, “중국과의 협상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것”]
그런데 눈여겨볼 점은 미국이 중국과의 협상을 결코 서두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중국과의 무역 협상과 관련해 “공은 중국 코트에 있다”며 “중국은 우리와 협상을 해야 하지만 우리는 중국과 협상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중국이 먼저 고개 숙이고 협상 요청을 해 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국측은 관세전쟁 전에 미국과 대화를 타진했으나 거부당했다고 말해 그 진위가 궁금해진다. 사실 여하에 따라 미국의 전략을 추론할 수 있어서다.
홍콩 성도일보는 지난 14일 중국 정치권 내부 소식을 주로 전하는 '중국 관찰' 코너에서 “이번 관세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중국이 추이톈카이 전 주미중국대사를 조용히 미국에 보내 협상 기회를 모색했으나 대화가 성사되지 않았다”면서 “미국이 표면적으로는 추이 전 대사의 급이 높지 않다는 점을 문제 삼았지만, 실제로는 근본적으로 대화를 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짚었다. 성도일보는 이어 “미국 당국이 극한의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에서 값을 높여 차이치(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공식 서열 5위)를 거명했다”고 설명했다.
성도일보는 “중국이 설령 국무원 부총리이자 중미 경제·무역 선도인인 허리펑을 미국에 보내 소통하면 급이 충분히 높아진 것인가. 그랬다면 무슨 결과라도 있었을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진 뒤 “답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미국의 기세를 높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도일보는 그러면서 “'트럼프 1기'였던 2018년, 류허 당시 중국 부총리 지명자가 미국에 다녀온 뒤 중국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미중 양국이 무역 전쟁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실제로는 얼마 안 가 무역 전쟁이 시작됐다는 점과 류허가 부총리가 된 뒤에 무역 협상을 위해 다시 미국에 갔으나 모욕당하고 빈손으로 돌아왔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성도일보는 또한 “트럼프 관세 전쟁의 본심은 관세에 있지 않다”며 “궁극적 목표는 미국의 유일무이한 경쟁 우위를 확정하고 중국의 산업 업그레이드 기회를 철저히 죽여 영원히 미국의 '저가 공장'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베트남 등 소국은 미국 시장에 고도로 의지하니 대항할 힘이 없고, 미국에 무릎을 꿇을 수 있다”며 “중국은 설령 투항한다 해도 도움이 안 되고 실패가 정해져 있다. 반드시 강하게 반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이 이렇게 강하게 반격하고 나서면 나설수록 미국의 압박 강도도 더욱 커진다는 점이다. 사실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회피하는 것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트럼프 면전에서 개망신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결국 미국에 패권전쟁을 선포했던 시진핑의 처절한 반성을 미국이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진핑마저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내버려 두자니 당장 중국 경제는 물론이고 시진핑의 지위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선택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은 중국 코트에 있다!” 미국의 여유, 이유 있다!]
미국의 베센트 장관은 이제 일본을 필두로 한국을 포함한 핵심 우방국들과 관세 협상을 시작한다. 여기에는 영국, 호주, 인도도 포함된다. 이들 국가들과의 협상 진행 과정을 보면 미국이 중국에게 원하는 일단을 추론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이 중국을 향해 협상카드를 먼저 던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시간적 여유도 미국에게 더 있다. 미국은 여전히 대규모 수입국인 반면 중국은 수출 집중국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이 내수를 늘리면서 지금의 위기를 넘겨 보겠다는 심산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더욱 1분기에 관세 회피로 인해 수출이 급격히 늘면서 경제성장률도 5%를 넘어섰지만 관세전쟁 여파가 본격화될 2분기 경제성장률은 급전직하할 것이 뻔해 보인다는 점에서 중국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은 우리와 협상을 해야 하지만 우리는 중국과 협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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