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시진핑의 민간경제 중심 발전론, 공산당 핵심의 반대 부딪쳐]
중국이 심상찮다. 막강한 권력을 쥐고 흔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진핑 주석이 주요한 인사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진짜 해야 할 정책까지도 결정하지 못하고 그저 미루고만 있어서다. 그래서 지금 중국 내부는 섬뜩하다 할 정도로 초긴장 상태에 빠져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일본의 닛케이아시아(Nikkei Asia)는 20일, 닛케이의 전 중국지국장을 지냈던 카츠지 나카자와 편집인의 분석 글을 통해 “정치적, 경제적 역풍을 맞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요한 인사 결정마저 보류해야만 할 정도로 극도로 위축되어 있다”면서 “국회격인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연례회의가 3월 11일에 끝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시해 온 그동안 사실상 공백상태에 있던 핵심 요직의 인사마저 시행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닛케이는 이어 “중국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그러한 중국 내 정치 흐름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바로 인사”라면서 “이번 전인대에서 주목할 만한 인사가 나오지 않으면서 적어도 당분간 중국 내에 새로운 인물의 등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문제는 시진핑 주석이 인사만 보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닛케이는 “시진핑 주석이 부진한 내수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민간 경제 진흥에 관한 법률 초안'마저도 시진핑 정부 내 불화로 인해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면서 “이 법안은 올해 전인대 개막 직전까지만 해도 심의의 핵심으로 여겨졌지만 이 법안은 결국 본회의 의제에서 제외되었다”고 밝혔다. 시진핑 주석이 중국 내 IT기업 경영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민간 경제 진흥을 대외적으로 설파했지만, 정작 민간 경제의 활력을 불러일으킬 법안은 아예 전인대에 제출도 하지 못하고 잠자고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시진핑 주석이 강조했던 민간 경제를 활용해 중국의 주력 경제를 살리겠다는 목표 또한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도 민간 경제 중심의 경제체제가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국영경제를 흔들리게 할 수도 있다는 입장에서 반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보인다. 그렇다면 시진핑의 민간경제 중심론은 공산당 내부에서 강한 반발을 불러오고 있고, 이들 공산당 핵심들의 반발을 시진핑마저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핵심 인사권마저도 휘두르지 못하는 시진핑]
더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시진핑 주석이 인사권마저도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외교를 총괄하는 외교부장(장관)마저도 후임을 선정하지 못해 지금도 정치국 상무위원인 왕이가 겸직하고 있다. 왕이는 지난 2023년 친강 부장이 해임되면서 임시로 다시 외교부장을 맡았는데 아직까지도 겸직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닛케이는 이와 관련해 “중국 내는 물론 외부에서도 이번 전인대에서는 왕이의 후임이 될 외교부장으로 류젠차오가 유력하게 떠올랐는데 결국 이번 전인대에서 선임되지 못했다”면서 “류젠차오는 현재 중국의 대외 관계를 담당하는 당 국제연락부 주임을 맡고 있는데, 이번에 외교부장으로 선임되었다면 당장 22일부터 도쿄에서 열리는 일본, 중국, 한국 고위 외교관 회의에 참석했을 것이지만 끝내 그러한 인사는 단행되지 못했다”고 짚었다.
닛케이는 이어 “지난해 12월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이 왕이 부장과 회담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이미 중국이 조만간 새 외교부장을 임명하지 않을 것이라는 징후가 있었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복귀하면서 중국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외교부장이 왕이부장을 능가할 가능성이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신임 외교부장의 인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닛케이는 또한 “트럼프가 러시아의 푸틴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에서 경험이 부족한 외교부장이 오늘날의 복잡한 지정학적 위기에 잘 대처하기는 힘들 수 있다는 점도 신임 외교부장의 등장을 가로막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외교부장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국방부장 역시 시진핑의 골머리를 앓게 만들고 있다. 현재 국방부장인 등쥔은 지난 2023년 12월 불명예로 퇴임한 전임 리상푸의 후임으로 지명되었다. 인민해방군 해군 장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국방부장이라는 요직을 차지했고, 당연히 시진핑의 총애를 받고 있는 등쥔이지만 국방부장 자리에 앉은 지 15개월이 지났음에도 당연히 국방부장이면 겸직해야 할 부총리급 직책인 국무위원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등쥔은 이미 지난해 전인대에서도 그러했고 올해 전인대에서마저도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그런데 눈여겨볼 점은 산둥성 출신인 등쥔이 시진핑 주석과 그의 부인 펑리위안과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등쥔은 지금 인민해방군을 감독하는 최고 군사 기관인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을 겸직하지 못하고 있다. 역대 국방부장들이 당연히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직을 겸직했음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등쥔은 시진핑의 총애를 받고 있음에도 왜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겸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중앙군사위원회 먀오화 정치부장이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군 출신인 먀오화는 시진핑 주석의 최측근으로서 그동안 국방부장 인사에 직접 관여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난해 11월, 갑자기 ‘심각한 규율위반혐의’로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이와 함께 시진핑은 군부 내 부패와 관련해 많은 인물들을 조사하고 있고 또 숙청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은 군부는 물론이고 심지어 중요한 정책까지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확연히 달라진 시진핑 위상, 이젠 갈라파고스가 되고 있다]
시진핑은 그동안 공산당은 물론이고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등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또한 주요 직책들에는 당연히 시진핑의 측근들로 완전히 채워왔었다. 그러나 시진핑의 이러한 정치 행태는 그동안 계파 안배를 해 왔던 정치관행을 완전히 무너뜨린 것이었다.
심지어 시진핑은 내각 인선에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22년 12월 친강을 외교부장으로 지명한 사건이다. 그 인사가 부적절했다는 것은 반년이 조금 지나면서 해임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국방부장을 임명하는 과정에서도 시진핑의 인사 실수는 또 드러났다. 시진핑이 임명했던 리상푸마저도 중도 해임되면서 시진핑은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시진핑은 인사 문제 외에도 경제 정책으로 인해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지난 5년전만 해도 중국 경제가 민영기업이 아닌 국영기업 중심인 국진민퇴(國進民退)를 주장했다. 그것이 중국의 살 길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시진핑은 바로 그 국진민퇴를 버리고 이젠 민영기업 중심의 경제를 설파하고 있다. 시진핑의 경제노선이 완전 실책이었음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사실 그동안 시진핑의 정책 노선을 두고 당내에서도 비판이 많았었다. 시진핑의 경제노선을 그대로 두게 되면 중국 경제가 험난해질 수 있다는 경고는 여러 번 나왔다. 심지어 2023년 여름에는 당의 원로들로부터 가혹한 충고를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시진핑과 그의 측근들은 이러한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러다가 중국 경제가 도저히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시진핑은 자신이 직접 버렸던 알리바바그룹의 창업자 마윈까지 다시 불러 민영경제 중심의 정책을 쓰겠다고 하면서 화해를 시도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정치국 상무위원들도 시진핑을 따라 민간경제 CEO들과 악수하면서 그들이 중국 경제를 살릴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민영경제를 버린 지 6년 만에 다시 민간경제 중심론을 시진핑이 제창하고 있지만, 이젠 민영경제 중심론에 반대하는 중국 공산당 내부의 반발에 부딪쳐 민영경제 촉진법 제정마저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는 것이다.
지난해 10월에 공개된 이 법안은 민간 기업의 시장 진입을 장려하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함으로써 민간 기업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만약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중국 경제는 더욱 파국으로 끌려 들어갈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공산당 내부의 반발이 극심하다는 것이다. 민영경제를 살리게 된다면 공산당의 돈줄인 국영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2월까지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이 법안을 두 차례나 심의를 했고, 그래서 중국의 매체들이 3월의 전인대에서 다뤄질 것이라고 보도까지 했지만, 이 법안은 심의는커녕 아예 상정조차도 못했다. 중국에서 법안 심의는 보통 계획대로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상치 못한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보면 지금 공산당 핵심 내부에서 시진핑에 대한 반발이 얼마나 심한지 짐작할 수 있다.
[공산당 달래기에 나선 시진핑, 이미 시기를 놓쳤다]
사실상 공산당 내부의 반란에 부딪친 시진핑은 전인대 폐막 직후인 지난 17일, 국무원 자산감독관리위원회(SASAC)의 공식 소셜 미디어 계정에 “중국의 국유기업을 더 강하고, 더 좋고, 더 크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이 글은 중국공산당 이론지인 치우스에도 게재가 되었다.
이 내용은 중국의 부동산 거품이 한창이던 2017년 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직접 강조한 내용이기도 하다. 시진핑이 지금 이 시점에서 공산당 당원들에게 이 내용을 부각시키는 것은 순전히 당원들을 달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를 통해서도 민간기업 CEO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민간경제 중심론을 강하게 펼쳤던 시진핑이 정작 공산당 이론지인 치우스에는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중국 경제를 이끌어가겠다는 이중적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와 관련해 닛케이는 “중국은 폭풍전야의 고요함이라 할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 “시진핑은 지금 인사권도, 정책 결정권도 제대로 휘두르지 뭇하는 초유의 상황에 몰려 있다”고 평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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