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북한의 대남전략에 혼선, 北 지도부내에 의견 충돌 있는 듯]
북한 내부가 요동치고 있다. 지난 7일부터 8일까지 이틀간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를 열었으나, 이 자리에서 김정은이 제시한 이른바 ‘두 국가론’ 관련 헌법 개정이 불발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정은은 이러한 흐름에 대한 불만으로 아예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엉뚱한 일정을 잡을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0일(현지시간) “북한 내부에 상당한 혼선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김정은의 말과 김여정의 말이 다르고 또 노동신문 등 선전매체들의 발언 내용들이 수시로 바뀐다는 것은 북한 지도부내에 혼란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보도했다.
RFA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국군의 날 행사에서 공개한 ‘현무-5’ 미사일을 공개한 것에 대해 김여정(노동당 부부장)은 현무 미사일을 조롱하면서 ‘졸망스럽다’고 비난했다. 또 조선중앙통신은 4일 “김정은(총비서)이 지난 2일 서부지구의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부대를 시찰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군의 날 기념사를 비난하고, “북한은 핵 강국으로서 한국과 미국이 북한 주권을 침해하려 시도하면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공격력을 동원하겠다”고 발언했다. 한마디로 핵선제공격 가능성까지 거론한 것이다.
눈여겨볼 것은 한국이 공개한 현무-5 미사일에 대해 왜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가 이렇게 핵 선제사용을 언급할 정도로 급 대노를 했을까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인 마키노 요시히로는 RFA에 “한국이 최근 공개한 '현무-5' 미사일이 북한을 크게 압박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현무-5'는 탄두 중량이 약 8톤으로, 지하 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벙커버스터로 평가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시히로 기자는 이어 “이스라엘이 지난 9월 27일 (전 헤즈볼라 사무총장인) 하산 나스랄라를 제거하기 위해 약 100발의 폭탄으로 지하 18미터에 위치한 벙커를 폭격한 사건이 있었다”면서 “북한은 방공 시스템이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에, 이 사건은 북한에 상당한 충격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주목할 사항은 조선중앙통신이 8일 발표한 보도에서 김정은이 국방대학을 방문했을 때 “원래 우리는 한국과 전쟁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불과 며칠 전의 발언을 완전히 뒤집은 것인데, 이는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면서 속도조절을 한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김정은이 진짜로 발언의 강도조절 필요성을 염두에 두고 말을 바꾼 것이라면 이는 북한 지도부 내에 혼란이 발생하고 있음을 시시한다는 것이 RFA의 견해다.
[RFA, “‘한국 적대시’ 헌법 개정 지연, 북 내부 갈등 시사”]
또 하나, 주목할 사항은 7일과 8일 양일간에 열렸던 최고인민회의 소식이다. 김정은은 지난 1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행사 영역을 합법적으로 정확히 규정짓기 위한 법률적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해 공화국 헌법이 개정되어야 하며 다음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심의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영토, 영해, 영공 조항이 신설되었어야 하나 현재 파악키로는 불발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북한 노동신문은 “공화국 공민의 노동 가능 연령과 선거 연령을 수정하는 내용이 헌법 개정안에 반영되었다”고만 발표했을 뿐 1월의 대남 적대시 정책을 반영한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이에 대해 RFA는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헌법 개정 결과가 보도되지 않은 것은 김정은의 권위를 훼손할 수 있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남북 관계의 긴장이 너무 고조한 상황에서 헌법 개정을 했어도 이를 공표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고, 또한 지도부 내에서 대립이나 혼란이 있었기 때문에 헌법 개정이 연기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10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를 개최해 헌법을 개정했으나 영토 조항은 신설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북한이 왜 헌법에 영토 조항을 신설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북한이 현재 정전협정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정전협정에 의해 획정된 군사분계선을 남쪽 국경선으로 명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봤다.
둘째, 북한이 올해 1월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조선반도(한반도)에 병존하는 두 개 국가를 인정한 기초 위에서 우리 공화국(북한)의 대남정책을 새롭게 법화”한 상황에서 한국처럼 한반도 전체를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할 수도 없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정성장 센터장은 결국 영토, 영해, 영공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 김정은의 의도처럼 간단하지는 않아 헌법에 반영되지 못한 것으로 풀이했다.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지낸 태영호 민주평통 사무처장도 10일 열린 민주평통 주최 토론회에서 “북한이 헌법 개정 여부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직 간부들과 주민들에 대한 설득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라면서 “아직 북한 내부에서조차 통일과 민족 개념을 포기한다는 선언을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태영호 처장은 이어 “그동안 북한 관영매체를 쭉 봐 왔는데, 단 한 번도 북한 간부나 주민들이 TV, 신문에 나와서 ‘두 국가론’을 지지하는 입장을 낸 적이 없다”면서 “강연회나 내부 토론회, 학술 토론 등을 통해서 북한 주민들에게 각인시키는 과정도 지금까지 없었다”고 설명했다.
태 사무처장은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새로운 정책이나 이론을 발표하면 간부들이나 주민들을 관영매체에 동원해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수순”이라며 “아직까지 ‘두 국가론’과 관련한 홍보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최고인민회의 불참한 김정은, 불만 표시인가?]
그렇다면 김정은은 왜 최고인민회의에 돌연 불참했을까? 정성장은 이에 대해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그가 올해 1월에 지시한 내용이 헌법 개정에 반영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면서 “헌법을 개정해 영토 조항을 신설하라고 한 김정은의 지난 1월 지시는 결국 충분히 숙고해 내린 결정이 아니었음이 이번에 분명하게 확인된 것”이라 설명했다.
그래서 김정은은 10월 7일 김정은국방종합대학을 방문해 연설을 하는 등 이번 최고인민회의에 불참했고, 그의 여동생 김여정도 10월 8일 제2경제위원회 산하 국방공업기업소들이 생산하는 240mm조종방사포탄의 검수시험사격을 참관하는 등의 일정을 내세워 최고인민회의에 불참했다는 것이다.
정성장 센터장은 이어 “북한이 비록 영토 조항을 개정헌법에 추가할 수는 없었어도, 헌법에서 통일 관련 조항은 삭제할 수 있었겠지만 그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아직 삭제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북한 헌법 제9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힘있게 벌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규정되어 있다”고 풀이했다.
[휴전선 요새화도 두 국가론 형상화하는 것]
한편, 북한군 총참모부는 같은 날 남측과 연결된 도로와 철도를 9일부터 완전히 차단하고 '남쪽 국경'을 영구적으로 봉쇄하는 요새화 공사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 마키노 요시히로 기자는 RFA에 “이번 최고인민회의 보도와 북한군 총참모부의 발표가 크게 대비된다고 생각한다”면서 “북한군이 남북 간 적대 정책이 미뤄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스스로 한국을 향한 적대 정책을 발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요시히로 기자는 이어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북한 내부가 결속해 동일한 입장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RFA는 이어 “과거 김정일 시대에도 군과 당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사례를 고려하면, 현재 북한 내부에서 유사한 권력 다툼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대표적인 예로 김정일 시대에 개성공단 설치를 둘러싸고 군과 정부 간에 대립이 있었고, 당시 박봉주 총리가 2007년 무연탄을 외화벌이가 아닌 국내 에너지 용도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가 교체된 적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헌법 개정이 지연된 것은 북한 군과 당 사이에 권력 갈등이 있음을 시사할 수 있다”는 것이 RFA의 견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로서는 쿠데타나 군사적 혼란의 징후는 안 보이지만, 조선중앙통신을 비롯한 북한 관영 매체에서도 모순된 보도가 나오고 있어 이를 계속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 RFA의 결론이었다.
이에 대해 정성장 센터장도 “북한은 헌법에 ‘영토 조항’을 신설하지 못하는 대신 북한과 남한 영토를 더욱 물리적으로 분리, 차단시키는 조치를 내린 것”이라면서 “북한은 앞으로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서해 해상경계선도 발표하고 그것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조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해석했다.
이렇게 북한 내부에서는 대남전략과 관련해 뭔가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정은이 며칠 사이에 완전히 말을 바꾼 것도 최근들어 상당한 불안 증세가 강박적 상황으로 커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든다. 지금이야말로 북한 상황을 유심히 관찰해야 할때가 아닌가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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