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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현 칼럼] 달빛 추억 2023-06-13
최원현 whytimes.pen@gmail.com



어린 날, 어른들이 안 계셔서 홀로 있던 밤이었습니다. 혼자서 자려는데 통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억지로 잠을 청해 보아도 초롱초롱 정신은 더 맑아지고 두 눈도 따라 더욱 말똥말똥 해집니다. 그때였습니다. 뚫린 창틈으로 한 가닥 달빛이 기척도 없이 스며들어 왔습니다. 불이 꺼진 방안, “방엔 누가 있을까?” 도저히 궁금증을 참아낼 수 없었나 봅니다. 방안으로 가느다란 빛살 줄 하나가 뚫린 창구멍을 통해 내려졌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살그머니 열어봤습니다. 달빛이 기다렸다는 듯 와락 한꺼번에 방안 가득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방안이 밝아져 버리자 빛살 줄은 간 곳 없고 안과 밖이 시리도록 맑은 달빛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채 보름달이 되지 못한 달이 머리 위에 수줍게 떠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다지도 달이 밝을까요. 달밤이라기보다 햇빛 부시지 않은 낮같았습니다. 달이라는 등불 하나로 이만큼 세상이 밝아진 것입니다. 낮의 부신 햇빛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햇빛이 밝은 형광등이요 세련된 양장(洋裝) 같다면 달빛은 석유 등잔불에 모시 적삼 한복이었습니다.


교교한 아름다움, 이른 가을의 취할 듯한 맑은 분위기, 숨죽인 조용한 느낌의 밝음, 달빛은 그렇게 서럽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고 젖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저마다의 가슴에 아름답고 그리운 추억 하나씩 만들어 주며 아픈 그리움에 젖게 했습니다.


어쩌면 이리도 고울까, 어떻게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달빛은 순하디 순한 얼굴 가득 눈웃음까지 지어가며 어린 내 가슴에 아지 못할 두근거림을 심어주었습니다.


나는 아름답다는 것을 현란한 색깔의 유희에 대입하곤 했었습니다. 화려한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헌데 아름다운 것은 그렇게 여러 가지 색깔이 아니었습니다. 화려함도 아니었습니다. 풀빛, 물빛, 지금 같은 달빛, 그러고 보니 옥색 저고리를 입은 막내이모가 그리 아름다워 보였던 것도 바로 그 한 가지 색이 주는 아름다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도 소복을 한 모습을 보면 더없이 정갈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부활절 아침 성찬식을 위해 하얀 한복을 입고 예배당에 앉아있는 모습이 성스러울 만큼 아름다워 보였던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흰색은 그대로 부시지 않은 빛남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추억의 색깔들도 현란하지 않았습니다. 빛바랜 누런색이거나 연기 색 같은 옅은 회색으로 희미하게 기억되는 것들입니다.


삶도 살아있는 것들 사이에서 그렇게 화려한 유희가 아니라 명멸하듯 다소곳이 스러지거나 숨는 것이었습니다. 생명이란 살아있음으로 아름다운 것이지만 때로 나는 스러지는 모습에서 소멸의 미학처럼 더 큰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별똥별처럼 순간적으로 찬란한 빛을 내다 스러지기도 하고, 어떤 이는 호수를 한참동안 홍시 빛으로 물들이며 황홀할 만큼 아름답게 그 순간을 장식하고는 서서히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흐린 날 저녁처럼 빛도 없이 아무런 낌새도 없이 가고 말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이란 살아있을 때는 햇빛 같지만 생명이 다 하고나면 그대로 어둠인 것이 아니라 은은한 달빛같이 기억으로 남아 있곤 하나봅니다. 지는 모습, 사라지는 모습은 달라도 사라진 후의 여운도 모두 은은한 달빛입니다.


요즘 들어 웬일인지 그 어린 날 한 밤의 달빛이 이따금 두려움으로 생각나곤 합니다. 그러나 다시 그 날처럼 혼자 있게 된다면 분명 그 날처럼 달빛에 취하진 못 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라는 두려움으로 온 밤을 떨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와 생각하니 달빛은 내 살아온 삶 내내 잠재해 있던 희망이었습니다. 부시지도 그렇다고 아주 어둡지도 않게 나를 지켜주던 빛이었습니다. 태양이 있을 때라고 달이 없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 날의 달빛이 지금껏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던 것은 하나의 추억거리가 아니라 보이지 않았을 뿐 나를 지켜주던 힘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살아온 날을 돌아봅니다. 그런데 내 스스로 태양처럼 빛을 내며 살아온 것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사랑으로 도움으로 위로로, 나는 늘 그렇게 남의 빛을 받아 살아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달빛이야말로 순수한 사랑의 결정(結晶)일 수 있습니다. 받은 것을 다시 나누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도 못합니다. 남의 빛을 빌어 살아왔으면서도 받은 만큼도 나누지 못하는 부족함입니다. 태양빛은 고사하고 달빛 은은함으로도 살지 못하는 나입니다.


언제쯤에나 나도 은은한 달빛처럼 받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은은하게 시리도록 맑게 내리던 그 날의 달빛처럼 내 삶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그런 달빛으로나 밝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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