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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수교 140주년 기념] 고종시대의 한국과 러시아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4년 4월 대한제국의 황궁(경운궁, 현재의 덕수궁)이 모두 불타버렸다. 1905년 일본제국은 대한제국 외교권을 빼앗았고, 1910년 마침내 대한제국의 주권을 앗아갔다. 당시는 제국주의 시대였다. 어느 나라도 한국을 도와주지 못하였다. 각국은 자국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일본제국과 타협하였다...
2024-01-25 이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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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근현대사: 제13화] 강화도 연무당의 설전(舌戰)과 조일수호조규
[강화도에 나타난 일본의 전권대신과 이노우에 가오루] 운양호사건이 발생한 이듬해 초 일본에서는 군함 6척과 300명의 군사가 딸린 전권사절단을 조선에 파견하였다. 특명전권대신에 구로다 기요다카(黑田淸隆), 부대신에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수행원에 미야모토 고이치(宮本小一), 모리야마 시게루(森山茂) 등이었다. 이들 모두 근대 ...
2019-05-24 이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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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근현대사: 제12화]일본의 명치유신과 정한론의 전초전-운양호사건
조선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는 사이 일본 사회는 크게 변하고 있었다. 미국의 압력으로 1854년 개항을 하게 된 일본은 이후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프랑스 등과 조약을 체결하여 외부 세계에 문호를 활짝 열었다. 일본은 이와 같은 변화를 철종 재위 당시 조선에 통고한 바 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서양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연구 보다...
2019-05-07 이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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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원 논평]기미독립선언서에 담긴 자유와 국민주권 의식
○ 인류사는 국가와 개인의 주권 확립 과정 일본제국이 대한제국의 주권을 앗아간 지 근 10년이 되어 가던 1919년, 그해 한반도에서는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고종의 장례일에 즈음하여 펼쳐진 전국인의 3‧1독립만세운동이 그것이다. 거기에는 불교, 기독교, 천도교계 등이 종교와 지역을 넘어서서 협력하였고, 전국의 지식...
2019-03-01 이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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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근현대사: 제11화]고종의 ‘멘토’ 박규수와 ‘꿈나무’ 박영효
[고종의 멘토 박규수] 고종 즉위 후 고종에게 직간접으로 큰 영향을 미친 왕실 외의 인물은 누구일까. 고종이 ‘제왕수업’을 할 당시로부터 직접 정사를 챙기기 시작한 이후 개항 관련 정책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관료는 다름 아닌 환재(瓛齋) 박규수(1807~1876)로 생각된다. 박규수는 1921년 3월 31일 민영환, 신응조, 이돈우 등과 함께 고종...
2019-02-24 이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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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근현대사: 제10화] 미군 함상의 수자기(帥字旗)와 조선의 척화비
[돌아온 광성보의 수자기]한국근대사 관련 사진 자료집을 대하다 보면, 파괴된 진지 위에 성조기(星條旗)와 함께 열을 지어 선 미국 해군의 사진을 보게 된다. 성조기란 미국의 여러 주를 상징하는 만큼의 별이 여러 줄로 장식된 문양을 한 깃발이라 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다른 한편 함상에서 수(帥)란 글자가 쓰인 대형 깃발, 즉 수자기...
2019-02-18 이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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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근현대사: 제9화] 조선과 미국이 처음으로 마주쳤을 때-제너럴 셔먼호 사건
[한미관계의 출발과 현재] 한국과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외교관계를 맺은 것은 1882년이다. 당시 고종은 미국과의 수호조약 체결을 고대하였고, 미국 측의 사절 파견 소식에 뛸 듯이 기뻐하였다. 고종은 청일전쟁 직후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서 아관파천을 하여 러시아를 택했다 하여 친러파라고 하지만, 내막을 잘 모르는 주장이다. 친미, ...
2019-02-15 이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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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근현대사: 제7화] 나폴레옹 3세의 군대와 조선군의 싸움: 병인양요
[한강변의 절두산 성지와 조선을 탈출한 리델 신부] 서울 한강변의 88고속도로를 따라 김포공항 쪽으로 가다보면, 강 건너로 누에머리처럼 보이는 작은 봉우리가 보인다. 잠두봉(蠶頭峰)이라 불렸던 곳인데, 병인박해 이후 절두산(切頭山)으로도 불려왔다. 과거에는 누에머리처럼 불쑥 솟아 보였지만, 지금은 주변 환경이 변하고 공해도 심하...
2019-02-03 이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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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근현대사: 제6화] 조선의 천주교도 박해와 오페르트 굴총사건
[조선의 천주교도 박해]18세기말 천주교는 조선에서 독자적으로 교회를 설립하는 등 발전을 보게 되었지만, 조선 정부로부터 혹독한 박해를 받기도 하였다. 순조 원년, 즉 신유년의 박해(신유박해,1801), 헌종 5년, 즉 기해년의 박해(기해사옥,1839)가 그것이다. 그러나 철종조에는 안동김씨 세도가들도 천주교에 관대한 태도를 보였고, 그러한 ...
2019-01-29 이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