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면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결성된 광복회가 졸지에 정치투쟁단체로 오인될 만큼 시끄러운 단체로 변하고 있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김원웅이라는 회장은 국가주최의 광복절 기념식에서 개회사를 통해 친일파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를 부르는 것은 민족적 수치라고 주장,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작금에는 새로 임명된 독립기념관장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시대를 긍정한 뉴라이트적 사관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임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요구가 수락되지 않자 정부가 주최하는 광복절 행사 참여를 거부하고 별도의 광복절 행사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 사건은 광복회장이 대통령의 인사정책에 대해 반발하는 것인가, 몽니를 부리는 것인가, 아니면 전 근대적 표현으로 반역을 시도하는 것인가. 참으로 안타깝다.
2. 이승만 대통령의 친일 책임론
일제에 아부하거나 협력했던 친일파는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사라졌다. 1945년 12월 9일 인촌 김성수 선생을 비롯한 국내 애국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해외에서 독립운동하다가 귀국한 애국지사들을 환영하는 만찬 행사가 서울 국일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국내파와 해외파 간에 친일문제를 놓고 고성이 오가는 설전이 벌어졌다. 이때 이승만 박사가 분연히 일어나 좌중을 보면서 “총 한 방 쏘지 않고 나라를 일본에 내준 조선국왕이야말로 2천만이 친일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나라를 만든 장본인이고 책임을 져야 할 자인데 왜 국왕을 잘못 만나 36년간 일본에게 종노릇 한 것만 해도 서러운데 해방된 조국에서 국내파와 해외파 간에 친일 책임을 놓고 논변을 벌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냐”고 물으면서 “우리 모두 힘을 뭉쳐 다시금 종의 멍에를 쓰지 않을 새 국가 건설에 함께 힘쓰자”고 호소, 좌중을 진정시켰다. 지극히 옳은 말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이 땅에서는 더이상 일본에 충성하거나 빌붙을 한국인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제 한일 양국간의 국력차이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전 세계를 무대로 대등한 지위에서 경쟁하는 관계다. 일본은 한국을 억압하거나 한국인을 강제징용하거나 한국을 고문하거나 수탈하거나 자유를 짓밟을 능력도 의사도 있을 수 없다. 과거의 잘못된 일본군국주의는 동경 전범재판에서 처단되었으며 지금의 일본인은 과거에서 벗어난 새 일본인들이다.
3. 광복회의 뉴라이트 판별기준
광복회는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을 뉴라이트 사관을 가진 자로 규정, 해임을 요구하면서 그들이 뉴라이트로 판별하는 인물에 적용할 9개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9개항목의 뉴라이트 판별기준은 내용으로 살펴보면 한마디로 코메디거나 새로운 '친일파 만들기'다.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대통령이라 부르는 자나 1948년 건국론을 말하는 자는 뉴라이트란다. 시점상 일제 식민지배시대가 있었음을 인정했기 때문에 뉴라이트=친일파란다. 이런 주장을 펴는 광복회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이땅에서 5천년간 살아오다가 영토와 인민은 그대로인데 일본에게 주권만 빼앗긴 상태였다면서 우리는 기미독립만세운동으로 1919년 상해임시정부를 출범시켜 대한제국을 대한민국으로 새롭게 건국했기 때문에 국적은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고 그래서 올해가 대한민국 건국 105년이라는 것이다.
이런 허황한 소리도 곱게 보면 희망론적(wishful)사관이라거나 상상적 사관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헛소리다. 1910년 한일합병이후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변했으며 일본의 무단통치, 문화통치를 거치면서 내선일체를 강요당하고 심지어는 창씨 개명과 상용어를 일본어로 바꾸고 한글마저 말살당할 위기에 처했다. 국내 동포들이 이같이 고난의 심연에 빠졌을 때 임시정부는 무위의 방관자였고 국내동포들은 임시정부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광복회간부들도 해방전에 태어난 사람들의 원적을 떼보면 하나같이 일본국적이었을 것이다.
4. 임시정부의 존재논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조선의 식민지화를 막는데 실패한 망국 관료 배들과 한말 지식인들이 주축이 되어 기미 3.1독립만세운동을 계기로 대한제국의 복원을 바라는 복벽파(復辟派)들을 제압하고 중국의 상해에 수립되었다. 이것은 일부 망명인사들이 주도한 독립운동의 한 형태였으며 그 자체로서 정부이거나 정부기능을 수행할 수 없었다. 역사학자 韓詩俊이 지적한대로 시종 내분으로 굴러갔기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제사회의 어느 주권국가로부터도 승인을 받지못했다. 그 결과 1941년 12월 7일 임시정부 명의의 대일 선전포고도 연합국들이 무시했기 때문에 태평양 전쟁을 종결짓는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 당사자로서 참가할 자격도 얻지 못했던 것이다. 1919년 건국론은 하나의 희망론적 허구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상 한반도에서 태어난 최초의 국민의 국가는 국민의 자유, 평등, 비밀, 보통의 원칙이 적용된 자유총선거를 통해 국가 지도자들을 선출하고 이들이 헌법을 제정하고 이 헌법절차에 따라 국가원수를 선출함으로써 탄생한 대한민국뿐이다. 연합국의 대일전 승리로 일본이 패망함에 따라 3년간 미군정 통치를 받았고 유엔감시하의 자유총선거를 통해 태어난 정통 정부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 정부는 임시정부가 아니다. 영토, 인민, 주권을 가진 합법정부다. 5천년동안 한반도에 존재했던 정치체들은 한마디로 주권이 없는 백성의 나라였지만 국민이 주권자가 된 최초의 국가는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한 대한민국이다.
여기에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으로 부르고 대통령 기념관을 건립할 정당성이 있다. 광복절은 해방의 날과 국민국가를 탄생시킨 건국의 날과 일치한다. 이를 일치시키기 위해 헌법제정을 서두른 것은 이승만 박사였다. 그의 뜻대로 1948년 7월17일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8월 15일에 독립국가의 수립을 내외에 공포하였다. 뒤이어 12월12일 유엔소총회는 한반도에 수립된 합법정부로서 대한민국을 승인했다. 이것이 한국현대사의 진실이며 상해에서 성립된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한 방식일 뿐 건국도, 정부수립도 아니다.
5. 글을 마치면서
이제 광복회는 임정건국론이라는 희망론적 사관을 버리고 21세기의 현실에 맞는 사관위에 새롭게 세워져야 한다. 사관의 갱신이 필요하다. 이런 갱신없이 광복회가 존재하려면 일본은 항상 한국을 침략하거나 한국의 식민화를 도모하려는 국가여야 한다. 자국의 안보를 위해 인접국을 자국의 안전판이 되게 지배해야 한다는 일제의 전략가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류의 지배층은 이미 일본 역사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를 꿈꾸는 사고도 오늘의 일본에는 없다.
이제 한일 양국은 협력적 상호의존의 시대를 맞고 있다. 반일(反日)아닌 극일(克日)을 도모해야 할 때다. 세계는 바야흐로 민족주의가 번창하던 19세기말로부터 20세기 초반을 지나 AI를 앞세운 4차산업혁명이 추진되는 21세기에 도달했다, 경제적 국경은 무너졌고 교육이나 문화에서도 국경은 개념을 상실했다. 영토보다는 시장이 훨씬 더 중요한 시대다. 우리나라는 특히 안보 면의 지정학적 불리(不利)를 극복하기 위해 한미동맹도 중요하지만 인접국가로서 우리와 가치관념이 비슷(like-minded)한 일본과의 협력심화도 시대의 요청이다.
광복회는 독립혁명가들이 한 때 매달리거나 가정했던 희망론적 사관의 굴레에서 좀더 일찍 벗어났어야 했다. 뉴라이트론을 펴면서 "있지도 않은 친일파를 새로 만들어 내고 그들의 직책을 빼앗으려고 획책하는" 광복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시도 때도 없이 죽창가를 부르거나 토착왜구론을 퍼트리는 좌파분자들의 언동때문에 국민통합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는 상식있는 국민들이면 다 안다.
시대착오의 극치로 보이는 뉴라이트 판별기준 같은 코미디는 더이상 만들지 말라. 이제 피해자 입장에서 보는 일본관을 버리고 대등한 경쟁자거나 필요한 협력자로 일본을 활용하는 용일(用日)의 지혜가 요구된다. 광복회는 반일에서 극일로 그 존재이유를 바꿔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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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hytimes.kr/news/view.php?idx=19850제11대, 12대, 15대 국회의원
한중정치외교포럼 회장
전 한중문화협회 총재
전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
저서: 햇볕정책의 종언
한국통일문제의 현주소
용서와 화해의 정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