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사우디아라비아의 화려한 혁명, 줄줄이 좌초 위기]
석유로 벌어들이는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사우디아라비아가 돈 때문에 미래 계획들이 줄줄이 좌초 위기에 놓여 있다. 사우디는 그동안 국가 개조 사업인 ‘비전 2030’을 통해 사막에 신기루 같은 도시를 건설하려 했지만 유가가 떨어지면서 결국 꿈의 신도시 개발을 포함한 메가 프로젝트들이 전면 보류 또는 계획 철회 수순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영국 더터임스의 주말판인 선데이타임스는 15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2030년까지 왕국의 미래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수조 달러를 투자한 이 프로젝트들의 규모가 갑자기 축소되고 있다”면서 “실제로 지난 주 영국의 윌리엄 왕자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을 때,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막대한 지출을 줄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무성했었는데, 이 문제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더타임스는 이어 “연간 1,000억 달러가 넘는 석유 수입에 힘입어 2016년에 시작된 비전 2030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건설 붐을 일으켰는데, 여기에는 완전히 새로운 도시, 대학, 스포츠 경기장, 관광 리조트, 심지어 실제 눈이 깔린 스키장까지 건설하는 계획이 포함되었다”면서 “기가프로젝트로 알려진 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는 세계가 녹색 에너지로 전환하고 더 이상 사우디아라비아 석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 미래 수십 년을 대비하여 경제를 탄화수소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설계되었는데,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인구 3,200만 명(인구 조사에 따르면 63%가 30세 미만)을 위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여 고용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짚었다.
더타임스는 “하지만 비전 2030의 일부 프로젝트는 애물단지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면서 “그중 하나가 바로 MBS로 2021년에 직접 구상한 '더 라인(The Line)'이라는 프로젝트인데, 이 프로젝트는 폭 약 200미터, 높이 약 530미터에 달하는 초고층 빌딩으로, 약 169킬로미터에 걸쳐 뻗어 있으며, 외관 전체가 거울 유리로 덮여 있다”고 설명했다.
더타임스는 “기초 공사는 시작되었지만, 설계의 물리적 요구 사항으로 인해 예산이 1조 6천억 달러에서 4조 5천억 달러로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최근 몇 달 동안 '더 라인' 건설은 중단된 것으로 보이며, 지난주 장관들은 마침내 2030년 세계 엑스포와 2034년 FIFA 월드컵 개최라는 우선순위에 집중하기 위해 비전 2030 전체를 재검토하고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도 “사우디가 수도 리야드 한복판에 세우겠다던 거대 정육면체 건물 ‘무카브(Mukaab)’의 건설이 멈췄다”면서 “사우디는 그동안 국가 개조 사업인 ‘비전 2030’을 통해 사막에 신기루 같은 도시를 건설하려 했으나 결국 무카브 공사를 중단하고 재무적 타당성과 전략적 우선순위를 다시 따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무카브는 가로·세로·높이 400m 규모의 정육면체 형태로, 그 내부에 인공 지능(AI) 기반의 돔 디스플레이와 300m 높이의 지구라트(계단식 구조물)를 넣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 크기라면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20개가 들어갈 크기라는 점에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지만, 그러나 현재는 땅을 파는 초기 굴착 작업 이후 모든 공정이 멈춘 상태다.
이에 대해 부동산 컨설팅업체 나이트프랭크는 “무카브가 포함된 ‘뉴 무라바’ 개발 비용은 약 500억달러(약 73조원)로 추산된다”면서 “그런데 실제 발주된 금액은 1억 달러 수준에 그치며, 완공 목표도 당초 2030년에서 2040년으로 10년 늦춰졌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사우디 ‘비전 2030’의 상징이던 대형 사업들이 연달아 축소·연기·재설계 수순을 밟고 있다”면서 “네옴 프로젝트의 핵심인 선형 도시 ‘더 라인’은 170㎞ 구상을 대폭 줄여 재설계에 들어갔으며, 산악 리조트 ‘트로제나’에서 열릴 예정이던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도 무기한 연기했다”고 짚었다. 현지에서는 건설 지연과 예산 부족으로 2029년까지 완공이 어렵다는 게 지배적이었다. 현장 관계자는 “2029년까지 준비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주춤거리는 사우디, 유가 하락이 결정타]
문제는 사우디 국부의 원천인 유가가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우디를 덮친 저유가 기조는 사우디의 재정 형편을 아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재정균형 유가인 90~110달러에 크게 못 미치는 저유가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그래서 결국 메가 프로젝트의 ‘백트래킹(계획 철회)’을 공식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더타임스는 “유가 하락은 이러한 재검토의 주요 요인이었으며, 사우디아라비아가 과감한 프로젝트에 대한 국제 투자자들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실패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면서 “비전 2030은 2030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의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지난해에는 317억 달러에 그쳤으며, 또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 회원국들이 원유 생산량을 늘리기로 결정한 후 2025년에는 경제가 성장했지만, 올해는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산업외에도 다른 산업 부문의 성장세 역시 둔화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의 유가도 더욱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브렌트유 가격이 2024년 배럴당 81달러에서 2025년 68달러, 2026년 61달러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2026년 세계 석유 수요 증가폭이 둔화하고, 공급이 수요를 웃도는 잉여 상태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우디가 저유가 기조에 호응해 증산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자국 재정에 부담을 안긴 셈이다.
사우디의 몰락은 유가뿐 아니다. 인권 문제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꼽힌다. 이에 대해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중동 담당 수석 경제학자인 제임스 스완스턴은 “일부 서방 투자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평판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투자를 꺼리고 있다”면서 “2018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통치에 큰 그림자를 드리웠고, 인권 유린에 대한 지속적인 우려는 일부 서방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왕세자는 여성과 문화에 새로운 자유를 부여했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고 주장한다”면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최소 356명이 처형되었다”고 지적했다.
[사우디 국부펀드도 왕세자 프로젝트와 손절]
눈여겨볼 것은 사우디의 국부펀드까지 왕세자의 2030프로젝트와 손절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이터는 “국부펀드(PIF)가 2024년 말 기가 프로젝트 투자에 대한 80억 달러 규모의 자산 상각 이후 압박이 가중됨에 따라 단기적으로 더 나은 수익을 약속하는 물류, 광업, 인공지능(AI) 및 기타 부문에 집중하기 위해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면서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비전 2030의 여러 메가 프로젝트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이어 “실제로 비전 2030의 재정 엔진인 국부펀드 PIF(약 9250억 달러 규모)도 방향을 틀고 있는데,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사실상 1인 지배하는 PIF는 2024년 말 네옴 등 기가프로젝트에서 80억 달러 규모 손실을 상각했다”면서 “이후 물류·인공지능(AI)·광업 등 수익성 높은 분야로 투자 우선순위를 옮기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무함마드 알자단 재무장관은 지난해 12월 “우선순위에 따라 조정·연기·취소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프로젝트 재조정을 공식화한 것이다.
사우디 경제부 장관 파이살 알 이브라힘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매우 투명하다. 특정 프로젝트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프로젝트를 변경하거나, 연기하거나, 범위를 재조정해야 했던 이유를 밝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는 이어 “지난 1월, 사우디아라비아는 트로예나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2029년 동계 아시아 올림픽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면서 “트로예나 역시 네옴 프로젝트(NEOM)의 일환으로 추진되어 이미 여러 차례 지연을 겪은 바 있다”고 짚었다.
이렇게 미래를 바꿀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야심은 사실상 완전히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좌절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계산조차 안된다는 점이다. 이는 또한 사우디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동 전체의 세력 약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정세 또한 요동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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