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시진핑 군권장악 일등공신' 쉬치량 돌연 사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 이후 군권을 장악하는 데 있어 일등공신이면서 사실상 시진핑의 20년 지기이자 최측근인 쉬치량(許其亮)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2일 돌연 사망했다. 문제는 사망원인이 석연치 않은데다 시진핑 주석이 최근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시기에 벌어졌다는 점에서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홍콩의 성도일보(Sing Tao Daily)는 2일 오후 늦게 “베이징 고위 언론인 마링(馬玲)이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을 통해 쉬치량이 아침 일찍 달리기를 하다 돌연 심근경색을 일으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현지시간 이날 낮 12시 12분께 숨졌다고 전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올해 75세로 1950년 3월 산둥성에서 태어난 쉬치량은 1966년 7월 인민해방군 공군에 입대하고 이듬해 7월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1969년 공군 제5항공학교를 졸업한 뒤 공군에서 장기복무했다.
그리고 2004년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 2007년 공군 사령원(사령관)을 거친 그는 공군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2012년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승진했으며, 특히 2017년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재선임됐을 때 시 주석 다음으로 군권 서열 2위에 올랐다. 그만큼 시진핑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었고 군부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눈여겨볼 점은 쉬치량이 시진핑을 위해 군부에서 맡은 역할이다. 사실 시진핑은 주석 취임 초기, 군부와는 별 인연이 없었다. 그런데 중국의 체제 특성상 군부를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다면 그 권력의 유지를 장담할 수가 없다. 마오쩌둥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던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런데 군부에서의 시진핑의 입지를 확실하게 만들어 준 이가 바로 쉬치량이다. 그는 지난 2012년 시진핑이 공산당의 총서기로 진출한 이후 군권을 장악하고 기존 세력을 일소하는데 단단히 한몫을 했다. 쉬치량이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은 시진핑과의 인연이 그만큼 깊기 때문이다.
쉬치량은 1988∼1993년 푸젠(福建)성 성도인 푸저우(福州)에서 근무하는 동안 푸저우 당서기를 지낸 시 주석과 인연을 맺었다. 이 기간 두 사람은 가족이나 다름없는 친분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오늘날의 시진핑을 있게 만들었던 쉬치량이 돌연 사망을 한 것이다.
[의혹 투성이인 쉬치량의 돌연사]
신화통신이 쉬치량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뛰어난 당원이자, 오래 검증된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투사, 프롤레타리아 군사전략가, 인민해방군의 뛰어난 지도자”라고 쓸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의 끝은 너무나도 허망했다.
이에 대해 성도일보는 “10년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지냈고 2023년 3월에야 사임했던 쉬치량은 올해 1월 27일 춘절 행사에도 참석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활기가 넘쳤다”면서 “그런 그가 돌연 사망한 것에 대해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대기원시보는 3일, “공식적인 사망 원인은 심근경색이지만 여러 정보원들은 전혀 다르게 보고하고 있다”면서 “최근 며칠동안 쉬치량은 군부의 시진핑 인맥 숙청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으며, 또 심지어 완전히 고립되고 차단까지 당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연유로 극심한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대기원시보는 그러면서 “쉬치량은 죽을만큼 겁에 질려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중국 관련 유명한 정치평론가인 야오첸은 3일, 쉬치량의 죽음과 관련해 “쉬치량은 조종사 출신으로 매우 건강하고 나이도 불과 75세에 불과한데 갑자기 사망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면서 “그가 5개월 전에 있었던 주하이 에어쇼에도 참석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했으며, 평소에 심각한 질병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최근에 벌어지는 군부의 숙청에 대해 두려워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야오첸은 이어 “리커창 전 총리도 심근경색으로 돌연사를 했다고 하는데 쉬치량도 같은 원인으로 사망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쉬치량의 타살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불거지는 허웨이둥의 사망설, 진실은 무엇인가?]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쉬치량의 사망 소식이 보도되면서 시진핑의 심복이었던 먀오화(苗花)와 허웨이둥(何偉東)의 행방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먀오화는 지난 5월 1일, 인민해방군의 기관지인 해방군보를 통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의원직에서 해임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5월말에는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먀오화 장군이 ‘심각한 규율 및 법률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고 공시까지 할 정도로 숙청이 공식화됐다.
그런데 역시 시진핑의 핵심 측근이고 먀오화의 부관을 지냈던 허웨이둥의 행방은 아직 묘연하다. 일각에서는 허웨이둥의 자살설까지 나온다. 이와 동시에 먀오화와 허웨이둥의 측근들 모두가 줄줄이 붙잡혀갔다는 소식도 들린다.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시진핑의 핵심 측근들이고 시진핑의 군부 인맥을 조성한 이들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민감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는 시기에 쉬치량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먀오화와 허웨이둥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추측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쉬치량, 먀오화, 허웨이둥은 모두 푸젠성에서 시진핑과 인연이 있었고, 세 사람 모두 난징 군구 출신이었다. 쉬치량이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재임하던 시절, 먀오화와 허웨이둥은 급속도로 승진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숙청은 곧바로 시진핑의 실각설과 연계된다는 것이 중국 소식통들의 한결같은 결론이다.
[2주 넘게 공식석상에서 사라진 시진핑]
이런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시진핑 주석이 2주 넘게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서 시진핑 주석이 외부에 얼굴을 내민 행사를 보도한 것은 지난 5월 21일자이다. 이날 인민일보는 시진핑 주석이 전날 아버지 시중쉰과의 중요한 인연이 있는 지역인 허난성의 뤄양(洛陽·낙양)의 베어링 공장을 찾은 소식을 1면에 대대적으로 실었다.

그런데 눈여겨볼 것은 뤄양이 바로 아버지 시중쉰이 마오쩌둥에 의해 반당분자로 몰린 역사가 서린 지역이라는 것이다. 1958년 마오는 영국과 미국을 넘어서겠다며 철강 생산을 독려하는 대약진 운동을 펼쳤다. 이로인해 농업은 뒤로 밀렸고 수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 이듬해 장시성 루산(廬山·여산)에서 정치국 확대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펑더화이가 마오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에 마오는 즉각 반격했지만, 당시 국무원 부총리였던 시중쉰은 펑더화이에 동조하며 침묵했다. 그로 인해 시중쉰도 얼마 뒤 반당집단으로 몰려, 1965년 12월 당의 명령에 의해 뤄양의 광산기계공장으로 하방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었고, 결국 1967년 1월 홍위병 무리가 몰려와 시중쉰을 시안으로 끌고 가 1년여를 조리돌렸다. 그리고 1968년 문혁 사인방은 시중쉰을 베이징으로 호송해 투옥했다. 7년여가 지난 1975년에야 베이징 감옥에서 풀려난 시중쉰은 부인과 함께 다시 뤄양의 내화 재료공장으로 하방됐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시진핑이 바로 아버지 시중쉰의 애환이 어린 뤄양을 방문한 이후 6월 3일까지 14일여 동안 공식석상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5월 월례 정치국회의도 개최 여부를 관영 매체가 보도하지 않았다.
실제로 인민일보를 쭉 살펴보면 이상한 일들이 눈에 띤다.
*인민일보 5월 22일자
-시진핑 관련 기사가 전혀 없다.
*인민일보 5월 23일자
-시진핑 주석이 마크롱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다는 소식은 있으나 공개 사진은 없었다.
*인민일보 5월 24일자
-사진핑 주석이 독일 메르츠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고 루마니아 대통령 당선자에게 축전을 보냈다고 했지만 관련 사진은 없었다.
-이날 보도 내용 가운데 특이한 것은 상무위원회가 열렸지만 리창 총리가 주재했다고 보도한 점이다.
*인민일보 5월 25일자
-시진핑 주석이 쩐득룽 베트남 전 주석 서거에 대해 조문 메시지를 보냈다는 소식이 실렸지만 동정 사진은 역시 없었다.
-특이한 것은 프라보워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지만 시진핑 주석이 만나지 않고 리창 총리가 대신 만났다는 사실이다.
*인민일보 5월 26일자
-시진핑 주석이 중국서부국제박람회에 축하 서신을 보냈다는 소식이 실려 있다.
-그리고 중국을 방문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시진핑이 아닌 리창 총리와 만나 회담을 했다는 소식이 실렸다. 이 역시 매우 이례적이다.
*인민일보 5월 27일자
-푸단대 개교 120주년을 맞아 시진핑 주석이 축하 서한을 발송했다는 소식이 실렸다.
-리창 총리가 말레이시아 안와르 아브라함 총리와 회동했다는 소식이 실렸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 예방 관련 내용은 전혀 없다. 이 역시 이례적이다.
*인민일보 5월 28일자
-시진핑 관련 아무런 기사가 없다.
*인민일보 5월 29일자
-시진핑 관련 아무런 기사가 없다.
*인민일보 5월 30일자
-시진핑 주석이 중국-라틴아메리카 포럼 4차 회의에 기조연설을 보냈지만 정작 시 주석은 참석하지 않았다.
*인민일보 5월 31일자
-시진핑 관련 아무런 기사가 없다.
*인민일보 6월 1일자
-시진핑 관련 아무런 기사가 없다.
*인민일보 6월 2일자
-시진핑 관련 아무런 기사가 없다.
*인민일보 6월 3일자
-시진핑 관련 아무런 기사가 없다.
[시진핑 주석, 301병원 입원설...지금 어디에 있나?]
이렇게 시진핑 주석이 공식석상에 얼굴을 비치지 않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지난해 8월에도 2주 넘게 잠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도 시 주석의 와병설이 불거졌다. 그때는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원로들에게 멍석말이를 당했다고 할 정도로 난도질을 당한 후라서 심리적 안정을 취하기 위해, 그리고 그때 당한 수모 때문에 일시 잠적했다는 소식도 있었고, 또 다른 쪽에서는 와병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시진핑 주석의 잠적 또는 칩거는 상황이 상당히 다르다. 시진핑은 사실상 실권을 이미 잃었다. 군부는 이미 장유샤를 비롯한 후진타오 세력에게 완전히 빼앗겼다. 특히 오는 8월 4중전회를 통해 시진핑 주석이 실각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 시중쉰이 당으로부터 반당분자로 몰리면서 감옥에 갇히고 하방까지 한 역사적 현장을 방문했다는 것은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혹시 자신도 아버지 시중쉰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세전쟁을 진화시키기 위해 시진핑 주석과 이번 주말경 통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시 주석은 그 기회를 통해 다시 공개석상에 얼굴을 드러낼지, 아니면 이번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통화만 하고 말지 그 이후가 기대된다.
이러한 시진핑의 행보와 관련해 시사평론가인 야오첸은 3일, “시진핑은 아픈 척하면서 몸을 숨겼고, 시진핑의 하수인들은 그를 따라 301병원에 줄줄이 입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야오첸은 지금 시진핑 주석이 와병을 핑계로 301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과연 그의 주장이 사실일까? 그리고 시진핑의 잠적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혹시 시진핑이 질병을 핑계로 거취를 결단하는 것은 아닐까? 이후 펼쳐질 드라마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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