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다이허 회의 마무리, 시진핑 3연임 굳혀]

중국의 명목상 최고의사결정기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름만 그런 것이고 실질적으로 중국 정치의 주요 현안과 정책 향방을 논하는 사실상 최고의 의사 결정은 매년 8월 중국 현직 지도자와 당 원로들이 비밀리에 모이는 허베이성의 휴양지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렇게 장쩌민과 후진타오를 비롯한 중국의 전·현직 수뇌부 150명에서 200여명이 참여하는 여름 비밀회동 '베이다이허회의'는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부터 이어져 온 중국의 관행이고 전통이었다.

그런데 올해 이 베이다이허 회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는 시진핑 주석의 권력 구도와 중국내 세력 재편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일단 지난 8월초부터 베이다이허 회의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 등이 바닷가 휴양지인 허베이(河北)성 베이다이허의 보안이 대폭 강화됐다고 보도한 것으로 볼 때 그렇게 추정된다는 것이다.

시 주석도 지난달 30일 베이징에서 열린 공산당 정치국 회의와 집단학습에 참석한 이후 최근까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시 주석을 제외한 공산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들의 동정 보도도 동시에 사라졌는데 이는 이들이 베이다이허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여겨진다. 다만 쑨춘란(孫春蘭) 국무원 부총리만 코로나 팬데믹과 홍수 문제로 베이징을 지키고 있다고 전해진다.

대체로 회의 기간은 2주일 정도 진행되는데 이때 최고 지도자는 ‘정치 선배’들의 조언과 쓴소리를 함께 듣는다. 이 회의는 모든 일정이 비밀에 부쳐진다.

그런데 올해의 베이다이허 회의가 마무리되었다는 소식들이 들려 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10일 신화통신의 시 주석 동정 보도를 시작으로 최고지도부 관련 기사가 나오고 있다”며 “올해도 (8월 초에) 베이다이허 회의가 열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시진핑 주석 등의 동정 보도가 나온다는 것은 베이징으로 복귀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베이다이허 회의’가 마무리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는 평소해보다 기간도 더 짧아보이고 베이다이허 회의 이후 흘러 나오는 소식들은 앞으로의 중국 관행이 상당히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줘 주목되고 있다.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무슨 논의들이 있었을까?]

베이다이허 회의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고 회의 내용도 공개되지 않아 서구세계에서는 ‘미스터리 비밀회의’로 불린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내용들로 추정해 볼 뿐이다.

올해는 내년 10월에 열릴 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시진핑 주석의 3연임 문제가 핵심 의제가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매체 둬웨이는 “시진핑의 임기 연장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고위층 인사 계획이 다뤄질 수 있어 이번 회의가 관심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오는 10월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 회의(19기 5중전회)에서 새로운 지도부 체제와 관련한 당 제도 개편이 논의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협의도 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연히 차기 정치국 상무위원과 그 밖의 주요 인사도 논의되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홍콩 언론과 일본의 닛케이는 지난 7월 27일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당서기, 후춘화(胡春華) 부총리, 리창(李强) 상하이시 당서기, 리시(李希) 광둥성 당서기 등이 차기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번 베이다이허에서는 이러한 인사 문제 외에도 미중 패권 대결과 코로나19 사태 대응, 경제 정상화 등도 다뤄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홍콩 매체들은 전했다.

[베이다이허회의 무력화한 시진핑]

그런데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실상 중국 최고의사결정 자리인 베이다이허 회의를 시진핑 주석이 무력화시킨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국가 의사 결정을 베이다이허 회의 같은 밀실 통치가 아니라 철저한 규칙에 의한 통치 개념으로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시진핑 주석 집권후 중국공산당에 수천개의 규칙·규정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공산당의 의사결정 과정을 개편해 왔다.

이와 관련해 지난 13일 SCMP는 중국 관영 인민일보의 보도를 인용해 시 주석이 집권한 2012년 제18차 당대회 이후 공산당에 도입된 대규모 규칙·규정 수를 공개하면서 규칙에 기반한 통치를 강조했다.

인민일보는 “3천615개의 규칙·규정 중 약 70%가 시 주석의 감독 하에 도입됐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 기사는 시 주석이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공산당이 향후 100년을 위한 통치를 이어가기 위해 굳건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밝힌 지 한 달 만에 나온 것이다.

그러면서 인민일보는 공산당이 세계에서 독특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시스템'을 확립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SCMP는 "시 주석이 당의 장기집권을 준비하기 위해 형식을 갖춘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고자 하며, 당원들을 위한 행동수칙의 성문화를 끈질기게 밀어붙이는 방침은 시 주석을 전임자들과 차별화시킨다"고 전문가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이라도 하듯 베이다이허 회의가 막 끝난 시점으로 보이는 지난 11일 관영 신화통신은 뜬금없이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 명의로 ‘법치정부 건설시행 강요(2021∼2025년)’를 발표했다.

중국 당정은 5년 단위 강요를 통해 새로 제정하거나 정비할 주요 법규 분야를 소개하는데, 이번에는 반독점과 국가안보 등에 힘을 실었다. 그런데 이 보도에서 특이한 점은 각급 당 위원회와 정부에 “시 주석의 사상을 철저히 연구하고 이해하라”고 주문했다는 점이다.

이는 이미 시진핑 주석의 3연임에 대해 베이다이허회의에서도 논란이 없었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대비하기 위해 2025년에 끝나는 국가 계획에 ‘시진핑 사상을 연구하라’고 요구했다는 의미다.

이렇게 이미 굳건한 시진핑 1인 체제가 굳어진 상황에서 구태여 당 원로들의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베이다이허 회의를 시진핑 주석이 달가워할 리 없고 그래서 기간도 줄인 것이며 더불어 베이다이허 회의의 성격도 국사를 논하는 자리가 아닌 원로들과의 교류장소 정도로 격하시켰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이는 중국 정치 전통의 대변화를 뜻한다.

SCMP는 이러한 흐름과 관련해 "공산당 내부 관계자들은 시 주석은 집권 후 지난 10년간 베이다이허 밀실 회의로부터 서서히 멀어져갔으며, 대신 규칙에 기반한 통치를 밀어붙여왔다고 말한다"면서 "이러한 접근은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 같은 소규모 회의에서 주요 결정을 해오던 관례의 입지를 좁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중국과학원대학의 셰마오쑹(謝茂松) 교수도 SCMP에 "수십년에 걸쳐 동지와 함께 싸워온 마오쩌둥과 덩샤오핑(鄧小平)은 서로를 잘 아는 동지와의 비공식 회의가 훨씬 입맛에 맞고, 효과적이라고 보지만 현재 지도부는 그런 역사가 없다"며 "당이 향후 100년을 통치하고자 한다면 의사결정 과정이 형식화될 필요가 있다"면서 베이다이허회의의 격하를 당연시했다.

그러면서 셰마오쑹 교수는 “그러한 당의 체계 구축 움직임은 시 주석의 유산이 될 것이며 그를 전임자인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과 차별화시킨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와는 다른 주장도 있다. 홍콩의 왕장위(王江雨) 성시대 교수는 SCMP에 “공산당의 규칙과 중국 국가법의 양립은 또다른 문제”라면서 "공산당이 중국의 가장 중요한 정치조직이고 모든 분야에서 나라를 이끌고 있지만, 그럼에도 중국 정치조직 내 한 부분이지 공산당이 국가 자체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의 내부 규칙은 국가법이 아니며 그것은 오직 당원에만 구속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당과 국가의 일체화를 꾀하는 시진핑 주석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한 것이다.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 공공정책학부의 알프레드 우 교수는 “시 주석이 규칙의 제정을 밀어붙이면서 당과 국가의 결속이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SCMP는 전했다.

우 교수는 이어 "중국공산당은 더 이상 당과 국가를 분리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그들은 심지어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제재에서 중국과 공산당을 분리해 접근하려 노력하고 있음에도 공산당의 전반적인 통제를 매우 공개적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시진핑 리스크는 더욱 커질 것]

베이다이허 회의에 대한 시진핑의 격하는 한마디로 그만큼 시진핑 주석의 권위에 대해 어느 누구도 도전할 수 없을 정도로 체제가 굳건하게 강화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당 원로들의 조언을 귀담아 들었지만 이젠 그러한 말들을 잔소리 정도로 치부하면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미 공산당과 국가는 일원화가 되었고, 공산당과 시진핑의 일원화 역시 거의 마무리된 시점에서 구태여 당 원로들의 조언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 시진핑 주석의 뜻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중국은 이미 ‘시진핑 마이웨이 체제’로 굳어졌고 이를 흔들 자는 아무도 없는 중국이 되어버렸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그러한 시진핑의 길에 방해가 되는 자들은 누구든지 가차없이 인적 청산을 해 버릴 것이기에 감히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문제는 그러한 시진핑의 마이웨이가 고스란히 시진핑 리스크로 투영된다는 점이다.

세계적 투자자이자 오픈소사이어티 회장인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시진핑 독재가 중국을 위협한다'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을 통해 "시진핑은 개방된 사회의 가장 위험한 적"이라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독재가 중국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소로스는 “시 주석이 장기 집권을 위해 지난 지도자들이 세운 후계 체제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소로스는 또한 “시 주석은 장기 집권을 위해 독재자로 변모했고, 관영 매체들은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그에게 충성 맹세를 하는 장면을 보도하고 있다”며 “결국 공산당을 ‘예스맨’으로 만들어 견제와 균형의 여지는 사라졌고, 그들은 현실이 어떻게 변하는지 말하는 것을 두려워해 일당 국가 중국의 미래를 위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로스는 이어 “중국이 핀테크·플랫폼·사교육 업계 등에 휘두른 규제 철퇴 역시 시진핑 자신에게 비판적인 재계 엘리트를 억누르기 위한 목적”이라고 비난했다. 조지 소로스가 중국의 시진핑 리스크를 대놓고 저격한 것이다.

중국의 시진핑 리스크를 더욱 확대시키는 것은 소위 ‘무결점 강박증’ 때문이다. 중국은 일단 불리하면 숨기고 본다. 그러면서 오히려 적반하장식으로 대응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전랑외교(늑대전사외교)다.

중국은 홍콩과 신장위구르자치구 인권 문제, 남중국해 영유권 등의 현안에서도 “내정에 간섭하면 보복한다”는 윽박지르기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도 이러한 전랑외교는 끊이질 않는다. 최근에는 한미군사훈련에 대해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자신들은 1만여명의 중러군사훈련도 하면서 우리더러 하지 말라고 하는 내정간섭을 한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태도는 ‘중국은 결점이 없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부터 기인한다. 중국 자신이 하는 일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남들이 그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공산당 집단 지도체제에서 시 주석 1인 지배체제로 바뀐 이후 더 심해졌다. 시진핑 독재체제가 굳어진 이후부터 중국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그것을 곧 시진핑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시 주석 체제에 흠집이 날 만한 문제는 아예 발생해선 안 된다는 기류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들이 시진핑 리스크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중국 내부에서는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렇게 비판적인 여론을 완전히 누른 상태에서 중국의 현재나 미래에 대해 과도한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오만으로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풍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거대한 풍선이 바로 시진핑 리스크이다. 그 시진핑 리스크로 인해 중국이 사소한 문제, 곧 바늘 하나로 풍선이 터져 버리듯 붕괴될 수도 있다는 전망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미국 전직 고위 당국자는 최근 공개된 ‘시 주석 교체론’ 보고서를 통해 “중국 공산당 다수가 시 주석 없는 중국을 선호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중국에서 곧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예상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망했다.

‘강하면 반드시 부러진다’는 격언이 지금 중국에게 딱 적용되는 말인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