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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의 영화 ‘모가디슈’의 퍼즐 맞추기 - 당시 소말리아 정부군은 왜 북한 대사관의 탈출을 도와주지 않았을까? - 주 소말리아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없어진 북한 암호해독책(난수책)의 행방… - 소말라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온 북한 외교관들의 운명은?
  • 기사등록 2021-08-09 22:17:51
  • 수정 2021-08-10 11: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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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보내온 것입니다. 영화 모가디슈를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에 개봉된 영화 ‘모가디슈’는 남북관계에서 실제 발생하였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 나오는 한신성 대사(본명 강신성 대사) 등 한국 외교관들은 내가 잘 모르지만 북측 외교관들의 절반은 본인이 북한 외무성 재직 당시 좀 알고 있는 분들이어서 영화가 실감 났다.


오늘 나는 북한 외무성에 재직하면서 파악했던 사실과 소회를 통해 영화 ‘모가디슈’에서 다 그리지 못했던 나머지 퍼즐을 좀 맞추어 볼까 한다.


[영화가 다 그리지 못했던 북한과 소말리아 관계]


소말리아 내전의 역사적 배경


원래 이전 소련과 북한 등 동구권은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하는 소말리아를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 소련과 북한 등 동구권은 시리아, 이라크, 남부 예멘, 소말리아로 이어지는 ‘전략 요충지’를 차지하고 서방의 원유수송로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 했다.


소말리아와의 관계 통해 ‘국내혁명에서는 하층통일, 세계혁명에서는 상층통일’ 이론 개발한 김일성


북한은 1970년대 초부터 소말리아를 ‘아프리카 자력갱생의 본보기 나라’로 만든다면서 엄청난 경제 군사적 지원을 하였다.


북한이 60년대 말부터 아프리카의 신생독립국들에 진출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북한이 중시하는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등과 가까운 소말리아를 매우 중시하고 70년대 초부터 소말리아에 연필, 공책, 성냥 등 중소형 생활필수품 공장들을 많이 지어주었다.


북한이 소말리아에 지어준 대부분의 공장들은 북한에 있는 공장들보다 더 현대적이었다.


그러나 북한 등 동구권 공산국가들의 경제 군사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는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지방에서 종족 싸움이 끊기지 않았다.


북한이 지어준 공장 등은 몇 년이 지나면 관리하지 않아 고철이 되곤 했다.


북한이 소말리아에 지워준 성냥공장이 몇 년 동안 관리 운영을 잘 하지 않아 돌아가지 않는다는 보고를 들은 김일성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도와주는데 바레 그놈이 무식하다”며 욕을 했다.


바레 대통령은 김일성 등 공산권 지도자들을 만나 사회주의혁명을 한다고 하였으나 국내에서는 봉건적 잔재인 종족 싸움이 계속 되었고 봉건적인 토지 소유 관계를 끝내기 위한 토지개혁 같은 사회적 혁명 과제들은 밀고 나가지 않았다.


겉으로는 사회주의혁명을 한다고 하면서 봉건적인 토지 소유 관계와 자본주의적인 생산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북한 등 공산권 국가들의 세계혁명이론에 맞지 않았다.


가령 북한 농업기술자들이 소말리아로 많이 파견 나갔는데 정부가 배정해주는 농장들에 나가 농업기술도 전수하고 해외에서 종자와 트랙터도 가져다 농사를 지어주고 보니 정부 관료들의 농장 아니면 같은 가문의 농장 즉 북한의 혁명 이론에 의하면 타도 대상인 지주들의 농장이었다.


혁명이 아니라 혁명의 타도 대상인 지주, 자본가 계급의 배를 불려 준다는 보고를 처음 받은 김일성은 좀 난처했다. 그러나 남북이 해외에서 비동맹국들을 놓고 치열한 외교전을 벌일 때 인지라 김일성은 ‘국내혁명에서는 하층 통일이 기본이나 세계혁명에서는 상층과의 통일이 기본’이라는 새로운 세계혁명이론을 개발해 냈다. 트로츠키의 혁명 이론과 맞지 않았다.


이러던 중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멩기스투를 지도자로 하는 군사 정변이 일어나고 에티오피아 지도부는 자기들의 국가건설 이념을 사회주의 건설로 정했다. 토지개혁 같은 사회 혁명 개혁도 단행했다.


처음 북한과 소련 등은 좀 혼란스러워 했다. 사실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는 이 지역에서 전통적인 경쟁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에티오피아를 지원한다는 것은 소말리아와의 관계 악화를 의미했다.


김일성이 가만 보니 에티오피아의 멩기스투가 소말리아 대통령 바레보다 공산주의 이념에 더 투철한 것 같았다.


이때 소말리아 대통령 바레는 동구권의 지원을 업고 에티오피아를 공격하여 국내에서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려 했다.


북한과 소련 등 동구권 나라들은 소말리아에 ‘갓 승리한 에티오피아 혁명을 보호해야 한다’며 바레의 에티오피아 군사 공격을 반대했다.


김일성 에티오피아 때문에 소말리아 방문 전격 취소


이듬해 1975년 김일성은 알제리, 모리타니, 소말리아를 방문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소말리아 바레 대통령은 김일성을 초청하여 자기의 위상도 보이고 향후 에티오피아 군사작전에서 필요한 지원도 받으려고 했다.


북한 외교부에서는 에티오피아냐 소말리아냐 하는 치열한 논전 끝에 김일성의 소말리아 방문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소련은 물론 쿠바의 카스트로도 김일성에게 소말리아에 가지 말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동구권 분위기는 에티오피아로 쏠려 있었고, 쿠바 소련 등에서 군사 교관들과 경제기술자들이 에티오피아에 밀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김일성의 소말리아 방문 취소 소식을 전해 들은 소말리아 대통령과 군부는 흥분했다.


김일성의 방문 취소는 결국 에티오피아로 쏠리는 동구권의 전략을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때 북한은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에서 ‘등거리 외교’를 벌인다.


‘한번 동지는 영원한 동지’라며 북한은 절대로 소말리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소말리아 지도부를 안심시켰다.


미국의 잘못된 신호가 소말리아로 하여금 에티오피아를 공격하게 만들었다.


한편 당시 에티오피아는 국내정세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소련과 북한 등의 냉랭해진 태도는 소말리아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소말리아는 조용히 미국의 문을 두드렸다.


미국은 소말리아의 침공이 취약한 에티오피아 정권에 결정적 타격을 주고, 내부 반대파의 봉기를 자극하여 멩기스투를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예측을 하고 지원을 약속한다.


마침내 시아드 바레는 1977년 7월 오가덴을 향한 진군 명령을 내렸고, 오가덴 전쟁(Ogaden War; 1977. 7. 12.~1978. 3. 15.) 이 일어난다.


소련과 쿠바 등은 대규모로 에티오피아를 지원했으나 미국은 소말리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


미국이나 소말리아가 기대했던 에티오피아 내부에서 소말리인의 호응이나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전쟁이 몇 달이 지나 소말리아군은 밀리기 시작하고 결국 패전했다.


이 전쟁에서 공산국가들 중 북한만 침묵을 지켰다.


전쟁 후 다른 공산권 나라들은 신속히 소말리아에서 철수했지만 북한은 소말리아에서 다급히 철수하지 않았다. 그러나 8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소말리아에 대한 북한의 지원은 점차 줄고 대신 에티오피아쪽으로 지원이 늘고 있었다.


당연히 소말리아가 눈치채고 항의했으나 북한은 그럴 리 없다고 뻗치면서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는 다 ‘조선의 동지’들이라고 한다.


소말리아는 북한이 자국에서는 군사교관단을 점차 철수하거나 교대시키지 않으면서 에티오피아에는 군사교관단, 발전소 건설 기술자들을 보내고 있다면서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북한은 그런 일 없다고 계속 잡아뗐다.


80년대 초부터 수백 명의 북한 장교집단이 에티오피아에 들어가 에티오피아군을 훈련시키고 무장시켰다. 그러나 소말리아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조건부는 있었다.



‘우리는 영원한 동지이다’로부터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로 변한 북한과 소말리아 관계,

새로운 동지를 찾는 소말리아


결국 80년대 초부터 소말리아와 북한의 관계는 소원해지기 시작하고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매우 냉랭해지기 시작한다.


동구권에서 냉대받은 소말리아는 서구권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하며 한국에도 접근해온다.


1967년에 북한과 수교하고 동지적 관계였던 소말리아는 결국 1987년 한국과 수교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북한이 소말리아에 항의했다.


당시 소말리아는 북한이 에티오피아에 대한 경제 군사적 관계를 끊으면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지 않겠다고 했으나 북한은 들어줄 수 없었다. 외교란 국익을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며 다시 남과 북은 서울올림픽을 놓고 세계 곳곳에서 충돌했다.


북한은 소말리아에 20여 년간의 ‘동지적 관계’를 고려하여 1988년 서울올림픽에 가지 말 것을 요구하나 오히려 소말리아는 에티오피아로 기운 북한을 보니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는 것 같다’로 답했다. 여기서 북한은 할 말을 잃는다.


이렇게 소말리아 내전이 본격화되기 전인 1988년과 1989년에 벌써 북한과 소말리아 관계는 상당히 소원해졌고 소말리아의 서울올림픽 참가에 대한 항의 표시로 북한 지원 인원들은 88년과 89년에 거의 다 다 소말리아에서 철수했다.


영화 ‘모가디슈’에서 현지 북한 대사관 외교관 가족들만 나오지만 내전이 커지기 전인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소말리아에 북한 인력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때 한국이 점점 소말리아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소말리아 내전의 기본 동기는 소련 등 동구권의 붕괴]


한편 80년대 말 소련에서는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정책으로 나라가 흔들리고 동구권에서 공산국가들이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사회주의 건설을 목표로 내세웠던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에서도 공산권의 지원을 받던 정부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내전으로 확대된다. 당시 소련이나 북한은 갑작스러운 혼란 때문에 소말리아나 에티오피아 같은 아프리카에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었고, 이런 틈을 이용하여 반군은 신속히 수도로 진격하여 결국 정권이 붕괴된다.


왜 소말리아 정부군은 북한 대사관을 보호하지 않았는가?

정말 북한은 반군에게 무기를 지원해 주었는가?


영화에서는 이러한 복잡했던 당시의 정치 외교적 상황을 단 한 가지 스토리로 정리한다. 바로 북한의 소말리아 반군 무기 지원설이다.


영화에서 북한 대사가 말하는 것처럼 북한이 반군에게 무기를 지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전투에서 정부군이 반군의 무기고를 점령하는 사건이 터지는데 여기서 상당 량의 북한 AK-47(자동보총) 이 나와 언론들이 떠들었다.


당연히 소말리아 당국이 북한에 따졌지만 북한의 답변은 북한이 소말리아군에 무상지원해 준 총이 수만 정인데 그 총이 지금 정부군에 있는지 확인해 보라였다. 사실 소말리아군이 에티오피아를 공격할 때 사용한 대부분 소총이 북한제였는데 이 전쟁에서 소말리아군의 3분의 1이 전멸당하고 소총은 주변 부락 주민들이 다 수거해갔다.


정부군의 무기가 반정부군에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간 셈이다.


그리고 다른 요인도 있다. 이때 북한은 상당 수량의 소총을 에티오피아에 지원했는데 소말리아와 앙숙 관계에 있던 에티오피아가 소말리아 반군에 지속적으로 지원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일단 북한의 소말리아 반군 지원설은 근거 없는 것으로 끝났지만 소말리아 당국은 매우 불쾌해하면서 북한이 소말리아의 서울올림픽 참가에 대한 반발로 반군에게 무기를 주지 않았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전이 격화되어 반군이 수도로 몰려오자 정부 관리들은 도망치고 행정은 무정부 상태에 빠져들어 어디에 도움을 요청할 데도 없었다.


그러나 영화에도 나오는 것처럼 아직 수도의 상당한 지역은 정부군이 통제하고 있었고 당연히 북한 대사는 친분 관계에 있던 정부군 지휘관들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군 등 소말리아 지도층은 이렇게 나라가 혼란 상태에 빠진 원인 등을 자기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지 않고 에티오피아를 지원해 준 북한 등 동구권에서 찾고 있었다. 북한에 대한 원망도 있어서 도움을 요청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갓 들어온 한국 대사관이 오히려 북한 대사관보다 더 일하기 쉬운 환경으로 이미 변하고 있던 때에 모가디슈에 반군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없어진 북한의 암호해독 책(난수책)의 행방은?]


없어진 난수책


영화에서는 보위부 파견원인 참사가 죽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당시 총에 맞아 죽은 북한 사람은 대사관 무전수이다.


북한은 1990년대 말까지 모든 대사관들에서 모스부호를 손으로 타전하는 무전기를 놓고 이를 다루는 전문 무전수가 있었다. 소말리아의 경우 소말리아에서 교신 시간에 불가리아 주재 대사관으로 무전을 보내면 불가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이 받아서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으로 보내고 모스크바에서 이를 다시 평양으로 무전을 보내는 방식이다.


무전수가 모스부호를 수동으로 송신하고 수신했다.


하루에 두 번 손 수신하는데 정전되는 상황을 예견하여 항상 발전기를 대기시켜 놓고 있다.


받은 암호문은 외교관 부인들이 암호코드 책(난수책)을 놓고 암호해독을 했다.


그가 총에 맞고서도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차를 안전한 곳인 이탈리아 대사관 정문 가까이로 몰고 간 것은 사실이다. 그의 시신도 이탈리아대사관 정원에 묻었다.


당시 사람이 옆에서 죽어나가는 것을 본 북한 외교관들과 부인들, 자녀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남북의 모든 외교관들과 가족들이 울고불고하며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을 이탈리아대사관 정원에 묻은 다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중요한 가방 하나가 없었다.


바로 본국과 교신할 때 쓰는 암호 풀이 변신 암호책(난수책)이었다.


원래 규정에 의하면 대사와 변신원, 보위원 3자가 입회하여 소각하게 되어 있었으나 급히 대사관을 탈출하다 보니 소각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물론 영화에서는 북한 대사관이 문건들을 다 태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왜 일부러 이런 장면을 넣었는지 혹시 영화 감독이 난수책의 운명을 알고 이런 장면을 넣었는지 궁금하다.


한국 외교관 등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생긴 가방을 못 봤느냐고 물어보니 다들 못 받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언제 짐에 신경을 쓸 여유가 있었겠는가?


북한 대사 김용수는 사람이 죽었다는 슬픔보다 북한에 돌아가면 처벌을 면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한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 나오듯 24시간마다 변하는 해독 불가 암호를 풀어 영국은 1400만 명의 생명을 구한다.


미국이 태평양전쟁에서 전쟁의 행방을 바꾸어 놓았던 미드웨이 대해전에서 일본 항공모함 4척을 침몰시킬 수 있었던 원인은 일본군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군과 해외 공관처럼 본부와 떨어져 있는 단위들에게 있어서 통신암호는 목숨보다 귀중하다.


그런데 북한은 매우 특이한 암호제작법을 가지고 있다.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항일빨치산식 암호해독방법’이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정해진 서적을 암호해독재료로 이용한다.


암호해독을 이중, 삼중, 더러는 사중으로 하고 있어 난수책이 없이는 암호해독이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은 난수책으로 하지 않고 다 프로그램으로 디지털화 되어 있다.


2019년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이 침입당했다. 침입자들은 대사관에서 PC와 노트북, 기타 IT 관련 장비를 챙겨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침입자들이 가져간 PC가 암호해독용 PC라면 북한으로서는 엄청난 타격이 된다.


변신용 컴퓨터란 평양과 해외 주재 북한 외교관 등이 주고받는 전보의 암호를 해독하는 장비를 말한다.


모가디슈에서 탈출이 벌어질 당시에는 수동으로 암호해독을 했는데 이처럼 중요한 난수책이 한국에 넘어갔다면 분실한 사람은 당연히 처벌감이다.


난수책의 행방은 어디로?


강신성 대사의 인터뷰는 물론 영화에서도 난수책에 대한 얘기는 없다.


만일 강신성 대사나 영화에서 나오는 안기부 요원이 그 책을 한국으로 가져왔다면 엄청난 포상금을 받았고 승진했을 텐데 모가디슈 탈출 후 언론 보도자료를 보면 국가로부터 크게 포상받았다는 내용이 없고 남북 합동 탈출기도 강신성 대사가 소말리아에서 귀국한 후 언론에 스스로 밝힌 내용이다.


만일 강신성 대사가 북한 난수책을 한국으로 몰래 가져 왔다면 언론 인터뷰에 자발적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당시 한국이 북한의 난수책을 손에 넣었다면 그 이후 유엔 가입을 둘러싼 북한의 외교 전략 전술을 환히 꿰뚫고 있었을 수도 있다.


당시 이탈리아 대사관 내부에 피난민들이 많았으므로 누가 가방이 탐나 숨겼을 수도 있다.


이탈리아대사관에서 북한 외교관들의 행처를 이탈리아든 미국이든 정보기관이 지켜보다가 사람들의 주의가 분산된 틈에 챙겼을 수도 있다.


북한 난수책의 운명은 어쩌면 영원한 비밀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난수책 분실과 북한 외교관들의 그 후 운명은


북한 대사는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난수책을 분실한 사실을 이실직고했다. 사실 그들끼리 소말리아에서 소각하고 출발했다고 미리 짜고 얘기하면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워낙 당시 김용수 대사는 고지식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보고했는데 김정일은 사람이 죽었는데 난수책 잃어버린 것이 무슨 대수냐, 나머지 사람들이 살아 돌아온 것만도 다행이라며 오히려 잘 대우해 주라고 했다.


처벌할 줄 알았는데 잘 대우해 주라니 모두들 ‘수령님, 지도자 동지 고맙습니다’하고 만세를 불렀다.


사망한 무전수의 아내는 외교부 대외통신관리국 문서원으로 입부했다.


북한에서는 외교관이 해외에 나가서 사망하면 순직으로 처리해 주고 부인이 희망하면 남편 직장에 넣어준다.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남편이 섰던 혁명초소에 안해(아내)가 선다’이다.


무전수의 자녀들은 혁명학원에 보내줬다.


김용수 대사는 귀국하자마자 난수책 분실로 비판 좀 받고 퇴직했다.


아직 그가 생존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영화에 다른 외교관 2명이 나오는데 그들은 이탈리아어를 하는 외교관들이다.


소말리아는 오랫동안 이탈리아의 통치를 받아 이탈리아어를 하는 관리들이 많았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모가디슈에서 탈출할 때 북한과 이탈리아는 외교관계가 없었다. 그래서 소말리아에서 나온 이탈리아어 전문 외교관들은 특별히 할 일이 없게 되었다.


소말리아 탈출기에 나오는 북한 외교관들 중 한 명은 1990년대 후반에 병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2000년 이탈리아가 북한과 외교관계를 설정한다. 그래서 그중 한 명이었던 최택산이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로 파견된다.


한국에서는 강신성 대사가 역사의 산 증인이라면 북한의 최택산 대사가 아직 남아 있는 산 증인이다.


그 후 최택산 대사는 퇴직하여 지금은 연금이 없이 힘들게 살고 있다고 한다.


최택산 대사가 ‘모가디슈’영화를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30년 전 남과 북은 모가디슈에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며 함께 탈출했다.


그 후 세상은 많이 변했으나 남북의 분열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모가디슈에서 처음으로 남북의 작은 ‘통일된 가정’을 이루었던 그들은 30년 후에는 아마 한반도가 통일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영화가 던진 질문에 대한 남북관계 해법은?]


이 영화는 30년 전 스토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남북관계와 관련한 팁을 계속 제시하고 있다.


영화에서 한국 대사는 “떼죽음을 당할 위기 속에서 남북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한민족끼리 합심해서 탈출작전을 펴 봅시다”라고 제의한다. 이에 북한 대사는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네까”라고 하면서도 어쨌든 한국 대사를 따라나선다.


서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남한 대사가 식량과 약품을 제공하여 북한 대사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남북 사이에 신뢰가 쌓여간다.


물론 밑에서는 강경파들의 반발도 있었으나 두 대사는 ‘톱다운 방식’으로 교통정리를 하면서 두 공관을 동반 탈출로 이끈다.


향후 남북의 두 정상이 내부의 반발을 눌러 놓으며 남북을 통일로 이끌고 나가는 모습을 보는 듯 하다. 역시 마중물은 식량과 보건 협력이었다.


돈이 적다고 대사관 보호를 포기하고 떠나는 소말리아 경찰은 앞으로 돈이 안되면 한국을 떠날 것 같은 미군처럼 보인다.


외부에서의 위협이 남북의 협력을 만들고 생존이라는 공통된 이해관계가 남북을 하나로 만든다는 이론이다.


영화에서는 우리 한반도의 가장 큰 위협은 북으로부터가 아니라 외부에 있고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체제와 이념을 초월한 순수 동포애에 기초한 우리 민족끼리 정신밖에 없는 것처럼 그리고 있다.


통일이라는 대명제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분단된 국가로 남은 우리 한민족이 이루어내야 할 최대 과제이자 숙원이다.


지금은 외부의 적이 아닌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어 정말 떼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남북이 합심해서 위기로부터 탈출할 작전을 어떻게 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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