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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6-09 22:10:30
  • 수정 2021-06-10 09: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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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 참석해 조 바이든 대통령 내외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뉴시스]


1. 들어가면서


지난 5월 22일 워싱턴에서 발표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그간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듯 탈미(脫美), 친중(親中)외교의 길을 걷는다고 비판받던 문재인 정부가 외교면에서 뜻밖에도 미국 입장에 바짝 다가선 내용의 정상회담 발표문을 내놓아 주변을 놀라게 하고 있다.


공동성명은 비록 외교수사(修辭)로 분식되었지만 그 핵심내용을 파헤쳐보면


⓵중국의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국제법 위반이다(헤이그 재판소판결)

⓶남중국해에 인공섬을 설치, 군사기지화하고 통행 자유를 간섭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⓷ 남중국해 및 여타 지역에서 평화와 안정,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상업 및 항행, 상공비행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④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4개의 중국조항에 한미정상이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상 4개 항은 그간 미국이 한국에 은밀히 협력을 구해온 것이지만 지난 3월 18일 한·미 외교·국방 장관 간의 4자 회담 때까지만 해도 대만 문제는커녕 북한의 비핵화란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공동성명은 문 정권의 기왕의 대미 기조를 크게 바꾸고 있다.


한미관계가 정상화되는 것 같다고 안도(安堵)하는 목소리도 들리는 반면 문 정권의 태도가 어찌 이렇게 달라졌을 가하고 의아해 하는 소리도 들린다. 무엇이 문정권의 태도를 이렇게 바꾸었을까.


2.문재인 정권의 변화 배경


문정권의 대중 정책이 바뀐 배경을 놓고 국내 학계에서는 2가지 설이 나온다. 첫째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살려보겠다는 문대통령의 집념설이다. 사실 판문점 선언은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휴지화되었고 싱가포르 선언도 하노이에서 김정은이 겪은 수모(受侮)때문에 망실(忘失)되었다.


그러나 자기 업적이어야 할 두 선언을 한미정상이 합의한 공동성명 속에 살려 넣음으로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시켜보겠다는 것이 그의 집념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문 대통령의 뜻을 한미정상공동성명 속에 담아주는 대신에 미국의 중국조항을 한국이 수용토록 했다는 설이다.


둘째는 대통령 임기말 징후(Symptom)설이다. 임기 말이 되면 대통령들의 만각(晩覺)의 결과인지 처음의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다. 반미(反美)를 공공연히 외치던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말에 친미(親美)로 돌아선 것이 그 예라고 한다.


그러나 노무현은 대통령이 될 때 주사파들의 지원은 받았지만 그는 재임중 대통령으로서 고도의 자율성을 누렸다. 그러나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처럼 자율성을 누리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아 보인다. 국내의 이러한 시각과는 달리 미·중 관계를 악화시킨 국제정치적 요인에 보다 큰 무게를 두는 견해도 있다. 이하 국제정치적 요인을 살펴보기로 한다.


3. 2018년과 중국의 붉은 ‘제국’화


2018년을 전후해서 중국에서 일어난 세 가지 중요한 국제정치적 사건들은 미·중 관계를 악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중국의 모습을 “붉은 제국”으로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전 세계의 관심을 끈 중국의 3대 사건은 아래와 같다.


⓵ 홍콩의 무리한 중공화(中共化)로 홍콩인들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하에서 누리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⓶ 신장위구르에서 100만인을 수용소에 몰아넣고 인권을 짓밟는 사태가 폭로되었다.


⓷ 시진핑이 연임제한을 철폐하고 종신집권을 추구하면서 SNS로 전체 인민을 감시하는 디지털 독제체제(Digital Dictatorship)를 확립, 중국을 모택동 시대보다 더한 “붉은 제국”으로 변형시킨다는 것이다.


그간 등소평(鄧小平)은 개혁개방을 통해 공산당 1당 독재는 유지하면서도 최고지도부 구성원의 연령을 제한하고 150여명의 핵심 당 간부들이 중심이 되어 차기 지도자를 격대지정(隔代指定:국가주석의 1차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서 차기 후계자를 당이 선출, 지정하는 제도.)의 선출방식을 통해 1인 독재화를 막아왔다. 이 방식은 서방의 기준에는 미흡했지만 그나마 시장경제와 더불어 민주의 불씨를 살리는 것 같아 서방세계는 이를 신중국의 매력으로 긍정했다.


그러나 시진핑은 이러한 매력을 없애고 중국을 다시 1인 독재 체제로 되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 세 가지 사건이 동시에 터짐으로써 시진핑 체제의 이미지는 악화되기 시작했고 변형되는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계심도 높아졌다. 결국 시진핑은 등소평의 도광양회(韜光養晦)중단과 연임제한 철폐로 중국을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중공(中共), 즉 붉은 제국으로 변형시켰다.


이를 계기로 미·중 관계는 가치관의 대립 때문에 갈등 양상은 무역갈등을 넘어 패권(覇權)경쟁으로 변모하였다. 결국 오늘의 세계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 EU, 일본 등 서방 진영과 권위주의와 당면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중국, 러시아, 이란으로 편이 갈렸다.


문 대통령은 이런 변화를 지켜보면서 해양세력의 대륙진출교두보가 됨으로써 국력 신장에 성공한 한국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견디면서 국가발전을 지속하려면 한미동맹에 굳게 서서 친미 서방 진영의 일원으로 남아야 한다는 국익계산에서 외교의 진로를 확립했다는 설이다. 이 관점이 희망론만이 아니기를 바란다.


4. 역사의 교훈과 한중관계의 전망


가.외교사의 교훈


한국외교사에서 중국만큼 우리에게 부담이 되어온 국가는 없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항상 컸다. 삼한(三韓)시대이래 900회를 넘는 중국침략의 역사는 제쳐 두고라도 한말(韓末)의 조선에 중국의 속국이라는 굴레를 씌워 내외정세변화에 적응하려는 모든 노력을 철저히 차단, 무력화시켜 끝내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도록 몰아간 이른바 청나라 감국대신(監國大臣) 위안스카이(袁世凱)의 폭정은 한중관계의 통절한 역사로 우리 기억에 생생히 남는다.


지구최약(地球最弱)의 청나라 군대 3천명을 용산(龍山)병영에 주둔시키고 조선의 내치외교를 청일전쟁에서 패할 때까지 10년 동안 마음대로 주무른 위안스카이의 유령은 아직도 한중외교의 주변에 어른거린다.(나는 만절필동(萬折必東)을 읊는 자들을 친중파로 본다.) 그 당시 한미동맹 같은 튼튼한 버팀목을 외교적으로 확보했다면 위안스카이의 횡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중국은 한중관계를 협력적 동반자 관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등 동반자개념을 앞세워 양국관계를 설명하지만 이런 관계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아는 한국 외교관은 없다. 왜냐하면 “동반자관계”의 해석권은 중국에만 있기 때문이다. 동반자 관계는 동맹과는 달리 자기에게 유리할 때만 내세우는 명분이고 실익이 없을 때는 아무 의미 없는 수식어일 뿐이다.


중국은 지구상의 국가들과 거의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으며 ‘협력적’, ‘건설적’, ‘전략적’ 같은 접두어만 바꾸어 쓴다. 지금 미국과도 전략적 동반자 관계다. 따라서 동반자 관계라는 사실에 한국이 크게 구애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과는 동반자 아닌 군사동맹 관계다. 물론 북·중 간에는 합동군사훈련도 없고 유엔안보리에서 중국은 북한제재에 찬표를 던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양국이 군사동맹국이라는 사실은 제3국의 대북정책에는 큰 영향을 미친다. 만일 양국 중 어느 일방이 동맹의 실효(失效)를 선언하면 20년의 시효가 만료되는 올해 북·중 동맹 관계는 끝난다. 이러한 조치가 없다면 중국은 법률상 한국에 우호적인 국가는 아니다.


시진핑이 2016년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에게 한국이 중국의 속방이었다고 말한 것도 한국에 대한 그들 속내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국이 아직도 한국을 속방아닌 주권국가로 대접하는 것은 지구최강인 미국의 군사동맹국이기 때문이다.


나. 안미경중(安美經中)은 끝났다.


강대국 간의 패권경쟁이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진 데 오늘날 미국과 중국은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거머쥘 패권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따라서 양국은 현시대의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핵심기술을 누가 선점하느냐를 놓고 심각한 경쟁을 벌일 뿐만 아니라 무역갈등도 거래단절(Decoupling)이라는 수단을 통해 진영 간 싸움으로 변하고 있다.


이 판국에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라는 구호가 설 자리는 없다. 핵무기보유국이라는 미·중 양국의 입장 때문에 군사대결만 잠재화 되었을 뿐 경제와 기술 분야에서의 경쟁은 그 절정을 향하여 치닫는데 안보영역과 경제영역을 분리하기는 쉽잖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에서 경제실리를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겠는가. 세계 최강의 미군 2만 8천 명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한 정부가 어떤 외교적 몸짓을 해도 중국은 한마디로 한국을 미국의 군사동맹국이라고 딱 잘라 말할 것이다.


최근 싱하이밍(邢海明)중국대사가 한미공동성명에 중국이라는 표현이 없다고 해서 그 내용에 담긴 반중적 흐름을 못 읽을 사람이 있겠느냐는 논평은 바로 정곡을 찌른다.


다. 우려와 바램


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후 “최상의 회담”이었고 “최선의 합의”였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외무장관은 중국 측을 상대로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바야흐로 한국은 중국을 향하여 우리의 입장과 처지에서 이번 한미정상 간 합의는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당당히 밝히고 이것이 앞으로 한국외교의 새로운 방향임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런 결연함 없이는 미·중 양국으로부터 오히려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아울러 한미 양측의 합의사항은 즉각 행동에 옮겨야 한다. “행동은 없고 말만 있다”는 NATO(No Action, Talk Only)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한가지 유념할 것은 중국이 한국의 지근(至近)거리에 있는 강국이라는 지정학적 현실을 감안, 양국협력의 거리와 온도를 적절히 조절하는 遠慮深謀가 요구될 것이다.


*필자 이영일 Why Times 고문 (제11,12,15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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