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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5-20 21: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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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희망교육연대 회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에서 학생인권종합계획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게 되는 씁쓸한 모습 중 하나는 학교에서 복도와 건물을 청소하시는 분들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이다. 그 분들께 인사하는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똑 같은 학생들이 교장 선생님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에겐 살갑게 인사하기도 한다.


가령 인사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기본 시각의 표현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은 유아적인 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매우 주관적인 동물이라서 자신이 대하는 상대가 자신이 볼 때 가치가 높은 사람인지 낮은 사람인지에 대해 머리 속에서 판단해서 그에 맞춰 행동하는 본능에 가까운 습성이 있다.


그런데 학교는 그러한 유아적이고 주관적인 본능에 보다 가까운 미성숙한 인격체가 보다 성숙한 인격체, 즉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격체로 발달해나가는 과정이 일어나는 곳이다.


즉 학교의 교육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과목 지식을 학습하는 것보다도, 인간에 대한 예의, 더 본질적으로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다른 인간들에 대해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사회를 살아나가게 될 것인지의 사고를 형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학생인권 신장과 관련된 많은 논의에는 사실 이러한 가장 중요한 철학적인 측면이 종종 간과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학생 인권과 교권이 대립하는 현실을 해소하기 위해 보다 많은 사회적, 교육적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지만,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은 한국 사회 문제의 축소판과 같다.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병리적인 모습이 학교 현실에서도 그대로 드러날 뿐이다. 한국 사회 병리의 핵심은 자기중심성을 극복한 보편적인 철학과 역사관이 실종된 사회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나중심의 사고, 우리 중심의 역사만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철학이 없는 사회다 보니, 사회 구성원 간에 나타나는 문제의 본질적 원인을 깊이 있게 고민하기 보다는, 편견과 오해에 둘러 싸여 서로 간에 극심한 스트레스와 상처를 주고 받는 사회가 되어 버린다.


즉 사회 자체가 유아적인 사회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타인의 가치를 피상적인 모습으로 평가하고 타인의 인격을 손쉽게 재판해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그 결과 사회 구성원들 내면에 존재론적 내상(內傷)이 일상화된 사회이기도 하다.


보편적인 인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나의 느낌과 감정', 나의 판단에 집착하는 유아적인 자기 중심성을 극복하고 모든 개인의 인격성이 자유롭게 보장되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서구 개인주의 철학의 핵심 관념이기도 하다.


한국사회는 조선시대 내내 유교 성리학적 원칙이 강조되는 가운데 상하 관계 중심의 인간 관계 속에서 지내왔다. 하지만 근래에는 이러한 보수주의적 권위에 기반한 수직적 인간관이 아닌, 물질주의적 이기심에 기반한 또 다른 수직적 인간관, 소위 갑을 관계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사회 현상이 팽배해져 가는 모습이다. 종교적 구심점도 없고, 전통적 가치관도 붕괴한 상황에서 영미식 개인주의적 철학도 경멸시 되는 상황이다 보니, 사회 구성원 사이에 배려와 겸손을 가져올 수 있는 철학적 바탕이 없다.


오직 남은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왜곡된 이해에서 초래된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모습과 사회주의적 시각의 확산으로 인해 초래된 갈등론적 사회 인식이다. 즉 나의 이해관계는 그 어떤 이유에서도 포기될 수 없고, 타인과의 갈등을 적절히 해소해 나가면서 이를 관철시키고자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한 가장 손쉬운 행위 전략, 주로 강자에게는 약하게 약자에게는 강하게 나가는 전략을 활용하는 것이 한국인의 사고에 보편적으로 자리잡아오고 있다.


그리고 이는 정확히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학생들은 무엇이 효과적인 행동 양식인지 사회적으로 매우 빠르게 습득한다. 이렇게 학생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추구하기 위해 어떻게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하는지를 익혀가는 과정에서 한 사회의 교육 방향은 지대한 역할을 한다.


한국 사회에서 기능하고 있는 거대한 하나의 교육 방향은 소위 민주 시민 교육이다. 민주주의적 가치를 내면에 가지는 시민의 양성. 명목은 그렇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민주주의개념을 분명히 정의내릴 수 없으며 민주주의적 가치라는 것에 대해 합의된 개념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사회 교과에서 가르쳐지는 민주시민 자질의 많은 요소들은 듣기 좋게 들리는 그럴 듯한 여러가지 태도 요소들을 보기 좋게 버무려 놓은 비빔밥 한 그릇에 가깝다. 가령 민주시민의 자질로 일컬어지는 합리성과 준법정신, 관용과 양보, 자율과 주체성 등의 여러 덕목들은 그저 근대 역사 속에 등장했던 수많은 사회적, 도덕적 명분의 집합체에 가깝다. 특히 최근 정부에서 이 비빔밥의 핵심 지향점은 다른 사람과 잘 소통하고 협동하고 공감하는 인간형을 추구하는 데에 있다.


인간은 목적을 지향하는 존재이다. 그러한 소통과 공감, 협동을 강조하는 교육 분위기에서 학생들은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즉 어떻게 주어진 사회적 관계 속에서 보다 많은 수의 친구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 그래서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를 터득해 나간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한 사람의 교사를 앞에 두고 있는 다수이다. 즉 민주주의 원리로 보자면 이들이 강자이며 교사가 약자이다. 물론 교사의 경우는 다수의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여러 권한과 권위가 주어진다. 하지만 결국 교실에서 다수의 학생 집단을 마주하는 교사는 외롭게 혼자서 학생들의 생활 지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교사에 대한 교육적 책무보다 학교 내 민주주의 원리가 더 강조된다면 교사도 어쩔 수 없이 다수 학생의 이해관계에 밀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만약 교사가 다수 학생들 사이에 공유된 (특정한 이유로 인한) 적대적인 감정에 대한 분위기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 학생과 교사 간의 갈등이 극적으로 치닫게 되는 경우도 간혹 일어난다.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는 비극적인 교권 침해 사례들은 대부분 학생 교사 관계에서 존재하는 편견과 오해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의 교육 행위를 위한 권한은 궁극적으로는 학생의 인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교사와 학생 간 관계가 편견과 오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철학적 사상, 가령 인간 사이의 상호 존중과 배려라는 서구 근대의 개인주의적 철학 등이 필요하다.


반면 역사성이 부재한, 철학적으로 공허한 교육 관념인 '민주시민 교육', 학생 인권 교육은 과연 그러한 학교 내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존중과 배려를 근본적으로 뿌리를 내리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개념인가에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이러한 민주시민 교육과 교실 민주화의 방향 속에서 점차 협력과 소통을 할 대상을 고르기 위해 타인의 가치를 매기고 자신을 지지해줄 동맹을 찾는 것에 기민한 인간으로 발전해 나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특히 보편적인 시민의 권리, 혹은 인간의 권리와 구별되는 학생의 인권이 별도로 강조되는 이유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교사로서 나는 교실 속에서 점차 다수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학생들의 전략적 움직임에 교육 행위를 위한 권한이 이상하게 대립되는 불편한 현실을 점점 더 자주 마주하게 된다.


간단히 말해 학생 인권의 강조 그리고 민주시민 교육의 강화는 이상주의적이고 정치이데올로기적인 철학에 바탕을 둔 정책으로서, 미성숙한 존재인 학생의 인격 성숙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학교와 교사를 떠밀어 왔다.


[배민, 서울 숭의여고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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