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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7-15 22:01:00
  • 수정 2022-10-09 1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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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인사하는 것도 시대 따라 변한다. 사오십년 전만 해도 어른들을 만나면 의례 인사는 “진지 잡수셨어요?”였다. 아침이건 낮이건, 끼니때가 한참 지났을지라도 만나면 하는 인사는 줄기차게 밥 먹었느냐였다. 어른들의 인사도 그랬다. “아침 먹었느냐?” “점심 먹었느냐?” 그만큼 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어려웠던 때였고, 그만큼 먹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런데 요즘 인사는 또 특이하다.


“요즘은 어떠세요, 많이 힘드시지요?” “자네도 어려움이 많다며?” 그만큼 다들 살기가 힘들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무엇이 그렇게 힘 드느냐고 하면 딱히 이래서라고 구체적으로 얘기도 못 하면서 입에서는 연신 ’힘들다‘가 쏟아진다.


어린 날 집 짓는 걸 구경하던 기억이 난다. 그중 내가 가장 신기해하고 재미있게 보았던 것은 목수가 나무나 돌에 먹줄을 ‘탁’ 하고 튕기는 것이었다. 손수 만든듯 한 거북 모양의 먹물통, 그 입에서는 실 끝에 못 같은 뾰족한 것이 달린 채 잡아당기면 먹물을 머금은 실이 나왔는데 내가 보기에 모든 집짓기는 그 먹줄 튕기기가 시작으로 보였다. 사실 우리 한옥 짓는 일에는 용어부터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마름질, 가심질, 바심질, 새김질, 굴림, 동바리 이음, 마구리 그리고 후리기 바데떼기 모접이 소매걷이쇠시리 등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이지만 왠지 우리 것이란 느낌이 확 드는 말들이고 그래서인지 처음 들어도 전혀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던 말들이었다. 내가 ‘그렝이질’이란 말에 호감이 간 것도 그런 연유에서일 것 같다.


그렝이질이야말로 집을 짓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렝이질이란 그레이자를 이용해서 기둥이나 재목이 놓일 곳의 높낮이에 맞게 그려내는 일을 말한다. ‘그레’란 기둥이나 재목 따위를 그 놓일 자리에 꼭 맞도록 따내기 위하여 바닥의 높낮이에 따라 그리는, 붓 노릇을 하는 물건인데 그레 곧 그레이자는 대개 목수가 자기 취향에 따라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우리 한옥을 보면 대개 주춧돌을 생긴 모습 그대로 놓고 거기에 맞춰 기둥밑동을 도려내어 밀착시킨 것들인데 돌의 생김새에 따라 그레질 칼로 기둥뿌리를 깎고 다듬어 돌에 맞추면 돌의 요철에 따라 기둥이 톱니처럼 서로 맞물린 듯이 되는 것이었다. 기둥과 주춧돌은 막중한 건물의 하중으로 인해 밀착되기 때문에 설혹 지진에 흔들린다하더라도 기둥의 요철에 따라 다시 제자리로 들어서게 된다. 이렇게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며 돌이나 나무를 그레로 그리고 파내는 것을 그레질이라 했다.


그런데 요즘 와서 문득 그때의 그렝이질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렝이질' 또는 '그레질'을 하려고 기둥뿌리를 오푼쯤 더 길게 한 부분을 그렝이발이라 하고, 그렝이발을 그렝이칼-그렝이질을 할 적에 쓰는 먹칼-로 그려서 없애는 것을 '그렝이질'이라 하는 것인데 우리 삶이 바로 그렝이질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란 여느 생명체보다도 욕심이 많은 존재이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 욕심을 덜어내야 하는데 오히려 더 욕심을 내게 되는 것 같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훨씬 좋아질 일도 그렇지 못해 마음을 상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식 건축처럼 우리 삶도 우리 식으로 그렇게 그렝이질을 하면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네모반듯한 주춧돌에 잘 다듬어진 기둥만을 쓰면 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정작 조금의 충격만 받아도 큰 위태로움을 겪을 수 있다. 바로 거기서 우리 선인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것이다. 많지도 않은 오푼 정도 그렝이발의 여유로움, 그 여유가 확보되면 그걸 주춧돌에 맞춰 그렝이질을 하게 된다. 뭔가 모르면서 그저 급해지고 쫓기는 것 같은 삶, 그래서 서두르게 되고 더욱 바쁘게 느껴지는 요즘 우리 삶에는 바로 그 그렝이발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삶의 여유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바쁘다고 하면서도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위해 적당히 시간을 낼 줄도 알고, 내가 조금 손해 보는 것 같더라도 선뜻 양보 하거나 포기할 줄 아는 마음이 얼마나 삶을 여유롭게 하던가. 우리 한옥을 보면 그런 여유로움에 대한 배려가 참 많다. 그것은 집짓기를 계획하면서부터 계산된 여유일 것이다. 자연석 주춧돌을 놓되 그렝이발에 멋지게 그렝이질을 하여 나오고 들어간 돌의 생김대로 거기에 맞춰 앉히는 절묘함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여유로움인가. 둘 다 번들거리게 잘라 깎아 맞닿게 했을 때의 낯선 섬뜩함과 차가움을 최대한 줄여 보인 우리만의 건축법, 우리만의 사랑법이 아닐까.


요즘 시대는 그저 깎기보다 잘라서 네모반듯하게 획일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것은 삭막함이다. 그렝이질을 하여 주춧돌과 기둥을 세우고 짓기 시작하는 집, 거기에 마름 가심 바심 새김질 등 고유한 우리 손놀림이 따라붙고, 거기다 굴림 동바리이음 마구리 후리기 바데떼기 모접이 소매걷이 쇠시리 등 우리만의 솜씨가 부려지면 살아갈수록 진가가 느껴지는 멋스럽고 맛스러운 우리 한옥 같은 삶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그렝이발은 보통 5푼쯤의 여유를 말한다. 곧 삶의 여유 5푼, 이 얼마나 절묘한 인생법이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인가. 그것은 내 마음에 누군가를 위하여 그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어느덧 일흔을 넘긴 나이가 되어버렸다.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모자랄 삶의 시간들이 이처럼 소리도 없이 지나고 있다. 아끼기보다 더 멋지고 유익하게 살아가야 할 생이 아닌가. 그러려면 내가 아닌 상대에 맞춰 나를 그렝이질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이란 내 삶의 주춧돌 위에 그렝이질 한 누군가의 기둥을 앉혀 사랑과 믿음으로 조화를 이룬다면 훨씬 안정되고 여유롭고 아름다운 우리들의 삶이 되지 않을까.


어디선가 ‘탁’하고 먹줄 튕기는 소리가 나는 것만 같다. 5푼의 여유를 삶의 그렝이발로 언제든 내놓을 수만 있다면 모두가 훨씬 행복해질 것 같다. 그것은 서로의 마음속에 마련된 누군가를 위한 마음의 자리가 될 테니 말이다. 밥 먹었느냐는 인사보다도 힘들지 않느냐는 인사보다도 마음을 나누는 인사를 하는 오푼의 여유, 마음의 자리가 마냥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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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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