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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이슈]두바이 공주가 BBC에 SOS 보낸 이유? - 두바이 궁전 욕실에서 SOS 보낸 두바이 공주 - 화려한 두바이, 이면에 숨겨진 처절한 여성의 삶 - 아랍 왕실 강타한 여섯 번째 부인의 반란
  • 기사등록 2021-02-19 21:19:25
  • 수정 2021-02-19 21: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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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궁전 욕실에서 SOS 보낸 두바이 공주]


영국의 BBC가 또다시 충격적인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을 내보내 온 유럽이 들썩거리고 있다. 영국 BBC 탐사 프로그램 파노라마팀이 2018년 2월 UAE 탈출에 실패했다가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 라티파(라티파 빈트 무함마드 알 막툼) 공주가 “나는 (아버지의) 인질”이라면서 직접 촬영한 여러 영상들을 16일(현지시간) 공개했기 때문이다.


▲ BBC를 통해 구명을 호소한 두바이 왕실의 라티파 공주 [사진=BBC 캡쳐]


그것도 두바이의 실질적인 최고 통치자의 딸이자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왕족 일원인 셰이카 라티파 공주가 아버지에 의해 감금돼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파문은 더 컸다.


라티파 공주의 아버지는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으로 UAE의 부통령이며 사실상 두바이의 최고 권력자이다. 1985년 생으로 올해 36세인 라티파 공주는 아버지인 ‘셰이크 알 막툼’의 25명 자녀중 한 명으로 그야말로 초호화 생활을 누릴만도 한데 지난 2018년 2월 “아버지가 내 자유를 억압한다”며 “차라리 햄버거 패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며 살겠다”고 미국으로 탈출하려다 실패한 바 있고, 이번에 또다시 공포에 사로잡혀 스스로 촬영한 동영상이 영국 BBC에 의해 공개되면서 화제의 중심 인물이 된 것이다.


라티파 공주는 “내가 유일하게 감시를 받지 않는 장소이기 때문”이라며 욕실로 추정되는 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낮은 목소리로 셀카 영상을 촬영한 것을 BBC를 통해 공개했는데, 이 영상에서 “지금 나는 감옥 궁전(jail mansion)에 갇혀 있다”며 “빌라 밖에는 경찰 5명, 안에는 여경 2명이 감시하고 있다. 창문은 잠겼고 공기를 쐬러 나가지도 못한다. ‘잘못하면 다신 태양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위협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라티파 공주는 초췌한 기색으로 “나는 의료진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혼자 갇혀 있다”면서 “매일 나의 안전과 삶을 걱정한다. 내가 언제까지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 영상이 유출된 경로도 극적이다. 이 영상은 브라질 전통무술 카포에이라를 가르쳐주던 핀란드인 친구 티나 자우하이넨이 보낸 것인데, 자우하이넨은 2018년 라티파 공주가 요트로 인도양을 거쳐 미국으로 탈출을 시도할 때도 동행했던 인물이다. 자우하이넨은 지난 탈출 실패 사건 이후 지속적으로 라티파 공주의 자유를 찾아줘야 한다며 유엔 등 인권 단체에 호소를 해왔다.


라티파 공주는 14세때인 지난 2002년에도 네 살 터울의 언니 샴사 공주가 영국으로 여행을 간 길에 경호원의 눈을 피해 잠적했으나 결국 붙잡혀 왔고, 이후 약물로 자신의 의지를 잃어버리게 된 것을 본 이후 16세 때 1차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해 3년 4개월 동안 구금된 바 있다, 그리고 2016년에도 또다시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촬영된 영상에서 지난 2018년 실패로 끝난 탈출 시도에 대해서도 그 배경을 자세하기 설명했다. 그는 자우하이넨의 도움으로 아라비아해를 건너 인도를 통해 미국으로 망명할 계획이었지만 탈출한 지 8일 만에 바다 한가운데서 UAE 특공대에 붙잡혔다.


라티파 공주는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요트에 갑자기 15명 이상의 특공대원들이 들이닥쳤고, 그 중 한 명이 내게 주사를 맞히려 했다”며 “내가 그의 팔뚝을 깨물고 거세게 저항하자 여러 명이 나를 붙잡고 주사를 놓았으며 나는 곧 비행기로 옮겨져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들것에 실려 두바이로 끌려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라티파 공주는 “아버지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감시한다”며 “내가 이동하는 시간과 장소, 먹는 것까지 모두 감시 받는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라티파 공주는 왜 탈출하려 했을까?]


두바이 왕실이면 당연히 화려한 생활에 모든 것을 다 누릴 것으로 생각하지만 라티파 공주는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라티파 공주에 의하면 자신은 의과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중학생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라티파는 두번째 탈출 직전 "여기선 운전도 못하고, 여행을 갈 수도 없다. 공부 등 정상 활동조차도 금지한다"라면서 답답함을 호소한 바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가 “명성을 위해선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라며 “대드는 아내와 삼촌은 사람을 시켜 죽이기도 했다”는 충격적인 폭로도 한 바 있다.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철저하게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는 의미다.


여기에 두바이 왕실에서 여자를 대하는 태도에 라티파 공주는 아마도 절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부인이면서 5남7녀를 낳은 ‘힌드 빈트 막툼 빈 주마 알 막툼’은 이슬람 국가에서 여자들이 남자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집 안의 별도 공간에 살거나 얼굴을 가리는 ‘퍼다’의 전통에 따라 그 존재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다른 부인 중에선 라티파 공주의 어머니인 후리아, 레바논 출신인 델릴라 알룰라(3녀 출산) 정도의 출신과 이름만 알려진 정도로 철저하게 외부 노출 자체가 막혀 있다. 그러다보니 여섯 명의 부인 가운데 얼굴이 공개된 사람은 영국으로 망명한 하야 공주뿐이다.


아마도 라티파 공주는 그러한 왕실 분위기에서 사느니 차라리 일반 시민으로서, 평범한 여인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 결국 탈출을 시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UAE 왕실, “그녀는 잘 보호받고 있다” 주장]


이러한 라티파 공주의 주장과는 달리 셰이크 알 막툼 측은 라티파 공주가 조울증을 앓고 있어서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라티파 공주를 감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UAE의 두바이 왕실을 바라보는 유럽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다. ‘셰이크 알 막툼’이 라티파 공주 뿐 아니라 하야 왕비에 이르기까지 여성인 가족의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국왕의 족쇄에서 벗어나려 한 가족은 라티파 공주만이 아니다. 라티파 공주의 언니인 샴사 공주도 2000년 영국에서 탈출하려다 붙잡혔으며 ‘셰이크 알 막툼’의 부인 중 한 명인 ‘하야 빈트 알 후세인’도 2019년 자녀 2명과 함께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러다보니 BBC의 방송 이후 여론은 완전히 라티파 공주 편에 서 있으며 여기에 라티파 공주의 친구인 자우하이넨이 영상을 유엔 등에도 넘겼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UAE의 두바이 왕실은 수세에 몰리고 있다. 자칫 여성 인권 문제로도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랍 왕실 강타한 여섯 번째 부인의 반란]


라티파 공주의 문제가 이렇게 전 유럽을 들썩이게 만든 것은 UAE의 두바이 왕실에서의 여자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 안해도 왕실의 여성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하고 있는데 그것도 초호화 왕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단어인 ‘탈출’이나, ‘망명’이니 하는 소리가 나오니 더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랍에미리트라 부르는 UAE는 7개 왕국의 연합국이지만 공화정 체제를 유지하는 독특한 국가다. 7개 왕국 통치자(에미르)로 구성된 최고연방회의에서 국가 원수인 연방대통령과 정부수반인 연방총리를 5년에 한 번씩 선출한다. 하지만 1971년 건국 이래 대통령은 ‘아부다비’의 에미르가, 총리(부통령 겸직)는 ‘두바이’의 에미르가 도맡아왔다.


아부다비가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전체 영토의 약 87%를 차지하고 전체 산유량의 95%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반면 두바이는 영토가 아부다비의 16분의 1밖에 안 되고 산유량도 미미하지만 중계무역과 금융허브로서 아부다비에 필적하는 부를 축적한 최대 인구 밀집지역이다.


그런데 바로 이 두바이를 통치하는 왕실이 ‘알 막툼’ 가문이고, 이 가문의 수장이 UAE 부통령이자 총리인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이다.


이 두바이 왕실에 지난 2019년 4월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여섯 명의 부인 가운데 가장 젊은 ‘하야 빈트 알 후세인’ 공주가 두 자녀를 데리고 영국으로 탈출해 런던 가정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 사건을 보도한 영국의 ‘더 타임스’는 하야 공주가 독일 외교관의 도움을 받아 3100만 파운드(약 456억 원)를 갖고 두바이를 빠져나와 런던으로 왔고, 런던의 중심부 켄싱턴궁 인근에 있는 자신 소유의 8500만 파운드(약 1250억 원)짜리 저택에 머물며 망명신청까지 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 하야 공주는 전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하야 공주가 모하메드와 결혼까지 했음에도 왕비가 아닌 공주로 불려지는 것은 후세인 전 요르단 국왕의 딸이면서 결혼 전부터 승마선수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할 정도로 수재인 하야 공주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승마선수로 요르단 국가대표로 출전했으며, 2006년 국제승마연맹 회장, 200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런데 하야 공주가 두바이를 탈출해 영국에서 이혼신청을 하게 된 것은 두바이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절연 선언만 해도 이혼이 성사되지만 아내가 요구하는 이혼이 성사되려면 법원에서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야 공주는 탈출 직후 남편의 위협으로부터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며 자신을 자녀들의 후견인 자격을 영국 법원에 신청했고, 지난해 3월 영국 웨일즈 가정법원은 하야 공주의 신청을 모두 받아들였다.


그런데 하야 공주의 영국 망명은 2018년에 발생했던 라티파 공주 탈출 및 납치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라티파 공주가 탈출을 시도하는 이유와 과정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하야 공주가 결국 두바이 왕실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 아닌가 짐작하는 것이다.


하야 공주의 이러한 심경은 하야공주가 영국 법원에 신청했던 자녀들의 후견인 자격 신청과 관련된 판결문에서 “라티파 공주가 당시 두바이 강제송환 과정에서 군인에게 ‘두바이에 있는 가족에게 보낼 바에야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했다’며 ‘그는 필사적으로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 위험한 길을 택할 준비를 했다고 설명했다”고 적시한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야 공주의 친지들도 하야 공주가 라티파 공주를 돌보는 과정에서 ‘당혹스러운 사실’이 드러났고, 하야 공주마저 위험에 빠지게 돼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화려한 두바이, 이면에 숨겨진 처절한 여성의 삶]


두바이는 화려하다. 특히 밤이면 ‘여기가 천국인가?’하고 놀랄 정도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화려한 치장 뒤에 왕실의 왕비와 공주까지도 처절하게 버려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여전히 UAE 여성들은 보수적인 아랍 법과 문화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하야공주의 영국 망명과 이혼 소송은 어쩌면 아랍국가들의 여성관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야공주의 이혼 소송은 이제 겨우 자녀들의 후견인 자격 신청과 관련된 부분만 결론이 났을 뿐이다. 그것도 이제 1심이다. 두바이 왕실이 항소를 했기 때문에 이제 2심으로 들어간다.


여기에 하야 공주가 신청한 이혼 소송은 아직 본격화되지도 않았다. 이미 유럽 사회에서는 이 소송이 ‘세기의 소송’에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파다하다. 하야 공주가 받게될 위자료 액수가 가히 천문학적 수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야 공주는 이에 대비해 남편과의 이혼 소송을 담당할 변호사로 1996년 영국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이혼 소송에서 찰스 왕세자 측 변호를 맡았던 피오나 섀클턴을 선임했다. 섀클턴 변호사는 사실상 영국 왕실 전담 변호사로 보면 된다. 2008년에는 비틀스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의 이혼 소송 변론도 맡은 거물이기도 하다.


이혼 소송이 본격화되면 두바이 왕실의 치부들이 얼마나 드러날지 모른다. 아마도 하야 공주가 원하는 수준의 위자료를 두바이 왕실이 지급하지 않는다면 폭로의 수준도 더 강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두바이 왕실에 엄청난 파고가 넘쳐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에 BBC가 방영한 라티파 공주 관련 다큐멘타리는 두바이 왕실을 뒤흔드는 출발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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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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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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