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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중국몽은 우리가 목숨 걸고 막아야 할 악몽” - “중국몽에 함께 하겠다? 중국 속국 되겠다는 의미” - 친중사대주의, 중국식 사회주의 따라가겠다는 발상 - ‘반미·친중’, 1980년대 NL 자주파의 ‘민족해방’ 이데올로기가 배경
  • 기사등록 2021-01-15 14:08:49
  • 수정 2021-01-15 1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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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사진=천영우 페이스북]


[새롭게 조명되는 천영우의 ‘독립문 건립 123주년 기념사’]


요즘 갑자기 SNS에서 천영우 (사)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독립문 건립 123주년 기념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


우선 지난해 11월 21일 오전 서울 독립문 앞에서는 독립문 건립 123주년 기념식에서 행했던 천영우 이사장의 기념사 주요 부분을 먼저 살펴 보자.


▲ 독립문 건립 123주년 기념식


“오늘날 독립문이 언제 왜 세워졌는지 모르거나 관심조차 없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독립이라고 하면 당연히 일본으로부터의 독립만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 독립문 바로 뒤에 있는 공원이 항일 독립투사들이 투옥되어 옥고를 치르던 서대문 형무소자리였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독립문은 123년전 일본이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서재필 선생이 세운 기념물입니다.”


“독립문이 세워졌던 자리에는 원래 중국의 칙사가 무악재를 넘어 오면 조선의 임금이 친히 나와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과 모화관(慕華館)이 있었습니다. ‘영은문’은 ‘은혜로운 중국 사신을 영접하는 문’이란 뜻이고 ‘모화관’은 ‘중국을 사모하는 여관’이란 뜻이죠. 이 근처에 칙사의 숙소인 태평관이 있었는데 칙사를 위한 환영연회는 궁궐에서 개최한 게 아니라 임금이 태평관까지 와서 베풀었습니다.”


“조선의 국왕보다 중국 칙사의 의전서열이 더 높았기 때문에 칙사를 함부로 궁궐에 오라 가라 할 수가 없었고 국왕이 칙사를 찾아와야 했었습니다.”


“중국의 사신이 와 있는 동안에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극진한 향응을 베풀고 돌아갈 때는 엄청난 선물을 안겨주었습니다. 칙사대접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칙사가 한번 다녀갈 때마다 국고의 절반이 날아갈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123년전 서재필 선생이 영은문과 모화관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운 것은 중국에 대한 사대와 굴종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근대적인 자주 독립국가로 거듭나려는 의지를 대내외에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왜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까요? 나라의 진로를 둘러싼 지도층의 분열, 국제정세에 대한 무지와 오판, 그리고 국왕의 무능이 합작해서 만든 비극입니다.”


“첫째, 지도층이 분열된 이유는 중국의 정치적 지배에서 해방된 이후에도 조선의 주류사회는 여전히 중국의 문화적 정신적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분열증세를 겪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념전쟁에서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한 개화파가 주자성리학적 세계관에 함몰된 수구세력에 이길 수 없었습니다. 화이질서(華夷秩序; 중국의 입장에서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 관계)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던 조선의 위정척사(衞正斥邪; 바른 것을 지키고 그릇된 것을 물리친다는 의미, 유교의 인륜대도를 구현한 중화문명을 섬기는 것))파들에게 중국은 문명이고 선(善)이었고 일본과 서양은 야만과 악(惡)을 대표하는 세력이었습니다.”


“개화의 원조가 일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조선 주류사회는 거부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이 좌절된 것도 그 때문이라고 봅니다. 조선의 위정척사파에 해당하는 일본의 ‘존왕양이(尊王攘夷;임금을 숭상하고 오랑캐를 물리침)파’는 ‘서양오랑캐’에 이기는 방법을 서구식 개혁에서 찾고 메이지 유신의 주체세력이 되었는데 조선의 위정척사파는 이렇듯 목숨 걸고 개화를 가로막는 수구세력이 되었습니다.”


“결국 반일 근본주의에 함몰된 나머지 자발적 개화와 자강의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일본의 침탈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한 건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조정과 사대부들이 세상 대세에 너무 어두웠습니다. 한반도에 이해관계를 가진 열강들이 가장 걱정한 것은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이 러시아의 위협에 가장 민감했지만 영국도 1885년에 거문도를 점령하고 1902년에는 영일동맹을 맺을 만큼 러시아의 남하정책를 저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미국과 중국도 러시아를 견제해야 한다는 데는 이해관계가 일치했습니다. 그런데 조선만 이러한 세계의 대세에 역행하여 러시아를 한반도에 끌어들이는데 앞장섰습니다. 조선은 일본뿐 아니라 영국, 미국 등 우리 편이 되어 줄 만한 강대국들을 모두 적으로 만드는 자해적 외교에 매달린 것입니다.”


“친러시아 정책의 주역이었던 민비가 일본에 살해 당한 후 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 한 것은 조선의 운명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든 결정적 패착이었습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내린 첫 번째 어명은 갑오개혁세력을 역적으로 몰아 효수를 명한 것이었습니다. 이로서 조선의 자발적 개혁의 희망은 사라지고 일본은 전쟁을 통해서라도 러시아를 한반도에서 몰아낼 결심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기 위한 을사늑약을 강요할 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에게 힘이 되어줄 만한 나라들을 모조리 돌아서게 만든 외교실패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조선이 실존적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의 군주는 너무 무능하고 무기력하고 우유부단 했습니다. 고종은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중심으로 한 개화파를 박해하고 망국을 자초한 우매한 군주였습니다.”


“그런데 독립문이 건립된 지 123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떤가요? 반일 근본주의와 친중 사대주의의 망령은 오히려 되살아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위협은 항상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추구하는 세력에서 왔습니다. 120여년전에 일본의 패권으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지키는 것이 지상 과제였듯이 앞으로는 중국의 패권적 횡포에서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 외교안보정책의 최대 숙제입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미국과의 동맹으로 주변 강대국의 위협과 침탈에서 대한민국을 지킬 새로운 길이 생겼습니다. 중국에 굴종하지 않고 당당히 중국의 압박과 위협에 대항할 수 있는 세상을 만났는데도 한미동맹을 활용할 생각을 못하고 굴종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3년전 한.중간에 ‘사드 3불합의’라는 것을 타결한 바 있습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5천만국민의 안위를 지킬 대한민국의 안보주권을 중국과의 흥정 대상으로 삼고 우리의 자위권을 제한당한 굴욕적인 합의였습니다. 중국의 경제보복을 무마하려고 한미동맹의 근간을 훼손한 것입니다. 3년전 당시 주중 한국대사(노영민)가 시진핑에게 신임장을 제정한 후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 중국의 황하가 길게 구부러져 흐르지만 결국 동쪽으로 빠진다)이란 문구를 썼다는 게 화제가 된 적도 있습니다. 만절필동은 재조지은(再造之恩; 거의 멸망하게 된 것을 구원하여 도와준 은혜)과 함께 선조가 임진왜란 때 조선을 구해준 명나라의 은혜에 감사하고 충성을 다짐하는 표현인데 이게 북한의 주중 대사가 아니라 주중 대한민국 대사가 썼다는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한국을 작은 나라로 묘사하면서 대한민국을 소한민국으로 폄하하고 중국몽에 한국도 함께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국몽은 한국이 목숨을 걸고 피해야 할 악몽입니다. 시진핑이 말하는 ‘위대한 중화민족의 꿈’은 중국이 지배하는 동아시아의 질서로 되돌아가자는 꿈입니다.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한국의 친중 굴종을 전제로 한 신형 조공관계로 돌아가자는 소리입니다.”


“독립문을 세운지 123년이 지났는데도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고, 괜히 주눅이 들고, 중국에 당당하게 할 말 하는 것을 불경스러운 일로 여기는 자세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한국인의 정신세계에서 40년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것은 뼈에 사무친 치욕으로 남아있는데 중국의 속국으로 5백년을 지낸 것은 억울해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속국 중에서도 중국을 잘 섬기는데 타의 모범이 된다는 의미로 중국이 조선을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게 조선에게 얼마나 모욕적인 표현인줄 모르고 중국의 칭찬으로 여기는 얼빠진 사람들도 아직 있습니다.”


“중국의 패권적 횡포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는데 미국과 일본을 활용할 바에는 차라리 중국의 속국으로 돌아가 굴종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낫다는 모화사상과 사대주의의 잔재에서 우리는 정말 자유로울까요? 일본과의 우호와 협력을 논하는 자는 무조건 토착왜구로 매도 하는 분위기를 보면 일본의 흔적이 보인다는 이유로 개화와 발전을 거부한 123년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독립문 건립 123주년 기념식’에서 나온 또다른 목소리들]


그날 ‘독립문 건립 123주년 기념식’에서는 대만의 인권활동가와 홍콩민주화운동가가 보낸 축하메시지도 있었다.


대만 인권활동가는 축하 메시지를 통해 “한국은 마치 중국 공산당의 식민지인 것 같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정치 단체들이 매우 친중화 되고 있다. 한국의 정치 단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중국 공산당과 협력하기를 원하는 듯 하다”고 꼬집었다.


대만 인권활동가는 이어 “공산당에 맞서기 위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홍콩 시위를 지원하는 법안 혹은 대만 관계법 제정을 제안했다. 그는 또 “한국은 중국공산당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면서 “중국의 공산당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지속적으로 침범할 것이며, 중국 공산당 정권은 절대 변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익명의 홍콩 민주화 운동가도 축사를 통해 “홍콩보안법은 홍콩에 굉장히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면서 “우리 홍콩사람들은 더 이상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없고 민주화의 길은 더욱 멀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과 대만 그리고 일본 등 여러 동아시아 국가가 연대하여 중공의 대외팽창과 제국주의에 대항하길 희망한다”면서 “중국공산당은 언제나 침투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당신들도 모르는 사이 당신들의 정치에 관여할거고 당신들의 자본을 침식시켜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몽에 함께 하겠다? 중국 속국 되겠다는 의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지난 2017년 베이징에서 “중국몽에 한국도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도 대통령은 중국몽이 갖는 의미조차도 몰랐기에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중국몽이란 시진핑 주석의 통치이념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개념은 팽창주의 중국, 제국주의 중국의 또다른 이름이고, 미국을 능가하는 패권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득담고 있는 ‘중화사상’을 밑자락에 깔고 있다.


그래서 시진핑은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될 때 “중화민국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 중화민족의 근대 이후 가장 위대한 꿈”이라면서 ‘중국몽’을 통치이념이자 국가적 목표로 제시한 것이다.


이런 개념에서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몽에 한국도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대한민국이 중국의 속국이 되기를 자처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그동안 우리의 우방이라기 보다 적국이었다. 과거 수많은 침략을 자행하며 우리 민중에 큰 피해를 입혔고 비교적 사이가 좋을 때도 우리를 속국 취급하며 조공을 강요했다.


그런 중국이 꿈꾸는 중국몽이란 주위의 모든 나라들을 중국이라는 깃발아래 두겠다는 것이고, 세계를 중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꿈을 꾸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과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중국의 팽창야욕에 제동을 거는 것이고, 더 이상 중국의 발호를 용납하지 않겠다면서 반중국 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완전한 역주행을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중국몽에 동참하겠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중국 사대주의에 빠져 있다. 그러면서 한미동맹은 거리를 둔다.


어쩌면 대통령이 ‘중국몽에 함께 하겠다’는 말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버리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따라가겠다는 속내를 그렇게 표현한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반미·친중’의 사상적 근저에는 1980년대 NL 자주파의 ‘민족해방’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당시 NL자주파는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쳤다. 그들은 북한과 손 잡고 ‘미제를 몰아내자’고 주장했었다. 그들에게 중국은 민족해방운동의 종주국과도 같았을 것이다. 당연히 그들로서는 중국과 한국이 ‘운명공동체’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의 친중사대주의는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을 포기하고 중국식 사회주의를 따라가겠다는 발상이나 다름없다.


현 정권의 주축세력들은 아직도 1980년대에 함몰되어 있다. 마치 386컴퓨터로 5G시대를 재단하려 하는 어리석음으로 가득하다는 의미다. 그렇게도 중국을 사대하면서도 중국의 본질을 그렇게도 모르는 집단이 대한민국이라는 항공기의 조종석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 이 시대가 조선 말기와 너무나도 유사하다”면서 “중국몽은 우리가 목숨 걸고 막아야 할 악몽”이라는 천영우 전 수석의 독립문 건립 123주년 기념사는 많은 울림을 던져 준다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동영상은 1월 16일 오전 8시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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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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