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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12 18: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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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대우, 국내와 해외의 행동이 다른 것은 국가권력의 맨얼굴과 품질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
-검찰, 국세청, 감사원 등의 표적 수사 등 국가권력은 기업 잘되게는 못해도 못되게 할 수는 있다
-한국의 고질병 갑질은 근원적으로 하청, 을, 중소기업, 소비자, 시장, 지방, 민의 힘 키워야 해결

고정관념은 실제 현실과 (과거 경험과 사실로부터 형성된) 인식의 괴리다. 거칠게 말하면 무지, 착각, 편견의 산물이다. 나이가 들면 이 괴리가 점점 더 심해진다. 이게 노인 증후군이다. x86세대의 재벌, 북한, 미국, 일본, 보수/진보에 대한 인식과 관념은 대체로 1980년대의 경험과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거듭거듭 확인한다.

 

인간은 원래 실사구시(사실확인), 근거, 논리에 입각해서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다. 직관이라는 이름의 편견, 느낌, 고정관념으로 먼저 판단을 하고, 사후적으로 근거와 논리를 가져다가 붙이는 존재다. 그래서 고정관념은 경천동지할 변화가 없는 한 대체로 벽에 똥칠할 때까지 간다.

 

나는 우리 사회 상식인들 상당수가 공유하는 고정 관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발언을 한 적이 꽤 많다. 2009년 쌍용차 사태, 2011년 희망버스, 2014년 쌍용차 2심판결, 2015년말 통진당 해산 인용, 2016년초 테러방지법 국회파행 등이다. 최저임금, 비정규직, 공공부문 정책도 고정 관념을 거스르기는 마찬가지다. 지금 논란이 되는 이재용 사건도 그렇다.

 

이 중 가장 크게 충돌하는 이슈가 테러방지법과 이재용 재판건이 아닐까 한다. 사실 내가 지역구를 뛰는 정치인이라면 이 두 이슈에 대해서는 침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첫번째 소명은 아무리 널리 퍼진 고정관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무지, 편견, 착각에 따른 것이라면,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 막는다면, 창으로 찌르고 칼을 휘두르는 것이다. 이게 내 운명이다.

 

참고로 테러방지법 푸닥거리에 열광, 광분했던 사람들은 그 귀추를 살펴보시길. 그 법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내가 이 문제 지적하니, 한 페친이 그건 박근혜 정권이어서 문제였단다. 문재인 정권이라면 그 법 그대로 둬도 아무런 문제 없단다. 세상에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없다.

 

한국에서 꽤 널리 퍼진 강고한 고정관념 중의 하나가 재벌과 보수 정권의 정경유착 프레임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대표되는 사법 불신은 법경 유착 프레임의 산물이다. 사법부의 시녀화도 오래된 프레임인데, 이건 이 정부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고정관념 내지 프레임은 다 역사적, 현실적 근거가 있다.

 

정경유착 프레임은 재벌의 독과식이 불평등, 양극화의 원인이고, 한국이 이 모양 이 꼴인 건 부패기득권 세력 내지 수구보수 냉전기득권(재벌 등) 세력을 민주/진보/노동/시민이 제대로 제압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재용/문형표/박근혜 사건을 뇌물과 특혜(경영권승계 지원)의 주고받기로, 판사의 판결 역시 법과 양심이 아닌 어떤 사악한 동기의 산물로 본다.

 

노무현의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발언을, 권력=재벌(그 대마왕이 삼성일 것이다)로 등치시킨다. 읽기에 꽤 능한 사람조차도 이 말을 “권력은 재벌로 넘어갔다”로 읽는다. 시장의 실체가 국가도 함부로 제어하지 못하는 글로벌 시장(산업•기업•소비자)과 선택 심판권을 행사하는 소비자라는 것을 망각한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분명히 경영권 승계 목적이 맞다. 시장의 보편 상식에 반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한국의 실정법에는 어긋나지 않는다. 법에 빈틈이 있었기에 영악한 삼성이 그 지점을 예리하게 찌르고 들어온 것이다. 국민연금이 거기에 동의한 것은 다른 대안이 사실상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삼성 그룹 자체를 포스코 같은 공기업이나 해외 투자자들이 소유하는 기업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몰라도… 장담컨대 이 점에 관한 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사실 이게 문제가 된 것은 박근혜가 당당하게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동의한 것은 다른 대안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물론 정권은 이 합병을 무산시킬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삼성에 엄청난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정부는 기업이 잘되게 할 능력은 없어도 안되게 할 능력은 있기 때문이다. 1960~80년대는 지대할당을 통해 재벌을 잘되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정경유착 프레임에는 1960~80년대 권력과 재벌의 관계가 자리하고 있다. 현실과 인식의 시간차가 크다.

 

문형표 판결 들먹이는 사람 많던데 두고 보라. 2심과 대법원에서 유지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애초부터 무리한 기소였다. 오히려 1심이야말로 (법과 양심에서 일탈한) 여론재판적 성격이 짙다. 두고 보자.

 

정형식 판사의 한명숙 판결은 대법원 전원합의부에서 몇 대 몇으로 되었는지 보라. 정형식이 적폐면 우리 대법원 전체가 적폐다. 정부도, 삼성도, 다른 재벌기업도 다 순결무구한 존재는 아니다. 법에 틈이 보이면 얼마든지 변칙, 편법을 저지르는 존재다. 그래서 미국에서의 삼성과 한국에서의 삼성과 후진국에서의 삼성이 다르다. 대우는 더 심했다.

 

삼성과 대우 등이 보이는 두 얼굴 세 얼굴은 이들이 원래 사악한 놈이어서가 아니라, 국가권력의 맨 얼굴 내지 품질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기업의 행태는 그 종속 변수다. 그런데 정권은 사기를 친다. 지들은 배트맨이고, 재벌은 악당이라고. 한국에서는 이런 사기가 잘 먹힌다.

 

LG는 권력자가 100을 뜯을려고 하면 100만 뜯기는 존재지만, 삼성은 이를 기회로 삼아 100원이 아니라 200원, 300원을 주면서 포획하려고 한다. 그래서 최순실과 정유라에게 공세적 서비스를 한 것이다. 그래서 무죄가 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뇌물과 대가(국민연금의 묵인, 방조, 협조)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 점은 정형식 판사의 판단이 옳다. 그러나 분명히 구린 데가 있다. 음험한 의도가 있다. 그래서 4가지가 유죄가 나온 것이다.

 

당연히 형을 때릴 때,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삼성의 위상, 비중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결과가 이번 판결이다. 거듭 얘기하지만, 이 판결은 사법 적폐가 아니다. 나름대로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이다. 그래서 나는 2심 판결을 존중한다. 대법원 판결도 두고 보시라.

 

동양철학자 임건순이 그랬다.

“강자들은 생각보다 선량햐고 약자들은 생각보다 비겁하고
우리편은 생각보다 개새끼고 적은 생각보다 양반이고.
선악의 경계는 흐릿하고 강자는 생각보다 착하고 약자는 생각보다 악하다.”

 

나도 패러디 좀 해야겠다.

 

1. 재벌은 생각보다 권력에 약하다. 한국의 국가권력은 재벌을 못살게 굴 수 있는 유•무형의 수단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2. 삼성은 매출과 이익의 90%를 해외에서 얻고, 또 빼어난 기술력에서 얻기에 정경유착으로 얻을 이익이 의외로 없다. 문제는 과거에 저질러 놓은 업보다. 또 삼성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재벌의 지배/지분 구조가 취약한 이유는 사실 재벌의 책임보다는 국가의 책임이 크다(이건 1970~80년대 국민주 어쩌구 하면서 주식소유 분산 정책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3. 만인이 지켜보는 재판에서 법과 양심을 거스르는 판결을 내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4. 다수의 정서(고정관념)에 반하는 판결을 내리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솔직히 만인의 정서에 영합하는 것이 훨씬 쉽다.

 

5. 우리는 국가권력이 가진 유•무형의 힘을 잘 모른다. 기업을 잘되게 하는 힘이 아니라 안되게 하는 힘이다. 검찰의 표적수사, 국세청의 표적조사, 감사원의 표적감사, 행정부처의 표적조사와 행정명령 등. 빠리바게트 5378명 직고용 명령 보지 않았나? 한국에서 국가권력의 힘을 모른다는 것은 실물을 모른다는 얘기다. 투자와 고용을 해 보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철이 없다는 얘기다.

 

6. 인간은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소수 음험한 힘센 악당(그 악당이 박근혜와 이재용일 것이다)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신은 면죄부를 받고 싶어한다. 이게 중세 마녀 사냥의 심리다. 출구 잃은 분노를 분출시키는 구멍이요, 표적이다. 1% 어쩌구 하는 재벌 성토 논리에는 지대의 성채 안에 살고 있는 상위 10~20%의 책임 전가/호도 심리가 작동한다.

 

7. 한국의 주력산업과 이를 갖고 있는 재벌은 중국의 일취월장에 생각보다 취약하다. 20년 전에 호들갑을 떤 ‘넛크래커 속에 든 호두’라는 말은 이제 비로소 실감이 난다. 주력산업과 재벌의 위기는 지배구조만 개선하면 만사형통인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 원-하청 공정거래질서만 바로 잡으면 중소기업이 눌린 스프링처럼 튀어오르지 않는다. 수출/재벌의 낙수 효과가 약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출/재벌이 무가치하다는 것은 아니다.

 

8. 한국의 격차/집중 불평등 양극화 불공정 담론은 분배구조만 조명하고 있다. 생산구조에서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는데 이를 듣지 못하고 있다.

 

9. 대한민국은 권력-시장/기업, 관-민, 중앙-지방, 원청-하청, 갑-을 관계의 힘의 격차가 너무나 크기에 갑질이 일상화 만연화되어 있다. 그래서 문재인이든 삼성이든 국회의원이든 지자체 6~7급이든 이들이 자행한 갑질에 대한 제보를 받으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올 것이다. 미투 운동하면 재밌을 것이다. 정말 천하의 악당으로 모는 것은 일도 아니다. 망치를 들면 모든 것이 못의 문제로 보인다고, 공정성 프레임으로 보면 모든 것이 갑의 문제로 보인다. 이게 이재용/박근혜 구속론과 수많은 국가규제론의 뿌리일 것이다.

 

갑질은 한국의 고질병이다. 근원적으로 하청, 을, 중소기업, 소비자, 시장, 지방, 민의 힘을 키워서 해결할 문제다. 국가의 규제, 단속, 처벌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10. 다수의 정서에 반하는 발언을 하면서 친자본/친재벌, 반노동, 반진보, 친새누리, 친노무현, 반문재인, 친안철수 소리 엄청 들어본 사람으로 말하는데, 의외로 사람들은 한 사람의 소신과 양심과 노선을 너무 쉽게 폄하한다. 살면서 보니 자신의 소신과 양심을 쉽게 꺽는 사람들이 남을 쉽게 폄하한다. 나는 내 소신과 양심을 쉽게 꺽지 않았기에 남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영혼을 팔았다는 비판은 잘 하지 않는다. 대체로 무지, 착각, 무개념, 단순무식 등 지성 프레임으로 비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정치를 유력 정치인/정당/진영에 줄서기, 굽신거리기, 무조건 옹호하기로 생각한다. 자신의 정치노선은 현실 정치인과 정치세력(진영)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 정도로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할지에 대한 연구 고민에 근거하여 비판하거나 반대하거나 지지한 경험도 강단도 별로 없으니 어쩌겠는가! 물론 이건 내가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 나는 기본적으로 흑묘백묘론이다. 임진왜란 당시 적의 수급을 베어오면 면천한다는 유성룡의 생각이 내 생각이다. 삼성은 누가 뭐라 해도, 임란 당시 이순신을 능가하는 전공을 가진 장수다. 대한민국 산업은 지금 임진왜란 위기 못지 않은 풍전등화 상태이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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