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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BTS 통해 재확인한 동북아 지형…부활한 '항미원조' - 이효리·BTS 발언에 중국 누리꾼·관영매체 발끈 - 북한·중국, 마오쩌둥 항미원조 정신 부활 노려
  • 기사등록 2020-11-29 11:58:41
  • 수정 2020-11-29 14: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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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22일 방송된 MBC TV 예능물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가수 이효리 (사진 = MBC)


6·25전쟁 70주년인 올해 들어 북한과 중국이 한층 더 밀착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6·25전쟁을 놓고 덕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친선 관계를 줄곧 과시했다. 이들이 이처럼 친선을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70년 전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해양 세력인 한국과 미국이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힘자랑을 하자 대륙 세력인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어깨를 겯고 맞서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압박을 이어가고 있으며, 중국은 미국과 대신 싸워주는 북한을 내심 응원하고 있다. 특히 남중국해 등지에서 미국의 노골적인 군사적 압박에 직면한 중국에게 어쩌면 6·25전쟁은 과거의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


이처럼 고조되던 긴장이 표면화된 것은 의외의 영역이었다. 정치와는 거리가 먼 대중문화계에서 한중 간 갈등이 촉발됐다. 6·25전쟁 당시 중공군을 참전시켜 오늘날 남북한 분단을 초래한 책임이 있는 중국 정치인 마오쩌둥(모택동)의 이름이 한국 인기 가수에 의해 거론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마오쩌둥이 뜬금없이 소환된 것은 지난 8월이었다. 인기 가수 이효리가 지난 8월22일 방송된 MBC '놀면 뭐하니'에서 그룹 환불원정대 속 예명을 고르던 중 "글로벌하게 중국 이름으로 짓자. 마오 어떠냐"고 말했다.


이효리의 언급은 파장을 일으켰다. 중국 누리꾼들은 마오라는 이름이 중국의 전 국가주석 마오쩌둥을 떠올리게 한다며 이를 장난스럽게 언급한 것은 '중국에 대한 모욕'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효리의 인스타그램에는 "오늘부터 내 한국 이름은 세종대왕" 등 비난 댓글이 쏟아졌다. 결국 이효리는 마오 대신 '천옥'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해야 했다.


마오쩌둥은 중국 건국(1949년)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동시에 그는 6·25전쟁 당시 미국의 의도가 중국 본토 침략에 있다고 판단해 참전을 결심했던 인물이다. 마오쩌둥에게 북한은 미국과의 육상 접촉을 피할 수 있는 전략적 완충지대에 있는 방패나 다름없었다. 북한이 패망하는 것을 내버려둘 경우 중국은 동쪽으로는 한반도, 남쪽으로는 대만에서 미국과 지속적으로 대립해야 했다.


마오쩌둥은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며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를 강조했다. 소련은 전세가 기울었다며 전쟁에서 발을 빼려 했지만 마오쩌둥은 참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항미원조는 전국 규모 대중운동과 연결돼있었다. 건국 후 1년이 채 안 된 신생국인 중국은 통치 기반을 확립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대대적이고 전국적인 대중운동이 필요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뒤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것처럼 마오쩌둥 역시 미국이라는 외부의 적을 부각시킴으로써 내부 반발을 잠재우려 했다.


국공내전으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중국군은 6·25전쟁 초기에 위력을 발휘했다. 압록강 근처까지 북상했던 미군은 게릴라전에 능숙한 중국군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1950년 10월28일부터 1951년 1월8일까지 3차례에 걸친 중국군 대공세는 미군 역사상 가장 길고 혹독한 후퇴를 안겨줬다.


마오쩌둥은 참전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그는 미국과의 완충지역인 북한을 확보했다. 만주 회복은 덤이었다. 마오쩌둥은 당시 만주를 독립왕국으로 삼으려던 친소련파 가오강 일파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아울러 중국은 최강대국 미국과 싸워 비긴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후 아시아와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항미원조 전쟁은 중국인 개개인의 생각과 중국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1956년 '상감령'(上甘嶺)'이란 영화를 통해 6·25전쟁 당시 미군과 맞섰던 저격능선 전투를 기념했는데, 이 영화의 삽입곡인 '나의 조국'은 7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대표적인 애국가요로 불리고 있다.


이효리 발언 논란 후 잠잠해지는 듯했던 마오쩌둥과 항미원조는 지난달 다시 지면을 달궜다. 이번에는 한국의 대표 가수로 떠오른 방탄소년단(BTS)이 희생양이 됐다.


▲ 세계적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10월 10일 오후 펼친 두 번째 온라인 콘서트 `맵 오브 더 솔 원(MAP OF THE SOUL onE)`에서 토크 시간을 갖고 있다. (사진=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BTS가 밴플리트상을 수상할 때의 일이다. 밴플리트상은 한미 간 정치·경제·문화·예술 분야 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가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인물·단체에 주는 상이다.


BTS의 리더 RM(본명 김남준)은 밴플리트상 수상 소감에서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양국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BTS가 '항미원조'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한 채 전쟁에서 희생된 중국 군인을 존중하지 않고 중국을 모욕하고 있다"는 중국 누리꾼의 반응을 보도하며 항미원조를 다시 꺼내들었다.


중국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항미원조를 거론한 것이다.


시 주석은 지난달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에서 열린 '위대한 승리 기억, 평화·정의 수호 중국 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작전 70주년 전시'를 참관하면서 "항미원조 전쟁의 승리는 정의의 승리, 평화의 승리, 인민의 승리"라고 말했다.


그는 "70년 전 평화를 수호하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역사적 결정을 단호하게 내렸다"며 "항미원조 정신은 소중한 정신적 자산으로 모든 시련과 모든 강력한 적을 이겨내도록 중국 인민과 중화민족을 고무시킬 것"이라고도 밝혔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시 주석이 과거 북한을 도와 미국에 대항한 항미원조 정신을 재차 강조하며 애국심 고취와 내부 결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 노출된 중국으로선 우군을 하나라도 더 늘려야 할 처지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느라 북한과 거리를 둬왔지만 이제는 그럴 여유가 없어졌다. 70년 전 중국의 도움을 받았던 북한 역시 과거의 빚을 갚으려 하고 있다. 이 같은 정황은 양측 지도자의 행보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시 주석은 지난달 10일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축전을 보냈다. 그는 "두 당, 두 나라 노세대 영도자들이 친히 마련하고 품 들여 가꿔온 전통적인 중조친선은 깊은 뿌리를 내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굳건해지고 있으며 더없이 귀중한 것으로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정은은 시 주석의 마음을 읽은 듯 지난달 22일 중국군 참전 70년을 기념하며 중국 요녕성 심양시 항미원조열사능원과 단동시 항미원조 기념탑에 꽃바구니를 보냈다. 김정은은 또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능원을 찾아 마오쩌둥의 장남으로 6·25전쟁에서 전사한 마오안잉의 묘를 찾아 자신 명의의 꽃바구니를 올리기까지 했다.


이처럼 북중이 항미원조를 기치로 뭉치고 있지만 사실 북중 관계가 항상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중국은 북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2년 한국과 수교하는 일종의 배신을 했다. 한중 수교 이후 얼어붙었던 북중 관계가 그나마 회복된 것은 2000년 김정일 방중부터였다. 이후 모두 7차례에 걸친 김정일의 방중과 장쩌민·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을 거치며 북중정상회담이 열렸지만 북중 관계는 예전만 못했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에도 북중 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북한의 장성택 부위원장 숙청(2013년 12월)과 잇따른 군사 도발로 북중 관계는 악화됐다. 북·중 경협을 총괄하던 장성택 숙청으로 양국 소통은 약화됐다. 이 와중에 시 주석은 전례를 깨고 2014년 7월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해 북한을 자극했다.


2015년 12월 북한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이 돌연 취소되는가 하면 북한의 4차 핵실험(2016년 1월)과 5차 핵실험(2016년 9월)까지 이뤄지면서 북중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에는 중국이 대북 원유공급 감축 등 유엔 대북제재안에 찬성하기에 이르렀다.


악화될 대로 악화됐던 북중 관계가 회복된 것은 2018년 3월의 일이다. 김 위원장이 시 주석 초청으로 2018년 3월26일부터 28일까지 중국을 방문했다. 당시 시 주석은 베이징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혈맹(血盟)'으로 규정했다. 시 주석은 같은 해 5월 중국 다롄에서 열린 2번째 회담에서 중국과 북한은 '변함없는 순치(脣齒)의 관계'라고 말했다.


혈맹과 순치를 넘어 최근 항미원조를 앞세워 우의를 다지는 북한과 중국을 보면서 자칫 6·25전쟁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전 세계는 70년 전에 이미 한반도에서의 전쟁에는 승자도 패자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어느 쪽도 전략적 요충지인 한반도를 포기할 수 없으므로 막대한 피해를 무릅쓰고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음이 이미 증명됐었다. 그럼에도 다시금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미국과 중국을 보면서 6·25전쟁이 남긴 뼈아픈 교훈을 떠올린다.


이세기 전 국회의원은 저서 '6·25전쟁과 중국'에서 "미국과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은 전략적 요충지인 한반도가 어떤 경우에도 어느 한 세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배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라며 "동시에 한반도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양국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분석했다.


이 전 의원은 "미국과 중국은 전쟁 과정에서 상대방의 최대 전략목표와 최소 전략목표를 명확하게 인식하게 됐다. 한반도에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중 어느 한 세력이 일방적으로 독점적인 영향력을 구축하려 한다면 전쟁의 위험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며 "결국 미중 양국은 무력 통일이라는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피해와 예상 밖의 결과를 빚었는데 이는 한반도 지정학의 치명성을 망각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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