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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11-13 12:48:34
  • 수정 2022-10-09 15: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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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Why Times]


피를 뽑는다. ‘라는 말에 스스로 섬뜩해 진다. 내 몸속에서 빠져나가는 피, 검사를 위하여 뽑는 얼마 되지 않는 양이지만 피가 내 몸속에서 빠져나간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로도 썩 기분 좋은 일은 못 되는 것 같다.


왜 피란 말만 들어도 섬뜩해질까. 따뜻하게 느껴질 순 없을까. 피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없거나 부족하기만 해도 큰 일 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런 소중한 피인 데도 왜 그게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우리말의 핏줄이란 말은 같은 피인데도 얼마나 정겹게 느껴지는 말인가. 하기야 핏줄은 혈관을 뜻하는 말이기 보단 혈연관계의 의미가 더 강할 것 같다. 유전자가 통하는 관계,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그리고 나와 아이들로 이어지는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관계가 핏줄 아닌가.


꽤 오래 전 지인이 수술을 받았는데 수혈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 헌혈을 해 주어야 한다 했다. 마침 내가 병원에 근무하고 있을 때라 달려가 헌혈을 해 주었다. 내가 뽑아준 피가 그대로 그에게 사용되었는지 준비해 두었던 다른 피가 그에게 채워졌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는 나를 볼 때마다 자기에게 피를 나누어 주었다며 형제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내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내 피가 어느 누구에게 생명의 힘으로 채워진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더 즐거운 일도 없을 것 같다.


사람의 피는 따뜻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 마음도 따뜻하단다. 따뜻한 피여서 사람의 마음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일까. 6개월에 한 번씩 건강 체크를 하느라 뽑는 이 피 뽑기 행사도 건강 명분이지만 내 몸에 주사바늘을 꽂고 피를 뽑아내는 것은 즐겁진 않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내 몸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다지 않은가. 그래야 살아갈 날에 대한 건강관리도 가능하다잖은가. 피를 뽑아야만 검사를 할 수 있고 그걸 내 몸에서 빼내지 않고는 내 몸의 상태를 알아볼 수 없음이다.


그런데 이렇게 피를 뽑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일 것 같다. 난 몇 년 전 참 당황스런 국면에 처한 적이 있다. 신체기증은 죽은 후의 일이고 그렇다고 살았을 때 골수나 신장 기증은 자신이 없어 못하니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헌혈이나 열심히 하자 하고 1년에 서너 차례씩 헌혈을 해왔었다. 그랬는데 어느 날 전과 같이 헌혈을 하려 하는데 안 된단다. 왜냐고 했더니 혈압 약을 먹지 않느냐고 했다.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그건 예방적 차원에서 먹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안 된다고 했다.


나의 혈압약 복용은 사실 좀 억울하다. 신체검사에서 혈압이 조금 높이 나왔지만 그냥 무시했는데 몇 달 후 다시 재보니 140이 나왔다. 해서 이유를 찾아보자고 온갖 검사를 다 해보았다. 그러나 6개월 추적 후 나온 결과는 혈압이 오를만한 다른 원인이 없단다. 그러니 이건 본태성 혈압으로 나이가 들자 나타난 것이란다. 하니 비타민 먹듯이 예방적 차원에서 혈압 약을 먹으라고 했다. 나도 아무런 부담 없이 그렇게 하마고 했다. 헌데 그로부터 문제가 생겼다. 보험 가입을 하려는데 안 된다고 했다. 사정을 이야기 했지만 소용없었다. 난 순식간에 고혈압 환자가 되어버렸고 나는 그 후로 헌혈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지금 내 혈압은 지극히 정상이다. 혈압 약을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고혈압 환자가 되어 헌혈을 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피를 마음대로 뽑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다. 아파서가 아니라 누구에게 주기 위해서 내 피를 뽑는 감격은 결코 작지 않다. 지금도 분명 나는 건강하니 헌혈을 하고 싶은데 안 된단다.


세상일에는 다 질서와 원칙이 있다. 건강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지금 내 건강상태를 계속 체크해 가니까 내가 건강한 것이지 그걸 하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른다. 소홀하지 않고 소중히 하는 마음이야말로 원래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리라.


아파서가 아니라 건강한 지금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검진은 어쩌면 인생이란 길의 신호등을 정확히 보고 그에 따르는 것과 같을 것 같다. 때로는 기다리기도 하고 때로는 빨리 건너기도 하면서 삶의 셈을 잘 해내는 것도 지혜로움이 아니랴.


인생이란 저마다의 짐을 지고 자기의 길을 가는 여정이다. 사람에게만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가는 길은 인도지만 자동차가 가는 길은 차도요, 배가 가는 길은 뱃길이다. 지구도 제 길을 따라 돌고 있고, 달도 별도 가는 길이 있다. 길에서 벗어나면 사고가 난다. 그래서 사람도 자기의 길을 가면서 어떻게 스스로를 잘 갈무리하며 사람답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늘 생각해야 하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자신의 건강을 잘 살피는 일일 것 같다.


아프면 자기만 힘들고 괴로운 것이 아니다. 곁에 있는 사람은 더 힘들고 안타까워한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은 차라리 자기가 대신 아프지 못해 애를 태운다. 한 사람이 건강을 잃음으로 가정이 흔들려 버리고 그들의 계획과 소망이 무너진다. 그러니 건강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 할 것이다.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성경 말씀이 아니라도 건강이란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임이다.


그 건강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피를 뽑는 것인데도 마음 편히 임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아파서 상태가 얼마나 더 나빠졌는지를 확인키 위해 피를 뽑아야 하는 이를 생각해 본다.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팔을 내밀 그의 마음이 내게도 전해져 온다.


팔을 내민 채 주사기를 당기고 있는 간호사의 얼굴을 슬쩍 쳐다본다. 표정이 없다. 하기야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매일 똑같은 이 일을 했으랴. 나는 한 번이어도 오늘만도 그에겐 너무나도 많은 건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주사기를 통해 내 피가 뽑혀져 나간다는 사실에 긴장하고 있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래도 감사하다. 6개월에 한 번씩 이런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이걸 통해 내 건강관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또 내가 아직 건강한 몸이라는 사실이 기쁘다. 그건 하나님께서 아직 나를 통해 무언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심이 아닐까. 그런데도 낮일 때, 밤이 오기 전에 건강할 때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나의 할 일을 제대로 감당해야겠다는 다급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내게 다가오지 않은 시간은 내 시간일 수 없다는 평소 내 생각 때문일까. 몸의 이상은 검진으로 알 수 있겠지만 내 생의 시간은 어떤 것으로도 알아볼 수 없는 오직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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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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