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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섭일 칼럼] 프랑스에서 파문당한 좌파 대부 사르트르, 왜? - 사르트르 추종 좌파신문 ‘리베라시옹’, 결국 대국민 사과 - ‘리베라시옹’, “레이몽 아롱이 옳았다. 슬프도다!” 헤드라인 올려 - 마크롱 혁명의 원천 '아롱의 자유민주주의' 재평가
  • 기사등록 2020-10-17 18:35:09
  • 수정 2021-04-27 10: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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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사상을 이끌어 왔던 레이몽 아롱과 사르트르, 프랑스 사회는 좌파 지식인의 대부였던 사르트르를 파문하며 좌파신문 리베라시옹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사진편집=Why Times]


프랑스 지식인사회와 언론계가 20세기 실존주의 사상가 사르트르를 파문하고 그의 이념적 적수 레이몽 아롱을 21세기 국민사부(師 )로 추대해 이념적 대변화를 수행하고 있다. 사르트르가 1946년 창간한 좌파신문 ‘리베라시옹(해방일보)’이 대국민사과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세기 아롱-사르트르의 사상논쟁이 21세기에 아롱의 대승으로 종결된 것이다. 변화의 집행이 마크롱대통령의 정치혁명이다.


“21세기에 레이몽 아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1960, 70년대에 우파였고, 사르트르는 좌파였다. 사르트르는 해방일보를 창간했고, 아롱은 르 휘가로의 논객이었다....”(2017년 7월 2일)


해방일보의 사과문 서두이다. 20세기의 대사상논쟁에서 사르트르의 대변지가 아롱의 자유민주주의 사상시대개막을 선언하고 있다.


해방일보는 “레이몽 아롱이 옳았다. 슬프도다!”라고 1면 머리 특호활자로 크게 보도함으로써 사르트르 진보사상의 패배를 선언했다. 이는 21세기 프랑스가 좌우사상투쟁을 종결하고 아롱의 자유민주주의 사상에 통합됨을 뜻한다. 이것이 마크롱이 좌우중도의 대통합 정당으로 2017년 5월 대선에서 승리한 배경이다.


마크롱의 정치혁명은 오늘 한국정치의 좌우이념투쟁에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이전투구의 정치투쟁으로 대한민국이 붕괴도상에 직면한 현실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혁명이 주는 의미는 너무나 크다. 마크롱의 사부 아롱은 사후 30여년만에 프랑스정치에 21세기형 민주사상으로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아롱과 사르트르는 1905년생 동갑내기로 파리고등사범(ENS en‘Ulm’)의 동기생 절친이었다. 사르트르는 ‘구토’ ‘자유에의 길’ ‘변증법적 이성비판’등의 실존주의 사상의 창설자로 노벨문학상 수상자(거절)이다. 아롱은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철학과 사회학-언론계의 거두로 솔본느대와 ‘에콜 드 프랑스’ 교수로 우파지 르 휘가로의 주필이었다.


이들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격렬한 좌우파 사상논쟁의 적수가 되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터지자 아롱은 종군기자로 김일성의 남침을 르 휘가로의 사설에서 규탄했고, 사르트르는 ‘북침’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아롱은 자유민주의 대변자, 사르트르는 ‘공산당의 동반자’로 논전을 펼쳤다.


아롱이 1955년 공산주의 비판서 ‘지식인의 아편’을 낸 후, 논쟁이 격화되면서 원수가 되었다. 아롱은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에서 “종교를 지식인의 아편”이라 규정한데 대해 “공산주의야말로 지식인의 아편”이라고 받아쳤던 것이다. 아롱이 공산주의가 지식인의 ‘불치병’인 ‘아편환자’로 지목해 논쟁은 더욱 격화되었다.


원래 사상논쟁은 ‘이방인’ ‘페스트‘ ’반항적 인간‘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알베르 카뮈와 시작되었다. 카뮈는 스페인의 프랑코, 나치히틀러등과 같이 소련공산당두목 스탈린도 전체주의자로 규탄했다. 사르트르는 여기서 공산당은 면제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쟁이 더욱 과열되었다.


카뮈가 요절하자 바통을 받은 것이 아롱이었다. 아롱은 ‘지식인의 아편’에서 사상논쟁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분열의 원인은 하나다. 소련이나 공산주의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친구나 동지, 형제간에도 영원한 작별을 고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르트르는 소련의 강제수용소를 부정하지 않았다. 카뮈는 제국주의의 식민지와 프랑코의 악을 공격했다. 이들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을까? 최후의 단계에서 카뮈는 서방진영을 선택하고, 사르트르는 공산진영을 선택한 사실에 있다”


당시 프랑스와 유럽의 진보 지식인들의 다수가 소련-중국편을 들면서 아롱은 사상계에서 고립-소외되었다. 사르트르는 한국전쟁에서 계속 ‘북침“을 주장하면서 ”공산당 반대자는 모두 개다“라고 폭언을 함으로써 양진영은 치유불능의 원수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 붕괴에 이은 1990년 10월 통독과 1991년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세계공산주의 해체선언으로 공산진영이 소멸되었고 자유민주주의는 대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동서유럽은 자유민주체제로 통합되어 오늘의 거대 유럽연합(EU)이 되었다.


사르트르는 1980년, 아롱은 1983년에 작고해 공산주의 멸망을 알지 못했다. 다만 이들은 1979년 베트남의 ‘보트피플’ 구출사건 때, 지스카르 프랑스 대통령의 난민구조운동에 동참함으로서 논쟁을 일단 종식시켰다. 르 휘가로지는 이들의 화해를 이렇게 보도했다.


“20세기 이념의 재단에 청춘을 받친 최대의 사상가 사르트르와 아롱이 악수를 나누었다. 아롱은 ‘사르트르와 악수했을 때 봉주르, 친구야, 나는 반세기를 되돌아간 것 같다“


그런데 21세기 초부터 언론계에서 아롱의 재평가가 제기되었다. 프랑스 유력지 르몽드는 아롱의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탄생 100주년 기념일에(2005.3.12) “감동을 계속 주는 레이몽 아롱”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아롱-사르트르의 ‘불행한 싸움’을 조명하면서도 아롱의 사상이 21세기에도 계속 유효하다고 설파했다. 그리고 “반공주의자는 개”라는 사르트르의 욕설에 대해 ‘역사는 비극’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 같다“고 말한 아롱의 추억담을 전했다. ”베를린장벽 붕괴를 못 본 것이 유감이다. 인류의 자유를 확고히 믿은 아빠였다“는 아롱 딸의 코멘트도 르몽드지가 보도해 아롱의 자유민주주의의 유효성을 상기시켰다.


아롱의 사상적 위대함은 2010년대에야 프랑스의 전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 논평했다. 마크롱대통령의 등장이 아롱의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부활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르 휘가로는 ”위대한 시대의 정치사상, 레이몽 아롱의 사상은 왜 오늘날 소중한가?“ 에서 ”프랑스의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대사상가“라고 평가하고, 토크빌의 자유보수주의서 버크의 보수이념의 관점까지 모두 포괄하는 대사상가로 재평가했다.


▲ “레이몽 아롱이 옳았다, 슬프도다!”라고 제목을 단 `해방일보` 1면 인터넷판 기사


사르트르가 사주였던 해방일보의 경우, 아롱에 대한 혹독한 비판의 선봉에 섰던 과거를 철저히 반성하면서 자아비판을 해 특히 주목되었다. “레이몽 아롱이 옳았다, 슬프도다!”라고 제목을 단 이 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2017년에도 레이몽 아롱의 말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지금 도처에 나와 주목되고 있다. 특히 세계의 도처에도 그가 나와 있으며, 거대한 이론들과 강력한 세계로 나타나고 있다. ...아롱은 ‘이즘’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이에크의 자유주의는 너무나 ‘도그마’적이고, 국가를 정치중심에 놓는 케인즈를 선호한다. 오늘 아롱의 말을 듣기 위해서는 대학의 아롱센터의 집합 종이 울리면 찾아가면 된다.,,,아롱이 역사적으로 사르트르를 반대한 것은 슬픈 일이지만, 아롱이 옳았다... ‘슬프다’에 내포된 의미는 .아롱이 옳다.는 것이다.”


‘해방일보’가 러시아의 레닌혁명 100주년 기념일(2017년10월) 특집에서 “(공산당)의 동반자들의 거대한 환상”이란 제목으로 철저히 비판해 사르트르의 진보진영과 결별을 선언한 일은 특기할 만하다. “반파쇼투쟁에 참가해 러시아혁명을 찬양한 작가와 사상가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공산당체제의 범죄에 눈 감았다”고 규탄한 것이다.


조지 오웰의 ‘스페인전쟁’ 앙드레 지드의 “소련기행”이 경고했고, 특히 아롱의 “지식인의 아편”이 공산당의 폭력에 결정타를 쳤음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 오늘 역사를 고대로 돌리는 공룡들이 계속 준동하고 있다. 우리는 스탈린과 동반자인 지식인의 역사를 반성하며, 여기서 지성마비와 세뇌의 해독제를 발견해야 한다“


해방일보의 스탈린의 공산주의에 대한 준엄한 규탄과 반성의 절규는 오늘 한국의 지배세력이 된 주사파 운동세력에게도 똑 같이 중대한 경고음으로 울리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21세기 프랑스는 언론-지식인-학계의 역사적 참회-반성운동을 통해 레이몽 아롱의 자유민주주의를 주류철학으로 업그레이드해 정치혁명을 진행하고 있다. 바로 마크롱의 정치혁명은 자유, 삼권분립, 시장경제, 안전보장, 법치 및 사적소유권의 국가적 보호등의 개혁이 본질이다. 마크롱이 기존 좌우진영의 대립정치를 혁파하고 ‘헤쳐모여’를 통한 국민통합정당을 창출한 이유이다.


마크롱의 ‘공화국을 위한 전진’당은 경제전문가는 우파, 사회복지는 좌파, 친환경은 녹색당, 안보는 군사전문가등 각계각층에서 영입한 전문가로 완전한 국민통합당을 창당한 것이다. 그리고 아롱사상의 바람이 학계-지식인중심의 포럼과 각 대학의 아롱연구센터중심으로 정치사상으로 마크롱의 정치를 뒷받침하고 있다.


프랑스의 정치혁명은 성공의 궤적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마크롱은 어느 정권도 성공하지 못한 노동개혁에 성공했고, 공무원 30% 감원도 단행했다. 상업-기업의 규제를 모두 혁파해 주말과 6시 이후 영업의 자유를 보장해 최고의 관광국으로 도약하고 있다. 특히 세금탕감정책으로 기업과 중소기업-상인들의 날개를 달았다. 특히 아무도 손대지 못한 부유세를 폐지했다. 정권교체 때마다 ‘루이 뷔통’ 회장등 부자들의 해외이민의 세금도피유행이 사라졌다. 고등공무원 양성소 고등행정학교(ENA)도 폐지했다. 국회의원 30% 감축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프랑스유권자는 더 많이 더 잘 하라고 마크롱을 채찍질한다.


이렇게 세계는 급변하며 나라마다 정치혁멍을 위해 뛰면서 주권자의 행복과 안전, 평화와 경제부흥을 도모하는 정치적 목표를 위해 뛰고 있다. 그래서 우리 정치도 21세기형 자유민주주의의 궤도수정이 필연적이다.


오늘 우리 정치는 좌파집권이지만, 미테랑, 브란트 같은 선진형 사회당이 아니라 ‘주사파의 진보’라고 한다. '공룡시대'의 재생이 아닌가. 해방일보는 “고대의 공룡들이 아직도 기어 다닌다”고 극좌파를 규탄하며 경계했다. 한국 정치에 자유민주주의의 ‘서울의 봄‘을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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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학 박사
    전 중앙일보 파리특파원-국제문제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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