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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6-24 15: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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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 세계적인 화제작(話題作)이 된 “벡악관 생활 자서전(自敍傳)” 《그 일이 일어났던 방(房)》(New York, Simon & Schuster, 2020)에서 최근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에 의하여  해임된 저자(著者) 존 볼턴(John Bolton)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대한민국의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을 “정신분열증 (Schizophrenia) 환자”라고 지칭한 것이 국내 정가(政街)에서 물의(物議)를 일으키고 있다. 볼턴의 이 같은 주장과 관련하여 미국의 트럼프, 한국의 문재인 두 대통령과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金正恩) 사이의 소위 ‘정상외교(頂上外交)’가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던 2018년 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전개한 ‘정상외교’에 관하여 필자가 그동안 게재했던 몇 건의 글을 다시 소개한다. 좀 장황하지만 읽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소망한다.


▲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표지


[미국의 CVID 요구와 동떨어진 對北 특사 귀환 보따리/ 2018년 3월 7일 ]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 외교는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과의 공조를 포기하고 미국 단독의 대북 정책을 추진하는 결정적인 길을 열어 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파견한 대북 특사단이 이틀간의 평양방문을 마치고 6일 서울로 귀환했다. 특사단의 단장 역을 맡았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서울 귀환 후 6일 오후 8시 5일 오후 평양에서 북측의 김정은(金正恩)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에서 이루어진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정 실장이 밝힌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이다. ① 4월 말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② 남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의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핫라인을 개설하여 4월 말 정상회담 전에 첫 통화를 한다. ③ 남측 태권도 시범단과 예술단의 평양 방문을 초청한다.


이 같은 합의 내용에 부연하여 정 실장은 김정은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북한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고 한반도의 비핵화는 선대(先代)의 유훈(遺訓)”이라고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면서 “비핵화 문제 협의와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정 실장은 이어서 김정은이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추가 핵실험 및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지 않을 것”과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하여 사용하지 않을 것”을 ‘다짐’했고 그동안 평창 동계 올림픽과 패럴림픽 때문에 지연되어 온 키리졸브(Key Resolve)와 독수리 한미 합동군사훈련도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은 이해하겠다'는 언질을 주었다고도 설명했다.


정 실장은 그와 서훈 국정원장이 함께 곧 미국을 방문하고 이어서 자신은 러시아와 중국을, 그리고 서 원장은 일본을 방문하여 평양 방문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북 특사단의 평양 방문 결과에서 중요한 부분은 남북 정상회담 부분이 아니라 핵과 미사일 문제에 관하여 김정은이 무슨 말을 했느냐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부각될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이 문제에 관해서는 미국의 입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서 이 문제에 관한 양보할 수 없는 기본 입장을 밝혀 왔다. 그것은 첫째로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둘째로는 북한에게 모든 핵무기는 물론 전반적 핵무기 개발 계획의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해체”(CVID • 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북한과의 대화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대화를 할 수는 있지만 대화를 위해서는 그에 앞서 북한이 이 두 가지 전제조건을 수용하는 것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바로 이 같은 단호한 입장 때문에 평창 올림픽 기간 중 문재인 정권이 필사적으로 북의 김영남·김여정과 미국의 펜스(Mike Pence) 부통령 사이와 북의 김영철과 트럼프 대통령의 딸 아방카(Ivanka Trump) 사이의 ‘억지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진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문 정권의 시도를 단호하게 무시, 외면했었다.


이 같은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 대북 특사단이 평양에서 가지고 돌아온 것은 핵과 미사일 문제에 관한 한 2005년 9월19일 제4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합의, 채택되었던 《9·19 공동성명》에도 훨씬 미달하는 부족한 함량(含量)의 내용이다.


왜냐 하면, 이번 대북 특사단이 평양으로부터 가지고 돌아 온 것은 첫째로, 북한의 핵보유 사실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는 전제에 기초하고 있고, 둘째로, 김정은의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 운운 발언은 미국의 CVID 입장을 사실상 무실화시킴으로써 북한 핵문제 해결의 무기한 지연을 초래하는 것이며, 셋째로, 미국에 대한 핵공격 위협을 사실상 무기한 방치하는 결과를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이 같은 상황은 북핵 문제에 관한 북한과 미국 및 국제사회 사이의 대치를 무기한 방치하는 가운데 북한으로 하여금 계속 ‘갑(甲)’질을 유지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이 ‘비핵화’의 조건으로 제시한 두 가지의 ‘전제조건’, 즉 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의 해소”와 ②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 요구는 더구나 합리성은 물론 실현성을 도외시한 것이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해소하라”는 북한의 요구는 결국 ①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지, ② 한미연합사 해체, ③ 주한미군 철수, ④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⑤ 미-북 평화협정 체결 요구를 축차적으로 늘어놓겠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을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왜냐 하면, 북한의 ‘체제 불안’은 김일성(金日成) 일가의 세습왕조로 전락된 북한의 스탈린식 1인 독재 체제가 가지고 있는 체제내적 원인에 의한 체제 경쟁력 상실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어서 이의 해결은 북한 스스로가 체제 개혁을 통하여 체제 경쟁력을 회복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지 결코 미국이나 다른 어느 나라가 이를 ‘보장’해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관하여 '예년의 수준에 의한 실시'를 운운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안정기로 진입하면 훈련의 조절도 기대할 수 있다”는 김정은의 말도 비록 당장 당면한 2018년 상반기의 훈련에 대해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하겠지만 그 뒤로는 여전히 ‘축소’와 ‘중지’ 요구를 거론하겠다는 의향을 함축한 것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같은 분석에 따른다면 정의용 실장과 서훈 원장의 워싱턴 방문 발걸음이 매우 무거운 발걸음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미국은 두 특사가 전하는 핵문제에 관한 김정은의 발언을 결코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이 없다. 미국은 두 특사에게 미국의 CVID 요구의 수락을 북한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 요구에 시한을 설정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결국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 외교는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과의 공조를 포기하고 미국 단독의 대북 정책을 추진하는 결정적인 길을 열어 줄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그렇게 될 경우의 상황 전개는 오히려 문재인 정부가 미국에 의한 대북 단독 군사행동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어쩌면,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전개하는 ‘특사’ 외교는 평양과 워싱턴 사이를 오가는 과정에서 양쪽의 입장을 적당하게 줄이고 늘임으로써 16세기 임진왜란 때 명(明)의 간신(奸臣) 심유경(沈惟敬)이 명과 왜(倭) 사이에서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강화(講和)’ 사기극(詐欺劇)의 재판(再版)이 될 소지가 없지 않아 보인다.


[주마가편의 문재인판 ‘심유경’식 북핵 외교와 풍전등화의 국가안보/2018년 9월 7일]


‘4·27 판문점 선언’은 예고편이었다. 南의 문재인 정권이 北의 김정은 정권과 공모, 결탁하여 준비하고 있는 ‘본편(本篇)’이 곧 ‘평화협정’이다.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강행, 추진하고 있는 대북정책에 대한 우려를 금할 길 없다. 북한의 핵 문제와 관련하여 문재인 씨의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묻지 마' 식 대북정책이 초래할 내일의 한반도 운명, 그리고 대한민국의 내일의 모습이 두렵기만 하다.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문재인 씨가 앞장서서 밀고 나가는 ‘거중조정’을 빙자한 ‘두 길 보기’ 식 대북·대미 3각 외교의 행보가 600여년 전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심유경(沈惟敬)’이 펼쳤던 강화(講和) 사기극詐欺劇)의 확대판을 지향하고 있다는 겻이 날이 갈수록 명료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당일치기로 방문한 평양에서 김정은(金正恩)으로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환대(歡待)’(?)를 받고 돌아온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의 5인 특사단을 대표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귀환 보고 내용을 전해 듣는 필자의 머리를 때리는 상념(想念)은 “쇼는 계속된다”는 것이었다. 정 실장이 6일 아침 애써서 설명하는 것을 듣고 나서도 가시지 않는 기본적 의문은 한 가지다. 정 실장이 거듭 거듭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강조했다”고 했지만 문제는 그가 강조한 '비핵화'가 과연 무엇을 말하는 지는 여전히 불명하거나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말하는 ‘비핵화’는 우선 실체가 없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말하는 ‘비핵화’는 “북한의 비핵화”다. 첫째로는 ‘북한 핵’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해체”(CVID)를 요구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여 실제로 핵무기의 전력화(戰力化)에 성공했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평양에서 두 번째로 정의용 일행을 만난 자리에서도 김정은(金正恩)이 반복한 말은 이 문제의 ‘실체(實体)’를 여전히 비켜 가는 것이었다. 김정은의 말은 여전히 “조선(한)반도의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遺訓)”이라는 주장을 고수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가 말하는 ‘비핵화’는 여전히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조선(한)반도의 비핵지대화'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악마(惡魔)는 디테일에 있다”는 경구(警句)가 적용되어야 할 대목이다. 지난 3월5일 정의용 일행의 첫 번째 평양 방문 때 김정은의 ‘말’ 가운데는 바로 문제의 ‘디테일’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 해소”와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이라는 2개의 비현실적인 ‘전제조건’들이 그것들이다. 이 두 가지 ‘전제조건’을 가지고 김정은은 소위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접근”(Progressive and Synchronous Approach)을 운위하고 있다. 이 같은 비현실적인 ‘전제조건’의 형태로 사실상 자물쇠가 걸려 있는 ‘비핵화’의 내용에 관해서 김정은이 실제로 직접적인 표현으로 그의 ‘의지’를 밝힌 일은 단 한 번도 없다.


3월5일 정의용 일행과의 첫 번째 만남 때의 김정은의 말은 문제의 두 ‘전제조건’이 충족되면 “우리는 핵을 가질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마치 남의 말을 하는 식의 제3자적 어법(語法)이었다.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씨와 합의하여 발표한 소위 《4·27 판문점 선언》의 관련 대목은 밑도 끝도 없는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하여 핵 없는 한(조선)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이 “공동의 목표로 확인했다”는 “완전한 비핵화”나 “핵 없는 한반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은 아무 것도 제시된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12일 싱가폴에서 만난 트럼프(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이 합의하여 발표한 《싱가폴 공동성명》의 관련 대목 역시 “4·27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했다”는 것과 “북한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하여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는 것이 전부다. 문제의 ‘비핵화’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6·12 싱가폴 미-북 정상회담 이후 쌍방 간에는 몇 가지 ‘조치’들이 취해진 것이 사실이다. 미국과 한국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지했고 미국은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의 ‘전략자산’의 운용을 중지하고 있다. ‘문재인의 대한민국’은 대북 안보의 측면에서 위험천만한 사실상의 일방적인 '무장 해제' 조치를 단행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 상응(?)하여 북한은 함경북도 풍계리의 지하 핵실험 시설의 일부 갱도를 폭파했고 평안북도 동창리의 ICBM 시험 발사대의 일부 시설을 해체, 철거했다.


그러나, 이 같은 북한의 ‘조치’에 관해서는 핵심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간과되고 있다. 그것은 북한의 핵 그 자체에 대해서 일언반구(一言半句)의 말이 없는 것은 물론 북한이 주장하는 일부 시설의 해체와 철거의 ‘실체’ 역시 모두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 시작된 동서냉전 시대의 국제적 핵 제한 및 감축 협상 때의 “믿더라도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는 ‘금언(金言)’이 한반도에서 발을 붙이는 것을 북한이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태에서 이번에 평양에서 두 번째로 정의용 일행을 만난 김정은은 한 술을 더 뜨고 있다. 정의용의 전언(傳言)에 의하면, 김정은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임기 중에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핵실험장 폐기 등 자신들의 선제 조치에 상응하는 조치가 이루어진다면 북한은 적극적 비핵화 조치들을 계속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밝혔다”는 것이다.


문제는 김정은이 말하는 '상응하는 조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이에 관한 정의용의 전언에 대한 ‘청와대측의 해설(解說)’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김정은의 이 말은 “미국이 《종전선언》 수용과 대북 제재 조치 완화 등의 조치를 취하면 후속 비핵화 조치가 가능하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김정은이 말하는 《종전선언》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이에 해답의 실마리는 소위 《한반도 평화와 번영 및 통일에 관한 4·27 판문점 선언》의 내용에서 찾아낼 수 있다. 필자가 얼마 전 게재한 바 있지만 문제의 《4.27 판문점 선언》과 1973년 4월30일자 《베트남에서의 전쟁 종결과 평화 회복을 위한 파리평화협정》의 문면을 비교, 검토해 보면 두 ‘문건’은 사실상 ‘이란성(二卵性) 쌍둥이’라는 사실을 간파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두 문건은 모두 ‘민족’·‘자주’·‘화해’·‘화합’·‘단결’·‘외세’·‘평화’ 등 ‘통일전선’ 전략의 틀 안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철저하게 이념적으로 오염시킨 어휘(語彙)들을 구사하여 “외세 간섭 배제”라는 미명(美名) 아래 미국과의 안보동맹 체제를 무력화 내지 해체시키고 나아가서 폭력에 의한 체제 전복이나 아니면 무력에 의한 정복 등의 방법으로 공산화 통일을 추구하는 데 대한 ‘면허장(免許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4·27 판문점 선언》은 예고편이었다. 남의 문재인 정권이 북의 김정은 정권과 공모, 결탁하여 준비하고 있는 ‘본편(本篇)’이 곧 《평화협정》이다. 그런데, 현안(懸案)으로 걸려 있는 핵 문제 때문에 ‘본편’으로의 직진(直進)이 무리라고 판단한 남북의 두 공모자(共謀者)들은 ‘본편’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2단계화하고 1단계의 《종전선언》을 미국의 트럼프(Donald J. Trump) 행정부에게 “강제 급식(給食)”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의 김정은의 '말의 유희(遊戱)'가 현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정의용에 의하면, 김정은은 심지어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 안보동맹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정의용 실장이 이번 그의 두 번째 평양 방문 결과를 전화로 볼턴(John Bolton)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에서 디브리핑해 주었다고 한다. 전화에 의한 디브리핑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알기 어렵다. 어쩌면, 아니 그보다도 틀림없이, 정의용의 워싱턴 출장이 다시 필요할 것 같이 생각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의용이 과연 어떠한 내용으로 김정은이 그의 일행에게 한 말들을 미국측에게 전달할 것인가가 궁금하다. 더군다나, 트럼프의 미국은 가뜩이나 지난 번 3월 이후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의 말만을 믿고”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의 대화에 나섰다가 크게 입은 ‘화상(火傷)’을 아직도 핥아내고 있는 중에 있다. 그러한 트럼프측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비핵화 의지’를 믿어주지 않아서 답답하다”는 김정은의 계산된 ‘헛소리’를 고지식하게 전달한다고 해서 미국이 선뜻 신발을 꿰어 신고 나설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이번에는, 트럼프 쪽에서 “도대체 문재인은 김정은이 말하는 ‘비핵화 의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따져 물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에 대해서 문재인 쪽에서는 이번에도 “나를 믿으라”고 할 것인가? 만약 트럼프 쪽에서 “당신을 믿으려 하더라도 우선 김정은이 말하는 ‘비핵화’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하겠다”고 버티면 어찌 할 것인가? 미국이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북한의 핵의 실체를 확인해야 하겠다"면서 ”북한 핵의 리스트부터 먼저 제시하라“고 역공(逆攻)할 경우 정의용이 어떻게 이에 대처할 것인지 궁금하다.


논자에 따라서는 최근 국내정치 차원에서 트럼프가 처해 있는 어려운 여건 때문에 북한과의 흥정에 집착할 가능성이 있어서 이번에도 문재인이 대신 들어 주는 김정은의 낚시밥을 물어 챌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보는 모양이다. 일부 보도들이 전하는 트럼프의 긍정적 반응(?)이 그 같은 뜻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7일 전 세계 언론의 톱기사가 된 “트럼프 백악관 내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폭로한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의 심층부(深層部)에서 트럼프의 ‘막가파’ 식 국정 운영에 대한 내부에서의 저항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다. 특히 트럼프의 유아독존(唯我獨尊)적 대북 정책에 내부로부터의 견제가 표면화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연출하고 있는 문재인 판 심유경 식 ‘강화 사기 행각’이 과연 언제까지 흥행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지가 궁금하다. 이 사기 흥행 쇼가 주마가편(走馬加鞭) 식으로 확대 재생산의 과정을 치달을 경우 2주일 앞으로 박두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에 도대체 어떠한 쓰나미가 불어 닥칠 것인지 두려운 마음을 달래기 어렵다.


[文在寅의 ‘남북정상외교’는 1973년 월남전 ‘파리 평화 협상’의 전철을 밟고 있다/ 2018년 8월 20일]


지난 4월27일 판문점에서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되어 발표된 ‘《한(조선)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의 내용을 1973년1월17일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남북 월남과 미국 및 중국이 합의하여 발표한 《베트남에서의 전쟁 종결과 평화 회복에 관한 협정》(Agreement on Ending the War and Restoring Peace in Vietnam) 내용과 비교 검토해 보면 ‘문재인(文在寅)의 대한민국’과 ‘김정은(金正恩)의 북한’이 금년 들어서 남북한 및 미국, 중국 등사이의 ‘정상외교’를 통해 추구하고 있는 지향점(指向點)은, 결과적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의 공산화를 초래했던, '파리 평화협정‘ 방식에 의한 한반도 문제 해결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왜냐 하면, ‘파리 평화협정’이, ‘베트남에서의 전쟁 종결과 평화 회복에 관한 협정’이라는 공식 명칭이 말해주는 것처럼, 협정 체결 시점에서의 전장(戰場) 상황을 동결하는 차원에서 월남전의 ‘종결’과 ‘평화’를 보장해 주었어야 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월맹이 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은 물론 미군이 다시 월남전의 개입하는 것을 봉쇄하는 데 협정을 이용한 뒤에는 협정의 핵심인 ‘종전(終戰)’ 합의를 공공연하게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월남에 대한 전면적 군사 공격을 재개하여 같은 해 4월30일 사이공을 유혈(流血) 점령함으로써 무력에 의한 월남통일을 완수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문재인의 남한’과 ‘김정은의 북한’이 작당(作黨)하여 미국에게 덮어씌우려 하고 있는 한국전쟁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이 이 같은 1973년의 《파리 평화협정》을 전철(前轍)로 삼는 것이 아니라는 어떠한 보장도 없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필자는 문제의 《판문점 선언》과 《파리 평화협정》 사이에 과연 어떠한 공통성이 있는지를 면밀하게 천착(穿鑿)할 절대적 필요성을 느낀다.


이 같은 우려 때문에, 필자는 남북관계의 미래에 관심을 갖는 모든 이들에게 2018년4월27일자 《한(조선)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과 1973년1월17일자 《베트남에서의 전쟁 종결과 평화 회복에 관한 협정》(Agreement on Ending the War and Restoring Peace in Vietnam)의 내용을 정독(精讀)하고 상호 정밀하게 비교, 검토할 것을 권유하고 싶다.


물론, 《판문점 선언》과 《파리 평화협정》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우선 남북 월남과 미국 및 중국 등 4자가 공동 서명한 《파리 협정》은 베트남 전쟁의 “전쟁종결”과 “평화회복”에 관한 ‘최종 협정’이다. 이에 반하여, 한국전쟁의 경우 과연 어느 나라들이 “전쟁종결”과 “평화회복”을 위한 ‘협정’의 ‘당사국’이 될 것이냐는 문제에 관한 논의의 결론이 아직도 도출되지 아니 하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이 ‘전쟁’과 ‘평화’에 관한 ‘최종 협정’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판문점 선언’은 따라서 한국전쟁의 “전쟁종결”과 “평화회복”에 관한 ‘최종 협정’으로 가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과도적 합의’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전쟁의 “전쟁종결” 및 “평화회복”을 위한 ‘최종 협정’은 우선 이 협정 체결의 당사국 문제가 타결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 문제임이 분명하다. 이 문제에 관한 《판문점 선언》 문면도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매우 애매한 문면이다.


일견(一見), 《종전선언》의 ‘시한’ 만큼은 금년 말로 지정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분리되는 것인지 아니면 포괄해서 한 묶음으로 거론하고 있는지가 분명치 않기 때문에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시한’이 별개의 것인지 아니면 공통의 것이지가 분명치 않다.


게다가 여기서 거론되고 있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중 어느 것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에 연계되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은 가운데 이들 ‘3자’ 또는 ‘4자’ 회담의 ‘시한’ 역시 애매모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문재인 정권은 문제의 《판문점 선언》에 대한 국회의 ‘비준’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하고 있다. 《판문점 선언》을 하나의 완성된 ‘최종 협정’으로 간주하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바로 이 같은 문재인 정권의 움직임 때문에 하나의 미완성의 ‘과도적 합의’에 불과한 것임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지금의 시점에서 《판문점 선언》의 내용을 1973년의 《파리 평화협정》 내용과 비교하여 면밀하게 분석해 볼 절대적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6월12일 싱가폴에서 있었던 미-북 정상회담의 와중(渦中)에서 지금 ‘트럼프의 미국’과 ‘김정은의 북한’ 사이에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 행동화’가 먼저”라는 미국의 입장과 “《종전선언》 약속’이 먼저”라는 북한의 입장 사이에 ‘밀당(밀고 당기기)’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문재인의 대한민국’과 ‘김정은의 북한’이 최근 작당(作黨)하여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그들이 《판문점 선언》을 통하여 추구하는 것이 ‘비핵화’의 ‘전제조건’의 차원에서 《파리 평화협정》 방식에 따른 한국전쟁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논의에 미국을 끌어들임으로써 한편으로는 ‘북한의 비핵화’ 논의의 장기적 표류를 유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월남 방식의 한반도 공산화 통일에 유리한 조건•환경을 조성하는 데 북한의 핵문제;를 이용하려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4.27 판문점 선언》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음미해 보는 것이 절대로 필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6.12 싱가폴 공동성명’》이 내용으로 담고 있는 4개 항목 가운데 가장 핵심인 북핵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제3항에서 이 문제에 관하여 김정은이 약속한 것은 오로지 “《4.27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하여 노력한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문면(文面)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이 ‘공동성명’이 “재확인”한 《4.27 판문점 선언》의 내용을 좀 더 엄밀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4.27 판문점 선언》 내용의 초점이 ‘6.12 미-북 싱가폴 정상회담’ 성립의 초석이 되었던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어떻게 구체화되느냐”는 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4.27 판문점 선언》의 이 문제 관련 언급은 소홀하기 짝이 없다. ‘선언’의 3개 조항 중 마지막 조항의 마지막 세항인 제3항의 ④에서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한다”는 것이 전부다.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에도 미치지 못하는 “목표의 확인”에 그친 것이다. 더구나, ‘목표’라고 설정된 “완전한 비핵화”는 물론 “핵 없는 한반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계 당사국 간에 합의된 ‘정론(定論)’이 없는 상황이다.


《판문점 선언》의 같은 항목에서 북핵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다른 대목들은 엉뚱한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들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한다”는 것과 “남과 북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는 것이 그것들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대체 특정되지 않은 그 같은 ‘북측의 주동적 조치’들이 어째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가 되는지가 분명치 않음은 물론이고 “남과 북이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한다”는 대목 및 “남과 북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는 대목들과 그동안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아홉 차례에 걸쳐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 및 미국이 주도하는 가운데 대한민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나라들이 실시하고 있는 국제적 대북 제재조치들과의 사이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결국, 《4.27 판문점 선언》의 북핵 관련 대목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동어반복(同語反覆)’의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판문점 선언》의 실체는 제1, 제2항과 ④를 제외한 제3항의 나머지 내용에 담겨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런데 제3항의 ④를 제외한 3개 항목, 12개 세항에 걸쳐 나열되어 있는 《판문점 선언》의 내용들과 1973년의 월남전 종결을 위한 《파리 평화협정》 내용들 사이에는 많은 공통성이 발견된다. 두 문건이 공유하는 키워드는 ① 민족 자주와 ② 민족화해 및 화합 그리고 ③ 외세 배제 등 세 가지 기조다.


《파리 평화 협정》은 이들 기조 위에서 “미국 및 미국 동맹국 군대의 철수”와 “미국의 월남전 군사 개입 및 내정 불간섭”을 강요함으로써 월맹에 의한 월남의 무력 정복의 길을 열어 놓는 ‘면허장(免許狀)’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파리 평화 협정》에 의거한 월남에서의 “전쟁종결”과 “평화회복”은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다.


참고로 《파리 평화협정》은 협정의 이행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 월남군과 베트콩군 사이의 <양자 공동군사위원회>(TPJMC) • 남북 월남과 미국 및 중국 사이의 '4자 공동군사위원회'(FPJMC) • 영국, 프랑스와 소련 및 중국이 참가하는 '국제관리감시위원회'(ICCS) 그리고 영국, 프랑스, 소련 및 중국과 유엔사무총장, 그리고 파리평화회담 참가국들이 참가하는 '국제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및 월남과 베트콩 사이에 구성되는 '민족화해•화합국민회의'(NCNCR) 등 다양한 기구의 설치에 관한 합의를 담고 있었지만 이 가운데 어느 기구도 실제로 발족되어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르지 못했다.


그러한 뜻에서, 필자는 한반도 안보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든 분들이 《파리 평화 협정》과 소위 《판문점 선언》의 전문을 읽고 비교의 차원에서 그 내용을 천착(穿鑿)하고, 원근(遠近) 간에, 주변의 여러분과 공론(公論)의 소재로 삼아서 문제의 《판문점 선언》이 1973년 베트남 전쟁에 관한 《파리 평화협정》의 재판(再版)이 될 가능성이 없는지의 여부를 분명하게 판단함으로써 행여라도 이 중대한 문제에 관하여 우리 국민들이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되는 우(愚)”를 범하지 않도록 깨우치게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평화협정’이 ‘전쟁’을 막고 ‘평화’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2018년 8월 29일]


전쟁의 ‘책임’이 규명되고 ‘재발 방지’ 조치가 마련된 뒤라야 올바른 ‘종전선언’이 이루어지고 이를 내용으로 담는 ‘평화협정’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평화협정》(Peace Agreement)이 체결되면 과연 전쟁은 종결되고 평화가 회복되어서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부분적 대답을 제시하고 있는 학술논문이 있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Stanford University) 국제안보협력문제연구소(Center for International Security and Cooperation) 의 수석연구위원 스티븐 스테드만(Stephen John Stedman)이 쓴 《평화협정의 이행: 정책수립가들을 위한 교훈과 건의》(Implementing Peace Agreement in Civil Wars: Lessons and Recommendations for Policymakers)가 그것이다. 최근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가 겪었던 전쟁과 평화의 악순환을 주로 다룬 이 논문이 제시하는 문제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스테드만의 이 논문에 의하면, 1990년대에 내전(內戰) 중이던 아프리카의 2개 국가(1990년 앙골라; 1994년 르완다)에서 《평화협정》 체결 이후 재개된 전쟁으로 인하여 앙골라에서는 35만명, 르완다에서는 80만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라이베리아에서는 《평화협정》 체결 이후 재개된 전쟁이 8년간 더 지속되는 과정에서 15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0년에는 다시 앙골라와 시에라리온에서 평화협정이 깨지고 전쟁이 재발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 같은 사례가 아프리카의 몇 나라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고금동서(古今東西)를 불문하고 인류의 역사는 윤회(輪廻)를 되풀이 해 온 전쟁과 평화의 역사라고 할 만하다. 그 무수했던 전쟁은 ‘전승국(戰勝國)’이 ‘패전국(敗戰國)’을 ‘정복(征服)’하는 형태로 마무리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평화협정》이라는 이름의 ‘강화(講和)’의 방법으로 ‘전쟁’의 ‘종결’이 이루어진 경우도 적지 않게 있었다.


‘강화’를 통해 “전쟁의 종결”과 “평화의 회복”을 가져 왔던 역사적 사례를 몇 가지 든다면, 1618년부터 1648년까지 계속된 유럽에서의 ‘30년 전쟁’을 마무리한 《웨스트팔리아 평화조약》(Westphalia Peace Treaty·1648),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을 마무리한 《비엔나 평화조약》(Vienna Peace Treaty·1815), 제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한 《베르사유 강화조약》(Treaty of Versailles·1919), 제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Treaty of San Francisco•1952) 그리고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킨 《파리평화협정》(Agreement on Ending the War and Restoring Peace in Vietnam) 등이 거론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평화협정》들에 관해서는 하나의 ‘만고(萬古)의 진리(眞理)’가 있다. 그것은 어느 《평화협정》도 ‘전쟁 재발’을 방지하지 못했음은 물론 인류에게 ‘영속적인 평화’(Lasting Peace)를 가져다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전쟁’이 ‘정복’의 방법으로 마무리되는 경우 '전쟁의 종결'과 '평화의 회복'은 ‘전승국’들이 일방적으로 “전쟁 상태의 종결을 선언”하는 방법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통례였었다. 이 경우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유럽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 전후처리의 과정을 예거할 수 있다. 유럽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의 전후처리 방안의 대강은 1945년 8월12일자 《포츠담 합의》에 담겨 있었다.


그러나, 1945년 4월30일 히틀러(Adolf Hitler)의 자살로 나치독일이 붕괴됨에 따라 독일에서는 연합국의 상대방이 되어서 전후처리의 주체가 될 책임 있는 정치 주체가 소멸되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독일과 독일 수도 베를린이 서방 연합국측과 소련측 점령지역으로 분리된 가운데 동서 냉전이 급격하게 격화되어서 전후 독일의 ‘정치적 독립’이 장기간 표류하게 됨에 따라 전쟁의 ‘주범(主犯)’인 독일과의 ‘전쟁 종결’과 ‘평화 회복’ 문제 해결은 지연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연합국측은 1947년 2월10일 있었던 ‘파리 평화회담’의 결과를 통하여 이태리, 루마니아, 헝가리, 불가리아 및 핀란드 등 ‘군소 추축국(樞軸國)’들과는 개별적인 ‘평화협정’들을 체결했지만, 독일에 대해서는 《평화협정》의 형태로 ‘전쟁 종결’을 이룩하지 못한 가운데,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이 1946년 12월13일자 행정명령으로 “독일과의 전쟁 상태 종결”을 선언하는 일방적 조치를 단행하는 파행(跛行)이 초래되었고, 그 밖의 ‘전승국’들도 대부분 1950년 중에 미국의 예에 따라 대독 ‘전쟁 종결’을 일방적으로 선언했었다.


독일이 서독(‘독일연방공화국’ • 1949.7.23.)과 동독(독일민주공화국 • 1949.9.20.)으로 양분된 뒤 서독은 서독이 참가하는 가운데 국제적인 협정을 통한 ‘전쟁 종결’ 조치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했지만 미국은 주독 미군 유지를 위한 법적 근거의 필요성 때문에 그 같은 서독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유럽의 서방 ‘전승국’들은 1950년9월에서 12월에 걸쳐 뉴욕에서 열린 외상회담에서 “냉전체제 하에서 서독의 국가적 지위를 강화해주는 방안”의 하나로 “각국이 자체의 입법 조치를 통하여 공식적으로 독일과의 전쟁 상태를 종결”시키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1951년 중에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이태리, 뉴질랜드, 네덜란드. 남아연방, 영국, 그리고 미국이 각기 자국의 독자적 입법 조치를 통하여 “독일과의 전쟁을 종결”시키는 법적 조치를 마무리했으며 소련도 1955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서독의 “완전한 국가주권 회복”에 대한 국제적 인정은 1955년 5월5일자 《본-파리 협정》을 통하여 이루어졌으며 1990년 10월3일 출현한 통일 독일은 같은 조약의 규정에 의하여 1991년 3월15일자로 “전체 독일을 대표하는 ‘완전한 독립국가’로서의 지위”에 대한 인정을 획득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태평양 전쟁의 ‘전승국’들과 ‘패전국’인 일본 사이의 '전쟁 종결'과 '평화 회복'은 1951년 9월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강화회담’에서 타결되고 1952년 4월28일자로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Treaty of San Francisco)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샌프란시스코 강화회담’에는, ‘패전국’인 일본을 한쪽으로 하고, 다른 쪽에는 미국을 비롯해서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볼리비아, 브라질, 캄보디아, 캐나다, 실론,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쿠바, 체코슬로바키아, 도미니카, 에콰도르, 이집트, 엘살바도르, 에티오피아, 프랑스, 그리스, 과테말라, 아이티, 온두라스, 인도네시아, 이란, 이락, 라오스, 레바논, 라이베리아, 룩셈부르크, 멕시코, 네덜란드, 뉴질랜드, 니카라과, 노르웨이, 파키스탄, 파나마, 파라과이, 페루, 필리핀, 폴란드, 사우디아라비나, 남아연방, 소련, 시리아, 터키, 영국,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베트남 등 49개의 어중이떠중이 국가들이 ‘전승국’으로 참가했다.


중국에서 일본군에 쫓겨서 피난 길을 전전(輾轉)해야 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적 승인을 얻지 못했던 까닭으로 샌프란시스코 강화회담 참가가 배제되었던 한국은 ‘전승국’의 입장에서 ‘전후처리’에 관한 발언권을 행사하는 기회를 상실했고 대한민국의 독립 문제도 유엔을 통하여 해결하는 군색한 처지를 수용해야 했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① ‘제국’(帝國·Imperial Power)으로서의 일본의 지위를 공식적으로 박탈하고, ②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일본의 전쟁 범죄로 인한 피해의 당사자인 민간인과 전쟁 포로들에 대한 배상을 일본에 부과하며, ③ 일본이 불법적으로 강점했던 해외의 영토를 모두 반환함으로써 새로운 국경선을 확정하는 한편 ④ 제2차 대전 종결 후의 일본에 대한 연합국의 점령 상태를 종결하고 일본의 주권을 반환하는 등 《웨스트팔리아 평화조약》(1648), 《비엔나 평화조약》(1815), 《벨사이유 강화조약》(1919) 등 통상적인 《강화조약》의 틀을 사용한 것이었다.


일본에 대한 '전쟁 도발' 책임 차원에서의 ‘제재 조치’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벨사이유 조약》이 독일에 부과했던 것처럼 가혹한 것은 아니었지만 ‘패전국’에 대한 ‘전쟁 책임’을 따지고 이에 대한 징벌적 조치를 포함했다는 점에서 과거의 통상적인 《강화조약》의 틀을 답습한 것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남북 월남과 미국 및 중국 사이에 진행된 ‘베트남 전쟁 종결을 위한 파리 협상’의 결과로 1973년 1월27일 체결된 《베트남에서의 전쟁 종결과 평화 회복을 위한 협정》(Agreement on Ending the War and Restoring Peace in Vietnam)은 이 같은 과거의 《평화협정》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평화협정》의 틀을 세상에 등장시켰다.


베트남 전쟁에 관한 ‘파리 평화협정’에는 ‘전승국’도 ‘전패국’도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전쟁의 조기(早期) 종결에 의한 “월남 탈출”에 마음이 조급했던 미국은 과거의 전통적인 《평화협정》 방식을 포기하고 공산주의자들의 ‘인민해방전쟁’론에 기초한 새로운 《평화협정》 방식을 수용했다.


‘민족’, ‘자주’, ‘평화’ 및 ‘외세 배격’ 등 《파리평화협정》에 키워드로 등장한 어휘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인민해방전쟁’론에 입각하여 서방 세계와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정치적 의미’를 기지고 사용하는 ‘이념화’된 어휘들이었다.


《파리평화협정》의 타결은 각기 미국과 월맹측 협상 주역들이었던 키신저(Henry A. Kissinger)와 레둑토(Le Duc Tho)에게 1873년도 노벨 평화상을 안겨주었지만 [레둑토는 수령을 거부] 그들이 쌓아 올린 베트남의 ‘평화’의 운명은 모래성에 불과했다.


월맹의 공산주의자들은 《파리평화협정》의 ‘민족’, ‘화해’, ‘단결’, ‘자주’, ‘평화’ 및 ‘외세 배제’ 등의 ‘이념화’된 어휘들로 미국과 월남의 손발만을 일방적으로 묶어놓고 미국과 한국 등 동맹국들의 철군을 강요한 뒤 1974년부터 《파리평화협정》은 아랑곳함이 없이 월남을 상대로 일방적인 군사적 공격을 감행하여 1975년 4월30일 탱크를 앞세운 월맹군이 월남 수도 사이공을 함락시킴으로써 무력에 의한 월남의 공산화 통일을 달성했었다.


《파리평화협정》 타결 후 45년, 그리고 이 협정의 결과로 남북 월남의 무력에 의한 통일이 초래된 두 43년이 경과한 2018년의 시점에 와서 이제는 한반도에서 《파리평화협상》의 유령(幽靈)이 되살아나려 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사실상 뇌관 설치까지 끝낸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탄도 미사일 개발 계획을 저지, 해체하려는 국제사회의 막바지 노력이 엉뚱하게도 궤도를 이탈하여 한반도에서 《파리평화협정》을 재현(再現)시키는 쪽으로 발을 헛디디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같은 우려와 공포심을 자극하고 증폭시키고 있는 장본인이 바로 ‘문재인(文在寅)의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금년 초부터 “북한의 비핵화”를 ‘미끼’로 사용하여 한반도에서 난데없이 북한이 요구하는 《종전선언》을 포함하여 베트남 식 사이비(似而非) 《평화협정》을 재현시키는 데 급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 징표가 지난 4월27일 문재인과 김정은 사이에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번영 및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다. 《판문점 선언》은 ‘민족’, ‘화해’, ‘화합’, ‘단결’, ‘자주’, ‘평화’ 등 ‘민족해방전쟁’론 특유의 ‘이념화’된 어휘들을 키워드로 그 문면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1973년의 《파리평화협정》과 궤를 함께 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말하는 《종전선언》은 단지 “한국전쟁은 종결되었다”는 한 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비록 ‘문재인의 대한민국’이 아직 공개적으로 이에 화답(和答)하고 있지는 않지만, ‘김정은의 북한’이 거론하는 《종전선언》에는 북한이 요구하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 제거”와 “북한 체제에 대한 안전 보장”을 명분으로 하는 군사적·정치적·외교적 ‘요구 조건’의 리스트가 꼬리표처럼 붙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실은, 《6.25 전쟁》의 경우는 45년 전의 《정전협정》을 통하여 《종전선언》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많은 문제들이 이미 다루어진 상태이니 만큼 《종전선언》을 《평화협정》으로부터 분리하여 별도로 다룰 이유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느냐의 여부에 관하여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따라서, 《종전선언》은 《평화협정》과 분리하여 별도로 다룰 것이 아니라 《평화협정》의 일부로 수렴하여 다루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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