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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6-21 09:42:40
  • 수정 2022-10-09 15:5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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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씩 도슨트 봉사를 하고 있는 금아 피천득기념관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다섯 살 내외의 유치원 아이로부터 고령의 노인까지 남녀노소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방문이다. 홍보의 부족으로 아직 그런 데가 있는 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 롯데월드 민속박물관에 왔다가 덤으로 구경을 하고 가는 사람들도 꽤 된다. 그런데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꼼꼼히 둘러보며 감명 깊게 보고 가는 이도 있고, 정말 싱겁기 그지없게 고개만 한 바퀴 휙 돌려보고 나가는 사람도 있다.


금아 선생 삶의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는 연보를 찬찬히 보는 사람은 그 분이 쓰시던 물건이며, 지은 책이며, 생전에 사용하던 책상, , 침대까지도 유심히 보고 간다. 그런데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분명 금아 선생의 수필을 공부했을 유치원 교사나 젊은 층들이 의외로 금아 선생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사실에 아연해 지곤 한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와 선생의 좌상 옆에 앉히고 고작 사진을 찍는 것으로 기념관에 와 본 것을 기념하고 가버린다.


아이들을 잠시 붙들고 설명을 해보기도 하지만 그나마 관심은 어릴 적 선생이 쓰셨던 도령모나 난영이가 있는 인형의 방이 고작이다. 그들의 흥밋거리가 되지 못함일 게다. 하지만 연령대가 높아지면 많이 달라진다.


일흔이 넘어 보이는 어르신들은 주로 98세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제일 먼저 눈에 띄나 보다. 그만큼 당신네들 삶과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나도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금아 선생의 나이에 자신의 나이를 견주어 봄일 터였다. 그래서 나도 금아 선생만큼 산다면 아직도 20년은 더 살겠구나 하는 안도와 더러는 염려의 마음일 것이다.


그 다음은 어디서 태어났고 공부 했으며, 무얼 했던 사람인가로 관심이 옮겨간다. 그런데 중년 여성쯤 되면 선생의 작품에도 상당히 관심을 갖지만 가족들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자녀들은 얼마나 되고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는가, 어디서 사는가, 이 또한 자신들의 평소 관심사와 연결되어 있음이다.


오늘은 일흔이 넘음직한 두 분이 오셨는데 연보를 꼼꼼하게 살펴보며 쓰시던 물건, 서재와 침대 등을 주의 깊게 보고 계셨다. 그런데 문을 나서며 혼자 말처럼 두 분이 나누는 말에서도 역시 아흔 여덟까지 사셨구먼!’ 하며 아흔 여덟에 힘이 주어진다. 관심거리란 결국 지금 나와 가장 밀접한 것일 수밖에 없다.


가끔씩은 외국인들도 찾아와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그들의 관심은 선생이 사시던 모습인 것 같다. 책상, 서재, 작은 침대, 옷가지 그리고 주요 저서 및 유품들까지 정성스레 카메라에 담는다. 어쩌면 저들은 돌아가서 이걸 전형적인 한국인 삶의 현장으로 소개할 지도 모른다.


각양의 사람들을 보면서 새삼 내 지나온 삶의 날들이 돌이켜 봐 진다. 정말 찬찬히 신중하게 들여다보면서 결정하고 시행해야 했던 것들을 건성건성 지나치고 넘겨버린 것은 얼마였을까. 오히려 나와 관계도 없을 것, 내 분수에 맞지도 않을 것에 마냥 집착하고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한 체 아까운 세월만 허비하지는 않았을까. 그러다 가야 할 길이 늦어지거나 꼭 하고 넘어가야 했을 일들을 놓쳐 발을 동동 굴렀을 일은 또 얼마였겠는가. 하지만 후회하고 안타까워해도 한 번 지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시간이요 기회가 아니던가.


그렇고 보면 내 삶 중에도 유독 관심이 많았던 것이 있었고 더러는 무관심인 양 허세를 부린 것도 있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삶이란 관심 아니면 무관심으로 일관하게 마련 아닌가. 이 소중한 공간에 귀한 자료를 비치한 것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금아 선생의 삶과 문학을 통해 배움을 가지라는 아름다운 뜻일 게다. 그러나 그런 의도만큼 사람들도 관심을 가져 주겠나.


관심도 음식 맛 같다. 일단 구미가 당겨야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어찌 세상이 내 입맛대로 살아지는가. 해서 억지로라도 관심을 기울이다보면 진짜로 좋아지기도 하고 이해도 되듯 세상사 모든 일은 저절로 마음이 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런 내 마음을 알겠다는 듯 금아 선생도 싱긋이 웃고 계시다. 그리 보니 아이들의 웃음과 선생의 웃음이 많이 닮았다. 그건 마치 관심 있는 것에만 관심 있다는 아이들 마음이 내 마음이라는 의미 같기도 하다. 휘 둘러보고 나갔다고 탓한 내 생각이 잘못일 수도 있겠다. 어찌 그들 마음이 내 마음일 수 있으랴. 어쩌면 지금 내 관심도 여기 있지 않을 수 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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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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