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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式 파괴적 혁신, 9년만의 '보수 탈색' 시작된다 - '파괴적 혁신'으로 보수 색깔 상당부분 지울 듯 - 민주당 비대위 시절엔 북한 향해 '궤멸' 언급도 - 좌우 이념 대결 대신 위·아래 계층 갈등에 주목
  • 기사등록 2020-05-31 11:56:33
  • 수정 2020-06-01 10:5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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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가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국조직위원장 회의에 참석 후 차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래통합당의 가치·노선·정강·정책을 망라해 '꼰대'라는 오명이 붙은 당의 체질까지 확 뜯어고치는 고강도 쇄신을 예고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구조조정은 보수의 재건보다 역으로 보수진영을 갈아엎을 '파괴적 혁신'이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김 위원장은 통합당을 살리기 위해 당 재건에 나섰지만 이에 따른 파장은 통합당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존 정당 질서 체계를 무너뜨리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는 회고록에서도 "정치인들은 겉으로는 혁신을 말하면서도 현 상태를 유지 관리하는 '지속적 혁신' 수준에만 머물지 시스템의 근본을 바꾸는 '파괴적 혁신'은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이 지금까지 낸 메시지 등을 종합하면 '김종인표 쇄신'은 기본적으로 창조적 파괴, 파괴적 혁신에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종인의 창조적 파괴는 9년 전에도 시도한 바 있다. 2011년 12월 한나라당(통합당 전신) 비상대책위원 시절 "한나라당이 창조적 파괴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브랜드를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김 위원장은 요구하면서 정강에 명시된 보수 용어를 상당수 삭제한 바 있다.


민주당 비대위 대표 시절인 2016년에도 김 위원장은 창조적 파괴 전략을 썼다. 그는 북핵 실험으로 안보 불안이 가중되자 진보 진영에서 북한을 향해 쓰길 꺼려하는 '궤멸'이라는 용어를 언급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대북 친화 정책만을 고수하는 민주당에 등을 돌린 유권자를 다시 돌려 그해 총선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봤다.


한나라당 비대위에 참여한 데 이어 9년 만에 다시 같은 당 비대위를 이끌게 된 지금은 단순히 정강에서 '보수' 용어를 삭제하는 수준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의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정당 모델을 제시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진보, 보수, 중도라는 말 쓰지 마라. 자유우파라는 말도 쓰지 마라"고 김 위원장이 통합당에 지시한 것도 이념에 치우친 정당으로는 국민적 지지를 얻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 안팎에선 독일 기독민주당(기민당) 사례가 김 위원장의 쇄신 방향을 예상할 수 있는 일종의 척도가 될 것이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김 위원장은 최근 원외조직위원장을 상대로 한 비공개 특별강연에서 "독일 기독민주당이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깨닫고 정책 수정을 했듯 통합당도 보수, 시장만 고집하지 말고 현실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의 이념에 기반한 진영대결의 틀을 김 위원장이 깨려할 수도 있다. 기존에는 좌우 진영 세력을 최대한 결집해 선거 때마다 힘겨루기를 반복했지만, 사회적으로 좌우 이념 갈등 대신 위·아래 계층 갈등이 더 심각한 만큼 기성 정당도 이런 흐름에 맞춰 유연성 있게 변화해야 한다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보수와 진보 이념에 기반한 진영 대결에만 골몰하기보단 정규직 대 비정규직 갈등처럼 정치권이 '위·아래 갈등'을 해소하는데 더 중점을 둬야 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대기업 재벌, 정규직, 부유층, 기득권 등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에서 노동자, 서민, 사회적 소수자와 같은 '약자'를 더 챙기는 쪽으로 통합당의 변화를 김 위원장이 유도할 가능성이높다.


정책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수정당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에 기인한 정책만 집착할 경우 진보 진영에 맞대응하기 힘든 만큼 보수의 색깔을 빼는데 중점을 둘 것으로 관측된다.


좌파진보 정당의 정책이더라도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건 이념이나 정책의 '색깔'을 떠나 통합당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김 위원장의 소신이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자 진보정당의 전유물로 여겼던 기본소득제, 전국민 고용보험제 등 정책이 보수정당인 통합당 안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통합당은 4·15총선에서 '진보 따라잡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바 있다. 민주당이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공약으로 띄워 중도표를 상당수 잠식한 것과 달리, 통합당은 전국민 지급을 민주당보다 먼저 발표하고도 정작 당 내에서 재정 악화를 우려한 반대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등 엇박자를 냈다. 당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보 진영의 정책을 차용하려다 내부 갈등만 일으켰던 셈이다.


다만 김 위원장이 '보수' 색채를 완전히 지우고 나설 경우 당 내 거센 반발에 직면할 수도 있다. 통합당은 올해 초 보수대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미지 쇄신을 위해 해외 주요 보수정당의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의 보수정당인 자민당을 롤모델로 비교하기도 하지만 김 위원장은 이에 부정적인 편이다. 일본과 한국의 국민 성향 자체가 다른데다 자민당은 외형상 보수정당이지만 정책의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유연성을 보여 장기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유권자 성향이 갈수록 보수에서 진보 쪽으로 기울고 있는 추세여서 당 노선이나 정강 정책을 보수로만 한정할 경우 외연 확장이 쉽지 않아 선거전에서 계속 불리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이 당을 해체하는 수준의 강력한 쇄신에 나서면서 야권 지형에 어떤 변화를 불러 일으킬지도 관심이다.


대선이나 지방선거가 목전에 있지 않은 만큼 당장 지각 변동을 일으키기보다는 통합당 안에서 개혁을 마무리한 다음 내년 대선 정국에서 '새판 짜기'에 돌입하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야권 통합에 회의론자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통합당이 '황교안 체제'에선 야권의 분열을 우려해 개혁보수 성향의 새로운 보수당까지 합당하며 보수 결집에 나섰지만, 정체성에 엄연히 차이가 있는데도 표만 의식한 통합은 명분 없는 이합집산의 운동장에 불과하다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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