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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31 08:51:29
  • 수정 2020-06-20 08: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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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흉상 옆에 선 김홍걸 [사진=김홍걸 페이스북]


대한민국 국군 건군(建軍)의 한 주역(主役)이자 6.25 전쟁의 영웅(英雄)으로 백수(白壽)를 넘기고 있는 백선엽(白善燁) 장군의 유고(有故) 시 서울시 동작동 국립묘지 안장 문제를 놓고 문재인(文在寅) 정권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새삼스럽게 ‘친일파’ 시비를 걸면서 일부 ‘친일파’ 논란 대상 고인(故人) 묘소(墓所)의 ‘파묘(破墓)’를 거론하는 사태가 빚이지고 있는데 여기에 더불어시민당이라는 이름의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 비례후보로 이번 4.15 총선거에 출마하여 21대 국회에 진출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 김홍걸(金弘傑)이 덩달아 숟갈을 들고 나서고 있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김홍걸의 이 같은 행동은 지각(知覺) 있는 이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드는 이상한 짓이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 김대중 자신이 소위 ‘친일’ 논란에서 자유스럽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약, 문재인 패거리들이 ‘친일’ 문제를 빌미로 가령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현충원 내 표소를 파묘하려고 한다면, 여기서 과연 ‘형평(衡平)’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 적절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의 파묘 역시 불가피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이 ‘친일’ 행적의 주인공인가? 이 질문은 이 역시 아직 역사적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문제이다. 김대중이 왜정(倭政) 시절에 ‘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로 소위 창씨(創氏) 개명(改名)을 하고 학교에 다녔을 뿐 아니라 그 창씨 이름으로 1945년 해방을 맞이했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공인된 사실이다. 그는 왜정 시대에 일본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남겼지만 그 밖에는 왜정 말엽(末葉)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행적은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이 시기의 김대중의 행적에 관해서는 1973년 그가 일본으로부터 납치되었을 무렵부터 거의 20여년간 영국의 더 타임즈와 미국의 뉴욕 타임즈 토쿄 주재 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김대중과 특별하게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헨리 스캇 스콧(Henry Scott Stokes) 기자가 2013년12월 일본에서 펴낸 “한 영국 기자가 본 연합군 전승(戰勝) 사관(史觀)의 허망(虛妄) - 나의 역사관은 어떻게 변천했는가?”(Fallacies in the Allied Nations' Historical Perception as Observed by a British Journalist)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김대중은 한국군에 입대한 일은 없지만 일본제국(日本帝國) 육군에 지원하여 근무한 사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그는 일본군 하사관(下士官)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김홍걸은, 그가 어느 정도 역사에 대한 연찬(硏鑽)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백선엽 장군을 가리켜 “친일파가 맞다”고 단정하면서 그가 사후(死后) 동작동 현충원에 안장되는 것을 시비하기에 앞서서 헨리 스캇 스콧이라는 한 시기의 대기자(大記者)가 저서에 기록해 놓은 그의 아버지의 ‘친일 행적’은 우리가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에 관하여 스스로 고민해야 마땅한 것이 아니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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