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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27 14:27:41
  • 수정 2020-06-20 08:3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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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학계에서는 특히 1945년 해방 이후의 한국 현대사 내용을 둘러싼 진통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진통의 진원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에 관한 좌우의 대립에 있는 것은 공지의 사실입니다. 이 같은 현상이 심화된 것은 1980년대 이후 각 대학의 한국사 교육 및 연구의 흐름이 미국인 학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 공인되어 있습니다. 커밍스는 1961년 출간한 그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Origins of the Korean War)”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6.25 전쟁 북침설”을 주장했는데 1980년대 이후 대학에서 공부한 역사학도들이 그의 “한국전쟁의 기원”에 경도(傾倒)되어 있는 지적인 마비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커밍스 자신은 1990년대 구 소련의 한국전쟁 비밀자료 공개 이후 그의 “6.25 북침설”을 철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당초의 “6.25 북침설”에 세뇌되어 있는 많은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커밍스의 “북침설 철회” 사실을 수용하지 않는 비정상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브루스 커밍스에 관하여 미국 로스앤젤스에서 한국 교민사회 속의 ‘종북’ 세력을 모니터하고 있는 미국인 로렌스 펙(Lawrence Peck) 씨가 5월20일 보내온 글을 번역하여 소개합니다. 참고되시기 바랍니다. [李東馥] 


▲ 브루스 커밍스 [사진=유튜브]


브루스 커밍스는 비단 그가 교편을 잡았던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뿐 아니라 모든 미국 대학의 한국 현대사 분야에서 스스로 일종의 ‘종교재판소장(Grand Inquisitor)’의 위치를 구축한 인물이다. 그는 박사 학위를 준비하는 젊은 학생들의 염라대왕으로 군림했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내가 알고 지내는 두 명의 한국인 학자에 의하면. 그는 한국 현대사 분야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에 관한 정보를 치밀하게 입수한 뒤, 그곳이 메인(Maine) 주가 되었건 아리조나(Arizona) 주가 되었건 가림이 없이, 즉시 이 학생이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있는 대학에 대해 자신을 그 학생의 학위 논문 심사 교수의 하나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했고 만약 그 학생들이 그가 강요하는 한국 현대사관(觀)을 수용할 것을 거부할 경우에는 학교 당국으로 하여금 그들에 대한 박사학위 수여를 거부하도록 작용하거나 또는 그 학생들의 연구에 난관을 조성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 왔다고 한다.


대부분의 미국 대학들은 한국 현대사 분야의 일인자(一人者)로서의 그의 명성을 수용하는 한편 그로부터의 보복을 두려워 한 나머지 그의 요구에 굴복하여 그로 하여금 그러한 학문적 독선을 향유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 현대사 분야에서 그에게 추종하기를 거부하는 연구자들을 철저하게 도태시켰다.


그리고, 바로 이 같은 사정 때문에 한국 현대사를 주제로 하는 대부분의 박사학위 논문들의 작성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중요하기 짝이 없는 커밍스의 승인을 획득하기 위한 방편으로 논문의 서문에서 커밍스를 찬양하고 그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데 정력을 기울이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는 한 대담자와의 대담에서 그가 지적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오웬 래티모어(Owen Lattiomore)라고 실토했었다. 래티모어는 스탈린(Josef Stalin)과 모택동(Moa Zedong)의 최상급 추종자인 친공산주의 학자로 구 소련의 수용소(Gulag)의 존재를 부정했고, 구 소련의 공작원들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했으며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한반도 전역 지배를 옹호했던 자이다. 래티모어가, 예컨대 ‘태평양문제 연구소’(Institute of Pacific Relations)에서 발간했던 ‘AMERASIA’ 같은 간행물에 기고한 글에서 아시아 지역에서 추구되었던 공산주의 노선을 얼마나 찬양했는지를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비록 그가 공개적으로 이를 자인하지는 않았지만, 커밍스가 래티모어와 똑같은 길을 걸었던 자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커밍스는 1988년에 발간한 책과 제작한 도큐멘타리 영화에서 한국 전쟁에서 “미군이 세균 전을 전개했다”는 터무니없는 진부한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을 옹호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1987년에 발생한 북한 공작원에 의한 대한항공 858기의 공중 폭파 사실조차 부정했었다. 나는 또한 그가 그의 한 책에서 “이미 1940년대에 미국 내에 친북 지하조직이 존재했었다”는 엉터리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2010년의 9.11 테러 사건에 관해서도 엉뚱하기 짝이 없는 주장을 해서 듣는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었다.


그는 미국 내에 존재하는 과격한 친북 단체이자 노골적으로 인종주의적이고 반유태인 단체인 ‘재미 한국인 전국연합회’(KANCC•Korean American National Coordinating Council)의 모임에 참석하여 강연을 하기도 했다. KANCC는 미국인들에 대한 테러 및 살인 행위를 찬양하고 고무하는 단체로 이 단체가 관련된 인종적 및 종교적 증오심 조장과 북한 정권에 대한 노예적 지지 때문에 ‘시몬 비센탈 연구소’(Simon Wisenthal Center)의 쿠퍼(Cooper) 목사로부터 지탄되기도 했다. KANCC의 각종 회의에 참석하여 경의를 표했던 커밍스가 KANCC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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