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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2-09 23:07:18
  • 수정 2020-02-09 23: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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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LA에서 열린 애국운동포럼에서 발제하는 김광진 박사 [사진-김회장/ Why Times]


남가주한국예비역기독군인회(회장 김회창)에서 주관하는 애국운동포럼이 동경독립선언 기념일인 2월 8일 토요일 오전 11시 LA 한인타운 말씀새로운교회에서 애국운동의 두 축인 "이승만과 안창호" 주제로 미주 3.1여성동지회(회장 그레이스 송)의 회원 7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1부 예배에서는 차기학 목사의 인도로 류당열목사가 기도하고, 미주3.1 여성동지회의 찬양, 김택규목사의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는 제목의 설교, 주사랑선교무용단 찬양과 원태어 장로의 봉헌기도후 최학량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2부에서 발제자로 나선 감리교회 원로 김광진 박사는 이승만 안창호 가족이 몸 담았던 교회 담임목사이었던 것과 유학 후 쓴 박사논문인 '이민 공동체 갈등과 화해' 저서에 기반하여 이승만 안창호 두 애국자의 삶을 핵심적으로 언급하였다.


김 박사는 이승만 박사를 잘 준비된 젊은 청년으로 피력하면서 그의 이씨왕조 16대손으로 출생 사건, 감옥에서 보낸 6년 가까운 연단에서 선교사가 넣어준 엄청난 책들을 독파하였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배재학당에서 공부하여 19통의 선교사들의 추천서 지니고 미국 유학해 명문인 조지워싱턴대, 하바드대, 프린스턴대 국제정치학박사를 받은 준비와 훈련된 대통령으로 소개하였다.


이 박사는 프린스턴대에서 후에 미국 대통령이 되었던 윌슨 교수를 만났고, 그는 한국 대통령으로서 평생 동지를 얻었으며, 국제외교의 판을 확보하는 미래의 한국을 준비한 지도자로 서게 되었다. 또한 이 박사는 미국의 견해에 직설적으로 반대하여 죽음의 위기도 겪으면서 한국의 주권을 지켜가되 미국이 동반자 의식을 갖도록 정치외교력을 활용하였다고 언급하였다.


김광진 박사는, 이승만 박사가 국제적인 한국을 건국하였고, 한미동맹을 맺음으로 반공국가로 견고한 한국을 세웠으며, 박헌영의 공산당을 내쳤고 박사 논문 제목에 있는 "미국의 영향하에 있는 중립주의"를 버리고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노선인 대통령 중심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첫 국회의장이 되고 건국 대통령이 됨으로 제도화하였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김박사는, 안창호 애국지사는 이승만 시대에 평안도에서 출생하여 17살에 한성에 와서 허기진 가운데 전보선대에 붙은 전단지를 보고 찾아간 곳이 장로교 선교사가 운영하는 경신학교였는데 그곳의 도움을 받아 졸업 후 고향에 가서 점진학교를 설립하고 농촌계몽에 치중했고, 후에는 국민복지에 치중했다고 한다.


안 지사도 윤봉길 건으로 투옥되어 4년 감옥생활을 하였고, 안지사는 20살 정도이었는데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와서는 겸손하게 초등학교 5학년부터 배우는 열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곳 LS USC근처의 복숭아밭에서 일꾼들과 일하고 합숙소 캠프생활을 하면서 밤에는 예배와 성경을 가르치는 등 깨우는 교육열에는 이승만과 비슷한 면모가 있었음을 언급하며 한인단체를 만들어 대한인국민회를 그리고 젊은 층을 위해 흥사단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이승만 내각에서 내무부장관을 맡을 정도로 임시정부의 협력자이었는데 감옥생활의 수난으로 일찍 운명을 달리했다고 했다.


또한 아내 이혜련을 맞을 때에 정신여학교에서 공부해야 결혼할 수 있다고 해 수업받았고 결혼후 부부가 유학 와서 미국에 3남2녀 가족은 정착하고 본인은 한국을 왔다갔다하며 힘들게 애국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했다.


▲ 지난 8일 LA에서 열린 애국운동포럼 [사진-김회장/ Why Times]


이어 이승만 관련 질의자 김회창 박사는 이 박사에게 있는 국가체제를 왕조 전체주의 체제후 대통령중심제로 전체주의 문화 속에 건국하게 하고 국민의 삶을 보듬는 성육신적인 정치철학이 각급 기관에 채플린(군목 교목 원목 등) 제도로 보듬는 정신이 표출되었고, 휴전협정과 한미군사보호협정에서 미국의 역할을 굳게 한 것은 열강에 둘러쌓인 한국을 상황화 리더십의 발휘로 유지한것이 아닌가, 당시 SNS라면 서예일텐데 이박사의 서예실력 발휘가 정원출입구 돌비와 사무실 액자로 남아서 오늘날까지 깊숙이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질의하였다.


이에 김광진 박사는 이승만의 국제외교 통찰력과 국가기반 확보는 남다른 지도력을 발휘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두 번째 안창호 지사 관련 질의에서 그레이스 송 회장은 대한인국민회 설립 후에 흥사단 설립에 대하여 질의하였고, 젊고 어려울 때에 고향의 점진학교 설립 운영자금의 출처를 질의하였는데 김광진 박사는 선교사들과 연관되었음을 생각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박사나 안 지사 모두 미개한 나라에 매스매디어를 만들고 성경을 배우고 가르친 국민을 깨우는 교육 계몽작업이 예수의 교훈과 삶을 닮은 실천이었음을 보게 해 주었다. 한국이 독립되어 기독교 정신이 기반이 되는 나라를 비전으로 소지하고 있었음을 피력해 주었던 포럼이었다.


학도병으로 6 25 참전하였고, 미공화당 카운실 회원이신 김재열 어르신은 고국의 현실이 지도자를 잘못 만나 위태로운데 두 애국지사를 통하여 갈 길을 보았고, 이승만 박사의 국군포로 석방은 이승만을 미국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지도력이었다고 언급해주었다.


마지막의 애국기도는 이희선 장로, 모든 참석자들이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고 이충애 목사의 애찬감사기도후 미주 3.1 여성동지회가 후원한 오찬을 나누었다.


예비역기독군인회(KVMCF SC)는 매월 둘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윌셔와 버질 코너 4층 말씀새로운교회에서 애국이벤트 신앙행사로 정규예배모임을 가진다. 다음 모임은 3월14일 토 오전 11시에 있다

연락 213 268 9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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