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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12-20 08: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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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3월 18일, 핵탄두를 들여다보는 김정은 [사진=KCNA]


북한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금년 말 ‘시한(時限)’을 앞두고 미국과 북한 사이에 또 한 차례 ‘벼랑 끝 대결’(Brinkmanship)이 비등점(沸騰點)을 향하여 치닫고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벼랑 끝 대결’이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가져 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 이유는 지금 거론되고 있는 외교적 해결 노력이, 북한의 핵문제가 이제는 더 이상 ‘비핵화’(Denuclearization)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여전히 ‘비핵화’의 차원에서 해결하겠다는 비현실적인 발상(發想)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江)에서 놀아야 할 배가 산(山) 위에서 놀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핵문제에 대한 ‘비핵화’는 북한이 ‘비핵(非核) 국가’일 경우에 해당되는 해법(解法)이다. 북한은 2006년10월9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진도(震度) 0.7∼2 kt의 첫 지하 핵실험 실시 사실을 공표한 이래 그 동안 도합 여섯 차례의 지하 핵실험을 실시했다. 북한 스스로는, 2006년10월의 첫 지하 핵실험 때 이미 “핵무기 개발을 완료했다”고 주장했었다. “더 이상 ‘비핵 국가’가 아니라 ‘핵보유국’이 되었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 때 북한의 첫 번째 지하 핵실험을 오히려 “실패한 실험”으로 평가절하(平價切下)했었고 그 뒤 북한이 2016년1월6일 진도 7∼16.5 kt의 다섯 번째 지하 핵실험 성공 사실을 밝히면서 이 실험이 “수소폭탄 폭발 실험이었다”고 주장할 때까지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완료” 주장을 액면(額面) 그대로 수용할 것을 거부했었다.


스웨덴의 SIPRI(Stockhole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스톡홀름평화연구소)를 비롯한 해외의 저명한 핵무기 평가기관들과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등 정부기관들은, 2015년까지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실태에 대하여, 완제품으로서의 핵무기가 아니라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239의 추정 보유량을 토대로, “2∼4개의 핵무기 보유”로 평가하면서도 “북한의 주장에 의하면”이라고 주기(註記)하는 것을 잊지 않았었다. “‘핵보유국’이 되었다”는 북한의 주장에 대하여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실태에 관한 국제사회의 이 같은 평가는 2017년9월6일 실시된 진도 70∼280 kt의 여섯 번째 지하 핵실험과 같은 해 11월28일 실시된 ‘화성-15호’ ICBM의 발사 실험을 계기로 일변(一變)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실태에 관한 국제사회의 평가를 근본적으로 뒤집는 전환점(轉換點)이 된 것이다. SIPRI를 비롯한 모든 국제 평가기관들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정부기관들까지도 이제는 북한을 더 이상 ‘비핵 국가’로 평가하지 않는다. SIPRI의 “군비와 군축 및 국제안보에 관한 2019년 연감(年鑑)”(2019 Yearbook on Armament, Disarmament and International Security)은 북한이 이미 ‘60개의 핵탄두(核彈頭)’를 보유한 "아홉 번째의 핵보유국"으로 기록하고 있다.


물론, 2019년 말의 시점에서도, 북한이 아직 ‘핵보유국’(Nuclear Club)으로 “공인(公認)”된 것은 아니다. 지금도 지구상의 “공인된 핵보유국”은 여전히 5개국이다. 원래 핵무기를 최초로 개발하는데 성공한 나라는 미국(1945)이다. 미국이 1945년 히로시마(廣島∙8월6일)와 나가사키(長崎∙8월9일) 두 곳에 원자탄을 투하함으로써 8월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이끌어내자 원자폭탄의 위력을 목격한 세계 각국에서는 치열한 원자폭탄 개발 경쟁이 벌어졌고 그 결과 미국에 이어서 구 소련(1949), 영국(1953), 프랑스(1960), 중국(1964) 등의 ‘공인된 핵보유국’이 등장하게 되었다.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핵무기는 다양화(多樣化)를 통하여 그 위력이 천문학적으로 커졌다. 1945년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초토(焦土)로 만든 원자폭탄은 각기 우라늄 265와 플루토늄 269를 사용한 ‘표준탄’으로 모두 TNT 20 kt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류는 원자폭탄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미국(1952)을 시작으로 구 소련(1953), 영국(1957), 중국(1967), 프랑스(1968)가 순차적으로 수소폭탄 보유를 선언했다.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사이에는 엄청난 파괴력의 차이가 있다. 우라늄 235와 플로투늄 239 등 ‘핵분열’(Nuclear Fission) 물질을 이용한 원자폭탄의 폭발 위력이 kt(TNT 1,000 kg) 급인데 비해 ‘핵융합’(Nuclear Fusion) 물질인 중수소(重水素)를 이용한 수소폭탄의 폭발 위력은 원자폭탄에 비해 1천 배 이상인 메가톤(TNT 100만 kg)급이다.


뿐만이 아니다. ‘절대무기(絶代武器)’를 추구하는 인류의 무한 경쟁은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에 그치지 않고 ‘중성자탄(中性子彈∙Neutron Bomb)’∙‘코발트 폭탄’ 같은 ‘염화(鹽化) 폭탄’∙‘순수 융합(Pure Fusion) 폭탄’∙‘EMP(전자파) 폭탄’∙‘반물질(Anti-matter) 폭탄’ 등 보다 위력적인 ‘절대무기’ 시대의 도래(到來)를 예고하고 있다.


이 같은 핵무기의 다양화와 다원화(多元化)는 이미 1960년대부터 전 지구 차원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핵무기에 대한 이 같은 공포심이 1970년 ‘핵확산금지조약’(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의 등장을 가져왔다.


이 조약의 목적은 “이 조약에 대한 세계 각국의 가입 신청이 시작된 1968년1월1일의 시점에서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5개국(미국∙소련∙영국∙프팡스∙중국)에게만 ‘공인된 핵보유국’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전제로 ① ‘핵보유국’이 핵무기와 핵무기 제조 기술 및 핵물질을 ‘핵 비보유국’으로 확산(擴散)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②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협력을 증진하며 ③ 궁극적으로 전 세계적인 핵군축(核軍縮)과 전면적이고 완전한 군축을 촉진한다는 것이었다.


당초 매 5년마다 효력 연장 여부를 결정하게 되어 있는 이 조약은 1995년5월 유효 기간이 무기한 연장됨으로써 인류 역사 상 가장 오랜 기간 효력을 유지하는 군축 조약이 되었다. 2016년8월 현재 전 세계 191개국이 이 조약에 가입해 있다.


유엔 회원국 가운데서는 인도, 이스라엘 및 파키스탄과 이 조약 발효 이후 독립(2011년)한 남 수단이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이들 4개국 가운데 이스라엘은 이미 1964년에, 그리고 인도와 파키스탄은 1980년과 1985년에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여 각기 ‘비공인 핵보유국’이 되었다. 1985년 NPT에 가입했던 북한은 2003년 이를 탈퇴하고 국제사회와의 격화되는 갈등 속에서 독자적 핵개발을 강행하여 이제 네 번째의 ‘비공인 핵보유국’이 되었다. 이로써 지구상에는 도합 아홉 개의 ‘핵보유국’(‘공인’ 5개국+‘비공인’ 4개국)이 존재하게 되었다.


NPT 체제 하에서 불법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여 보유하려는 노력을 전개한 나라는 그 밖에도 있었다. 남아연방이 1985년 핵무기 개발을 완료하여 도합 6발의 원자폭탄을 보유했었으나 유엔의 압력에 굴복, 1990년 자진하여 이를 폐기했으며 가다피(Muhammar Gadaffi)의 리비아와 후세인(Sadam Hussein)의 이락이 시도했던 핵무기 개발은 미국에 의하여 좌절되었다. 지금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을 싸고 이를 저지하려 하는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와 이란 사이에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외교적∙군사적 긴장상태가 고조(高潮)되고 있다.


냉전 기간 중 미국과 구 소련에 의하여 주도된 핵무기 경쟁의 결과로 한 때 전 세계의 핵탄두(核彈頭) 비축량은 그 정점(頂点)이었던 1986년에 69,368발로 집계되기에 이르렀었다. 이 중 대다수를 차지한 미국과 소련의 국가별 핵탄두 비축량은 1967년 미국의 31,255발, 1986년 구 소련의 40,159발이 그 정점이었다. 이 같은 핵무기의 범람(汎濫)은 특히 미국과 소련에게 ‘상호확증파괴’(MAD∙Mutual Assured Destruction)의 전율과 공포를 강요한 결과로 양국은 ‘전략무기제한협상’(SALT∙1969∼1993)과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1992∼1993)을 통하여 특히 양국 보유 핵탄두 수를 대폭 감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2019년 현재 ‘9개 핵보유국’이 보유한 핵탄두 수는 “실전(實戰) 배치”되어 있는 3,750발을 포함하여 모두 13,890발로 집계되어 있다. [SIPRI∙Wikepedia]


2019년 현재 아직도 미국의 6,185발과 러시아의 6,500발을 합친 것이 전 세계 핵탄두 총 보유량의 91.32%, 각기 1,600발인 미국과 러시아의 실전 배치 핵탄두 수가 세계 전체의 85.3%라는 압도적 비중(比重)을 차지하고 있다. 카자크스탄과 우크라이나 및 백러시아가 1990년 해체된 구 소련으로부터 물려받은 각기 1,410발과 2,310발 및 81발의 핵탄두들은, 1994년 미국∙영국∙러시아 3국간에 체결된 ‘부다페스트 안보각서’(Budapest Memorandum on Security Assurance)에 의거하여, 전량 폐기 처분되었지만 미국은 ‘북대서양동맹기구’(NATO)와의 협약에 의거하여 벨지움(20발)∙독일(20발)∙이탈리아(40발)∙네델란드(40발) 및 터키(50발) 등 5개국에 지금도 여전히 도합 150발의 ‘전술 핵탄두’들을 실전 배치하고 있다.


이 같이 확산된 핵무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그 동안의 해법(解法)은 이원적(二元的)인 것이었다. ‘비핵 국가’에 대한 해법과 ‘핵보유국’에 대한 해법이 서로 다른 것이다.


우선 ‘비핵 국가’의 핵문제에 대한 전통적 해법은 NPT 조약에 의거한 ‘안전조치’를 통하여 “‘비핵 국가’에 의한 핵무기 획득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비핵 국가’의 ‘핵보유국’ 진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일컬어 ‘비핵화’다. NPT는 이를 위하여 ① 전 세계 ‘비핵 국가’들이 NPT 에 가입하고, ② 모든 ‘비핵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은 물론 제조 및 보유를 금지하며 ③ ‘핵보유국’들이 핵무기는 물론 핵무기 개발 및 제조 기술과 관련 물질을 ‘비핵 국가’에 ‘확산(擴散)’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한편 ④ 모든 ‘비핵 국가’들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안전조치협정’(Safeguard Agreement)를 체결하여 IAEA가 부과하는 모든 ‘검증(檢證)’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요컨대, 모든 ‘비핵 국가’로 하여금 “IAEA의 안전조치를 수용하여 원천적으로 핵무기의 획득을 단념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핵보유국’의 핵문제는 처음부터 ‘비핵화’ 해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이미 완성된 핵무기를 실전 배치하고 있는 나라에 대해 NPT의 ‘안전조치’를 적용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핵무기의 가공(可恐)스러운 파괴력은 ‘핵보유국’들 사이에 ‘상호확증파괴’(MAD∙Mutual Assured Destruction) 교리(敎理)의 등장을 초래했다. “어느 ‘핵보유국’이 선제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이에 대한 유일한 대응의 방법은 역시 핵무기로 반격하는 것”이며 이렇게 핵무기 공격의 교환이 이루어질 경우에는 쌍방이 모두 치명적 파괴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이 ‘상호확증파괴’의 교리이다.


그 동안 미국과 구 소련, 그리고 이를 계승한 러시아, 사이에서는 이 같은 ‘상호확증파괴’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 한 가지가 상대방의 ‘핵 선제공격’(First Strike)이 가해진 후에도 살아남아서 ‘핵 보복공격’(Second Strike)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냉전시대 미∙소 양국이 ‘핵전력(核戰力) 균형’(Nuclear Parity)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전개한 무제한적인 핵 군비경쟁의 주 목적은 ‘핵 보복공격’ 능력을 확보함으로써 상대방에 의한 ‘핵 선제공격’을 억지(抑止)하려 한 것이다. 여기서 ‘핵 억지력’(Nuclear Deterrence)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그러나, 미∙소 양국 간의 이 같은 무제한적 핵군비 경쟁은 당연히 ‘상호확증파괴’의 공포의 수위(水位)를 오히려 날이 갈수록 높이는 역효과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소간에 등장한 이에 대한 대안(代案)이 1960년대부터 시작된 미∙소간의 전략무기 ‘제한’ 및 ‘감축’ 협상을 통하여 ‘핵탄두’와 그 운반수단인 ‘유도탄’의 수를 제한하고 감축하는 노력이었다. 미∙소간에는 1963년 ‘부분적 핵실험 금지조약’(PTBT∙Partial Test Ban Treaty)이 체결되었고 1996년에는 이 조약이 유엔총회 결의를 통해 ‘전면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Complete Test Ban Treaty)로 확대되었다. 미∙소간에는 ‘전략무기제한협상’(SALT I∙II)와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 I∙II∙III∙IV)이 이어졌다. 이와 동시에 중∙장거리 유도탄의 개발을 제한하는 협상도 미∙소간에 동시에 진행되었다. 그 결과물이 1972년 체결된 ‘탄도탄 제한 협정’(ABM∙Anti-ballistic Missile Treaty)과 1986년 체결된 ‘중∙단거리 유도탄 제거 협정’(INF∙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이다.


그러나, 이들 국제적 합의와 협정들에도 불구하고 핵보유국들 사이의 핵전쟁 위협은 소멸되지 않았다. 중국의 핵 군비가, 특히 항공모함과 대륙간탄도탄(ICBM)을 중심으로 계속 증강되고 있고 북한이 아홉 번째의 ‘핵보유국’으로 등장하고 있는가 하면 이란의 핵무장 가능성이 날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게다가, 그 동안 SALT와 START 협상을 통하여 비축 핵탄두를 각기 6천 발 전후로 감축했던 미국과 러시아(구 소련의 후신) 사이에는 최근 핵군비 경쟁이 재개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은 각기 보유 핵탄두와 운반수단을 현대화의 방법으로 개량하고 비축량을 다시 늘리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2002년에는 ABM 조약을 그리고 금년에는 INF 조약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탈퇴하여 두 조약의 파기를 초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의하여 원자폭탄이 최초로 등장한 1945년 이후 74년의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 핵무기의 세계에서는 놀라운 사실이 전개되어 왔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 이 무서운 핵무기가 실제로 실전에 사용된 것은 1945년8월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경우가 유일하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사실은 그 뒤 74년의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 지구상의 공인 및 비공인 핵보유국이 9개국으로 늘어났고 그들이 보유한 핵탄두의 수자는 1986년의 경우 거의 7만 발에 이르렀으며 핵무기의 종류도 수소폭탄을 포함하여 다양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느 종류의 핵탄두도 단 한 차례도 더 이상 지구상에서 사용된 적이 없는 것이다.


이 같은 놀라운 일은 어느 특정 국가의 선의(善意)나 국제적 합의 또는 협정에 의하여 초래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것은 오직 ‘핵보유국’들이 공유하고 있는 ‘상호확증파괴’에 대한 공포심이 초래한 결과이다. 미국이 1945년에 원자폭탄을 실전에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는 미국만이 이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향유할 수 있었던 특전(特典)이었다. 핵무기의 보복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 보유가 9개국으로 확산되어 있고, 더구나 전 세계 핵무기 비축량의 대부분을 나누어 갖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핵전력 균형’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는 오늘의 실제 상황에서, 핵무기는 오히려 사용이 불가능한 “종이호랑이”의 존재가 되고 있다.


실제로, 국제사회에서는, 유엔을 주 무대로 하여, 문제의 ‘상호확증파괴’ 교리에 입각한 핵무기 통제 질서 구축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집요하게 전개되어 왔다. 예컨대, ‘적극적 안전보장 조치’(PSA∙Positive Security Assurance)와 ‘소극적 안전보장조치’(NGA∙Negative Security Assurance)에 관한 논의가 그 파생물이다. PSA는 “어느 핵보유국이 핵 비보유국에 대해 핵 선제공격을 감행할 경우 다른 핵보유국들이 핵무기로 보복 공격을 가한다는 것을 약속”하는 것이고 NSA는 “핵보유국들이 핵 비보유국들에게 핵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PSA와 NSA는 아직 구속력이 있는 국제조약의 형태로 결실되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로써, 북한의 지위가 ‘비핵 국가’에서 ‘핵보유국’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역설적으로, 치명적인 자충수(自充手)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왜냐 하면, ‘핵보유국’으로서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도, 보유량과 상관없이, ‘상호확증파괴’의 교리 에 묶여서 실제로는 “사용이 불가능한 종이호랑이”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동안 북한은, ‘비핵 국가’의 차원에서, NPT 체제 테두리 속에서의 ‘비핵화’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국제사회를 상대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갑질’을 계속해 왔지만 이제는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더 이상 북한의 ‘갑질’에 좌왕우왕(左往右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북한도 이 같은 모순된 사정을 인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북한은 최근 한편으로는 “‘핵보유국’의 지위를 확보했다”고 강변(强辯)하면서도 다른 일방으로는 다양한 미사일 발사 시험을 계속하고 새로운 지하 핵실험의 가능성을 드러냄으로써 여전히 ‘비핵화’의 게임으로 국제사회를 기망(欺罔)하겠다는 이중적(二重的) 잔꾀를 구사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대한민국은 물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대 북핵정책의 기조(基調)에 일대 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필자는 본다. 더 이상 ‘비핵화’의 프레임 속에서 북한을 상대하는 소모적인 ‘벼랑 끝 흥정’의 포로로 남아 있을 필요성이 소멸된 것이다.


이에 따라서, 북한에 대해서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확보 주장은 무시하면서, 그리고 더 이상 ‘비핵화’의 차원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에 집착함이 없이, 인권 개선과 정치적 민주화 및 경제적 개방 등 보다 근원적으로 북한의 체제 변화를 자극하는 새로운 대북 정책의 가닥을 잡아 나갈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불필요하게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이를 구실과 명분으로 이용하여 대한민국의 용공화(容共化)와 연공화(聯共化)를 획책하고 있는 문재인(文在寅) 정권의 대북 유화(宥和) 정책을 저지, 파탄시키는 데 보다 큰 중점(重點)을 둘 절대적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고는 것이다.


여기서는 북한의 핵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며 북한의 핵은 궁극적으로 북한 체제의 변화가 없이는 결코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인식을 모든 국민이 공유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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