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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9-01 22:44:50
  • 수정 2022-10-09 15:5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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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abc news]


사람이 가는 곳엔 항상 역이 있었다. 역은 다음으로 가는 시작점이었다. 그걸 정거장이라 했고 이 정거장에서 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기를 하며 삶이라는 여정을 가곤 했다. 해서 역은 직선 속의 선분이기보단 반직선이었다. 그렇게 시작하고 출발하고 나아가는 곳이었다.


내게 사창역은 특별한 그리움의 역이다. 그리움. 사람의 기억 속에 가장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단어를 들라면 어머니와 고향이 아닐까. 하지만 이 두 단어는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그 둘을 다 나는 아주 아주 오래 전에 잃어버렸다. 그것이 내 잘못은 아닐 텐데도 난 늘 죄스러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내가 처음 기차를 타 본 게 언제였을까.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외할아버지를 따라 목포의 큰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였던 것 같다. 외가에서 나서 자란 내가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기차를 탄 것이다. 목포행 완행열차였다. 그날 나는 송암 방죽을 지나 시오리 넘는 길을 걸어 신설포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삐그덕삐그덕 노 젓는 소리를 들으며 사공이 젓는 노에 따라 뒤뚱대며 흔들리는 배위에서 이편에선 점점 멀어지고 저편에 가까워지는 영산강을 건넜다.


그렇게 강을 건너 또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이 사창역이었다. 시골 우리 집보다도 클 것 같지 않은 작은 역, 그래도 나룻배를 같이 타고 온 일행 모두가 그 역에서 기차를 탈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저만치서 기차가 왔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뚜우- 기적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그 작은 역에 길고 긴 기차가 섰다. 어린 마음에 처음으로 타보는 기차가 나를 삼켜버릴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들어 흠칫 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을 따라 그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 날의 두근댐, 기쁨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 가끔씩 기차를 탔고, 그렇게 사창역은 내게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 되어주었다.


1968년 2월 초, 나는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고향을 떠나 서울이라는 곳으로 향했었다. 그 후 해마다 방학이 되면 역시 그곳에서 기차를 내려 내가 떠나왔던 그 길을 반대로 고향 그리고 내가 나고 자랐던 곳을 찾곤 했다. 그렇게 얼마큼 세월이 흘렀을까. 우연히 사창역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고 그 역이 없어지기 전에 찾아가 사진이라도 찍어야겠다고 애를 태웠다. 하지만 그것조차 못 한 체 그는 내게서 없어지고 말았다.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고 새로운 곳에 역사를 짓고 이름도 무안역으로 바뀌었다고 하나 역사(驛舍)도 이름도 없어져버린 것이니 남아 있다 할 수도 없다.


사창역은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의 사람들이 동강면 대지리 연화촌에서 건너가는 북적이나루와 동강면 월송리 모산개에서 섬포라고도 하는 신설포나루에서 배를 타고 건너 무안군 몽탄면 봉산리 해창마을을 지나 이르는 역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사창리에 위치했다 하여 사창역이라는 이름의 간이역으로 출발하여 50여년을 지나왔으나 1985년 역사 이전과 함께 무안역으로 역명을 바꾸면서 그와 함께 사창역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터에 옛 역을 복원하여 열차 한 량과 함께 그걸 기념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사창리, 지금은 기차도 오지 않고 추억을 찾는 이들의 발길만 오가지만 소롯이 서있는 사창역엔 나를 세상으로 내보내주던 그날의 두근댐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다. 그대 그곳을 통해 나처럼 세상으로 나갔던 사람들은 다 어디 살고 있을까. 그는 그리움으로 내 가슴 속에서 아직도 그때의 일들을 동화처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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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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