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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9-01 22:44:59
  • 수정 2022-10-09 15: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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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지인인 아티스트로부터 나만의 색깔(소울칼라)을 찾으러 떠나자는 초대를 받았다. 자신의 전문분야가 있고 통합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 열 명 정도가 모여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판타지살롱에서 N차원의 무한상상력으로 '나의 소울칼라'를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앨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자유로운 상상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만의 색깔이 내게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진행자는 첫 번째로 내가 좋아하는 색깔과 형태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의미를 담아 완성된 그림으로 같은 조에 있는 분들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라고 했다. 나만의 색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처음 집어든 침착한 녹색 '포레스트 그린' 크레용으로 힘차게 숲을 그렸다. 숲은 삼림森林이고, 산림山林이며 수많은 생명 '살림'이 있는 곳이다. 최근에 여행한 스페인의 섬 마요르카에서 나무열차를 타고 가다 보면 길 곁에 올리브나무, 오렌지나무, 레몬나무가 즐비했다. 그들은 그곳을 ‘황금의 계곡-소예르’라고 불렀다. 나무와 숲은 이렇게 실질적인 자원 외에도 넘치는 생명력과 위로, 영감을 준다. 다른 사람들도 마음이 닿는 대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지만 나무와 숲을 그린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만큼 내게는 숲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두 번째로 정성껏 그린 그림을 완전히 망가뜨리라고 했다. 순간 매우 당황스러웠다. 정성껏 가꾼 내 마음의 숲을 스스로 파괴하다니 이렇게 곤혹스러운 일이 있나. 울창한 숲에 한 점 불이 떨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뜨겁고 시뻘건 화마가 숲을 집어 삼켰다. 엄청난 산불이다. 넘실대는 불의 혀가 수십 년 자란 나무들을 남김없이 태워서 숲에 사는 동물은 보금자리를 잃고 나무와 풀은 모두 타버렸다. 푸르른 숲의 갈피마다 무서운 불길이 화마가 되어 헤집고 들어가서 살라버리니 가슴도 까맣게 타버리는 것 같았다. 불이 꺼지고 나서도 오랫동안 흙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 많던 숲의 생명들은 어디로 갔을까.


세 번째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림을 되살리고 자신만의 소울칼라를 찾으라는 요청이 있었다. 파란색 크레용으로 굵은 사선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진다. 굵은 빗줄기가 초토화된 검은 숲을 적신다. 여름ㆍ가을ㆍ겨울ㆍ봄이 가고 다시 한 해, 두 해, 세 해가 지나면서 죽은 듯이 적막하던 숲에 작은 움직임이 시작된다. 두터운 재를 뚫고 여린 새싹과 아기나무가 빠끔히 고개를 내민다. 안개와 이슬까지 흠뻑 머금으며 자라나는 아기나무들은 마치 땅을 딛고 팔을 벌리며 일어서는 사람과 닮았다. 숲은 결국 깊은 뿌리에서 일어나거나 작은 씨앗 한 톨을 품고 있다가 터뜨려 새로운 세계를 이어간다. 거미줄 같은 빛의 입자가 숲의 공기를 채운다. 일어서는 숲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다양한 초록의 빛이 번져나가는 숲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하지만, 가만히 귀 기울이면 풀벌레 우는 소리, 작은 새 지저귀는 세미한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그들이 살아 돌아왔다! 빈 공간 마다 여린 녹색으로 나무를 그려 넣고 회복되어가는 그림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녹색 계통의 색이 어우러진 빛깔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해서 내가 찾은 나만의 색, 소울칼라는 살림그린Salim Green이다. Salim은 우리말로는 생生-살린다, 성경에서는 완성하다, 아랍어 어원으로는 건강하다, 또는 안전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숲이 좋아서 일부러 오대산 전나무 숲에 가고 멀리 제주도 치유의 숲을 찾기도 하지만 둘러보면 내 주위에도 나무가 늘 둘러서 있다는 걸 발견한다. 어제는 교회에 다녀오다 대문 안팎에 서있는 나무들과 눈을 맞췄다. 그러다가 15년 동안 매일 바라보던 대문 앞 홍송을 처음으로 얼싸안았다. 훤칠하고 늘씬해 보이는 나무의 둘레가 한 아름 반이 넘었다. 30도 쯤 가지가 휘어서 자라는 홍송이 주차장보다 먼저 자리를 잡았으므로 차를 대기 어려운 불편쯤은 말조차 꺼낼 수가 없다.


모처럼 집 안팎을 둘러보니 내 나이보다 많은 여러 그루의 나무가 집터를 지키고 있다. 목마른 여름을 보내면서 땅 위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기에 땅 속으로 깊이 잔뿌리를 뻗어가며 수분을 빨아들이는, 생명력 강하고 지혜로운 나무들. 내 친구 시인은 나무속에서 우물을 보고, 옆집 화가는 앞마당에 서있는 감나무 그림을 많이 그려서 감나무 화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무가 인간에게 주는 것은 열매와 목재만이 아니다. 천연 항균물질 피톤치드, 고로쇠액과 고무 등의 수액, 신비로운 유향과 몰약과 같은 정유精油까지 아낌없이 준다. 하나님은 지구상 어느 나무인가에 인간의 생명을 회복하는 비밀코드를 숨겨두었다. 내 안에도 그 숲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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