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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6-24 20:56:55
  • 수정 2022-10-09 15: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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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랑은 어디에서 왔을까? [사진: Why Times]


계절과 시간에 따라 빛은 시시때때로 바뀐다. 그 빛을 매순간 다른 색깔로 느끼고 표현하며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얼마 전 새로운 색을 만들어냈다는 뉴스를 보았다. 매우 선명하면서도 깊고 화려한 파랑 계열의 색깔이었다. 아직도 인류는 자연 속에 감춰진 색들을 찾아내고 섞어서 이름을 붙이고 일련번호를 매긴다.


각 사람들의 모습과 성격에서도 저마다 느껴지는 색과 선택하는 색이 있어서 색채심리학과 컬러테라피라는 분야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감정에 따라 색을 표현하고 선호하는 것이 다르다면 색을 선택함으로써 마음의 빛깔을 바꾸는 것도 가능한 일인데 평생 누리는 색은 몇 가지나 될까.


내 마음은 다채로운 색깔로 매순간 물드는데 옷을 고를 때는 대체로 눈에 띄지 않는 무채색을 찾는 편이다. 옷장을 열면 검정색, 회색, 감청색, 밤색과 같이 어두운 색 옷이 즐비하다. 새 옷을 살 때도 ‘이 정도면 눈에 띄지 않고 무난하겠지.’하며 무의식중에 고른 옷들이 교복처럼 나란히 걸려 있다.


국제적인 디자이너를 꿈꾸며 세계무대로 나가려는 사람들이 만나는 벽이 자유로운 색깔의 선택이라는 글을 읽었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색을 이용하고 쓰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나는 어떤 이유로 무채색이나 어중간한 중간색을 안전지대라고 느끼는 것일까.


최근 들어서는 자연스럽게 끌리기도 하고 밝은 색상의 옷을 입을 때 기분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용기를 내서 원색과 다양한 색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채도 높은 유채색 옷을 입은 사진을 SNS 프로필 사진으로 올릴 때마다 친구들은 의외로 잘 어울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을색이 잘 어울리는 줄 알았는데 겨울색과 봄색도 잘 어울린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옷의 색에 따라 입는 이와 맞는 계절을 느낀다니 흥미롭다.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실은 색이 나와 조화를 맞추며 빛을 발한다. 튕겨나갈 줄 알았던 빛깔이 순순히 나를 받아준다고 느끼며 빨간 자켓, 남보라 반코트, 노란 코트, 파란 원피스, 초록빛 오버코트를 과감하게 시도했다. 여전히 회색이나 검정에 손이 가지만 애써 민트, 연핑크, 연보라와 같은 파스텔톤의 니트류를 고른다.


그런 색들이 어떻게 나에게 다가왔을까.


결연을 맺고 있는 아프리카 어린이 미술교육 비영리단체가 있다. 일상에서 아프리카의 색을 찾아내는 한국인 선생님 샐리는 아이들이 색과 함께 노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어린이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처음으로 색연필과 크레파스를 받은 어린이들의 표정은 세상에 숨겨졌던 보물을 찾은 듯 생기가 넘쳤다.


처음 보는 물건을 만지고 맛을 보고 냄새를 맡으며 가지고 놀다가 자신의 얼굴, 선생님과 가족의 얼굴을 그리고 동물과 나무와 집을 담아냈다. 그들은 거리낌 없이 색을 가지고 놀았고 그림은 날로 풍성해졌다. 아이들은 타고난 예술가들이었다. 지독하게 가난하고 가족이 에이즈나 각색 병이 들어 힘들지만 그림 그리는 시간이 되면 모여들어 장난을 치면서 샐리 선생님을 기다렸다. 그들의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문자나 말 이전에 그림으로 말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보인다.


비슷한 색깔별로 전시한 그림 중에 멈추어 선 곳은 노랑으로 표현된 작품이 전시된 벽면이었다. 어쩐지 낯익고 포근한 느낌의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후로 미술전시회에 갈 때마다 노란색이 선명하게 들어간 그림 앞에서 걸음을 멈추어서 노랑과 인사를 나눴다.


칼라테라피에서는 초록색이 균형감을 주고 노랑은 행복감을 준다고 했는데 봄이 가까워지면서 초록에서 노랑으로 마음이 흘러간다. 가장 늦게 선택한 색상인 노랑은 어디서 왔기에 옛 친구처럼 반가울까.


그 의문이 지난 설날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풀렸다. 내가 갓 돌을 넘길 무렵 미국에 출장 가셨던 큰아버지께서 선물로 편물기계를 사오셨다고 한다. 손재주가 뛰어난 어머니는 아예 편물학원까지 다니며 수강을 했고 어린 딸을 위해 앙증맞은 옷을 만들어냈다. 어머니의 기억에 편물학원에 다녔다는 것도 아물아물했는데 무엇이든 찾아내길 잘하는 큰 동생이 오래 된 서류함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각종 졸업장과 수료증을 발견하여 메시지로 찍어 보냈다.


88세 어머니의 추억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24세의 젊은 엄마는 병아리색의 가늘고 포근한 털실을 걸어 옷을 짜고 케이프도 만들었다. 내 아래로 사내아이 셋이 태어났다. 어머니는 중성적인 색의 털실로 내 옷을 짜서 입혔다가 작아지면 풀어서 김을 쏘이고 펴서 세 아들에게 물려 입혔다. 그러기에 노랑은 하나 뿐인 딸을 위해 어머니가 선택한 최초의 색깔이었고, 내가 가장 나중에 선택한 색이었다. 노랑은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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