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9-04-23 13:22:52
  • 수정 2019-04-23 13:46:19
기사수정


▲ 배우 윤지오 씨가 지난 3월 12일 오후 송파구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에 `장자연 리스트` 사건 관련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며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다. 【서울=뉴시스】


TV뉴스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눈물을 흘린다. 자신은 장자연(1980~2009) 사건과 리스트의 유일한 목격자라며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호소한다. 에세이집 ‘13번째 증언’을 출간하고, 유튜브를 개설하고, SNS 라이브 방송도 한다.


그녀는 윤지오(32·윤애영)다.


권모(40)씨는 TV에서 울고 있는 그녀를 보고 의구심이 들었다. 권씨는 2008년 더컨텐츠엔터테인먼트에서 장자연과 윤지오의 매니지먼트를 한 인물이다. 이후 매니저 유모(39)씨가 설립한 호야스포테인먼트에서 근무했다. 최근 권씨는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 자진 출석해 장자연 사건 관련 조사도 받았다.


“지오는 옛날부터 유명해지고 싶어 한 친구다. 3년 전 내게 연락이 와 ‘한국에서 연예계 일을 다시 하고 싶은데 도와 줄 수 있느냐’고 하더라. 실제로 지오는 자연이와 친하지 않았다. 당시 지오가 싸이월드에 자연이와 찍은 사진 한 장 올린 적이 없다. 10년이 지났는데, 자신은 처음 겪은 일이라서 다 기억난다고 하지 않느냐. 나도 당시 그 일을 처음 겪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마치 (장자연 리스트) 문건을 다 봤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말이 안 된다. 지오가 최근 과거사조사위원회에 2008년 1월 9일 내가 자연이와 자신을 B가라오케에 데려다줬다고 진술했다더라. 나는 2008년 2월 더컨텐츠에 입사했다. 같이 술집에 가거나 데려다 준 적은 한 번도 없다.”


백모(41)씨도 마찬가지다. 백씨는 더컨텐츠에서 2007년 12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장자연 담당 매니저였다. 요즘 윤지오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갑자기 관심받고 싶어서 저러나?’, ‘누가 시켰나?’다.


“지오는 자연이와 그렇게까지 친분이 있지 않았다. 따로 연락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따로 만났다고 들은 적도 없다. 지금 지오는 다 두루뭉실히 말하지 않느냐. 회사에서도 (장자연 사망) 이전에 나갔고, 알고 있는 사실이 전혀 없다. 접대 자리를 강요한 적은 절대 없다. 오히려 지오는 술자리에 안 불러주면 섭섭해했다. ‘나 어제 누구 만나서 뭐 했어~’라며 유명한 사람들과 친분을 과시했다. 지금 하는 행동이 이해가 안 된다.”


장자연은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력 인사들의 술자리 참석과 성 접대를 강요받고 욕설, 구타를 당했다고 남긴 글은 유서처럼 수용됐다. 고인이 남긴 리스트에는 재벌그룹 총수, 방송사 프로듀서, 언론사 경영진 등이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자연 사건은 지난해 2월 국민 청원으로 인해 다시 주목 받았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검찰에 재수사를 권고했고,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조사 중이다.


윤지오는 2008년 8월5일 소속사 더컨텐츠 대표인 김모(50)씨의 생일파티에 고인과 함께 불려가 성추행 장면을 목격했고, ‘장자연 리스트’가 담긴 문건이 유가족에게 건네지는 현장에 호야 대표인 유모씨와 함께 있었다고 한다. 장자연 사망 이후 13차례에 걸쳐 참고인 조사를 받았고, 최근 3차례 더 소환됐다.


2009년 장자연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이데일리에 이렇게 말했다.“당시 검찰은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 윤지오의 진술에서 신빙성을 얻기 위해 상당한 고민을 하며 수사에 집중했지만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윤지오는 2008년 8월 강제추행 장면에 대해 매우 상세히 진술하면서도 정작 강제추행한 사람의 인상착의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 참석한 남자가 3~4명에 불과하고 상당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 있었음에도 강제추행한 사람의 인상착의를 잘못 기억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다.”


지난달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는 “장자연씨가 친필로 남긴 문건에 그날을 이렇게 기억했다”며 질문을 던졌다.“‘금융업체 간부 정신이상자, 회사 직원과 동생이 빤히 바라보고 함께하는 접대 자리에서 나에게 얼마나 ×같은 ××짓을 했는지 정말 생각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아.’ 여기서 빤히 바라보던 동생이라는 게 윤지오씨를 말하는 거죠?”


윤지오의 답은 “그렇지 않을까?”였다.


디스패치에 따르면 이 질문은 팝아티스트 낸시랭(42)의 전 남편 전준주(39)씨가 조작한 장자연의 가짜편지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윤지오는 장자연과 더컨텐츠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가장 친하게 지낸 동료배우로 알려졌다. 윤지오가 더컨텐츠 소속으로 활동한 기간은 1년 남짓이다. 2007년 12월27일 계약, 이듬해 10월22일 해지했다. 위약금 없이 전속계약금 300만원과 학원비 300만원을 포함, 600만원에 합의했다. 장자연의 계약 기간은 2007년 10월6일부터 2010년 10월6일까지다.


윤지오는 여성가족부가 지원한 숙소에서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 중이다. 민간경호원 2명도 고용했다. 한 달에 경호비용이 2000만원이 넘는다며 후원계좌를 오픈했다.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 조건이 되지 않자, 스토리펀딩을 신청했다.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 설립 절차도 밟고 있다.


윤지오는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면서도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으로 일상을 공개 중이다. ‘생존신고’의 일환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지난달 30일에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 청원을 올렸다. ‘경찰이 지급한 위치추적장치 겸 비상호출 스마트 워치가 작동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기계음이 계속 들리고, 환풍구 끈이 끊어져 있고, 전날 출입문의 잠금장치가 고장 나 수리했다. 며칠 전에는 이상한 가스 냄새도 났고···.’


경찰이 늑장대응한 것은 큰 잘못이다. 하지만 9시간 넘게 담당 경찰관의 연락을 기다릴 시간에 112신고를 할 생각은 하지 못한 것인가. 이 국민청원은 하루 만에 20만명 이상이 동의를 얻었다. 경찰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릴 수밖에 없다.


윤지오는 ‘의인’이 됐다. “스물한살의 내가 느끼기에도 당시 수사는 부실하게 이루어졌다”며 10년 만에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자 국민들은 즉각 그녀의 편이 됐다. 절대다수 온라인 매체는 그녀가 SNS에 올린 글을 그대로 받아쓴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건의 기사가 쏟아진다.


윤지오는 팔로워 76만명이 넘는 SNS스타가 됐다. 그녀의 말은 곧 ‘진실’이자 ‘정의’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장자연 문건에 이름이 특이한 국회의원이 있었다’, ‘장자연, 술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식을 잃었다’, ‘장자연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부터 가려야 한다’···. 윤지오가 TV에 출연해 한 말이다. 이들 발언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다.


장자연 사건의 진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탤런트 이미숙(59)의 매니저 유모 대표는 2009년 2월 28일 고인을 만나 자필 문건을 쓰게 했다. 이미숙은 2009년 장자연 사건 수사 당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당시 ‘장자연 리스트’의 ‘존재 여부를 몰랐다’고 진술했다. 이미숙이 더컨텐츠와 계약을 해지하기 위해 ‘장자연 리스트’를 이용한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나 더, 장자연 사건에는 국정원이 개입됐다. 유모 대표 밑에서 일한 권씨 등은 법원에 제출한 사실 확인서에서 ‘장씨가 숨진 후 국정원 직원이 유씨를 도와줬다’고 증언했다. 유씨가 입원해 있을 때 국정원 직원이 상주하고, 국정원 직원이 탤런트 송선미(45) 남편의 소개로 유씨를 만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송선미 남편의 매형인 전모(51) 변호사는 2008년 대통령실 민정2비서관실 특별 감찰반장으로 근무했다.


올해는 장자연 10주기다. 윤지오는 장자연 사건과 리스트의 유일한 목격자가 아니다.


[덧붙이는 글]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관련기사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hytimes.kr/news/view.php?idx=3686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정기구독
교육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