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베르세 유럽평의회 사무총장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러시아의 무력 침공 행위를 사법적으로 심판하기 위해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대규모 국제 연대를 구축했다. 유럽 지역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는 중추 기구인 유럽평의회는 몰도바 키시너우에서 개최된 회원국 외무장관 회의를 통해 우크라이나 특별재판소를 설립하는 협정에 총 36개 회원국과 유럽연합(EU)이 공식적으로 뜻을 모았다고 선언했다. 이번 회동은 전란을 일으킨 당사국에 법적 책임을 묻고 국제 규범을 재확인하기 위한 거대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정치적 합의가 도출됨에 따라 사법 기구의 실질적인 작동을 위한 후속 조치도 발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알랭 베르세 유럽평의회 사무총장은 이 날 "정의와 희망을 상징하는 특별재판소의 설립과 우크라이나 침략 책임을 묻는 데 있어 이들 국가들이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디뎠다"면서 "러시아가 침략에 대한 책임을 질 시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베르세 사무총장은 이어 조직의 안착을 겨냥해 "이제 재판소의 출범을 위한 재정을 확보함으로써 정치적인 약속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부연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둥지를 틀게 될 특별재판소는 전쟁을 기획하고 명령한 핵심 수뇌부를 정조준하고 있다. 해당 기구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침략 전쟁의 전말을 결정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군정 최고 지도부에게 엄중한 형사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 국제 사법 체계의 맹점을 보완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현재 헤이그에서 가동 중인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반인도주의 범죄나 집단학살 등은 단죄할 수 있으나, 전쟁을 도발한 행위인 '침략 범죄' 자체에 대해서는 기소권이 제한되는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어 이번 특별재판소 신설의 계기가 되었다.
글로벌 차원의 동참이 확산하는 가운데 국가별 역학 관계에 따른 입장 차이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유럽평의회 내에서 활동하는 EU 소속 대다수 국가가 연대 서명에 참여했으며, 대륙 경계를 넘어 호주와 코스타리카도 동참 행렬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유럽평의회를 구성하는 전체 46개 회원국 가운데 튀르키예와 헝가리,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몰타, 세르비아 등 12개 국가는 이번 설립 동의 연명 국가 명단에서 제외됐다. 이는 러시아와의 외교적 역학 관계나 자국의 정세를 고려한 독자적 판단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