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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10-12 13:04:00
  • 수정 2018-10-12 1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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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근정전 [이민원]


현재 경복궁은 단계적으로 복원을 진행하고 있다. 경복궁 내부는 나라의 정사는 물론 궁중 내부의 일을 보는 500여 동의 수많은 전각으로 채워져 있던 공간이다. 광화문 밖의 세종로 좌우는 ‘6조거리’라 불린 곳으로 의정부를 비롯 이, 호, 예, 병, 형, 공 등 6조와 한성부 등이 자리했던 곳이다. ‘복원’이 비교적 용이한 경복궁 내부를 원래의 모습대로 재현하자면, 많은 예산과 인력,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 서울 광화문의 야경[문화재청]


이들 여러 전각 중 내외국인에게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경복궁의 남쪽 중심에 위치한 근정전과 서쪽의 경회루, 그리고 북쪽에 위치한 건청궁과 향원정 등이다.


이중 근정전에 수수께끼 같은 대상이 있다. 근정전의 천장과 어좌 위 당가 천정에 있는 두 마리 용의 장식이 그것이다. 그 용에는 일곱 개의 발톱이 장식되어 있다.(칠조룡) 흔히 용에는 잠룡(潛龍), 와룡(臥龍), 비룡(飛龍) 등 종류도 다양하고, 용이 되려다 만 이무기도 있지만, 여기서의 용은 제왕과 그의 권위를 상징한다.


필자는 오랫동안 이의 정체를 궁금해 왔지만, 과문한 탓인지, 연구가 부족해서인지, 아직까지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다. 한 때 의문이 풀렸다고 생각했으나, 소공동의 환구단 터에 남아 있는 황궁우는 물론 창덕궁 선원전을 자세히 살펴보고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다. 황궁우의 천정과 창덕궁의 선원전에는 여덟 개 발톱의 장식이 있는 용(팔조룡)이 있다. 이런 경우는 중국이나 베트남, 일본, 유구 왕국은 물론 한국의 다른 곳에서도 찾아보지 못했다.


필자의 이런 호기심에 ‘쥐꼬리 관심’이라고 농담을 한 ‘역사공무원’도 있다. 의미 없는 작은 호기심으로 생각해 볼 수 있으나, 그렇게 볼 것은 아닌 듯하다. 한 나라의 중심이 되는 왕궁에, 그것도 임금이 자리한 어좌의 천정에, 임금만이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그 같은 용의 장식을 배치한 이유가 무엇일까. 경복궁을 방문하는 수많은 내외국인 모두 근정전 천장을 바라볼 때마다 궁금해 할 것이다. 쉬쉬하며 모른 체하고 둘 수도 있으나, 대명천지에 그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현재까지 역사, 고고학, 건축, 회화, 민속, 철학 등 여러 전공자들에게 문의해 보았으나, 아직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한 때는 임산가공학과의 목재 전문 교수와도 작은 의문을 풀어보려 했던 일이 있으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시도해 보지 못했다.


▲ 경복궁 근정전 칠조룡[이민원]


최근 경복궁을 답사하다가 칠조룡이 황제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특이한 해설을 들었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칠조룡은 중국이나 대한제국의 황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명대와 청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중국의 황제는 5조룡, 제후국 중 조선과 안남은 4조룡, 일본과 유구 등은 3조룡 등으로 (중국 스스로) 규정했던 내용이 등장한다.


실제로 북경의 자금성과 심양의 황궁 등 중국 전국의 용장식에는 모두 5조룡이 등장한다. 호기심 많은 중국인들 중에 북경의 자금성내에 용의 무늬가 몇 개인지 세어 본 이도 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 그런 중국인도 한국의 7조룡, 8조룡 장식은 못 보았을 것이다.


또한 옛 유구 왕국의 왕궁인 오끼나와의 수리성에는 모든 용의 장식이 3조룡으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유구처럼 용의 장식이 흔하지는 않으나. 3조룡의 장식을 볼 수 있다. 그 외 일본에서는 용을 희롱한 듯한 그림이나 만화에 7조룡, 8조룡 등이 등장한 경우도 있으나 특별한 의미를 잘 모르겠다.


▲ 오키나와 수리성의 삼조룡[沖縄県那覇市首里城]


그런데 현재의 베트남에서는 5조룡과 4조룡이 두루 보이고, 한국에서도 역시 5조룡과 4조룡이 왕궁의 각종 장식이나, 왕의 복식 등에 두루 등장한다. 비록 중국으로부터는 4조룡으로 규정되었지만, 조선이나 베트남 내부적으로는 용포나 기타의 장식 등에 5조룡을 쓰기도 한 것으로 보이며, 대외적으로 중국 황제와의 관계에서는 4조룡을 표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현재 덕수궁 중화전 천장의 5조룡( 대한제국 당시 작품)[이민원]


이런 용의 장식에 대한 제약은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여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 고종은 대신들에게 용의 장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은 적이 있다. 이때 대신들은 우리도 5조룡을 쓰는 것이 합당하다는 의견을 올렸다. 현재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의 중화전 천정에는 5조룡이 장식되어 있고, 창덕궁과 창경궁에는 봉황의 장식이 되어 있다.


분명한 것은 임금 자리에 앉아 늘 이를 바라보았을 고종은 그 의미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경복궁의 중건의 주역들인 조대비와 흥선대원군, 박규수도 물론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그 의미를 설명해주는 기록을 필자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래서 흥선대원군에게 다시 묻고 싶다. “국태공 저하! 경복궁 근정전에 7조룡을 장식한 저의가 무엇입니까?”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이강근, 『경복궁』, 대원사, 1998. 윤열수, 『龍, 불멸의 신화』, 대원사, 1999.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이민원, 『한국의 황제』, 대원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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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원 역사 에디터 이민원 역사 에디터의 다른 기사 보기
  • <경력>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문학박사(역사학)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연구위원
    -원광대 사범대 초빙교수
    -국제한국사학회(회장)
    -현재: 동아역사연구소(소장)
    현대의전연구소 자문위원

    <주요저술>
    『이상설-신교육과 독립운동의 선구자』』(역사공간, 2017)
    『대한민국의 태동』』(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15)
    『조완구-대종교와 대한민국임시정부』』(역사공간, 2012)
    『조선후기 외교의 주인공들』(백산자료원, 2007)(공저)
    『Q&A한국사: 근현대』(청아출판사, 2008)
    『명성황후시해와 아관파천』(국학자료원, 2002)
    『한국의 황제』(대원사, 2001)

    <번역서>

    『국역 윤치호영문일기』 2(국사편찬위원회, 2014)
    『국역 윤치호영문일기』 3(국사편찬위원회, 2015)
    『나의 친구 윤봉길』(도서출판 선인, 2017)(原著: 金光, 『尹奉吉傳』, 上海: 韓光社,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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