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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이제 북한의 거짓된 3.1운동 역사도 우리가 수용해야 하는가? - 3.1운동 100주년 남북공동 개최? 北 ‘김형직 주도’ 주장 - 北 “서울의 3.1운동은 실패 단정”, 남쪽국민’ 세뇌시킬 작정인가?
  • 기사등록 2018-10-06 10:53:07
  • 수정 2018-12-29 11: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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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선언서를 만든 민족대표 33인 [독립기념관]


[문재인 대통령,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남북공동으로 치른다” 밝혀]


문재인 대통령이 5일 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사를 남북이 함께 대규모로 치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제12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 축사를 통해 "내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로, 3·1운동 100주년을 남북이 함께 크게 기념하기로 했다"며 "남북과 전 세계 740만 재외동포가 함께하는 민족적 축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제12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 및 2018 세계한인회장대회`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고 있다.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이어 "남과 북의 동질감을 회복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한인회장님들께서 앞장서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과의 공동행사 개최 의사는 지난 5월 1일에도 밝힌 바 있다.


▲ 조선국민회 결성 100주년을 기념하는 중앙보고회를 소개한 북한 노동신문 2017년 3월 23일자 1면.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이 단체를 결성했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


[북한은 3.1운동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문제는 북한은 과연 3.1운동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이다.


일단 북한이 기록하고 또 주장하고 있는 3.1운동의 역사를 살펴보자.


“만경대 일대의 주민들은 열렬한 반일혁명투사이신 강진석(김일성의 외삼촌)의 지도아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한결같이 떨쳐나서…김일성 동지께서는 여덟살 되시는 어리신 몸으로 거족적인 반일인민봉기 대렬에 참가하시여 보통문까지 갔다.” (『조선전사』)


“3.1 인민봉기의 불길은 먼저 평양과 서울에서부터 타올랐다. 평양에서는 우리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 선생님(김일성의 부친)의 혁명적 영향을 받은 평양 숭실중학교의 애국적인 청년 학생들이 주동적인 역할을 놀았다.” (『조선력사』)


북한은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1894∼1926)이 키워낸 애국지사와 청년 학생들이 3·1 봉기에 앞장섰다고 주장한다. 북한 사회과학원이 낸 '조선전사'는 김일성 아버지인 김형직이 3·1운동의 실제 주역이자 배후이며 김일성도 '여덟 살 되는 어리신 몸으로 거족적인 반일 봉기 대열에 참가하시어 보통문까지 가시었다'고 북한은 기록하고 있다.


북한이 이렇게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을 3.1운동의 주역으로 내세우는 근거는 1917년 3월 평양에서 결성된 뒤 1918년 2월 일제에 의해 해체된 ‘조선국민회’라는 국내 비밀 결사단체를 김형직이 주도적으로 결성했고 이 단체의 중요 인물들이 평양 등지에서 3·1운동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주장은 사실일까?


강영심의 ‘조선국민회 연구’에 의하면 조선국민회는 20, 30대의 평양 숭실학교 출신 청년들이 주도해 결성한 결사단체임은 분명하나 그 주도자가 김형직이라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조선국민회의 핵심 간부였던 ‘장일환’이었다는 기록들이 많다. 장일환이 실제적 지도자였다는 증거는 일제의 평안남도 경무부장이 회원 25명을 체포한 후 작성한 조사자료(秘密結社發見處分件, 秘受3725號)에도 나오는데, 여기서 언급한 중요 인물 순서에서 김형직은 장일환, 백세빈, 배민수에 이어 네 번째로 등장한다.


오히려 김형직은 조선국민회 사건 이후 중강진으로 이사한 뒤 1925년 중국 지린(吉林)성으로 옮겨 독립운동 단체인 정의부(正義府)계 백산무사단과 연계해 활동하다 이듬해 사망했다고 한다.


결정적인 것은 북한이 3·1운동에 김형직, 김일성 부자가 참여했다고 주장하면서도 3·1운동은 혁명에 실패한 운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북한에선 북한 사회과학원이 낸 '조선전사'를 통해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민족 대표 33인에 대해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론에 헛된 기대를 걸고 청탁과 구걸의 방법으로 조선독립을 이룩해 보려는 투항주의 분자들'이며 독립선언식 장소를 탑골공원에서 태화관으로 옮긴 것도 '일제에 대한 비굴한 투항'이라고 비판한다.


북한은 결론적으로 3·1운동은 무장한 일제에 비폭력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무모한 행위였다고 판단하면서, '탁월한 수령의 영도, 혁명적 당의 지도가 없이는 어떤 혁명 운동이든지 승리할 수 없다'는 교훈을 줬다고 평가한다.


3.1운동의 발상지인 제암리?

북한에는 그러한 기록조차 없다.


▲ 독립만세운동 당시 숭실학교 학생들이 직접 제작해 교정에 걸었던 태극기(크기 166.0×125.5cm). 3·1운동에 사용됐던 대형 태극기로는 유일하게 남은 국기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2019년의 3.1운동 100주년. 이제 북한의 조작역사를 우리 국민들이 수용해야 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3일, 2019년의 3.1운동의 남북공동 개최를 거론하면서 “남과 북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공유하게 된다면 서로의 마음이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3.1운동을 보는 시각이 도대체 공집합이라고는 딱 하나, ‘3.1절’이라는 단어 하나밖에 없는데 무슨 수로 ‘역사 공유’며 이를 통해 ‘마음이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 없다.


기실 역사공유란 아마도 북한이 주장하는 김일성 가문의 조작되고 왜곡된 역사를 ‘남쪽 국민들’이 수용하는 것에 그치고 북한 주민들은 남쪽의 역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일방의 공유’만 벌어질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 말은 곧 “이제는 북한이 주장하는 왜곡 역사를 남쪽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려는 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이해하고 싶어도 너무나도 낭만적이고 너무나도 관대한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처사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3.1절이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주인공이라는 내용을 우리 ‘남쪽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문재인 정권은 그렇게 ‘남쪽 국민’들을 세뇌시킬 자신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3·1운동을 '김일성 수령 체제' 전사(前史)쯤으로 여기는 북한과 어떻게 사관(史觀)의 격차를 메우고 10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겠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참으로 캄캄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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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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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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