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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9-14 11:31:01
  • 수정 2018-12-05 22: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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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시위 한 장면 [뉴시스]


지금 대한민국은 87년체제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거둔 성과 그리고 극복해야 할 한계가 모두 이 87년체제의 본질로 수렴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87년체제가 거둔 성과는 무엇일까요?


가장 대표적인 성과로 정치적 민주화가 완성됐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절차적 민주화 즉, 법치를 말합니다. 이것은 한반도의 역사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성과라고 봐야 합니다.


물론 왕조시대에도 법률이라는 것이 존재했습니다. 또 87년체제 이전에도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 시스템은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조시대의 법률 그리고 87년체제 이전의 법률은 엄격하게 말해서 사회적 계약이 아니었습니다.


법치라는 것은 사회적 계약 즉 대립하는 집단들끼리 투쟁하고, 서로 적당히 양보하고 타협한 결과물입니다. 87년체제야말로 권위주의 정치세력과 민중들이 서로 대립 투쟁한 끝에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1960년 4.19 역시 민중들의 투쟁을 통해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성과가 정치체제로 완성되어 지속성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87년체제는 대한민국 아니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계급들끼리 투쟁하고 타협한 결과물로서 민주화와 법치를 시스템적으로 완성해낸 위대한 성과라고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이 절차적 민주화(법치)를 형식적이라며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힘을 가진 자들이 법 따위 우습게 여기고 무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 가장 저열한 딴지가 '대한민국의 법치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형식적 수단일뿐'이라는 식의, 저능 좌파들의 낡아빠진 도그마입니다.


법치 또는 절차적 민주화는 당연히 형식일 뿐입니다. 하지만, 역사의 진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 형식입니다. 그 형식적 절차를 갖추기 위해서 인류가 수십 세기 동안 엄청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싸워왔다는 점을 잊으면 안됩니다.


정치와 현실 참여에서는 바로 그 형식이 본질입니다. 그 형식을 갖추지 못한 나라 가령 예를 들자면 조선시대에 뛰어난 성군이 등장해서 백성들을 어루만지고 그 눈물을 닦아주고 한을 풀어주는 정치를 한다고 해서 그게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그 성군이 죽거나 또는 늙어서 정신력이 약해지거나 하면 그 성군정치는 흔들립니다. 정치적으로는 말짱 도루묵이 됩니다.


오히려 그 성군의 업적이 억압적인 체제의 명분을 강화하는 도구로 악용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법치,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해내는 일이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그 법치와 형식이 바로 민주주의의 본질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절차적 민주주의, 형식적 법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87년체제의 완성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고 봐야 합니다. 이 혁명의 성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투명성이 높아지고, 일상적인 수준의 부정부패도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공권력의 작동방식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40대 이하이신 분들은 87년체제 이전 권위적이고 폭압적인 정권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어쨌는지 잘 모르실 겁니다. 간단히 말해서 아무 죄도 없는 보통 사람들이 파출소나 심지어 동사무소 찾아가는 일조차 적지않은 부담과 공포였습니다.


파출소는 언제든지 폭행을 당할 수 있는 공포스러운 장소였고, 동사무소 역시 흔히 급행료라고 부르는 뇌물을 줘야 일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꼭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공무원들은 기본적으로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태도가 위압적이었죠.


당시의 공무원 사회 분위기를 아는 분들의 증언에 따르면 공무원들이 87년체제의 성립을 보면서 엄청난 충격과 공포, 기대를 가졌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자신들도 변화해야 할 절박성과 필연성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87년체제 이후 대한민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많이 변했습니다. 요즘은 시민들이 지나치게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공공질서를 무시하는, 방자한 태도가 우려스러울 지경입니다. 그런 자유스러운 사회적 분위기가 그래도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경제가 꾸준히 발전할 수 있는 기본조건이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여전히 미흡하다고 믿는 분들이 자주 거론하시는 것이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입니다.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광범위하고 막강하다는 점을 들어 우리 사회의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미완성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경제적 자유화의 미완성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이해하는 게 맞습니다. 87년체제가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반드시 달성해야 할 시대적 과제가 경제적 자유화였습니다.


경제적 자유화는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박정희 체제가 안고 있었던 두 가지 과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시대적 과제였습니다. 역설적으로 이 경제적 자유화를 가장 두드러지게 달성한 정권이 제5공화국입니다.


5공화국은 사회 정책 측면에서도 규제해제를 지향했습니다. 야간통행금지의 해제와 중고등학교 교복 자율화,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씨름 등 스포츠산업의 활성화, 컬러 텔레비전의 보급과 컬러TV방송 등을 실행했습니다.


경제적으로 공산품과 농축산물 수입자유화를 확대하여 1986년 수입자유화율은 91.5%에 도달했으며, 외국자본의 투자비율도 점차 확대하여 100%까지 허용했습니다.


10대 대기업이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79년의 33%에서 1989년에는 54%로 증가하고, 30대 대기업의 계열기업은 1970년 126개, 1979년 429개, 1989년 513개로 늘어났습니다. 농촌인구도 5공 시절에 본격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한마디로 자본의 집적과 투자 확대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대기업의 증가를 부정적인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 많지만, 대기업의 증가와 영역의 확대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업무 프로세스가 세련되고 생산력이 고도화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입니다.


5공 당시 국민총생산도 급속히 성장하여 매년 평균 성장률이 10% 내외를 유지하게 되었으며, 1인당 GNP가 1987년에 3천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87년체제는 이런 5공의 경제정책 기조를 한 걸음 더 진전시켜 고도화해야 할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박정희식 경제시스템의 핵심이랄 수 있는 관치금융을 해소하고, 공무원이 틀어쥐고 있는 규제를 대폭 해제하며, 시장과 기업 활동의 자유를 강화하며,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자본투자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자본투자는 87년체제의 경제적 체질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게 될 핵심과제였습니다.


중견/중소기업의 자본투자는 제조업 생산현장의 선진화 첨단화를 의미합니다. 이들 제조업 생산현장에 대한 대규모 자본투자를 통해 이들 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일할만한 직장'으로 나아가는 질적 변화가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87년체제의 성립을 주도한 좌경 학생운동과 반체제 세력은 저런 과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적 민주화에 종속된 과제로밖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편협한 경제개혁 시각을 대표하는 것이 이른바 경제민주화입니다.


경제민주화는 본질적으로 자본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자본의 집중을 거부하며, 집중된 자본을 분산하거나 통제해야 한다는 노선입니다. 대기업의 경우 그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규모의 경제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자본투자 제약은 심각한 문제로 이어집니다.


지금 우리나라 중소/중견기업 특히 제조업 일자리가 국내 청년들이 기피하는 일자리가 되고, 외국인 노동자 천국이 된 근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본이 투자되지 않기 때문에 생산설비가 낙후되고, 노동 조건이 위험하고 불결하고 힘들어집니다. 흔히 3D라고 불리는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작업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70년대까지는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했기 때문에 그런 작업장에서 일할 인력도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80년대, 90년대에 태어나 성장한 청년들이 그런 곳에서 일하려 하겠습니까?


자본투자가 없는 제조업/생산직 일자리는 87년체제 이후의 한국 청년들이 일하기 힘든 일자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이 차라리 백수나 편의점 알바 또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전전할지언정 중소/중견기업 생산현장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자본 투자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중소/중견기업이 생산하는 결과물 역시 저부가가치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당연히 노동자들에게 좋은 급여를 주기 어렵고, 다시 저기능 인력을 쓰게 되고 이것은 다시 생산의 저부가가치로 이어지고...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생산설비의 첨단화 고급화뿐만 아니라 노동의 조직과 규율, 노하우를 고급화하기 위해서도 자본 투자는 필수적입니다.


우리나라 중소/중견기업들이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되어 삼성동물원, 현대동물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기업 의존도가 높다고 합니다만 이것 역시 대기업에게 책임을 물을 문제가 아닙니다. 대규모 자본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중소/중견기업들이 대기업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술, 마케팅, 영업 등의 실력을 쌓지 못한 결과입니다.


87년 당시 우리나라 기업 현장의 본질적 요구가 경제적 민주화가 아니라는 점은 87년체제의 성립 당시 노동자 계급의 태도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87년체제의 성립 과정에서 대학생과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이 가두시위에 쏟아져 나왔지만,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참여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들 생산직 현장의 요구가 87년체제를 규정짓는 정치적 민주화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노조 조직 투쟁 등에 나서는 것은 87년체제가 성립한 이후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학생운동과 화이트칼라층이 피땀 흘려 쟁취한 민주화의 성과에 무임승차,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런 무임승차가 바로 이후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본질을 형성하게 됩니다. 노동귀족의 성립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노동계급의 이런 무임승차는 그렇잖아도 대규모 자본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생산력의 상대적 퇴조를 맞게 될 중소/중견기업의 상황에 크나큰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기업가와 노동자 사이의 불신이 심해지고, 기업가들은 노조의 경영권 위협에 특별한 대응수단을 갖지 못하고 투자를 축소하거나, 보류하거나, 해외로 사업을 옮기거나 심한 경우 사업을 아예 접기도 합니다.


이 문제가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의 이중화, 양극화 현상을 낳는 핵심 요인이 되었다고 봅니다.


앞에서 제왕적 대통령제가 정치적 민주화의 부족이 아니라, 경제적 자유화의 부족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씀드린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정부가 막강한 자원 배분권을 갖고 시장과 기업들의 자율을 침해하는 상황에서는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어마어마한 권력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정치적 민주화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경제적 자유화의 부족에서 생긴 현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는 87년체제의 극복을 시대적 과제로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촛불시위가 본질적으로 혁명이 아니라 오히려 혁명과 정반대의 성격 즉 역사적 진보와 사회적 발전을 가로막는 반동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칼럼은 'Why TV'의 '주동식 TV'로도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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