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접할 수 없는 위세 가진 군부의 장유샤]
중국인민해방군의 실질적 권한이 반시진핑파인 장유샤에게 넘어가면서 사실상 천지개벽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뿌리부터 완전히 혁신하고 있다. 또한 장유샤는 시진핑파가 점령중인 동부전구를 제외한 나머지 3개 전구를 장악하고 있어 일단 군사적 충돌은 피했지만 경우에 따라 군부간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지도부도 조심스럽게 시진핑의 권력 이양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고위소식통은 최근 후하이(胡亥) 등의 군사전문 블로거들과 여러 사람들의 견해를 종합해 장유샤가 추진하고 있는 군부 개혁 내용을 상세하게 알려왔다.
실제로 지난해 19기 3중전회 이후 군부는 장유샤(张又侠) 주도하에 대대적인 인사 이동이 있었고, 이어 먀오화와 허웨이둥은 잇따라 해임되었으며, 푸젠성 31집단군 고위 장성들은 거의 모두 직위에서 물러났다. 사실상 친 시진핑파 군 수뇌부들이 대거 밀려나 한직으로 갔거나 숙청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중앙군사위원회(中央軍事委員會)는 원래 7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장유샤(張又侠), 류진리(劉振立), 장셴민(張升民) 3명만 남아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사라졌다. 결국 장유샤 측이 중앙군사위원회를 점령하면서 군부의 실권을 쥐게 된 셈이다.
그런데 눈여겨볼 점은 장유샤가 이렇게 별다른 저항없이 군부를 장악하게 된 것은 장유샤가 군부내에서 유일하게 실권을 가진 홍얼다이(紅二代)라는 점이다. 여기에 장유샤는 전장 배경과 전문적인 군사경험까지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치적 연줄에 의존하는 류위안(刘源), 류야저우(刘亚洲)와 같은 홍얼다이들과는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다. 그만큼 군부내는 물론이고 관료사회에서도 인정을 받는 배경이 된다는 것이다.
장유샤는 다른 홍얼다이들과는 달리 밑바닥에서 군생활을 시작해 중대 소대장을 거쳐 베트남전투에서 실전을 쌓았고, 그러면서 나중에 선양군구 사령관으로 승진했다. 그는 제14집단군 제40사단 제119연대장으로 군대를 이끌고 라오산을 정복하여 뛰어난 군사적 업적을 쌓았고 군대에서 깊은 신뢰를 얻었다.
이렇게 군대 경력을 쌓아온 장유샤는 군대 중심의 통치노선을 가지고 있다. 이는 덩샤오핑, 장쩌민, 시진핑 시대의 정치 사업 체계와 총정치부에 의존하여 군사력을 통제하던 전통적인 모델과는 상반된 것이다.
다시말해 중국 공산당의 총정치국이 군부를 통제해서는 안된다는 일관된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나온 것이 군부의 정치적 독립이다. 따라서 시진핑의 실각설이 나오고 있는 지금이 군부를 정치로부터 독립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군부의 대대적 개편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장유샤 군부개혁의 핵심, “군대를 군대답게”]
사실상 중국 군부의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려 하고 있는 장유샤는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군부의 안정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한 책임을 맡은 이가 바로 육군사령관 리차오밍(李桥铭)이다.
장유샤의 측근인 리차오밍은 군 사령관을 역임하며 장유샤가 군 전력을 통제하는 중추 역할을 했다. 장유샤는 리차오밍을 통해 육군 본부의 영향력을 각 전구의 주요 전투 부대로 확대하고 있다. 2024년 전구 사령관 교체가 시작될 무렵, 시진핑의 측근이자 군 정치위원인 진슈퉁(秦树桐)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실 진슈퉁과 리차오밍은 서로 긴장된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장유샤가 리차오밍의 손을 들어주면서 시진핑 친위세력의 제거에 나서게 됐다.
장유샤는 이어 북부, 중부, 남부의 3대 전구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장군들을 배치했다. 이들 장군 대부분은 제14군집단이나 제16군집단에서 그와 함께 복무했으며, 매우 충성심이 강하다. 이들은 함께 장유샤의 군사 기반을 구축했다.
*우옌난(吴亚男) : 제16집단군 남부전구 사령관으로, 선양 군구에서 장유샤와 오랫동안 함께 일했다. 2025년 7월, 그는 시진핑 주석의 직속 부하였던 왕슈빈(王秀斌)을 대신해 연합참모부 부참모장에서 남부전구 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황밍(黄铭) : 북부 전구 사령관. 제16집단군 기계화 사단 사령관출신인 그는 장유샤 밑에서 성장하여 제41집단군과 제81집단군 사령관을 역임했다. 2025년 7월, 중앙 전구 사령관에서 북부 전구 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겨 소외된 왕창(王强)을 대신하게 되면서 북부 전구 내 군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했다.
*쉬더칭(徐德清) : 중앙전구 사령부 정치위원, 제14집단군 출신이며, 장유샤의 제자다. 현재 중앙전구 사령관은 공석이며, 쉬더칭은 베이징 주변의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하고 장유샤 군세의 핵심 거점으로서 전반적인 정세를 지휘하고 있다.
*정쉬안(郑旋) : 북부 전구 사령부 정치위원으로, 제14집단군과 제13집단군에서 복무했다. 그의 이력은 장유샤와 상당 부분 겹치며, 북부 전구 사령부 정치위원과 군 전략 사령관 간의 조율을 담당했다.
*저우홍쉬(周洪许): 중앙안전국 국장인 저우훙쉬는 장유샤의 측근으로, 두 사람은 제14집단군 제40사단 출신이다. 저우훙쉬는 한때 해당 사단 포병연대장을 지낸 뛰어난 군사 전문가로, 장유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장유샤의 지원으로 저우훙쉬는 중난하이 치안이라는 중요한 책임을 맡게 된 중앙안전국 국장으로 승진했다. 최근 저우훙쉬가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청 주임으로 승진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3대전구는 중앙위원회를 보호하고 동부전구를 포위한다]
(1) 3대 전구;
*남부전구: 우옌난(吴亚男) 제독은 시진핑 직계 후계자였던 왕슈빈(王秀斌)을 몰아내고 합동참모본부 부참모장에서 남부전구 사령관으로 이동했다. 우옌난은 취임 후 남중국해 갈등을 진정시키고 미국과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졌다. 전 사령관 왕슈빈과 해군 사령관(남중국해 함대 사령관) 리펑청(李鹏程)은 황옌다오(스카버러 암초)를 둘러싼 갈등을 도발하여 미 해군이 아시아 태평양으로 복귀하도록 전략적 압력을 가한 바 있다. 그런데 우옌난은 취임 후 재빨리 남쪽으로 가서 리펑청을 체포하고 군대를 철수했고 미국과 협상을 시작하여 직접 호놀룰루에 있는 미 해군 사령부를 방문했다. 그는 남중국해의 긴장된 상황을 성공적으로 안정시켰고, 미국과의 군사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장유샤의 전략적 배치를 실현했다.
*북부전구: 장유샤는 육군 장군들과 불화가 있던 공군 장군 왕창(王强)을 대신하여 황밍(黄铭) 장군을 북부 전구 사령부에 파견하여 잠재적인 군사적 마찰이나 전쟁에 대비하도록 함으로써 북동부 전략에 대한 그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중앙전구 : 중앙전구 사령관은 현재 공석인데, 장유샤는 일단 자신이 신뢰하는 장군 쉬더칭(徐德清)을 임시로 임명했다. 쉬더칭은 제14군집단 출신이며 장유샤와 같은 학파 출신이다. 그의 충성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베이징 주변의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하고 있어, 장유샤가 수도 방어를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2) 동부전구의 전략적 포위
이렇게 군부의 수장들을 대거 조정함으로써 군부를 실질적으로 장유샤의 심복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이 세 전구는 수십만 대의 전차, 장갑차, 탱크 등으로 무장한 8개의 중무장 집단군을 포함하고 있으며, 해군과 공군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또한 약 100만 명의 병력으로 시진핑의 심복인 린샹양(林向阳)이 이끄는 동부 전구의 전략적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다.
동부 전구는 항상 푸젠에서 시진핑의 심복 장군들이 장악해 왔다. 대만과의 전쟁의 최전선이며 30만 명이 넘는 병력으로 구성된 3개의 잘 갖춰진 집단군이 있다. 그러나 장유샤의 배치 하에서 북쪽, 서쪽, 남쪽은 북부, 중앙, 남부 전구에 의해 압박을 받고 남동쪽 모서리로 제한되어 전략적 공간이 좁다.
린샹양이 시진핑을 수호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군대를 모으려 한다면, 삼전(三戰)에 포위당할 것이고, 산둥, 허베이 등의 견고한 방어선을 돌파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수도의 중요 지역으로 진입할 수도 없을 것이며, 성공 가능성도 희박할 것이다. 따라서 린샹양은 극심한 압박 속에서도 감히 성급하게 행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장유샤는 철권통치와 엄격한 배치를 통해 누구도 군에서 자신의 지배적인 지위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내전의 위험을 최소화했다. 동부 전구에서 린샹양의 위신과 시진핑의 지지를 우려하여, 장유샤는 아직 직접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그의 신중한 전략적 고려를 보여준다.
[장유샤가 군대를 숙청하고 야전군이 수도 방어를 맡았다]
2025년 여름 이후, 중국 공산당 군부 내에서 대규모 숙청 소식이 계속해서 퍼져 나갔다. 무려 90명에 달하는 장군들이 체포되었다고 한다. 모든 장군들이 해임된 후, 중장과 소장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로켓군 정치위원 쉬시성(徐望誠)과 해군 사령관 후중밍(胡忠明) 등 고위 장군들이 잇따라 ‘실종’되면서 먀오화(苗花)의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동시에 남부전구 정치위원 왕원취안(王文泉), 공군 사령관 차오샹지(马向基) 등이 잇따라 해임되었다. 남부전구는 이제 우옌안(吳岩南)의 완전한 통제 하에 놓이게 되면서 남중국해의 불안정 요인이 해소되었다. 최근 중앙안전국 전 국장 저우훙쉬가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청 주임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장유샤가 군 고위 간부의 핵심 요직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으며 그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음을 시사한다.
최근 영상과 보도를 보면 군인들이 베이징 거리를 순찰하고 경계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으며, 군용 차량이 교차로와 거리를 봉쇄하는 장면도 있다. 2025년 6월 6일 해외 논평가들은 러시아 해외정보국의 브리핑을 인용하여 장유샤가 베이징 봉쇄를 명령하고 무장 순찰대를 직접 지휘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군이 수도의 방어를 장악하고 베이징의 상황을 완전히 통제했음을 상징한다. 장유샤의 야전군이 베이징을 포위했고, 이전 중앙경비국, 특무국, 무장경찰, 공안특경 등 무장 세력이 모두 군에 장악되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진핑이 군에서 소외되고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라는 직책이 명목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배경으로, 장유샤의 군 장악 로드맵은 군의 권력 구조를 재편하고 중국 공산당 정치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권력의 핵심이 된 것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