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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8-20 10:55:45
  • 수정 2018-08-20 12: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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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전 대통령은 보좌진들의 의견을 경청한 후 신중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했다. [박정희 대통령 탄신100주년기념 사진전]


박 대통령의 비전 제시와 시스템에 의한 정책결정에 추가하여 강조되어야 할 것은 그는 대중 앞에서는 매우 정제된 언어를 구사하였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오늘날에 비하여 언론의 보도가 자유스럽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은 자신의 말이 잘못 전달되거나 가십거리가 되지 않도록 그는 보좌진의 의견을 다 듣고 결심을 하기 전까지는 대중 앞에서 불쑥 불쑥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8․15 선언' 발표 시스템과 관련하여 또 하나 강조될 것은 정부가 이른바 코드가 다른 인사와도 대화를 하고 그들을 통하여 정부의 정책 전환의 취지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려고 시도하고 또 그들은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8․15 선언' 발표에 대한 국내외의 반발과 파장을 우려하여 관계부처와 중앙정보부로 하여금 주한 외교단, 정계, 경제계, 언론계, 종교계, 예비역 장성, 대학 총․학장 등을 대상으로 사전 설명을 하도록 지시하였다 특히 미국에 대하여는 8월 9일 대통령 주재 장관급 정책 검토 회의이후 '8․15 선언' 취지를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하여 전달하였다.


'8․15 선언'에 대한 국내외 반응은 일반적으로 호의적 반응을 보이면서도 한국이 타국에 의존한다는 오해를 씻는데 큰 도움이 되고 외적 시련을 막을 선제공세이며 통일을 향한 중대 포석이라고 하면서도 성급한 통일 무드를 우려하고 앞으로의 남북한 과정을 낙관하지 않았다.


여당인 공화당은 남북한 간 긴장완화가 되면 반공법을 개정할 수 있다는 논평을 하였으며 야당인 신민당은 통일을 위한 전진이라고 원칙적으로 환영한다고 하면서 9월 전당대회를 개최하기 전에 서신, 문화 교류를 포함한 안보통일 백서를 발표하겠다는 논평을 하였다.


뉴욕타임스는 이례적으로 '8․15 선언'을 발표한 토요일 판에 그동안 한국에서는 북한과의 직접 대화 논의가 금기시 되었으나 박 대통령은 처음으로 통일 문제에 대한 유연하고 긍정적인 접근을 제시하였다고 논평하였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은 '8․15 선언'이 통일에 이르는 최초의 이정표라고 논평하면서 일본도 미국, 중공, 소련과 함께 통일을 조건을 찾는데 힘을 기울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요미우리 신문은 동서화해 데탕트 분위기에서 제시된 박대통령의 유연한 제의는 근본적 정책전환은 아니지만, 긴장완화-남북교류-통일실현 이라는 3단계 통일방안을 구체적으로 표시한 것이라고 논평하였다. 또한 NHK는 북한이 획기적인 제안에 대하여 좋은 반응을 보일지 낙관할 수 없으나, 10월에 있을 당 대회 후 통일 논의가 활발해 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대통령의 '8․15 선언' 발표에 대해 북한 측은 8월 22일 노동신문을 통하여 “남한 인민의 반미․반정부 투쟁을 조금이나마 무마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박정희 정부와의 통일 논의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8․15 선언'의 후속조치로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1971년 8월 12일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하자, 북한은 경제력 역량에서 남한보다는 우월하다는 착각과 1971년 4월 이후 진행되고 있던 일련의 미․중 관계 개선 움직임에 잘만 편승하면 대남 관계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에서 회담 제의를 수락하였다.


 남북한은 1971년 8월 20일 남북적십자 파견원 접촉을 거쳐 9월 20일부터 적십자 예비회담을 진행하는 과정에 1972년 7월 4일 남북한 간 정치적 대화 개시를 공식화하는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로써 '8․15 선언' 이후 남북한 관계는 ‘대화 없는 대결’에서 인도적 회담과 정치적 대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대화 있는 대결’로 전환되었다.


 1970년대 초 남북대화에 둔 한국 측의 목표는 '8.15 평화통일구상 선언'의 정신에서 출발하여 전쟁방지를 위한 남북한 간 긴장완화와 불신 제거에 두고 실제 회담에서도 우선 불신 제거를 위해 남북한 간 경제, 사회, 문화 교류를 제안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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