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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8-09 11: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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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edom [Pixabay]


자유만큼 혼동되는 언어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평등, 복지, 행복 등의 언어로 자유를 치환하려고 시도하거나 그런 혼란을 고의로 만들어 내는 정치적 레토릭을 우리는 자주 접하게 된다.


자유는 심각한 언어의 변이 혹은 천이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아마 21세기 들어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우정치의 심화 과정 속에서 자유는 그 속에서 온갖 악을 뿜어내는 판도라적 언어로 전락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경제적 자유가 경제할 자유가 아니라 경제적 복지를 누릴 자유라는 말로 의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상은 너무도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개인의 소유권으로부터 그것을 활용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자유 – 창의적 발전은 오직 여기서 나온다 – 가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영위할 재산적 근거를 국가가 채워주어야 하고 그것이 나의 기초생활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국가의 의무를 내 자유의 조건이요 민주주의의 내실이요 내용이라고 주장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자유라는 단어는 아예 평등과 복지 정의 등의 언어에 그 자리를 내주고 희미한 기억 속으로 퇴색하는 그런 언어가 될 수도 있겠다.


자유의 타락과 더불어 민주주의 부패 현상도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민주주의라는 단어 역시, 독립적이고 자존적인 개인들이 공동의 사무를 결정하는 의사결정 방식으로서의 규칙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요 국가에 대한 경제적 청구권의 원천인 것처럼 인식되는 그런 언어의 퇴행화 중에 있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는 표와 뇌물이 맞교환되는 집단 바게닝(bargaining)에 다름 아니게 되고 대중은 다시 존엄한 주권자에서 작은 뇌물을 모색하는 피치자로 전락하고 만다.


더구나 민주주의는 이미 마치 국가들이 그런 것처럼 집단 대 집단의 패거리 싸움처럼 변하고 말았다. 대립하는 집단들이 자유로운 개인들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

언론은 그런 분열을 부추겨 민주주의를 월드컵 같은 집단 대항전으로 만들고 있다.


자유의 타락과 민주주의의 퇴행은 그 본질이 같다.

개인이 집단으로 대체되고 자유가 복지로 대체되는 것이라면 이는 자유를 스스로 부정한 노예들의 정치 제도가 되고 만다.


이런 현상은 20세기 들어 복지국가가 국가 이념형의 새로운 모델로 수용되는 것과 같다.

복지는 개인의 자비심과 그것의 결과인 사적 부조라는 오래된 틀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자비심은 개인이라는 안식처를 떠나 이미 국유화되었다.

이기적 개인들은 개인에 귀속되는 양심의 발로인 자비심을 국가에 양도하고 간단하게 세금을 조금 더 내는 방법 – 그것도 내가 아닌 나보다 부자가 세금을 더 낼 것을 요구하면 된다 – 으로 타협하면 된다. 도덕과 양심은 그렇게 국가에 양도되었다.


복지 국가의 복지는 극빈자나, 굳이 존 롤스(Rawls)의 용어를 빌리면 최소 수혜자에 대한 자비심의 발로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권리로 인식되기에 이른 것이다.

복지는 곧 시민권이라고 인식하는 기초에서만 소위 보편적 복지 국가가 세워질 수 있다.

이 복지 개념이야말로 개인의 자유라는 전통의 자유 개념을 기어이 침식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개인은 그렇게 자비심에 개입할 여지가 없어지고 말았다.


21세기로 진입한 이후 세계 민주주의는 점차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데 남유럽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 극소수의 서구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 신생국이나 민주주의 전환국들에서는 궤도 이탈 현상이 보편적이라고 할 만큼 만연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궤도이탈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인민주의나 집단주의로 나아간다.

국가 의사결정에 대한 국민 각자의 자기책임의 원리라는 민주주의의 존엄한 이상은 이미 박물관 수장고에 처박힌 박제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지금 민주주의가 직면한 운명이다.

유권자들은 공공연하게 복지를 경쟁적으로 제안하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그래서 그들이 제안하는 뇌물의 크기를 보고 투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스 헤르만 호페(Hoppe)는 1914년 이후에 민주주의라는 해변에 도착한 국가들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통계를 제시한 바도 있다.


실제로 동유럽, 구소련 연방국들, 남유럽,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의 대부분 나라들에서 민주주의는 자유를 제압하기 위한, 일종의 대중압력을 극대화하는 일종의 복지 가압 장치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런 의미의 변화가 더욱 빠른 속도로 일어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민 행복국가를 선언하고 국민들의 행복할 권리를 국가의 의무라고 규정한 것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행복은 원래는 내가 규정하고 내가 선택하는 전통적 자유권의 핵심적 개념이었다. 문재인 정권도 다를 바가 없다.


“국가가 당신의 삶을 책임진다”는 언어는 전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있다.

나의 행복을 국가가 규정하거나 침해할 수 없다는, 자유권의 본질로서의 행복 추구권이 전통적 자유권이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가 (나를 대신해) 부자로부터 자원을 착취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국가에 대한 청구권처럼 변모하고 말았다.

이는 노예들의 행복일 뿐 결코 자유인의 행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는 국가를 약탈자로 만들고 정치인들에게 로빈후드의 역할을 요구하는 비열한 타락상이다.

복지라는 것은 그렇게 서서히 혹은 급진적으로 자유의 개념을 침식하여 왔다.


처음 절대군주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을 때 자유는 오직 ‘제한된 국가 권력’을 의미했다.

제한된 권력은 국가 권력의 행사에 유권자 혹은 주권자의 동의가 필요한 것으로 정의될 수 있는 체제를 말하는 것이다.

재산권에 대한 제약을 더욱 그랬다.


그러나 점차 민주주의가 대중에게 팔려나가면서 혹은 대중화되면서 자유는 경제적 청구권으로 변질되었고 이제 국가들은 규제국가, 약탈국가, 로빈후드 국가로 점차 전환되고 있다.

그 결과 진정한 경제적 자유는 오히려 부정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치 현상은 더욱 그런 경향성을 드러낸다.

부자들에 대한 대중의 적대감, 적어도 질투심은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는 에너지로까지 수용된다.

반기업 정서같은 것도 그렇다.

자유권의 가장 핵심적인 자유는 사유재산권이다.

그러나 바로 이 자유가 도처에서 삭감되고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


사유재산권이 자유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설파한 사람은 역시 하이예크(Hayek)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하이예크는 사적 소유권이 없는 상황을 결코 인정한 적이 없다.

사적 소유권이 없는 체제는 자유권을 심각하게 통제하려는 그런 사회다.

복지나 평등에 대한 요구는 결국은 자유를 박살내는 반자유주의적 압력을 높이게 된다.


한국 국회가 심각한 포퓰리즘 입법에 포획되어 있는 것은 이런 저간의 사정 때문이다.

국회에서 다수결로 결정하기만 하면 법적 정당성을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법치는 부정되고 만다.

정치를 법으로 대체하고 나면 자유는 간단하게 멸실될 수 있다.


최근 문재인 정권 측에 서있는 일단의 교과서 집필자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단순히 민주주의로 대체하려는 시도에서 크게 성공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밖에 없다.


인민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집단주의이며 이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을 전제 조건으로 하는 지유민주주의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 일탈을 많이 경험해 왔다.

아시아 사회는 더욱 그렇다.

중국의 홍위병 현상이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가 한국에서 재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만 하더라도 반자유주의적 정치 숙청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법의 이름을 빌린 그리고 법적 외연을 갖춘 사실상의 반법치적 인권유린이 파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형사 범죄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없이 자행된 탄핵과, 끊임없이 언론의 선동에 흔들리는 정치는 한국 민주주의의 가변성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적 압제가 자유를 질식시킨다.

누가 자유를 지키고 건져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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