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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8-08 22: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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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부터 본격 활동을 시작했던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가 활동을 마치고 조사의 결론이랄 수 있는 종합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종합보고서는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 아무 결론도 내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선체를 인양한 것도 모자라 직립 즉 똑바로 세우는 작업까지 하면서 사고 원인을 찾는다고 국민 혈세를 투입했지만 결국 내인설과 외력설을 모두 조사 보고서에 담는 절충식으로 조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인설은 세월호의 침몰이 급격한 우회전, 무리한 증·개축, 화물 과적, 부실 고박, 복원력 감소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며 이뤄졌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외력설은 잠수함 등 외부 충격의 영향으로 세월호가 가라앉았다는 주장입니다. 한마디로 정반대의 주장으로, 같은 보고서 안에 담길 수 없는 내용입니다.


완전히 상반된 결론을 하나의 보고서에 담았다는 것은 선체조사위원회가 결국 이 사건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도대체 이럴 거라면 왜 새삼스럽게 문재인 정권 출범한 이후 별도 조사위를 만들고 거액의 예산을 들여 세월호를 인양하고 다시 똑바로 세우는 작업까지 하며 조사를 했는지 의문입니다.


게다가 선체조사위원회의 활동은 2기 조사위원회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도대체 세월호는 언제쯤 종결이 될까요? 마르고 닳도록 공공부문 일자리 만들어내는 화수분이 되지 않겠습니까? 얼마 전 돈스코이라는 러일전쟁 당시의 침몰선에 엄청난 보물이 있다는 소문이 다시 나돌았습니다만, 지금까지 진행된 경과를 보면 세월호야말로 무한정 정부 일자리와 예산을 만들어내는 보물선이자 화수분이라고 비꼬아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세월호 사고의 원인에 대한 조사는 이미 여러번에 걸쳐 이뤄졌습니다. 무엇보다 세월호 사고 당사자들에 대한 재판을 들 수 있습니다. 형사재판은 사건의 실체에 대한 가장 엄밀한 조사를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범죄 수사를 전문으로 하는 국가기관 즉 검찰이 방대한 전문 인력과 예산을 들여서 조사해서 증거와 가설을 제시하고 이를 다시 법정에서 치열한 토론을 거쳐서 결론을 찾아가는 작업입니다.


세월호 사고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니 선체조사위원회니 하는 기구가 만들어졌지만, 이들이 검찰의 기소 내용 이외의 것을 추가로 밝혀낸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저 막연한 의문과 음모론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그따위 의문과 음모론은 거창한 국가 예산을 들이지 않더라도 하룻밤에 수십 개라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정부의 공식 기구가 아닌 언론의 탐사 보도나 민간 차원의 이런저런 조사도 많았습니다. 자로란 네티즌이 만든 [세월X]인가 뭔가 하는 다큐멘타리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뭔가 음습한 궁금증을 자극하고 음모론을 퍼뜨리는 것 외에 실체적 진실을 밝혀낸 것은 거의 없습니다.


이번 선체조사위의 보고서는 또 다른 문제점도 안고 있습니다. 이번 선체조사위의 의뢰를 받아 외력설의 타당성을 조사한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의 세월호 3차 모형실험 보고서를 뉴스타파가 입수했습니다. 그 보고서에 의하면 세월호 외력 침몰 가설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시나리오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합니다. 사고 당시 세월호의 거동은 외력을 전제하지 않고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마린은 보고서 초안에서 “외력 가설은 기각됐다”고 명시적으로 기재했지만, 선체조사위 내부 외력 태스크포스(TF)의 요구에 따라 최종본에서는 이 표현을 삭제해줬다는 것입니다.


마린은 선조위 외력TF가 의뢰한 외력 검증 테스트 결과에 대해 ‘외력 가설 기각’이라는 자신들의 판단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려 했지만, 외력TF의 요구로 내부 논의를 거쳐 이 표현을 삭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린은 사고 당시 세월호의 거동은 외력을 적용시키지 않고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는 자신들의 입장엔 변함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게 뭘 말할까요? 선체조사위가 사고 원인에 대한 과학적 판단을 위해 해외의 전문기관에 ‘외부 충돌설’의 검증을 맡겼고, 그 조사결과를 받아봤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용역보고의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자 일부러 그 조사 결론을 왜곡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선체조사위 내부의 외력설 추종자들 즉 ‘외부 충격에 의해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주장을 펼치는 집단이 자기들이 의뢰한 용역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자 국민을 상대로 사기질을 치고 자료를 왜곡하고 전문기관을 압박해 진실을 왜곡했다는 얘기입니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공직윤리 파탄 사례입니다. 이렇게 파렴치한 행동을 당당하게 겁도 없이 저지를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세월호가 일종의 우상이자 종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상이나 종교는 합리적인 비판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상과 종교가 자발적으로 이 신념체계를 선택한 사람들의 범위 안에서 적용된다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이성적인 국가 시스템과 법률의 판단으로 대처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런 우상과 종교가 국가 권력의 심장부를 장악하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근대국가의 구성원리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정교분리의 원리가 깨지는 것입니다. 이런 정교분리의 원칙이 깨졌을 때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는 이슬람 국가들의 현실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근대 문명의 원칙이 무너지고 사람들의 삶이 근대 이전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런 근대문명의 붕괴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봅니다. 세월호만이 그 원인인 것은 아니지만, 세월호가 대표적인 현상인 것은 분명합니다. 합리적인 논리와 근거가 먹혀들지 않고 감성적이고 도그마에 치우친 주장들이 공론장을 장악합니다.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들의 합리적인 생각과 주장은 공론장에서 쫓겨납니다.


이런 문제점을 잘 보여주는 현상이 세월호 외력설을 주장하고 끝없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막장 행각입니다. 작년인가 세월호 선체 인양을 계기로 호남 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이 축제를 일제히 취소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행태에 대해서 비판하는 글을 써서 공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호남은 장례식 전문지역이냐, 세월호 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 호남이지만 정작 세월호 유족이란 사람들이 호남의 피해에 대해 뭐 하나 보상해주고 신경써준 적이 있느냐고 비판했습니다.


이 글을 발표한 뒤 호남 지역에서 제게 전화가 왔습니다. 저도 안면이 있는 사람의 전화였습니다. “호남 팔아먹지 마라. 세월호 거론하지 마라. 분명히 경고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 의견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는 이유만으로 저렇게 노골적으로 경고 메시지를 날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나라의 정신 상태가 뭔가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났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며칠 전에도 선체조사위가 사고 원인에 대해서 뚜렷한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2기 조사위원회로 이어진다는 보도를 보고 제가 비꼬는 포스팅을 올렸더니 어마어마한 욕설과 협박 댓글이 줄줄이 달렸습니다. 한마디로 세월호에 대한 어떤 이견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이들은 그런 짓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정의롭다는 확고한 자신감을 갖고 있습니다. 심각한 인지부조화 상태라고 봅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해 여름에 국회에서 이 문제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패널로 참석했던 이언주 의원의 발언이 기억납니다.


“세월호 사고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지역에서 물어보면 반응이 뚜렷하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변호사나 의사, 약사, 괜찮은 기업가 등은 지금보다 더 열심히 싸워서 꼭 진상을 밝혀달라고 요구하는 반면, 정말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의 어려운 분들, 영세 자영업자나 건축일 하시는 분들의 경우에는 세월호 때문에 미칠 지경이다, 제말 그만 좀 해라고 얘기합니다.”


이 증언이 세월호 사건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말 그대로 유한계층의 지적 사치재로 쓰이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입니다. 그 표현 형태가 우상이자 종교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구요.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옛날 임금의 장례도 이렇게 오랫동안 전국민의 애도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무리들이 국민의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마저 억압하는 실정입니다. 이건 정상이 아닙니다.


세월호의 진실이 무엇이라 해도 결코 바뀔 수 없는 팩트가 있습니다. 이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이 안타깝고 슬프지만 아무리 그래도 공익을 위해 희생된 죽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연히 자발적인 헌신이나 희생도 아닙니다. 그런데 천안함이나 기타 국가를 지키다가 희생된 사람들보다 더 엄청난 국민적 보살핌과 지원을 받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요?


세월호,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광화문 광장이 세월호의 것입니까? 도대체 언제까지 세월호 팔아먹는 사람들을 위해 국민들이 인내하고 혈세를 쏟아부어야 합니까? 


세월호 조사 활동을 더 연장해야 한다면 이제 그동안 세월호를 빌미로 정부 예산을 받아먹었던 사람들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도대체 무슨 명목으로 무슨 돈이 얼마나 누구에게 갔는지 밝혀내야 합니다. 엄청난 혈세를 쏟아붓고도 사고 원인 하나 밝혀내지 못한 저들에게는 국민의 준엄한 검증과 심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정상국가로 돌아가는 단초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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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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