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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7-11 15: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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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부활, 정당의 정상화에서 시작해야


우리나라 우파가 몰락했다는 사실은 이제 감출 수도 부인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정당이나 정파가 몰락한 것이야 그냥 그 정당이나 정파의 문제일 뿐이지 일반 국민들이 굳이 그 문제를 걱정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다만 우파가 상징하는 가치가 분명히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점에서 우파의 몰락은 심각한 문제이긴 합니다. 우파가 시대적 흐름을 극복하고 다시 이 나라 주류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매우 어려운 싸움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상징자산 싸움에서 밀리기 때문입니다.

우파의 상징자산은 이승만, 박정희, 반공, 경제개발, 한국전쟁, 군부독재, 영남, 자유한국당 등입니다. 좌파의 상징자산은 김대중, 노무현, 민주화, 남북대화, 민주화, 5.18광주항쟁, 호남, 더불어민주당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란 상징자산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습니다. 어떤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자신들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를 길고 복잡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정치는 대학 강의가 아니고 유권자들도 공부하는 학생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징자산은 바로 이런 정치 환경에서 매우 간단하고 직관적으로 어떤 정치세력이 추구하는 가치나 목표를 표현해줍니다. 즉, 박정희나 이승만을 지지하는 세력이냐 아니면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지하는 세력이냐를 통해 유권자들은 그 정치세력의 정체성을 쉽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우파는 상징자산 싸움에서 좌파에게 매우 열세입니다. 물론 위에서 예를 들었던 우파의 상징자산 자체가 좌파에게 밀린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상징자산을 다루는 실력 즉 주체의 문제가 걸립니다. 즉, 같은 상징자산이라도 누가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효과는 엄청난 차이를 드러내게 됩니다. 이른바 메신저가 곧 메시지라는 원리 때문입니다.


즉, 이 문제는 우파와 좌파의 정치 주체의 정체성 또는 실력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우파의 정체성은 사실상 5.16 당시의 정치 군인들에 의해 형성된 측면이 강합니다. 5.16을 주도했던 육사 출신 정치군인들은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근대화된 교육과 훈련을 받고, 정치적 민감성을 갖고 있으며, 잘 조직화된 집단이었습니다.


이들이 박정희를 중심으로 경제개발과 근대화의 높은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존재론적으로 문화적 감수성이 약하고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합니다. 자율과 개방이라는 추세에도 적대적이었습니다. 결국 근대화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이런 취약성 때문에 좌파에게 주도권을 뺏기게 됐다고 봅니다. 특히 호남 문제를 적절히 처리하지 못한 것이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됐습니다.


반면 좌파의 정치적 주체는 이른바 386 학생운동권 출신들입니다. 이들은 80년대 한국 사회의 자율과 개방이라는 요소의 혜택을 가장 집중적으로 받은 집단입니다. 이들이 자기 정체성의 핵심으로 내세우는 80년대 민주화투쟁의 그 위대한 업적이란 것은 사실 전두환정권이 의도적 계획적으로 '허용'해준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전두환 정권은 80년 광주항쟁의 유혈에 대한 부담 나아가 이전 70년대 박정희식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의 경직성을 탈피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자율과 개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극악한 인권유린 사례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80년대는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본격적인 개방과 자율, 유연화가 진행된 시기였습니다.


이른바 80년대 학번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장점으로 갖고 있는 비권위적 외형이나 스펙, 문화적 감수성도 바로 전두환 체제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징자산 싸움에서 이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 자체가 바로 80년대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대중 특히 청년층에게 어필하는 데 있어서 우파는 좌파의 상대가 되기 어렵습니다. 좌파는 문화적으로 훨씬 세련되고 젊은 감수성에 어필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우파의 부활 또는 우파적 가치는 포기해야 하나요?


상징자산은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한국은 상징자산이 무척 빈약한 나라입니다. 상징자산을 다루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문학 영역에서 우리나라의 성과가 매우 빈약하고 위대한 작가가 드문 것을 봐도 알 수 있는 현상입니다.


상징자산은 본질적으로 과거의 것입니다. 한국의 상징자산이 빈약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한국의 정치는 특히 과거사 싸움에 몰입하게 됩니다.


친일과 반일을 다투고 민주화와 독재가 다투고 박정희 이승만과 김대중 노무현의 시체 장사를 합니다. 상징자산이 빈약한 한국의 정치 문화에서 그게 그나마 대중에게 먹혀드는 상징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상징자산 싸움을 멈춰야 합니다. 그건 본질적으로 과거의 유산을 놓고 다투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벌어진 일을 놓고 아무리 다퉈봐야 과거에 있었던 비극이나 영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해석의 차이를 놓고 다투는 것일 뿐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제사 지내는 문제를 놓고 몇십년씩 싸웠던 사례라 떠오릅니다. 박정희를 높게 평가한다고 해서 지금 시대에 유신을 다시 선포할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아마 그랬다가는 우리나라 우파들부터가 도저히 못살겠다고 때려엎자고 시위하러 나올 겁니다.


우파는 앞으로 미래 비전으로 싸워야 합니다. 사유재산 보호, 개인과 시장, 계약의 정신, 법치 등 근대화의 가치가 지금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 창의적인 정신으로 구체화하여 설계하고 이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가치를 지키기 위해 왜 국가와 체제 안보가 절실한지에 대해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새로운 정치 주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치군인도, 386 학생운동 출신도 아닌 제3의 정치 주체를 창출하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당원'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최초로 '정치'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정치 주체가 등장해야 합니다.


정치군인도 386학생운동 출신들도 정치적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 때문에 그들이 '정치적 역할'을 떠맡은 것뿐입니다. 이것은 기형적 상황이고 그런 기형적 상황은 항상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한국 정치 현실의 왜곡도 이런 기형성에서 기인한다고 봐야 합니다. 이 기형적 상황을 바꾸려면 본질적으로 정치적 존재인 당원이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건 거대한 역사적 전환점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전문적으로 정치를 다루는 집단이 존재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토론도, 정치 컨텐츠도 없습니다. 정치 컨텐츠를 다루는 토론이 없으니 제대로 된 정치 리더십도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이게 안되니 정치는 정치적 이권의 거래로 전락하고, 정당은 정치 자영업자들의 임시 수용소 역할을 할 뿐입니다.


386학생운동 출신들의 핵심 정치 단위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정당인가요? 아닙니다.

바로 시민단체입니다.


참여연대니 경실련이니 환경운동연합이니 온갖 시민단체 나부랑이들이 학생운동 출신 386들을 껴안고 있습니다. 사실상 대한민국 정치는 이들 시민단체들이 비공식적이고 은밀한 내부 담합과 거래를 통해 제도권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내부의 의사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할까요? 그게 아니라는 것은 시민단체 출신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선후배 기수 따지고 명망성 따져서 다들 알아서 인정하는 묵계가 이뤄집니다. 이렇게 허접하고 개판인 조직이 공적인 국가기구라고 할 수 있는 정당의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시민단체가 정당을 하부 단위로 거느리는 구도라고 봐야 합니다. 이 구도를 깨야 합니다. 이것은 386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가장 힘을 발휘하는 구조입니다. 정당 안에서 지들끼리 형 동생 호칭하는 문화가 여기에서 나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원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 변화를 통해서 비로소 어마어마한 좌파의 문화권력, 헤게모니를 깰 수 있습니다.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을 놓고 누가 더 옳았느냐 다투는 상징자산 싸움을 탈피해 미래의 비전을 놓고 결전을 벌일 수 있게 됩니다.


대한민국은 사기 공화국이라고 합니다. 정당의 의사결정 구조조차 사기에 가깝습니다. 실명성도, 정확한 표 집계도 없습니다. 이걸 깨는 노력을 통해 한국 사회가 정상화될 수 있습니다. 정당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진성 당원제 그리고 당원 중심 정당이 그래서 관건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게 출발해야 합니다. 온갖 명분과 이론 동원해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도로아미타불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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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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