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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5-22 12:33:11
  • 수정 2023-05-22 12: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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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라이프스토리를 개방하는 경우가 있다. 제한된 정보 안에서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만 판단하다가 개인에게 있었던 일이 어떤 의미로 해석 되고 영향을 끼쳤는지 알게 되면 그 사람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된다.


생전 처음 만나는 분들과 딱딱한 분위기의 강의실에서 만나면 진진가 게임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거짓 같은 진실과 진실 같은 거짓을 섞어서 나란히 보여주는 게임인데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고개를 갸웃대며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저 사람에게 과연 저런 경험이 있을까? 혹시 저것이 답일까?’라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면 편견은 깨지고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예를 들면, ‘나는 서울 중구에서 태어났다, 나는 사하라 사막에서 조난을 당한 적이 있다. 나는 바다에서 표류하다 무인도에 닿은 적이 있다. 나는 연극무대에서 밸리댄스를 추었다. 나는 피라미드 속에 들어간 적이 있다.’와 같은 것들이다.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설마 저 사람에게 그런 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나하나 설명을 하며 진실과 거짓을 가려주면 ‘세상에 그런 일이’ 하는 표정을 짓는다. 도심의 콘크리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사하라 사막의 조난이나, 남지나해에서의 표류와 같은 일을 희귀한 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와 같이 드문 경험들은 위기상황이 닥치거나 모험을 해야 할 때 잠재적인 야성을 흔들어 깨우는 힘이 있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라서 반백년 동안 동행한 벗들은 서로 어릴 때의 성격이나 독특한 개성 등을 알고 있지만 헤어져 산 세월이 많은 지라 가끔씩 놀랄 때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계절에 한 번씩 1박 2일 짧은 여행을 하자고 약속을 하고 실행한 지 한 두 해 밖에 안 되었는데 만날 때마다 서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지난 주말에는 친구들과 여름 시즌의 여행을 했다. 서울 외곽에 있는 친구의 집에 가기로 했는데 사방에 휴양림이 있는 깊은 산속에 별장이 숲과 경계 없이 자리를 잡았고, 마당에는 모닥불 피우는 자리와 수영장이 갖추어져 있었다. 수도꼭지가 없이 맑은 물이 철철 흘러넘치는 곳에서 선녀탕에 발을 담그니 더위가 순식간에 물러갔다. 갑자기 내린 비로 수영장에 흙탕물이 섞였기에 막대솔을 들고 바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다른 식구들이 청소를 하고 거의 콧노래를 부르며 저절로 청소도구를 잡았다. 맑은 공기와 풍성한 계곡물은 마치 전기코드를 꽂아 충전을 하듯 힘을 북돋워주었다. 친구들은 엉거주춤 수영장 밖에 서서 내가 청소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네가 그렇게 씩씩하게 청소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니?’하는 표정이었다.


다음은 바비큐 기구에 불을 지피고 하얗게 화력을 내는 숯 위에 그릴을 얹어 고기를 굽는 차례다. 비가 오락가락해서 우산을 받쳐가며 숯불 앞에서 고기를 구우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마치 야영하는 분위기에 저절로 신이 났다. 콘도와 같은 실내에서는 대부분 보조역할을 하거나 주변 환경을 즐기던 내 자신도 그와 같은 일을 즐긴다는 것을 발견하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스스로 야외형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이번에는 거침없이 모닥불을 피우기에 도전했다.


밤이 되면서 숲 속의 기온이 내려가고 모기와 풀벌레가 모이므로 겸사겸사 불을 피우는 것이 유용하고 재미도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클럽에서 시골에 농촌활동 갔을 때 아궁이에 불 때던 장면을 떠올리며 신문지를 구겨서 불쏘시개를 만들고 작은 나뭇조각과 솔가지를 얹어 불을 붙였다. 눅눅했던 장작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자 모닥불가에 모여 앉아 십대부터 오십년 간 이어지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익히 알고 있는 것도 있었고 처음 듣는 친구의 근황도 있었다. 모닥불 앞에 모여 앉으면 저절로 진실을 이야기하게 되어 있다. 친구들은 내게 ‘야영소녀’라는 새로운 별명을 붙여주었다.


친구들과의 1박 2일과 진실게임을 통해 불현듯 깨달은 것이 있다. 사막의 조난, 망망대해의 표류, 무인도에서의 생존, 너울파도에 휩쓸리는 공포, 수해로 인한 피난, 태풍 속의 고립 등 자연 속에서 당했던 여러 가지 자연 속의 재난들로 인해 내 안의 자연인을 깨워서 일단유사시에 부르면 일어나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원리다. 책상에서 책을 읽고 강단이나 코칭룸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만 내 안의 자연인은 언제나 자연 속에서의 모험과 자유로운 춤을 출 기회를 엿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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